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도 없고 시험도 없는 100% 면담만으로 대학 가는 시대가 곧 올 것이다. 지금 1학년 학생이 사회에 나오는 시절에는 완전히 세상이 바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 7월 24일, 충북 괴산고에서)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 및 대학의 자율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 (헌법 제31조 4항)
 교육에 관한 한, 대한민국 사람들은 저마다 천둥소리를 낸다. 누구도 누구에게 양보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그 중에 한 명이 5년마다 제우스의 번개를 내리칠 수 있는 자격을 얻으면, 이거야말로 비장의 해법이라며 번개를 번쩍이며 때로 벼락도 곁들여 전 국민에게 강요한다. 번개를 손에 쥐는 순간, 한국인은 자신의 생각이 단지 4천8백만분의 1에 해당될 뿐임을 모른다. 5년 임기만 지나면 그렇게 천둥소리를 내면서 번개를 번쩍번쩍 뿌렸지만, 결국 그들이 잡는다고 호언장담하던 사교육은 피뢰침을 잘 설치한 덕분에 날로 번창하고 그들이 사랑해 마지않던 공교육만 피뢰침 하나 없이 충실히 교육부의 지침을 따르다가 핵폭탄처럼 강력한 벼락을 여러 차례 얻어맞고 망연자실(茫然自失)하여 ‘이번에는’ 하면서 하늘만 쳐다본다. 5년간 제우스 어르신의 말씀과 복심을 따라 개혁의 칼을 휘두르던 사람들도 슬그머니 어둠의 장막 뒤로 사라진다. 아무도 이에 대해서 책임을 묻지 않고, 아무도 이에 대해서 책임을 지지 않는다. 지난 20여년간 그렇게 한국의 교육은 이른바 교육 민주화에 시달렸다.  
 흔히 사람들은 교육부에게 모든 책임을 지우지만, 알고 보면 교육부는 교육5적 가운데 서열 5위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은 제우스 대통령의 의지에 반하는 정책은 절대 못 세우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단지 대통령의 가장 큰 하수인이다. 무슨 무슨 위원장도 좋고 무슨 무슨 차관도 좋고 대통령의 복심을 족집게처럼 잘 읽는 사람 한 명만 교육부에 앉혀 놓으면 장관도, 전국의 대학 총장과 초중고 교장도 벌벌 긴다. 제우스 대통령의 손바닥이 길어야 2년이면 떠날 교육부 장관의 등에 직접 닿으면, 이른바 OOO세대란 말이 길이길이 유행될 정도로 실세 장관은 대한민국의 온 가정과 학교와 학원을 들쑤셔놓는다. 그러나 제우스 대통령만 바뀌면 교육부는 어제까지만 해도 시내산의 거룩한 10계명처럼 받들던 정책도 헌신짝처럼 버린다.
 새 대통령이 가장 크게 쉽게 손보는 정책은 대학의 자율성을 난도질하는 것이다. 특히 대학의 학생 선발권을 빼앗아, 대통령 측근 몇 사람에게 좌지우지되는 교육부에게 가느다란 항의 한 번 못하고 교육부(최근에는 교육과학기술부)가 시키는 대로 일렬종대로 따르게 만드는 것이다. 5년 안에 교육의 해묵은 모든 문제를 싹 해결한다며! 그리하여, 너무도 상식적인 헌법 31조 4항은 김영삼 정부 이래로 지켜진 적이 없다. 김영삼 정부는 노태우 정부가 대학에게 헌법에 보장된 자율권을 되돌려 주기 위한 정책의 작은 첫걸음으로 부활시킨 일부 대학의 본고사 제도를 사교육을 잡는다며 바로 폐지시켜 버렸다. 그리고는 대학의 문을 넓히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며 대학 설립을 자유화했다. 서울은 최소한의 학력을 보장해 주던 고교 신입생 선발고사인 연합고사도 폐지해 버렸다. 전과자도 학교에서 다독거려야 한다며 학력(學力)과 인성과 나이에 관계없이 원하는 대로 복학시켰다.
