司法府에도 좌경 바이러스 침투!

두 정권이 포퓰리즘이라는 병균인지 바이러스를 사회 각계각층으로 퍼뜨리더니 마침내 검찰과 사법부에도 그런 오염에 젖어든 것이 아닌지 걱정이다. 옛말에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 라는 말이 있다. 특히 지난 10년 동안 우리들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사이에 이 나라 사법적 토양에 무언가 심각한 오염이 서서히 진행되어 온 것이 아닌가, 하는 통분을 금할 수 없다.




두 정권이 포퓰리즘이라는 병균인지 바이러스를 사회 각계각층으로 퍼뜨리더니 마침내 검찰과 사법부에도 그런 오염에 젖어든 것이 아닌지 걱정이다. 우선 검찰을 먼저 살펴보기로 한다. 멀리 갈 일도 없이 박 연차 리스트와 노 무현의 포괄적 뇌물수수 혐의를 계기로 검찰의 응집력(凝集力)을 보면, 대번에 알 수 있는 일이다.




나 같은 고령자가 살아오는 동안, 검찰이라면, 犯罪와 전쟁을 치르기 위한 채비로 “검사(검찰) 동일체”로 뭉뚱그려 표현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바꾸어 말하면, 범죄를 대하는 검찰의 對應에 있어서 검사 나리들이 전국적으로 몇 천 명이 되더라도 검찰총장을 정점(頂点)으로 하여 한 마음으로 무장된 상태로서, 그 가운데는 닷 마음을 가지는 異質性이 없다는 의미에서 검찰의 몸통은 한 몸으로 설명되었다.




그러던 ‘검사 동일체’에 대해서 노 무현이 통치자로서 검사 동일체에 비아냥거리던 것이 어제처럼 생각이 나는데, 지금 검사 동일체가 ‘검사(검찰) 다원(면)체’로 변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어떤 범죄를 대할 때 검사들의 시각도 저마다 다소 다른 것 같으며, 어떤 피의자의 소환 조사에 대해서는 ‘전관예우’를 들어 청와대에 요구해서 온갖 편의를 제공하는가 하면, 전관예우를 주장하는 피의자에게 신문관은 ‘대질신문’ 도 접는 일은 한 마디로 예우로 시작해서 예우로 끝나는 검찰을 두고 범죄와 전쟁을 벌이는 ‘검사 동일체’로 과연 볼 수 있느냐? 말이다.




검찰은 구속 조사를 했다가는 잘못하면 정치적 逆風을 맞니 뭐니 하거나 여론의 향배도 살피는가 하면, 검찰총장이 지방에 있는 이 사건과 관련이 없는 일선검사들에게도 개인적 의향을 물었다고 한다. 우리 헌법에 특별한 피의자에게도 이런 특권을 인정하는 조항이란 눈 닦고 보아도 찾을 길이 없다. 이러한 검찰은 이것저것 눈치만 살피면서 몸을 사리는 일종의 포퓰리즘의 형태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이제 법원의 사정은 어떠한가? 검찰보다 훨씬 심각하다. 포퓰리즘의 역기능으로 인하여 신 영철 대법관은 이제 소장 판사들에 의하여 인민재판(?) 받을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이 들려오는 소문이다. 신 대법관이 반미, 반FTA, 반보수 세력의 데마고구와 아지테이션에 의하여 요원의 불길처럼 삽시간에 번진 ‘야간 촛불 난동’에 의해 이 나라의 명운이 간난의 위기에 임박했을 때 서울 중앙지방법원장이었던 신 영철 법원장이 한 일이 경찰이나 검찰의 역을 대행했다는 말인지 도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가 당시(2008년) 법원장으로 한 일이 개개 판사의 일에 개입했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법원장의 司法行政으로서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라고 사료된다. 첫째로 경찰이나 검찰에서 ‘야간촛불 집회 내지 시위’를 불법으로 사건화해서 법원으로 무더기로 기소해올 때, 법원으로서 이를 어떻게 처리하느냐? 라는 것은 헌법 소원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골치 아픈 초미(焦眉)의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당시 검사인지 판사인지가 헌법 재판소에 “야간 촛불집회와 시위가 불법인지의 여부를 가려 달라”는 헌법 訴願을 제출한 바 있었다. 이 소원이 해결되기 전에는 법원으로서는 피의자들에 대한 가벌(可罰) 여부는 불투명하기 마련이다. 신 지법 원장은 몸소 헌재를 찾아가 이런 다급한 사정을 전하면서 가부간 헌법 소원을 빨리 해결해 줄 것을 부탁한 것이 그 무슨 잘못이라는 말인가? 헌재에 간섭하기 위해 찾아간 것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은 지나친 기계론자들의 터무니없는 ‘중상모략’에 가깝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둘째로 야간 집회 및 시위를 주동한 모씨에 대해서 사전구속 영장 발부를 심의했을 때 당해 판사는 영장을 발부했는데도 그 후 그 피의자에 대해서 판사는 보석을 허가했을 때 그 피의자는 마치 영웅이 된 듯한 모습으로 자신의 무죄함과 무사함을 온 세상에 과시한 바 있었다. 그런 연유로 신 지법원장은 개개의 판사들에게 보석을 허가할 때 신중하게 검토할 것을 e-mail로 호소한 바 있다.




