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의 깡패논리엔 박정희의 경찰논리로 맞서야

김정일의 깡패논리엔 박정희의 경찰논리로 정정당당하게 맞서야 한다. 기생논리도 안 되고, 노예논리도 안 되고, 졸개논리도 안 되고, 방관자논리도 안 된다. 중국식 왕 깡패논리도 안 된다. 미국식 종이호랑이 논리로도 안 된다.

 

1,000명에 대한 살인율을 살펴보면 현대문명사회는 대체로 0.01 내지 0.02이다. 10만 명 중 1명 내지 2명이 살해된다는 말이다. 브라질 0.23, 푸에르토리코 0.21, 멕시코 0.16, 필리핀 0.14처럼 법의 지배(rule of law)가 제대로 확립되지 않은 불안한 나라에선 아직도 중세나 고대와 비슷한 살인율(0.1~0.3)을 보이고 있다. 신석기나 구석기 시대는 어땠을까. 낭만적인 상상과는 달리 유골을 분석해 보고 현대의 원시사회를 살펴보면, 성인 남자 사망의 약 20%가 타살(전쟁 포함)이다. 1,000명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3.3에서 15에 이른다. 살인은 다반사요, 일상사였다. (A Farewell to Alms, Gregory Clark)

 

 의도적 아사(餓死)는 단숨에 죽이는 것보다 한결 악독한 살인인데, 1994년 공산권에서는 최초로 수령절대권력을 세습한 봉건주의자이자 민족반역자인 김정일은 권력을 유지하는 가장 좋은 방편으로 아비의 죽음을 미화하는 과정에서 주로 힘없고 착하고 우직한 사람들을 공산당원 포함 300만 명이나 굶겨 죽였다. 중국 공산당원이었다가 소련 공산당원으로 당적을 바꾼 기회주의자이자 민족반역자인 김일성은 평생토록 꿈속에서조차 정통성에 대한 열등감에 시달렸기 때문에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갖은 수단을 다 썼다. 소련의 충견(忠犬) 역할 덕분에 (우익 민족주의자 조만식과 좌익이면서 민족주의 냄새가 조금 났던 박헌영은 이용하다가 제거하는 대상으로 일찌감치 점 찍혔음) 얻은 권력으로 현대판 단군 신화를 창조하여, 그는 생전에 태양신으로 등극하였다. 김일성의 생일인 4월 15일은 태양절이다.

 

 외부 세계로부터 철저히 차단된 북한에서는 권력이 곧 말이요 글이요 생각이기 때문에, 북쪽이나 남쪽으로부터 자유의 바람이 불어오는 순간 모든 것이 신기루처럼 사라진다. 그렇게 되면 김정일은 중동의 누구마냥 두더지처럼 숨어 지낼 수밖에 없다. 1994년 김일성이 죽자마자, 그는 자본주의는 물론 공산주의에서도 절대 있을 수 없는 3년상을 빌미로 희대의 효자인 척하면서 죽은 신을 부활시켜서 영생시키는 방법을 강구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

 

 그것이 바로 김일성이 생전에 집무하던 곳을 성역화하여 거대한 현대판 피라미드를 만드는 토목공사였다. 김정일은 시장환율로 북한 1년 예산의 5배인 약 10억 달러를 일개 주검에게 아낌없이 퍼부었다. 그것은 2300만 북한 주민에게 3년간 무료로 식량을 제공할 수 있는 돈이었다. 300만이 굶어 죽는 것을 뻔히 보면서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에겐 300만의 생목숨보다 이미 피가 식어 싸늘해진 한 주검을 살아 있는 것처럼 꾸미는 것이 훨씬 중요했다. 그것이 곧 자신의 권력이요 생명이요 부귀영화였기 때문이다. 국경만 열었으면 설령 10억 달러를 무덤에 치장하느라고 현금이 한 푼도 없었을지라도(스위스 비밀계좌의 30억 달러는 제외), 인도주의에 입각하여 한국을 비롯한 전세계에서 온정이 답지하여 북한주민은 거의 굶어 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외부에 도움을 청하는 순간, 자유의 바람에 의해 김일성의 조작된 권위의 힘을 빌리더라도 권력의 향배가 어떻게 될지 몰랐기 때문에, 그는 유일한 우방국인 중국으로 향하는 국경도 3년간 철저히 폐쇄했다. 압록강과 두만강은 목숨을 건 사람들에 의해 수억 개의 쇠털이 한두 개 빠지듯이 어쩌다 빠끔 열렸을 따름이다. 그렇게 열린 구멍으로 300만 아사의 비극이 간간이 알려졌다.

