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보다 괴로웠을 노무현의 절망감

한겨레, MBC, 오마이뉴스의 안면몰수에 노무현 전 대통령은 깊은 절망감을 느꼈으리라.

 드라마보다 극적인 일이 속출하는 한국에서도 최근의 반전과 역전, 재반전과 재역전 정치 드라마는 보는 사람들의 눈을 어지럽힌다. 바보의 도덕 하나로 개구리 왕자처럼 갑작스레 최고 권력자의 성소(聖所)에 들어가 지엄한 도덕의 칼을 마구 휘두르며, 도덕 하나만은 대놓고 완벽을 자랑하던 사람이, 소니를 물리친 대기업 총수에서 초등학생의 일기장 검사하는 교사에 이르기까지, 무지와 혼란과 동족상잔의 비극 속에서 자유와 평등과 풍요의 꽃을 만발시킨 역대 여러 대통령(세계 1위 독재자에게 단 한 번 안기는 대가로 선군정치 곧 공산군사독재정치 비자금으로 5억 달러를 바친 대통령만 빼고)에서 누천 년 사회적 필요악으로서 보건소가 정기적으로 검진하던, 다시 말해서, 사실상 공인된 홍등가의 창녀에 이르기까지 5천만 모든 사람에게 도덕적 결벽성을 강요하던 사람이 권력에서 밀려난 지 불과 1년 만에 빼도 박도 못할 물증에 의해, 실은 시중잡배보다 그 도덕성이 못하다는 것이 들통 났다.

 

 이미 재직 중에도 그 측근들이 줄줄이 잡혀갔다. 그러나 바보의 도덕으로 찬란히 빛나는 최고 권력자는 감히 의심할 수조차 없었다. 생각만으로도 불경죄를 짓는 것 같았다. 그러나 바보 대통령이 권좌에서 물러나자마자 가장 신뢰하던 자가, 무덤까지 비밀을 지켜줄 것 같던 자가 요리조리 다 불어 버렸다. 어떤 변호사도 변호하지 못할 물증을 제시하면서!

 

 등 뒤에 칼을 꽂는 자는 그만이 아니었다. 옆구리에도 슬그머니 칼을 들이대는 자도 있었고 복부를 노리는 자도 있었고 목을 겨누는 자도 있었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도덕의 투구와 갑옷을 벗겨서 적들이 한 칼에 명예의 목을 날릴 수 있게 방조했다. 바보의 도덕으로 중무장시켜 주던 자들이 바로 그들이었는데! 그 이름도 찬란한 한겨레, MBC, 오마이뉴스, 다음, 야후, 네이버! 권좌에 있을 때는 겹겹이 도덕과 의리의 장막을 쳐주던 그들이 싹 돌아섰다. 최대한 인정을 보인다는 게 고작 논평 없이 곧이곧대로 전하는 중계방송이었다. 꼴도 보기 싫었던 조중동은 그렇다 치자. 조중동의 윤전기에 전두환의 대못보다 수십 배 크고 수백 배 단단한 대못 치는 것을 그리도 좋아하던 자들이 어쩌면 그렇게 싹 돌아설 수 있을까. 단 6백만 달러에!

 

 국회의 3분의 2가 탄핵소추할 때가 그리웠다. 구둣발의 탱크와 저주의 기관단총과 욕설의 속사포로 그들은 일거에 국회 쿠데타를 일으켜 총선에서 대승하고 헌법재판소를 굴복시켰다. 그 때는 구중궁궐에 갇혀 감 따는 기계를 발명하면서도 그보다 행복할 수가 없었다. 죽음?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대통령 못해 먹겠다? 그 말 취소, 당장 취소, 영원히 취소!

김정일과 김대중과 김영삼을 생각해 보라. 그들은 도무지 외로움을 모른다. 좌절을 모른다. 적든 많든 항상 오빠부대와 충성부대가 겹겹이 둘러싸고 있다. 그들은 죽음이 가장 두렵다. 삶보다 나은 죽음을 그들은 상상할 수가 없다. 100세를 채운 자연사인들 그들은 죽음이 두렵고 싫다. 이승의 삶이 너무 좋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보는 죽자마자 바로 배신자들에 의해 하루도 지나지 않아 부활했다. 물증을 확보한 검찰이 수사 종결이라며 바로 항복했다.

--보라, 저것이 바로 정치적 타살이라는 증거다!

대통령은 국민장을 선언했다.

--보라, 저것이 바로 정치적 타살이라는 증거다!

--보라, 바보 대통령의 서거를!

--울어라, 5천만 국민이여, 모두 울어라! 안 울면 영원히 저주하겠다.

 

 한국인은 아무리 미워하던 사람도 일단 이승을 하직하면 상중에는 옷깃을 여민다. 웬만하면 찾아가서 망자에게 향나무 향기를 피어 올린다. 그러나 좀 이상한 집안은 상중에 상주끼리도 싸운다. 부모가 세상을 떠나자마자, 형제자매가 불구대천의 원수가 되기도 한다. 한쪽에선 고스톱 치고 한쪽에선 술주정을 부린다. 망자와의 친소(親疎) 관계를 떠나, 속셈은 제각각이라는 말이다. 망자에 대한 예를 갖춘 후에는 계산이 철저하다. 조의금도 잘 기록해 둔다.

 

 옛날에는 3년상이었지만, 요샌 길어야 49재다. 조선시대보다 더한 봉건주의적 신분 질서가 엄연한 북한에서라면 모를까, 한국에선 타계의 충격 효과는 그리 오래 갈 수 없다. 남은 자들이 실지로 얼마나 잘하느냐에 달렸다. 빈소가 아닌 일터에서, 광장이 아닌 국회에서 얼마나 잘하느냐에 달렸다. 망자와 생전에 얼마나 친했느냐에 따라, 또는 분명찮은 유서에 따라, 상속을 조금이라도 더 차지하려고 떼를 쓰면 쓸수록 점점 따돌림 당한다. 적절한 선에서 그치지 않으면, 반전과 역전이 변화무쌍한 한국에서 몽땅 차지하려다가 몽땅 빼앗기는 수가 있다. 망자의 무덤에 잔디가 자리도 잡기 전에 망자의 잘잘못에 대한 비판은 날카롭기 그지없게 솟아나온다. 망자의 잘못이 잘함보다 클 경우, 역풍은 곱으로 거세진다. 상속도 마이너스 상속이 있듯이 적당한 선에서 그치지 않으면 한 몫 잡으려다가, 팔자 고치려다가 패가망신한다.

 

 이제 그만! 망자는 떠나보내자. 살아남은 자들은 법을 지키고! 안보를 튼실하게 하고! 실업자를 구하자! 짐승보다 못한 삶을 살고 있는 2천만 동족을 구하자.

(2009. 6.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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