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자호란과 제2의 6·25

임진왜란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 조선이 병자호란을 맞이했듯이, 6·25의 교훈을 다 잊어버린 한국은 제2의 6·25를 맞이할 것이다.

 임진왜란은 2백년 평화의 단꿈을 산산조각 낸 7년 악몽이었다. 전쟁의 가장 큰 책임자였던 선조가 죽고 광해군이 등극하면서, 비로소 조선은 전쟁에서 얻은 교훈을 일부 실천한다. 그러나 성리학적 기득세력은 완강했고 막강했다. 인조반정(1623)으로 모든 중흥(中興) 조치가 물거품으로 사라지고, 조선은 다시 백성의 간절한 바람이나 태풍 전야의 국제 정세와는 정반대 방향으로 나 홀로 엉덩이에 뿔난 송아지의 길을 간다. 제 한 몸 추스르지 못하는 명나라에 대한 애오라지 붉은 마음으로 정권의 정통성을 찾으려던 인조는 결국 동아시아의 다음 패자(覇者)에 의해 일개 종의 신분으로서도 견딜 수 없는 치욕적인 항복의 의식을 군주의 몸으로 보인다. 그것이 병자호란(1636)의 결과였다.

 

 인조는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수치를 수치로 알지도 못하고 오히려 한층 강퍅해졌다. 밖에 나가서 깡패에게 실컷 얻어터지고 전답마저 빼앗긴 가부장이 갖은 정성을 다해 간호하며 안절부절하는 처자식이 애처롭게 계속 바라보면 눈 똑바로 뜬다며 손찌검하고, 눈 내리뜨면 눈 내리깐다고 발길질하고, 눈 옆으로 뜨면 눈 옆으로 돌린다며 몽둥이질 하는 격이었다. 인조는 기득권을 그대로 유지했을 뿐만 아니라, 주둥이만 살아 있는 반동세력의 기를 팍팍 살려 주었다. 그것이 정권 유지하는 가장 확실한 방편이었기 때문이다. 사실상 그는 잃은 게 전혀 없었다. 신흥 초강국 청나라에서 인질로 가서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우고 돌아온 아들에게 심한 적개심을 품고, 그가 마치 자신을 무릎 꿇린 청나라의 황제라도 되는 듯이 사갈시하며 독사새끼를 죽이듯이 비참하게 냉혹하게 제거해 버렸다.

 

 조선의 광해군은 중흥을 뒷받침하고 이끌어갈 세력을 확보하지 못해 이내 제거되었지만, 대한민국의 광해군 박정희는 근대화를 뒷받침하고 이끌어갈 세력을 광범위하고 확보하고 키워서 아프리카의 일개 변방 국가급이든 대한민국에게 불과 18년 만에 중국과 미국과 캐나다를 합한 것보다 거대한 아프리카 전체의 곳간보다 큰 곳간을 선사했다. 90% 하층민이던 국민을 어여삐 여겨 중산층을 70%로 끌어올렸다. 상하 두 계층밖에 없던 나라에 거대한 중산층을 키워 빈부 격차가 거의 없는 사회구조를 확립하여 민주의 탄탄대로를 닦아 놓았다. 광개토대왕이 신라에 5만 명을 파견한 이래로 가장 대규모의 군사를 시대의 대세인 자유민주의 수호를 위해 파견함으로써 군사력도 세계 4위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후에 아무리 떨거지 같은 조선의 인조급 국가 지도자가 나와도, 나라가 아무리 시끄러워도 그런 무리들까지 일 년 내내 데모만 계속하고도 잘 먹고 잘 사는 나라로 만들어 놓았다.

 

 인조의 후계자는 김씨조선에 그대로 계승되었다. 인조의 무리들이 지리멸렬한 중화민족의 성리학(양명학은 대세가 아니었음)을 공유한다며 영영 사라진 명나라 귀신에게 충성을 다 바쳤듯이, 국경을 마주한 막강 중국과 소련에게는 사회주의 이념을 공유한다며 그 두 상전이 대마왕 마르크스를 사실상 버린 후에도 두 마왕 모택동과 스탈린이 아직 살아 있는 듯이 개처럼 충성하면서, 애꿎은 집안 식구 때리고 굶기고 죽이는 데서 삶의 보람을 찾고 근면과 성실로 아이디어로 잘 살게 된 이웃사촌의 재산을 호시탐탐 노리는 데서 찬란한 미래의 희망을 꿈꾸며, 인조의 무리들이 같잖지도 않게 청나라에 원수 갚는다는 구실로 백성의 눈과 귀를 막고 백성의 피와 땀을 가로채던 것처럼 ‘미제 원쑤’에게 원수를 갚는다며 2천만 제 식구 전체를 강제수용소에 가두고 괴상망측한 적개심을 불러일으키며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한다.

 

 대한민국에도 인조의 직계 후손들이 위선으로 전신을 갑옷처럼 두르고 눈동자의 색깔까지 바꾸고 곡학아세로 김씨조선의 앵무새 노릇하며, 불법과 탈법과 편법으로 경찰을 패고 군인을 때리고 입법기관을 근육과 고함으로 장악하고 방송과 출판과 직장과 거리를 휩쓸어 공고한 기득세력을 형성하고도 성에 안 차 약자를 자처하며 권력과 부와 명예를 완벽히 독차지하려고 김씨조선에게 나라를 넘김으로 통일을 달성하여 새로운 나라의 독점적 기득세력이 되려고 발버둥치고 있다.

