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雲燦 교수의 정치外道에 대하여

교수가 총리가 되어 성공할 확률은 매우 낮다. 요즘 얼굴 깨나 반반하게 생긴 학자라고 할까, 교수라는 사람들이 좋은 의미인지 나쁜 의미인지 자신의 분수를 모르고 제멋대로 처신하는 것을 볼 때 이 나라는 가위 정말 ‘혼돈(混沌)의 시대’라고 부를 만하지 않는가!!




면상이 제대로 바르다고 할 때에는 관상학적으로 올바른 ‘세계관‘ ’인생관‘ ’가치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가리킬 것이고, 늘상 밝은 얼굴에 남에게 호의적인 인품을 느끼게 할 때에는 탈렌트 기질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얼마 전 김 준규 검찰총장 내정자의 인상은 딱딱한 검찰의 일반적인 분위기와는 퍽 대조가 되는 것이었다.




며칠 전에 총리로 내정된 정 운찬 씨도 밝은 얼굴에 서글서글한 성품을 가지고 있는 보기 드문 인물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한데, 지명을 받고난 뒤 그가 발설한 ‘수락의 변‘은 겉치레의 학자가 아닐까, 하는 일종의 실망을 금할 수 없었다. 학자는 다소 고지식한 면이 있더라도 솔직해야 한다고 보는 입장이다.




무엇 때문에 일국의 명문대학교의 총장이 상아탑의 정상(頂上) 자리를 우습게 박차고 굳이 세속적인 <정치>를 해야 하는 <총리>기용에 승낙한 것인가? 물론 오늘날 어느 나라든 대학교라는 존재는 대학교가 놓인 그 지역사회의 인재를 공급하는 일종의 ‘스테이션 서비스’에 지나지 않는 것이 현실이지만, 한편으로 <서울 대학교>가 너무 허망한, 그러고 그런, 값싼 대학인가 하는 반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김 영삼의 통치 시절, 이 모 서울 대학교 총장이 총리 기용을 수락했으나 수락 후 총리로서 뭐 이렇다 할 발군의 실력을 보인 바도 없거니와 염치없이 대통령 경선 후보에 나서는 과욕을 보이기도 했지만, 전당대회에서 얻은 표는 몇%라는 그야말로 근소한 것이었다. 이 총리는 원래 교수시절부터 정치에 무한한 관심을 가지고 일과 후면 주변의 선후배 교수와 맥주를 들이켜면서 밤새도록 토론하기를 좋아하였다. 그러나 막상 뛰어든 官界와 大選을 둘러싼 政治現實 안에서의 그에 대한 평가는 정말 허망한 것이었다.




정 운찬 씨는 노 무현 시절 대통령 후보로서의 입질이 더러 있었으며, 본인도 <충청권의 캐스팅 보트>를 무겁게 생각했음인지, 며칠 전 선진자유당에서 탈당한 심 대평 씨와도 그 당시 한 두 차례 만나서 대화를 나누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이런 모든 것을 떠나 이번 이 명박 정권하에 제2기 총리로서 외도(外道)를 꼭이 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는 그의 변을 들어보아도 이해하기 힘들다.




첫째로 우선 정 내정자는 “무엇 하나 녹녹한 것이 없는 이 나라의 위기상황에서 다만 책상머리에 앉아 있을 수 없다”는 말은 의례적(儀禮的)인 수사학(修辭學)이라면 모르되, 진정 내정자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야 말로 자신의 位相을 모르는 것이라고 느껴진다. 원래 오랜 관료생활을 하다가 대학에서 후진양성을 했다면, 행정가로 롤백해서 <해결사의 역할>을 발휘하는 것은 십분 이해가 되는 일이다. 하지만, 내정자에게는 현실 참여란 오직 처음이 아니겠는가?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케아 에티카’(니코마켄 윤리)의 <산술적 正義>에 의하면, 학자는 학자로, 농부는 농부로, 상인은 상인대로, 즉 자신의 본분과 위상대로 사는 것이 사회적으로 가장 바람직한 정의의 모습이라 했다. 우리 사회는 자기 위상에서 벗어나 남의 위상으로 뛰어든 것이 마치 正道인 것처럼 인식되어 있는 것은 이 나라의 혼돈이라고 여겨진다.




