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과오란 전혀 없는 神이 보낸 <사람의 아들>이었던가?
<킴노박 시대의 영결식 > 이모저모
3김 시대의 연장이 일응 “킴노박 시대”라고 세간에서 말하여지기도 하는 모양이지만, 시대의 명칭이야 뭐라 하든 지금이 3김 시대의 역사적 유산물이라는 데는 전적으로 부인하기 어렵다. 정치라는 것은 이전 시대가 남긴 계승물(繼承物)에서 크게 벗어나는 것은 어려우나 전 시대를 어떤 형태로든지 다소간 지양(止揚) 하는 것이 국민에게 소망과 희망을 높여주는 것이 된다고 할까.
그럼에도 무엇보다 그런 밝은 면을 찾아보기 힘들다. DJ가 사망하고 영결식을 지나 안장식에 이르기까지 이모저모의 장례과정으로부터 좋은 의미이든 나쁜 의미이든 킴노박 시대의 특이점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이 시대의 진면모가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제1제: 방송-TV와 조중동 신문매체들이 보여준 광기(狂氣)
이들 매체들은 어쩌면 북한 보도매체들을 어느 새에 그렇게도 쏙 빼다 닮은 것인지 기가 막힐 지경이다. 사망자들의 프로필이나 인생역정을 알리는 데 될수록 좋은 점들만 고르는 것이 동서양의 일반경향이기도 하지만, 우리의 매체들은 사망자에 대한 심층분석을 거쳐 보도-비평하는 것이 아니라, 過는 전적으로 숨긴 채 功만-그것도 외형적인 공에 치우쳐 있다-대문짝만하게 들먹이고 있는 것은 일종의 사망자에 대한 신격화(神格化) 내지 우상화(偶像化)를 도모하는 북한의 유일체제(唯一體制)를 뒷받침하는 북한 매체들의 속성과 도대체 무엇이 다른가?
지난 10년 동안에 우리의 매체들이 저렇게도 변하였다는 것은 지난 두 정권이 표방하는 가치관들이 무엇이며, 전정권의 가치관을 현 정권이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 가장 이지 고우잉 하는 길이라고밖에 생각 못 하는 현 정권의 모양새를 볼 때 정말 비탄을 금할 수 없는 일이다. 조중동의 뒷걸음치기는 현 MB 정권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를 가장 잘 읽고 있는 반영이라는 느낌이 든다. 앞으로 각종 미디어들이 정부의 코드에 따라서 새로운 개편을 할 때 개 뼈따귀 하나라도 얻어 걸리겠다는 속셈을 여실히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제2제: 사망자는 과오란 전혀 없는 신이 보낸 <사람의 아들>인가?
한 승수 장의위원장의 추도사를 들어보면, DJ에게는 過도 허물도 전혀 없는 존재로 묘사하고 있다. 추모사를 읽은 朴 英淑도 마찬가지다. 박 영숙은 과거 DJ가 세운 <평민당>의 부총재이기도 하지만 씨는 우이동인가 수유동인가에서 <기독교 공동체의 집>으로 더 유명한 사람이라고 생각된다.
上記의 집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신약의 성경을 보면, 초대교회 때 예수를 중심으로 하는 <기독교적 사회주의>의 삶을 재현하는 실험적 삶의 형태로서의 집이 아닌가 여겨진다. 박 영숙 씨 가정, 고 문 익환 씨 가정, 현재 미국에 거주하는 문 동환(문 익환의 실제) 씨 가정 등등이 한 집의 울타리에서 공동으로 살았다. 각 가정의 구성원들은 각자 직장에서 받은 월급을 모두 고스란히 삶의 공동체에 내놓아 공동으로 삶을 영위하는 형태로 아직까지 그 집이 유지되고 있는지의 여부는 알 수 없다.
문 동환, 문 익환 형제는 1960년대 후반에 이 나라에 중남미의 해방신학(개신교 측에서는 “新神學”이라고 불렀다)을 도입하는 데 중추적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다. 아는 사람은 알고 있지만, 당시부터 70년대 80년대를 거치기까지 미국의 다국적기업과 그 기업을 위한 강대국을 대리하는 토속의 <代理政府>, 군부의 전횡으로 인한 압제로 인하여 국민이 이러한 정치-사회적 압제로부터 물리적인 수단(폭력)을 통해서 우선 해방이 되지 않고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만날 수 없다는 것이 이른바 해방신학의 요지이다. 이런 신학에 촉발되어 천주교에 세워진 게 <한국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이라고 생각된다.
