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의 유일한 강점은 「열심(熱心)」이다. 보수(保守)란 원래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다. 합리적이고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다. 좌경(左傾)이념은 세상에 대한 미움, 원한, 시기, 질투에서 비롯한 감정이다. 사회적 적개심(對等願望)에서 기인한 좌경이념은 대체로 개인적 성취욕(優越願望)에서 비롯한 보수이념보다 집요하다. 「한(恨)」을 품은 미움의 에너지 앞에서 보수이념은 무력한 경우가 많다. 진실과 진리와 정의의 편에 서 있음에도 승세를 잡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좌파만큼의 열심이 없고, 집요함이 없고, 절박함이 없고, 간절함이 없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한국의 보수(保守)가 개인적 성취욕에서 진화(進化)하여 자유통일과 북한구원과 같은 대승적(大乘的) 가치에 헌신할 때 좌파의 반역을 진압할 수 있을 것이다.
우연치 않은 기회에 한충목이라는 좌파운동가의 자료를 정리하게 되었다. 韓씨는 친북반미(親北反美) 성향(소위 NL계) 좌파단체 실무책임자(實務責任者)로 왕성하게 활동해왔다. 그는 거짓과 우상의 편에 섰지만 열심이 있고, 집요하고, 절박하고, 간절했다. 이것이 에너지가 돼 한국사회를 친북화시키고, 좌경화시켰다. 韓씨의 활동을 보면서 과연 보수진영, 우파진영에 저런 열심, 집요함, 절박함, 간절함을 가진 인물이 있었나? 생각해보았다.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거짓과 우상이 아니라 진실과 정의의 편에 선 열심, 집요함, 절박함, 간절함을 가진 보수우파 청년이 나와야 한다. 입신양명(立身揚名)이나 생계유지(生計維持)가 아니라 세상을 향한 의(義)로운 열정이 눈덩이처럼 뭉쳐갈 때 한국은 비로소 일류국가로 진입할 수 있을 것이다.
아래는 한충목씨의 수년 간 활동을 요약한 것이다.
《韓씨는 ▴南北연방제를 공개적으로 주장해 온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전국연합) 집행위원장, ▴2005년 인천 자유공원 맥아더동상 파괴를 기도했던 통일연대 집행위원장을 맡았었고, ▴전국연합-통일연대-민중연대를 계승한 한국진보연대(진보연대)가 2007년 출범하자 운영위원장을 맡았으며, 현재는 진보연대 공동대표로 활동 중이다. 진보연대는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불법폭력 촛불집회를 주도한 단체로 지목됐었다.
韓씨는 ▴2002년 3월20일「한총련 합법적 활동을 위한 범사회인 대책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 ▴2001년 2월12일「한국청년단체협의회(한청)」 창립 당시 고문을 맡아, 한총련과 한청 등 이적단체(利敵團體)의 활동에도 관여해왔다. 이밖에도 韓씨는 ▴6.15공동선언실천 남측, 북측, 해외위원회 중 남측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 자격으로 소위 남북교류협력이라는 이름의 반미(反美)통일전선 실무책임도 맡아왔다. 또 김일성대학 등 대북지원에 앞장서 온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겨레하나) 상임집행위원장도 맡았었다. 그는 ▴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 공동운영위원장, ▴「미군장갑차여중생故신효순,심미선殺人사건범국민대책위(여중생범대위)」 공동집행위원장, ▴「이라크파병반대비상국민행동」 공동대표 등을 맡아 각종 좌파성향 집회의 사회(司會)도 도맡다시피 해왔다. 2002년 11월29일 좌파세력이 만든 국가보안법 장례위원회 준비위원도 맡았었다.
韓씨는 국보법 위반 등의 혐의로 4차례 구속된 바 있다. 인터넷 민중의 소리 2006년 2월16일자 기사는 『한충목 통일연대 집행위원장이 구속된 것은 총 4번』이라며 『그 중 세 번이 4~5개월 구속 후 집행유예로 나왔고, 나머지 한 번은 92년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결성과 범민족대회를 주최했다는 이유로 3년형을 선고받아 만기 출소했다.』고 소개했다.
韓씨는 자신의 이념을 실천키 위해 소위 『민중총궐기』를 주장해왔다. 그는 2006년 7월14일 통일뉴스 인터뷰에서 『전체 운동진영에서는 「11월 중순에 민중총궐기를 준비」하고 있는데, 이번 8.15대회가 민중총궐기 투쟁을 준비하고 결의하는 장이 될 수 있도록 한다』고 했다. 같은 해 10월1일 민노총 3층 회의실에서 「민중총궐기 투쟁을 위한 제(諸)단체 대표자회의」를 열어 같은 해 11월11일을 D-Day로 한 「2007범국민행동의날준비(準備)위원회」를 공식 구성했다. 韓씨는 이 자리에서 진보연대 상임운영위원장 자격으로 『오늘을 시작으로 전국 시군구에서 조직위원회를 243개를 조직하겠다』고 주장했다.
韓씨가 주장한 『11월11일 민중총궐기』는 시민들의 참여 부족으로 사실상 선동에 실패했다. 그러나 진보연대 등 소위 『민중총궐기』를 선동하던 주역들은 2008년 정권 교체 이후 「광우병 촛불난동(亂動)」을 통해 마음껏 역량을 과시했다. 달걀로 바위 치듯 진행돼 온 끈질긴 선동이 100일 넘게 서울 도심 한복판을 무정부 상태로 몰고 간 불법폭력 촛불집회로 결실(?)을 맺게 된 셈이다. 한씨는 「광우병 촛불난동」을 주도한 진보연대의 실무책임을 맡았었고, 이듬해에는 진보연대 공동대표 중 한명으로 승격되기에 이른다.
韓씨의 일관된 선동의 목표는 소위 6.15선언 이행이었다. 2009년 1월30일 북한 조평통이 성명을 발표하자, 그는 『북측이 계속해서 6,15. 10.4선언을 함께 이행하라고 주문했지만 이명박 정부가 이를 거부하면서 남북대결 구도로 만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명박 정부가 지금이라도 대결정책을 포기하고, 6.15.10.4선언을 지지하고 남북화해협력 정책으로 빠르게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