 

 한사코 부인하던 북핵에는 침묵의 희열을 느끼지만, 야적(野積)한 저준위 핵폐기물을 섬 아래 깊숙이 묻는 것에는 내일 당장 지구 종말이 오기라도 하듯이 죽창과 화염병으로 무장하고 천둥의 소리로 발악하며 죽기 살기로 싸운다. 핵 개발비와 미사일 발사비를 아낌없이 퍼 준 자에겐 찬사의 붉은 꽃과 조의의 흰 꽃을 끝없이 보내지만, 부잣집 망나니 아들처럼 저들이 아무리 깽판을 쳐도 죽은 지 30년이 지나도록 제철과 석유화학과 자동차와 조선과 전자산업과 원자력과 고속도로와 과학기술과 법률로 대한민국을 먹여 살리는 대한민국의 광해군에게는 독재자의 붉은 딱지를, 심지어 개과천선했다는 차세대 대권주자마저 서슴없이 빼곡하게 붙인다.

 

 아비는 파죽지세의 외세를 빌어 제 동족 3백만을 학살하고 아들은 핵 개발한다며 제 식구 3백만 굶겨 죽인 것에는 민중사관과 민족사관으로 면죄부를 부여하고, 이역만리에서 3만5천여 생목숨을 바치고 10만여 뼈와 살이 부러지고 찢어짐으로 지켜 준 나라에서 널리 공고된 군사훈련을 실행하다가 아뿔싸, 사고당한 여중생 두 명을 위해서는 전국의 촛불을 다 동원하고도 모자라 이웃 중국에서 초를 대거 수입한다. 프랑스에 본부를 둔 국제수역국에 따르면 한우보다 차원이 다르게 안전한 미국 쇠고기에는 섣달 열흘 촛불을 치켜들지만, 자유통일의 결정적 방해자였던 중공의 경악스러운 무차별 무한정 유해식품에는 단 한 사람 단 한 시간의 촛불 항의도 없다.

 

 전쟁은 군사적 균형이 결정적으로 무너지거나 그렇게 되었다고 확신할 때, 절대 독재자의 권력 토대가 위협받을 때, 힘은 있으되 그 힘을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가 아니라 반국가 반국민 세력을 위해 무장해제할 때, 일어나기 쉽다.

 

 6·25에 대한 교훈은 80년대에는 대학을 비롯한 지식층(조선시대의 양반)에서 조롱거리로 전락했다가 90년대에는 나라 전체에서 거의 추방되었다. 그래서 김씨조선의 세습독재로 향해야 할 안보의 총구가 일방적 주장의 친일파 때려잡기와 마녀사냥식 독재주구세력 때려잡기 쪽으로 겨누어졌다.

 

 미국은 제 한 몸 추스르기가 힘들기도 하고, 헛된 3만5천의 죽음에 깊은 배신감을 느낀다. 공치사는 있겠지만, 월남에서 철수하던 그 때 그 마음으로 2012년 4월 17일을 기다린다. 중국은 북한을 제2의 티베트로 생각한다. 당나라가 신라에게 실컷 이용만 당하고 쫓겨나던 치욕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중화족이 701년 전 병력을 기울여 신라를 짓밟으려다가 토번(티베트)의 반란을 징벌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슬그머니 물러난 치욕을 잊지 않는다. 이미 고구려의 큰 부분은 차지한 지 오래다(1945년 이전에는 거란족, 몽골족, 만주족에 이어 일본이 차지하고 있었음). 그들은 북한을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바둑에서 팻감을 주고받듯이 딱 한 점밖에 안 되는 북한을 사이에 두고 미국과 끈질기게 버틴다. 그들에게는 천만다행하게도 당사자인 한국이 바보 멍청이처럼 미국 대신 김씨왕조를 편드는 중국에게 이심전심 사대의 충성을 바친다. 이겨도 그만 져도 그만인 미국이 손을 빼는 것은 시간문제다.

 

 이미 캐사르는 갈리아에서 군사를 끌고 와 루비콘 근처에서 주머니 속의 주사위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주사위를 던지고 강을 건너는 요식 행위만 남았다. 부가 산더미처럼 쌓인 로마가 지리멸렬 시대착오적인 기득세력의 무주공산이기 때문이다. 거기서 물러나면 역사의 죄인이 되기 때문이다. 권력과 부와 명예, 그리고 알렉산더 대왕을 능가하겠다는 야심을 한꺼번에 다 잃기 때문이다.

 

 캐사르는 로마의 영광을 가져온 영웅이되, 한민족의 수치를 가져온 김정일과 김일성은 민족반역자다. 제2의 히틀러요 무솔리니다.

 임진왜란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 조선이 한 세대 만에 병자호란을 맞이하듯이, 6·25에서 얻은 교훈을 다 잊어버린 한국이 불과 두 세대 만에 무솔리니와 흡사한 김정일에 의해 제2의 6·25를 맞이하는 순간, 한 일주일 동안 무수한 간이 떨어지고 헤아릴 수 없는 심장이 멎고 나서야, 세종대왕 같고 이순신 같고 박정희 같은 위인이 홀연히 나타날 것이다. 그 전에는 국민이 단언컨대 구국의 영웅을 알아 보지 못할 것이다. 그 옛날 로마처럼 한국은 분명 중국도 만만히 보지 못할 저력이 있다. 그런 저력을 이승만과 박정희가 키워 놓았다. 그러나 그 힘이 산산이 흩어져 있다. 촛불 하나 끄지 못한 중도 정부에겐 믿을 구석이 없을 것이다.

 (2009. 6.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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