고 문 익환 목사는 노 태우 정권 때 북한을 방북해서 김 일성 주석을 만나 고려 연방제 통일방안에 대해서 상당히 깊이 의견을 나눈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런데 문 목사의 전인지 후인지는 기억이 없으나 전남 함평 출신의 가톨릭 농민회 회장이자 야당 서 경원 의원이 북으로 밀입국해서 김 일성 주석을 만나 고려 연방제 통일방안 등에 대해서 의견을 나눈 뒤 통일운동으로 쓰라는 거금을 받아 귀환했다.
제3제: 동교동 사저
DJ의 영정이 그가 거하던 동교동 사저를 돌아보는 순간을 TV 카메라가 일층 거실, 5층의 집무실 등등을 비추어 주는 장면을 보고 한 마디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우선 마당은 좀 좁다는 느낌을 받았다. 충분한 산책은 도시 한 복판의 좁은 공간이라 불가능해도 거실에서 바라볼 수 있는 <정원공간>이 저렇게 좁다는 것은 그의 좁다란 전망과 안목을 설명해주는 것이라고 느껴진다. 그는 대통령이 되고나서 이 집을 팔고 일산에 새집을 지어 옮긴 것으로 아는데 어느 새 모두 원대복귀 했는가?
그가 남긴 사저는 정신적 휴식과 정밀(靜謐)을 주지 않는 그런 답답한 공간으로 비치는 것은 웬 일일까? 거추장스럽게 자기 자신을 조명해주는 각종 사진-기사 등등의 기념물로 방마다 채우는 것은 그의 정신건강이 어떻다는 것을 한 마디로 설명해주는 것이라고 느껴진다. 또 방마다 찾아온 사람들이나 가족들과 담화를 나누기에는 너무나 덩치가 큰 소파나 넓은 면적을 차지하는 데스크의 덩치, 사방 벽에는 숨 막히는 장식물들과 전시장 같은 DJ의 전시물을 보느라면 너무 답답하고 울적한 느낌이 든다.
이 희호 여사의 방 꾸미기와 인테리어는 이렇지 않다고 생각되지만, 자나 깨나 <정치적 목적>에만 몰두하는 남편의 취향에 따를 수밖에 없는 각다분한 사정이 깊이 연유한 결과라고 볼 수밖에 없다. 사저의 어느 방이고 사저 곁의 김 대중 도서관도 모두 DJ에 관련된 각종 자료들로 빽빽이 채워져 있을 뿐이다. 이것은 한 마디로 자기 자신의 홍보화, 자기 자신의 우상화, 자기 자신의 神格化를 위해 일평생을 살아왔다는 얘기로 통하지 않을까? 이 나라의 건국의 아버지, 즉 국부인 이 승만 초대 대통령의 큼지막한 사진 한 장 걸리지 않았으며, 모두 자신의 사진과 기념물로 도배하고 있으며, 2층 방엔가 휘장 태극기 하나가 의자 뒤에 걸려 있을 분이었다.
밖에서 복잡한 정치활동을 하더라도 歸家하면,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치렁치렁한 장식물들과 자기 자신을 재투사(再投射) 내지 재조명해 주는 우상들을 왜 방마다 가뜩이 진열하고 배치해놓은 것인가? 공간을 시원하게 널따랗게 탁 틔워 사용하면서 방마다 큼직한 이파리를 자랑하는 화분 한두 개를 배열하는 성숙한 미적 감각과 여유를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아쉽다고 할 것이다.
인생을 오로지 투쟁과 반항하는 데에만 쏟지 말고 자신을 위한 이모저모의 섬세하고 자상한 면면이 있다고 한다면, 필자는 그를 달리 볼 수 있을 것이다. 악이 바친 반항적인 모습의 사진들이 곳곳에 전시된 것으로 보아 <반항>과 <목표달성>에는 성공했다고 볼 수 있으나 인생을 헛것으로 산 불쌍한 사람이 이른바 DJ가 아닌지 모르겠다.
제3제: 함 세웅 신부는 마지막 안장식에서 “서민을 위한 정치가“라고 강조.
