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창의 추억

피비린내 나는 살육극의 주인공은 죽창이었다. 죽창은 막대기가 아니다. 대나무 죽창은 6.25를 전후하여 지리산 이남지역에서 활동하던 공비들과 월남전이 한창일 때 베트콩들이 사용했던 무성무기였다. 8.15이후 남한에서 활동하던 좌익분자들이 밤손님이라고도 불리는 공비가 되어 묵은 대나무의 한쪽 끝을 예리하게 깎아 살상무기로 사용했다. 일본에서 살다가 광복을 맞이하여 갓 귀국한 우리가족은 장흥군 부산면에 사는 외갓집에 다니러 갔다가 어머님의 병환으로 발이 묶이면서 유치면으로 옮겨 사는 중에 밤손님들이 죽창을 들고 설쳐대며 저지르는 끔찍한 사건들을 목격하게 되었다.


46년 이른 봄의 어느 날 밤, 우리가 살던 보림사 입구 삼거리 안 금성마을에 밤손님들이 나타났다. 일제 때부터 경찰관 아들을 둔 구장 박씨 영감을 죽창으로 찔러죽이고 옆방에서 자다 도망치는 경찰관 아들을 근처 냇가 용소에서 붙잡아 죽창으로 마구 찔러 죽였다. 이 무렵부터 경찰관들이나 공무원 지주들을 죽창으로 찔러죽이고 이용가치가 있다싶은 지식인들을 회유해서 강제로 입산시키는 사건이 빈번해 졌다.


해가 바뀐 47년 초, 외할아버지의 주선으로 면의 호적서기가 된 아버지는 장흥 재판소에 다니는 외삼촌 때문에 불똥이 튈까봐 숨도 크게 못 쉬는 처지라 더 안전하게 지내려고 지서에서 가까운 송정리 강동 마을로 이사를 했다. 바로 다음해 공비들에게 살해된 이웃 지서 경찰관의 장례식에 참석하러 유치면 지서장과 면장일행이 3/4톤 스리쿼터를 타고 상가가 있는 영암군 금정면으로 가는 도중 덤재를 넘다가 공비들의 습격을 받았다.


구구식 소총으로 무장한 경찰관들과 일행은 공비들이 쏜 몇 발의 총탄에 제압당해 죽창에 찔려 살해된 채 차량과 함께 불태워진 처참한 사건들이 발생했다. 이에 광주에 주둔하고 있던 국방경비대의 1개 중대가 유치면에 상주하면서 공비소탕작전을 펼쳤다.


내가 초등학생이 되던 48년 4월 하순경 장흥에서 광주로 가던 군 트럭이 유치면 관동리에서 공비들의 습격을 받아 죽은 군인들을 소달구지에 싣고와 냇가에서 장작더미를 쌓아 놓고 화장을 했다.


50년 6.25가 터지자, 유치면 산간지역은 한동안 적의 해방구에 속해 있으면서 군경토벌대의 격전장이 되었다. 51년 이른 봄 지서를 요새화하기 위해 돌담을 쌓아 아래바닥에 끝이 예리한 짧은 죽창들을 쫙 박아 물을 넣어 해자를 만들고 그 외곽으로는 큰 대나무를 겹으로 엮어 울타리를 만들었다.


지서 요새화 작업이 끝나면서 군인들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가고 얼마 있지 않아 무서운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완전무장한 경찰들은 매일 밤 민간인들을 동원하여 죽창을 들고 외각보초를 서게 하고 자신들은 더 안전한 토치카 안에서 총을 들고 경계를 하고 있었다. 때를 노리고 있던 공비들이 경찰지원병이 올 수 있는 도로를 차단하고 전선줄을 끊고 자기들 지역에 사는 주민들을 동원하고 있었다. 우리가족이 지서에 더 가까운 집으로 옮겨 간지 3일째 되던 날, 초저녁부터 빨치산 해방구에서 강제로 동원된 산속주민들이 화적떼처럼 죽창에 횃불을 들고 몰려 나왔다.


지서를 멀리서부터 포위해 놓고 양쪽 산봉우리에서는 폭약을 터트리면서 공산주의 선전과 빨치산 노래를 불러댔다. 한편 지서주변 냇가에서는 도깨비불처럼 횃불을 돌리고 징과 꽹과리를 울리면서 경찰관들을 조롱하는 욕지거리를 해댔다. 두려움에 떨고 있던 경찰관들이 횃불을 향해 쏘아대는 총탄이 빗발치듯 사방으로 날아오는 통에 솜이불을 뒤집어쓰고 온밤을 지새우는데 공비들은 경찰관들을 혼란에 빠뜨려 놓고 새벽녘에 일단 물러갔다.


다시 해가 지자 횃불이 사방 숲속에서 나타나면서 징이 울리고 꽹과리 소리가 요란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지서의 외곽 대나무 울타리를 무너뜨리기위해 톱과 도끼 낫을 든 자들이 징과 꽹과리를 쳐대는 무리들을 따라 지서외곽을 돌며 서서히 좁혀 들어갔다. 결국 그 밤에 대나무 울타리가 불타 무너지고 해자를 통과하여 토치카를 쉽게 돌파한 공비들은 실탄이 바닥 난 경찰관들을 죽창으로 살해하고 장비와 물자를 약탈해 갔다.


52년도 초반까지 군경을 상대로 무모하게 투쟁하던 공비들과 죽창을 든 무리들이 비참하게 되는 것을 보면서 우리가족은 가까스로 그 지역을 벗어났다.



역사는 되풀이 된다고 하였던가! 얼마 전까지는 파출소에 화염병을 던지고 경찰차량에 불을 지르더니, 이제는 경찰관들에게 아예 죽창을 휘둘러대는 장면이 TV에 비치고 있다.



내가 어렸을 적에도 골수좌익분자들의 선동과 회유에 철부지 학생들과 일부계층의 사람들이 죽창을 들고 시설을 파괴하고 인명을 살상했다. 어찌됐든, 죽창을 들도록 선동을 한 자나 회유를 당한 자나 최후가 하나같이 비참했던 사실을 간과할 수 없어서 목격한 바대로 기록한 것이다. 죽창은 결코 단순한 막대기가 아니다.<수원샘내 마을. 목사. 2009년 5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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