 김대중 정부는 민주노총과 귓속말을 주고받으며 민주노총 소속의 전교조를 합법화하더니, 저승사자 이해찬을 내세워 전교조가 주장하던 대로 음지가 양지되고 양지가 음지되도록 마구 뒤바꿨다. 명예퇴직의 이름으로 음지에서 평생을 대한민국의 근대화에 가장 혁혁한 공을 세운 연부역강(年富力强)한 교사들을 대거 불명예 퇴직시켰다. 노무현 정부도 그 뒤를 충실히 따르되, 성적 위주의 학생 선발을 지양(止揚)한다며 입시를 크레타의 미로보다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 이미 아무나 들어가는 대학문을 더 이상 넓힐 수 없도록 넓히기, 수능시험 쉽게 내기, 수능 과목 줄이기, 수능 성적만의 특차 폐지, 내신 중심의 수시 모집 강화, 386세대가 주도할 논술 도입, 공교육에 독야청청 군림하도록 교육방송을 사교육의 절대강자로 만들어 주기 등도 단골로 등장했다.
 드디어 이명박 정부는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드러난 성적보다 드러나지 않는 성적 곧 잠재력을 더 중시하는 미국식 입학사정관제라는 전가(傳家)의 보도(寶刀)를 꺼내 임기 말에는 100% 그것으로 학생을 선발할 것이라고 단언한다. 이미 더 이상 줄일 수 없는 입시과목이건만 대통령의 의지 하나로 또 줄였다. 지난 20여년 간 속고 또 속은 국민이다. 아무도 곧이곧대로 안 믿는다. 이를 알고 장관보다 높은 차관이 대통령 어르신이 그 제도를 ‘강조’한 것이라고 이해해 달라고 서둘러 진화에 나선다. 그러자 해 보지도 않고 딴죽을 건다고 올림푸스산에서 불호령이 떨어진다. 이미 입학사정관제는 새로운 거대한 사교육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수시 사교육 시장이나 논술 사교육 시장보다 더 커질 것이다.
 특차보다는 정시, 정시보다는 수시, 수시보다는 논술, 논술보다는 입학사정관제가 주관적 요소가 강하다. 그만큼 공정성 시비가 커질 수밖에 없고, 역대 제우스 대통령의 번개에 최첨단 피뢰침으로 승승장구한 잡초 사교육 시장은 구름 잡는 공정성을 미끼로 당장 발등에 불이 붙은 수험생과 교육열로 불타는 학부모를 솔깃하게 만들려면, 가상(假想) 입학사정관 상담 한 번에 변호사 상담 한 번보다 비싼 대가가 아깝지 않다는 것을 눈에 확 띄게 보여 줄 필요가 있다. 구름 잡는 공정성을 햇살 움켜쥐는 공정성으로 요리하여 보여 주면, 수험생과 학부모는 군침이 절로 돌 수밖에 없다. 상담이 끝날 무렵 입시 전문가는 말할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첫째가 성적입니다. 단, 저희가 고심참담하게 만든 귀신 잡는 비방에 따라 이러이러한 것을 마련하면 약간 낮은 점수도 너끈히 커버(이들도 오륀지 여사처럼 영어 외래어 쓰기를 좋아함)할 수 있습니다. 뭐, 사례비는 실비로 제 발품과 입품만 쳐 주시면 됩니다. 저도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요. 하하. 
 겉모습만 평준화지 학교 차이가 얼마나 큰지 대한민국에 모르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그러면서도 웬만한 중학의 전교 1, 2등만 모아놓은 과학고나 외고나 자립고도 내신으로는 똑같은 대우를 받아야 하는데, 헌법에 보장된 선발권을 거의 다 빼앗긴 대학이 그 차이를 인정하면 권력과 대중매체와 다수의 힘을 빌려 정부도 언론도 학부모도 불같이 화를 낸다.