함 세웅 신부라면, <한국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의 代父로서 노 무현이 탄핵을 당했지만 헌법재판소에서 다시 대통령 직을 회복했을 때 이를 두고 “예수의 부활”이라고 그를 있는 대로 추켜세운 사이비 신부라고 느껴진다. 어쨌든 그는 노 무현이 허공에 날린 후에도 도처에 군중이 들고 일어나는, 즉 노 무현의 부활현상을 믿는, 이른바 <노 무현 부활교>를 이 땅 위에 창시한 셈이다. 좌익 사상을 가지는 것도 양심의 자유이겠지만, 행동으로 나올 때에는 법의 제재를 받는다는 것을 전혀 의식 못 하고 있는 딱한 인물이기도 하다.
북의 노동당 정치국의 후보로 알려진 모씨가 좌익세력들의 초청으로 독일에서 일시 귀국했다가 체포되어 1심에서 실형, 제2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을 때 함 세웅 신부는 “지하에 계신 안 중근 의사가 이 석방 소식을 듣고 무척 기뻐했을 것이라”고 그 소회를 기자들에게 밝힌 바가 있다.
안 중근 의사는 젊었을 때 명동성당에 적을 둔 천주교 신자임에도 당시 서울 교구장 리델인가 뮈델인가 하는 프랑스 교구장은 조선 총독부애서 안 중근 의사의 일본 이또오 히로부미 살해에 관련하여 천주교 신자인지의 여부를 조회해 왔을 때 서울 교구장은 “절대 아니다. 유언비어이다”라고 거짓말을 한 것은 천주교라는 고등종교도 일제 하에 살아남기 위해서 어쩔 수 없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인가?.
함 세웅 신부는 교리상 천주교 신자가 공산주의자가 도저히 될 수 없는 데에도 북한 정치국 후보자가 석방된 데(이는 노통 시절 청와대 직원, 국정원 직원, kbs 등이 노력한 결과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대하여 “안 의사가 매우 기뻐할 것이라”고 육갑을 떨었는데도 천주교 주교단이나 평신도 협의회도 지금까지 입도 뻥긋하지 않고 있다.
여담이 될는지 모르지만, 정 진석 서울 대교구장은 명동성당에서 올린 영결식 미사에서 “김 대중 토마스 모어 형제는 일평생 이 나라의 국민과 이 나라를 위해 헌신적으로 일한 외에는 아무 것도 한 일이 없다”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과찬(過讚)이면 비례(非禮)라는 예법을 알 터인데도 전혀 과도 허물도 없는 그런 인간이 신 앞에서 가능할 것인가? 이것이 신에 대한 천주교의 오만이 아니기를 빈다. 모든 가치의 絶對化에서 <全體主義>가 이 지상에 발생했다는 겸허한 진리를 배우기 바란다.
이제 본론으로 돌아가 함 세웅 신부가 현충원 안장식에서 “DJ가 서민을 위한 위대한 정치가”라고 떠벌렸을 때 그 근거가 무엇일까 궁금해 했는데 지난 용산 참사를 두고 DJ가 용산 재개발지역의 철거민들의 시위-항거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다섯 명을 희생시킨 것을 두고 심하게 질타했다는 것이 그 근거인 모양이다.
그것 가지고 서민과 애환을 같이 한 정치가라고 할 수 있겠는가? DJ가 서민을 위해 적은 성금이라도 자주 내놓는 일일랑 별로 기억이 없다.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을 때도 그는 그 돈에서 일부라도 떼어 가난하고 불우한 사람들을 위해 희사했다는 소식을 듣지 못 했다. 노벨 위원회로부터 받은 거금(약 10억원)을 자신의 사저 곁에 <김 대중 도서관>이나 광주의 <김 대중 평화 컨벤션 센터>를 위한 부동산을 구입해서 자신을 위한 기념화 내지 우상화에 모두 쓴 것으로 알려진다.
서민을 위한다는 정치가가 자식들이 정체불명의 돈을 받아 들컥 법에 걸린 일이 어디 한 두 번인가? 세 아들 모두 혐의를 받아 곤욕을 치르지 않았나? DJ는 정치욕이 한 마디로 대단한 사람이다. 자신의 아들 김 홍일을 목포-신안으로 내보내 당선시켜야 직성이 풀릴 만큼 더 이상의 언어가 필요가 없다.
또 3김의 하나인 YS의 2남인 김 현철도 정체불명의 돈을 받아 한 때 감옥에서 불명예스럽게 세월을 보낸 것은 국민이 모두 잘 아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YS는 틈만 나면 자신의 아들을 지금도 정계에 내보내겠다는 욕구는 아직 버리지 못하고 있는 더러운 노욕에 지나지 않는다.
북한언론을 닮아간 한국언론의 狂氣
- 김영일(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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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08-25, 08: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