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양딸로 보내라 하고 또 엄마를 시집가 번듯한 곳에 살라던 그 역겨운 유혹들을 우리가 이겨내지 못했더라면…
여러분 안녕하세요? 탈북 여대생 신소연입니다.
한국의 대학에는 읽기와 쓰기라는 과목은 기말시험이 없답니다. 시험이 없는 대신에 레포트로 대체합니다. 이런 과목은 시험 준비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학점이 잘 나오지 않는다는 단점도 있습니다. 시험 준비를 열심히 하여 학점이 잘 나오는 것이 더 좋기 때문에 이와 같이 학점이 나오지 않는 과목은 수강하기 싫어집니다.
그러나 읽기와 쓰기라는 과목은 학교에서 실시하는 필수 교양과목이므로 꼭 수강을 해야 한다니 울면서 겨자 먹기로 수강을 하는 것이지요. 저뿐만 아니라 모든 학생이 다 그런 심정일 것입니다. 우리 학교 학생들은 이 과목을 보통 1학년 때 듣지만 전 수강하기 싫어서 3학년인 지금에야 듣게 되었습니다.
읽기와 쓰기의 내용은 대학교에서 공부하는 내용이 아니라 고등학교나 중학교에서 공부하는 내용인데요~ 정확히 말해 현재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내용으로 글짓기를 하는 것입니다. 다 아는 내용인데도 그것을 부풀려서 글짓기를 하라니 가르칠 것이 이리도 없냐는 생각에 기분이 별로 좋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이런 과목이 있다는 이유로 타 대학에서는 우리 학교를 촌스러운 학교라 말하기까지 한답니다. 그래도 학교 측에서는 여전히 지금 들어오는 09학번들에게도 이 과목을 필수 교양과목으로 하고 있는데요~ 이유는 글짓기를 많이 해야 표현능력이 늘어난다는 것입니다.
듣고 보면 맞는 이유이지만 대학을 오기 전에 논술이라는 시험을 보기 위해 아주 열심히 했던 것인데 같은 내용을 중복해서 배우니 그 효율성 면에서 심각하게 떨어진다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과목을 수강하면서 우연히도 그동안 크게 생각하지 않았던 나의 가족에 대하여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가족에 대한 서술로 기말시험을 대체하겠다는 교수님의 말씀에 집에 와서 가족에 대하여 생각해보니 우리 가족은 참 흔치 않은 특별한 가족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어려운 북한에서도 가족이 뭉쳐있었고, 또 언제 잡혀나갈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여기 저기 떠돌아 다녀야 했던 중국에서도, 또한 죽음과 삶의 경계에 이르는 한국행을 선택할 때에도 우리 가족은 뭉쳐있었습니다. 한국으로 가는 위험한 길에 가족이 함께 동행 하는 것은 동반자살을 택하는 길이라고 옆에서는 말렸지만 그래도 굽힘없이 우리 가족은 뭉쳐있었습니다.
물론 가족이니까 뭉쳐 있는 것이 당연하지만 북한에서의 삶은 그 현실이 하도 고달파 수많은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져야 하였습니다. 그리고 한국이라는 둥지에 도달하면 여기서 한 명 모이고 저기서 한 명 모여 가족이 완성되고, 또 찾아도 찾지를 못해 생이별을 하는 가족에 비하면 우리 가족이 뭉쳐 있는 것이 당연한 일만은 아닌 것입니다.
우리가족의 리더는 당연히 부모님이셨습니다. 우리가 한 것이 있다면 부모님을 따라다닌 것밖에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난 이렇게 좋은 나라로 우리를 데려온 부모님께 항상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 나는 우리 가족이 인천공항에 도착하던 때를 떠올렸습니다. 비행기에서 내리는데 정말 한국이 맞는지 어리벙벙하여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냥 서로 웃으면서 쳐다볼 뿐 두만강을 넘을 때보다도 더 조용했던 것 같았습니다. 밖에는 뽀얀 안개가 우리를 환영해주듯이 뭉개져있었고 거리는 아주 깨끗했습니다.
그때 나는 갑자기 아빠의 주제곡이 생각났습니다. 중국에 있을 때 늘 아빠가 했던 “쨍하고 해뜰 날 돌아 온단다”던 노래¨산에서 나무를 하면서 하늘에 날아가는 비행기를 쳐다보며 엄마는 우리에게 “저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갔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셨고 그 때마다 아버지는 산을 무대삼고, 또 나무와 우리를 구경꾼으로 하고 “쨍하고 해뜰 날 돌아온다”고 노래를 부르셨습니다.
그 때 엄마는 한국에 다녀온 것 마냥 “한국가면 너희들이 하고 싶은 것을 다 할 수 있으며 집도 으리으리하고 당연히 전기도 들어오는 아파트를 주며 또 돈도 많이 준다.”고 하셨습니다. 그런 얘기를 들으면서 우리는 가지각색의 환상을 해가면서 흐뭇해 서로 마주 보았었습니다.
그렇게 아빠의 노래가사처럼 인천 공항에 내린 그때 정말 쨍하고 해가 뜬 것이고 또 그 후에는 중국에서의 전기도 없고 쥐들과 같이 생활했던 구석기 원시인 삶이 아닌 엄마가 말했던 으리으리한 집도 생겼습니다.
아마 중국에서 우리를 양딸로 보내라고 하고 또 엄마를 시집가서 번듯한 곳에서 살라고 하던 그 역겨운 유혹들을 우리가 이겨내지 못했더라면, 또 베트남과 캄보디아 국경에서 군인들에게 잡히고 늪에 빠졌을 때 엄마와 우리를 아빠가 구하지 못했다면, 결코 오늘과 같이, 나의 가족을 자랑스런 표창장 앞에 내세울 일이 없었을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비록 보잘 것 없지만 우리에게 있어서는 아주 존경스럽고 자랑스러운 현명한 부모님의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읽기와 쓰기라는 이 과목을 그다지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지만 우리 가족이 어떤 가족인지 다시금 떠오르게 하는 좋은 수업인 것 같습니다. 그렇게 가족이라는 주제로 글을 완성해 수업시간에 제출하려는데 교수님은 먼저 제출하지 말고 발표를 시킨다고 하셨습니다. 돌발 상황이 발생한 것입니다. 발표라면 자꾸 울렁거려 제발 난 시키지 말았으면 했으나 교수님의 입에서 내 이름이 튀어져 나오고 말았습니다.
할 수 없이 일어나 교탁으로 나가 읽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 학생들은 듣지도 않고 떠들고 있더니 잠시 후 모두 집중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 학생들과는 아주 많이 다른 현실에서 살았던 우리 가족 이야기가 그 학생들의 집중력을 유발한 것 같았습니다. 다 읽고 나니 우렁찬 박수가 쏟아졌습니다. 참 부끄러워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개져 교탁에서 내려왔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잘했다고 하시더니 며칠이 지난 후 또 2차 발표를 한다고 하시는 것이 아닌가? 설마 또 내가 아니겠지 했지만 그 많은 학생들 중에서 오직 나만 발표를 시키셨습니다. 살짝 귀 뜸이라도 해주셨다면 준비라도 했을텐데 아무런 얘기도 없으시다가 갑자기 발표하라니 난감하기 그지없었지만 앞서 발표를 하여 나의 상황을 다 알고 있는 처지라 두려울 것이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한국에서의 삶에 대하여 즉석발표를 마치고 내려왔습니다. 아마도 두 번이나 있은 발표의 힘으로 학점이 잘 나올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아빠의 주제곡 "쨍하고 해뜰날"
- 신소연(자유북한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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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07-18, 12: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