 

 무덤에 참배하는 것은 곧 김정일에 대한 충성서약이었다. 이른바 유훈통치가 시작된 것이다. 공포정치의 일환으로 고문과 총살로 처형하는 북한주민도 어마어마하다. 강제수용소에서 죽어가는 사람만 매년 2만 명이다. 굶겨 죽이거나 때려 죽이고 총으로 쏴서 죽인 아무 죄 없는 동족이 지난 15년간 에누리해서 3백만 명이라고 해도, 1000명 기준 살인율은 300만 ÷ 2300만×1000÷15〓8.67이다. 무법천지였던 어떤 석기시대 못지않다. 아니, 그보다 못하다. 도망갈 곳도 없고 애원할 곳도 없고 맞서 싸울 최소한의 자위수단도 없기 때문이다. 석기시대는 살인율은 높았지만 어떤 면에서는 현대보다 나아 하루 서너 시간만 일하면 먹을 것은 충분히 구할 수 있었지만, 하루 10시간을 공장이나 농장에서 꼬박 일해도 훔치지 않고 속이지 않으면 북한에서는 삶에 필요한 최소한의 열량도 못 얻기 때문이다.

 

 김일성의 무덤이 대내용이라면 대외용은 핵무기이다. 그것은 똑같은 깡패논리다. 김정일은300만 명을 아비의 저승길에 길동무 시킨 괴상망측한 효성 덕분에 1970년대 초부터 다지기 시작한 절대권력을 확고히 장악한 다음 핵무기 개발에 총력을 기울였다.

 

 깡패는 돈을 갈취하면서 큰소리치고 그것도 모자라 약자를 확실히 장악하기 위해 수시로 폭력을 휘두른다. 깡패는 절대 감사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에게 돈을 잘 바치는 자일수록 뼛속까지 두려움에 떨게 만들고 속으로는 그런 자를 경멸한다. 깡패는 또한 자신의 힘이 약할수록 큰소리친다. 허세로 어리석은 상대의 기를 꺾어 실세로 올라서는 상투수법이다. 깡패는 거짓말을 밥 먹듯 한다. 이에 속는 자가 바보다. 속는 자는 그의 똘마니로 전락하거나 동조자가 되거나 방관자가 된다.

 

 김정일은 핵개발을 처음에는 곧 죽어도 평화용이라고 발전용이라고 우겼다. 한국의 핵발전소 2000MW(1000MW를 두 개씩 지음)와는 달리, 수십 년에 걸쳐 만든 영변의 5MW는 고작 5천KW(5백만W)인데, 그것은 큰 공장 하나도 제대로 가동하지 못하고 큰 동네의 불이나 겨우 밝힌다. 60W 전구 10만 개도 못 밝힌다(60W×100,000=6,000,000W). 한 집에 전구가 최소한 두 개는 있으니까, 5만 가구도 겨우 밝힐까 말까 한다. 그나마 영변의 괴이한 발전소에는 전선(電線)이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도 국경이 폐쇄되어 아무도 못 볼 것이라 확신하고 곧 죽어도 발전용이라고 우겼다. 미국과 프랑스의 인공위성이 사진으로 까발렸다. 한국의 일부 세력은 더 가관이었다. 미국과 한국의 음모라는 것이었다. 북한의 방송을 앵무새처럼 흉내 내어 약한 나라는 핵발전소도 못 건설하느냐고 바락바락 반미를 외치고 펄쩍펄쩍 정권퇴진 운동을 벌였다. 감상적 민족주의를 끌어내어 무조건 같은 민족을 도와야 한다고 야단이었다. 감상적 민족주의를 끌어내어 세계최강이자 미 제국주의에 내일 당장 죽더라도 깡다구 좋게 당당히 맞서는 김정일이 멋있다고, 대단한 사람이라고 추켜세웠다.

 

 깡패는 거짓이 들통 나도 끄떡도 안 한다. 적반하장, 이젠 대놓고 협박한다. 공개적으로 폐연료봉을 재처리하겠다고 협박한다. 국제여론이 비등하면 약간 양보하는 척하여 독재유지 비용을 쓸모 있는 바보들로부터 왕창 받아낸다. 깡패논리에 입각하여 돈을 주면 더 기고만장해진다. 바치는 자는 영원한 봉으로 생각한다. 채찍의 효과가 거의 다 됐다고 느끼는 순간 영원한 봉들에게 폭언을 퍼붓고 폭력을 휘두른다. 이윽고 북한 1년 예산의 2배를 들여 핵폭발 실험을 단행한다. 플루토늄만이 아니라, 실험할 필요도 없이 무조건 터지는 우라늄 탄 개발을 위해 농축도 한다고 자랑한다.