이것은 서울 중앙지법 원장으로서 구체적인 사안을 두고 보석을 하라, 하지 말아달라는 개입이나 간여가 아니라 사법행정의 범위 내의 정당한 요구라고 생각된다. 여기에 대해서 야비하게 언론에 발설함과 아울러 언론 플레이를 하는 촛불시위에 동조하는 판사들의 집단적 태도는 신 법원장의 평소 보수적인 그의 시국관을 문제 삼는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아진다.




이러한 법원장의 사법행정을 문제 삼는다면, 개개 판사들만 있으면 되지 지법원장, 고법원장, 대법원장이라는 자리들이 마련될 필요나 이유가 없는 것이 아닐까? 이 문제에 대해서 좀 길게 얘기하다보니 법원 내의 포퓰리즘적인 분위기에 대한 얘기가 뒷전에 밀린 느낌이다.




불만을 품은 판사들이 집단적으로 언론 플레이를 하고 관련 얘기들을 언론에 흘렸을 때 그들이 뭣을 의도하는가를 사법부 수뇌부는 연해 알아차리고 철저한 비공개리에 전모에 대해서 은밀히 조사를 진행해야 함에도, 거의 공개된 상황에서 법원 행정처장이 조사를 진행시키는 바람에 그 귀추가 매일 신문에 화제꺼리로 등장하고 나중에는 전국 주요법관 회의를 열어 개개 법관들의 의사를 묻는 가하면, 또 대법원 공직자 윤리위를 열어 최종 결정을 도출해 내는 과정에서 신 대법관은 바람직하지 않은 ‘여론 재판’(사법부 안팎의)의 희생물이 된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다.




개인의 명예와 자존심을 중히 여겨야 할 사법부가 신 법원장이 관련된 그 전모가 비록 단 하나의 의혹도 없이 드러냈다고 할지라도 마치 인민재판에서 보는 것처럼 신 법원장의 명예와 존엄성이 아무 따위로 유린될 정도로 신문-방송에 회자된다고 하면, 그렇게 사려 깊지 못한 사법부가 이 나라에 왜 필요하며, 왜 존재해야 하는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대법원장과 법원 행정처장의 자격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줏대 없는 대법원장과 갈지자 행보를 보인 법원 행정처장은 좋게 말해서 ‘집단 내 민주주의’(참여 민주주의)가 될는지 모르겠으나, 나쁘게 말해서 사법부 구성원들의 인기에 영합하는(?) 포퓰리즘적인 접근으로 볼 수는 없겠는가? 그런 역기능이라 할까, 폐단이 이제 사법부 내 여기저기에서 아무런 거리낌 없이 불쑥 솟아나는 것이 근일의 추이로 옮겨가는 것이 사법부의 장래를 위해서 참으로 우려스럽다.




불길한 소식에 의하면, 서울 중앙 지법 산하 단독판사 150여 명이 내일 한 곳에 모여 <윤리위의 결정과 신 대법관 신상문제>를 안건으로 한 법관회의를 열어 집단적인 의사를 결집시킬 계획으로 있으며, 북부 지법에서도 비슷한 동향을 보이고 있는가 하면, 법원 행정처의 판사들도 모종의 집단적 노력을 경주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앞으로 사법부 내의 크고 작은 문제꺼리가 생기면, 소장 판사들이 수뇌부를 불신하고 앙빵 떼리블처럼 멋대로 각급 법관회의를 열어 중구난방으로 자신들의 요구를 주장하고 나올 가능성은 매우 농후해진 양상으로 발전할는지 이 나라 사법부의 앞날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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