 성적이 아니면, 봉사활동, 과외활동, 독서, 경시대회, 담임의 종합의견, 자기 소개서, 추천서 등으로 학생의 잠재력을 측정할 것인데, 과연 학생이 제출하는 자료를 얼마나 믿을 수 있을까. 생활기록부에 적혀 있는 것을 믿을 수밖에 없는데, 그것이 얼마나 믿을 만할까. 학교 차이가 너무 나서 성적도 믿을 수 없는데, 하물며 온정주의가 난무하는 한국의 현실에서 ‘기타 등등’을 얼마나 믿을 수 있을까. 그런 것들이 과연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중에 누구에게 유리할까. 지옥과 천당의 갈림길에서 칼과 여의주를 양손에 들고 형형한 눈길로 노려보는 사대천왕 입학사정관 그들 자신은 또 얼마나 믿을 수 있을까. 과연 입학사정관과 뒷줄 대는 것이 불가능할까.
 결국 학생들의 부담만 커지고 학부모의 등골만 휘어질 것이다. 공교육의 소비자 신뢰가 더 떨어지고 사교육의 소비자 신뢰가 더 높아질 것이다. 입시 사정(査定)이 복잡할수록 주관적일수록 발 빠른 사교육이 더욱 유리해지기 때문이다. 한국은 미국과 전혀 다르다는 것 미국은 무엇보다 제우스 대통령이 없다는 것, 세계를 주무르는 미국의 대통령도 대학의 고유한 학생선발권에 대해서는 입도 벙긋 못한다는 것, 미국은 교사의 평가권이 드높은 하늘처럼 존중되지만 한국은 교사의 평가권이 객관적 자료가 없는 한 평평한 맨땅처럼 무시된다는 것, 미국은 법이 잘 지켜지는 정직한 사회지만 한국은 생떼와 인정과 연줄과 조직이 법에 우선하는 온정주의의 무법천지라는 것을 먼저 알지 못하는 한, 100% 입학사정관제는 최악의 제도로 전락할 가능성이 다분하다.  
 대통령은 정치인 중에서 나오므로 대통령 다음으로 힘이 센 세력은 정치인이다. 교육계의 정치세력은 거대하고 단단하고 일사불란한 조직을 자랑하는 전교조다. 이들은 인기를 먹고 사는 정치인을 다양한 경로로 세뇌시킨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성적 위주의 대한민국 교육은, 특히 대입 제도는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안은 그러니까 이전 대통령들의 안과 마찬가지로 전교조가 지적 재산권을 가진 것인데, 그 중에서 가장 전교조의 안과 가까운 것이다. 정치교수는 4천8백만의 1에 지나지 않는 대통령의 생각과 개탄과 불호령에 거창하게 철학과 사상과 체계를 제공한다. 잘하면 그들은 바로 교육부 수장이 된다. 교육오적 서열 4위에서 서열 1위와 2위의 중간에 들어설 수 있다.  
 국가대표 축구 선수를 뽑을 때 최우선되는 것은 공차는 실력이고, 국가대표 수영 선수를 뽑을 때 최우선되는 것은 물 가르는 실력이다. 그들의 다른 면은 참고사항이다. 마찬가지로 학문을 연구하는 대학에서 학생을 뽑을 때 최우선되는 것은 전문 학문에 필요한 기초학력이다. 7차교육과정에서 학생의 부담을 줄인다며 문과에서 미분과 적분을 제외했더니, 서울대 경제학과의 학생도 3학년이 되어서야 수리경제에서 간신히 수업을 따라간다고 한다. 수재들도 고등학교 때 안 배운 것은 별도로 스스로 공부하기가 그만큼 힘들다는 것을 생생히 증명하는 사례이다. 그만큼 고등학교 때까지의 기초학력이 중요하다. 그것은 대부분 평생 유지된다. 재수 삼수를 해서라도 기초학력을, 대학수학능력을 갖추었을 때 대학에 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오늘날 한국의 숱한 대학처럼 외국의 고졸 자격도 안 되는 대졸을 양산하게 된다. ‘인정상’ 그냥 학점을 부풀려 거의 전원 졸업시킨다. 안 그러면 대학 자체가 문을 닫는다. 그게 공교육의 종착지인 대학의 현실이다.
  (2009. 8.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