 

 깡패의 약속은 상대를 속이기 위한 것이므로 남북간의 비핵화 선언은 한국에게만 적용한다. 비핵화는 한반도에서 미군의 핵우산을 접는 것이지, 북한의 비핵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로서는 핵무기는 어디까지나 북한의 자위수단일 따름이다. 한국도 불안하면 북한의 핵우산 속으로 들어오라고 빙글빙글 웃으며 초대한다. 한국의 친북 세력도 똑같은 논리를 편다. 1회 알현비 현금 5억 달러, 쇼윈도 관광 약속에 대한 감격비 9억 달러를 비롯하여,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비 등 김정일 독재권력 유지비를 정기상납하기 위해 깡패논리에 기생논리로 아양 떨고 큰집논리로 감싼 15대와 16대 대통령이 재임시 올려 보낸 것만 공식적으로 북한의 35년 예산인 70억 달러다. 미국의 옷소매도 끌어당겨 13억 달러를 바치게 만들었다.

 

 그들은 경찰을 동원하여 깡패를 소탕하는 게 아니라, 경찰의 직무를 포기하고 깡패에게 정기적으로 상납하는 창구를 휴전선 너머 동서에, 언제든지 대량 인질이나 살상이 발생할 수 있는 곳에 각각 하나씩 만들어 놓고, 그것을 역사적인 남북화해라고 자신도 속이고 남도 속여 노벨평화상도 받아냈다. 그 상의 권위를 빌어 수상자를 세계적 정치지도자로 치켜세운다. 노벨평화상 자체가 얼마나 정치적이었으며 엉터리였던가. 슈바이처와 테레사 수녀, 만델라 등 제대로 수상한 이가 오히려 드물었다. 또한 5억 달러가 바로 들통 났으면 절대 받을 수 없는 상이었다. 그럼에도 김대중은 후일 조금도 뉘우치지 않고, 대신 감옥에 들어간 사람을 정치적 희생자라고 두둔하고, 외국에 나가서는 잘사는 형이 가난한 동생에게 빈손으로 갈 수 없다고 참 인정 많은 소리를 당당히 늘어놓았다. 현금은 대부분 깡패 두목의 계좌로 들어가, 그것이 경찰을 능가하는 깡패의 무기 장만에 사용되었다는 것을 누구보다 그들 자신이 잘 안다. 모른 척할 따름이다. 그들의 논리에 따르더라도 동생은 지지리도 못 산다. 돈 나올 데가 전혀 없다. 그렇다면 그 돈이 흘러간 장소는 뻔하다.

 

 천문학적인 달러(개성공단의 노동자는 한국 기업이 주는 60달러 중 1달러 내지 2달러밖에 못 받음)를 정기적으로 상납 받는 것도 모자라 아무 죄 없는 부모형제와 이웃을 아무 이유 없이 죽인 깡패는 설령 친 혈육이라 한들, 당장 명예로운 가문의 족보에서 파내고 의절해야 한다. 원수도 그런 원수가 없다. 더군다나 조금도 뉘우치지 않고 5천만 명에게 일제히 무릎을 꿇으라고 요구할 때, 분연히 일어나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한다. 그렇지 않고 계속 두둔하는 자는 한 패라고 결론짓지 않을 수 없다.

 

 북한만큼은 아니어도 2009년 한국에서는 전직 두 대통령의 죽음을 맞아 조문(弔問) 정치가 극성을 부린다. 망자(亡者)에게는 과거의 은원을 잊고 일단 고개를 숙이는 한국적 정서를 이용하여, 거짓을 진실로 바꾸고, 일방적 주장을 역사적 사실로 바꾸고, 불의를 정의로 바꾸고, 증오를 사랑으로 바꾸고, 반민족 행위를 구국(救國)의 결단으로 바꾸고, 살인자를 구세주로 바꾸고, 권력욕을 애국심으로 바꾸는 거대한 의식이 거행되고 있다.

 

 김정일의 깡패논리엔 박정희의 경찰논리로 정정당당하게 맞서야 한다. 기생논리도 안 되고, 노예논리도 안 되고, 졸개논리도 안 되고, 방관자논리도 안 된다. 중국 식 왕 깡패논리도 안 된다. 미국 식 종이호랑이 논리로도 안 된다. 거짓에는 진실로, 불법에는 엄정한 법 집행으로, 힘에는 더 큰 힘으로, 깡다구에는 위엄으로, 도끼에는 전투기와 전차와 기관총과 대포로(1976년 8월 18일 도끼 만행 사건), 한 줌 무장공비에는 수백만 예비군으로, 굶주림에는 쌀로(김일성은 인도적인 쌀 제공도 감히 받지 못함), 폐쇄에는 개방으로, 공산독재에는 자유민주로 당당히 맞서야 한다. 깡패에게는 절대 굴복하면 안 된다. 어떤 순간 어떤 장소에서도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 깡패의 거짓에는 잠결에도 속지 말아야 한다. 거짓의 괴물을 단번에 사로잡을 물증의 올가미를 던져야 한다.

(2009. 8.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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