이 나라의 역대 통치자를 살펴보면, 이 승만, 윤 보선, 최 규하 등등 몇 사람을 제외하면, 군인 출신(박 정희, 전 두환, 노 태우), 상고 출신(김 대중은 맨 처음 목포일보 사장 등으로 상업에 데뷔, 노 무현은 상고를 졸업하고 고시에 합격한 뒤 판사로 1년 봉직한 뒤 인권 변호사로 탈바꿈, 이 명박은 포항 동지상고와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 현대건설에 입사)으로서 제 본연의 길을 완주하지 못하고 외도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란 사실을 발견하고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둘째로 정 운찬 내정자의 변 가운데 또 하나 심히 관심을 끄는 것은 “이 명박 대통령과는 경제 문제에 있어서 본인의 경제철학과 거의 일치했다”라는 표현이다. 물론 국정지표에 있어서 경제가 차지하는 몫은 크다. 그러나 經濟觀을 두고 상호 일치하는 것이 총리의 필요조건은 될 수 있을지언정 ‘필요충분조건’은 결코 아닌 것같다.




특히 <서민을 위한 경제>에 있어서도 공감한다고 하는데, 지금의 경제정책을 두고 과연 그렇게 본다면, <법인세와 고소득자의 소득세 감면>이 누구를 위한 조세정책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4대강’의 재원문제로 지방교부세가 깎이거나 복지 분야에 쓰일 재정이 깎일지 모른다는 지방자치체의 안절부절이 단지 엄살에 지나지 않는 것인가?




셋째로 관심을 끄는 것은 경제도약을 위한 토대, 즉 한국경제가 ‘웅비’(雄飛)할 기틀을 마련하는 것이 총리 수락의 이유라고 하는 대목이다. 지금 이 시점에서 ‘웅비’는 그만 두고라도(지금의 경제 패러다임을 바꾸거나 능가할 정도로 <성장 엔진>을 새로이 개발해내는 것도 예사 문제가 아니니까) 일자리 창출과 일자리의 안정, 노사간의 평화, 저소득층을 중산층으로 끌어올리기. 등등을 단지 경제이론으로써 쉽사리 해결될 문제는 결코 아닌 것으로 볼 때. 내정자의 욕구는 대단한 과욕이 아닐까?




웅비할 수 있는 토대 내지 여건 마련은 경제이론으로써 만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아우를 수 있는 행정가로서, 정치가로서의 수완과 박력과 德治가 융합된 컴비네이션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지, 내정자의 희망과 용기로써 결코 주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느껴진다.




넷째로 내정자의 변으로부터 주목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중도실용>과 <통합>에 관한 발언이다. 내정자는 통치자가 주장하는 중도 실용과 통합에 거의 이의 없이 수용해서 남북간의 갈등과 분쟁, 이념적인 남남 갈등, 지역주의를 해소함으로써 민족통합에 이바지하는 것도 총리를 수락한 <중요한 도전>으로 간주하고 있는 듯하다.




지금 이 나라가 직면한 가장 어려운 난제라고 생각된다. 경제의 선순환(善循環) 못지않게 어려운 난제임은 틀림없다. 학자 출신으로서 호기는 매우 바람직하고 용기 있는 일인지 모르나 대통령 아닌 총리 내정자의 위상에다 캐리어를 감안해 볼 때 구두선(口頭禪)에 가깝지 않겠느냐고 느껴진다.




우선 남북문제는 韓半島의 非核化를 집요하게 추구하는 美國의 대 한반도 정책과 맞물려 있는 이상 <일정한 한계>를 벗어나기는 어렵다. 이념적 갈등의 문제는 지난 10년 동안 두 정권이 헌법을 무시한 좌편향 정책과 그로 인해 비호 받고 양성되어 온 좌익분자들을 어떻게 시정하느냐? 하는 문제이다. 내정자가 말하는, 법대로 다스려야 하는 <원칙과 정도>의 문제이다. 바꾸어 말하면, 무법과 불법 천지의 늪에 익사 직전의 <헌법과 국가보안법>을 구출해내는 일이다.




이를 통치자처럼 <남남갈등>이라는 이름의 극단적 이념적 갈등으로 파악한 나머지 <중도 실용>을 적용함으로써 <통합>을 모색할 일이 결코 아니라고 본다. 한 마디로 <법치>로써 다스려야 하고, 또한 그렇게 함으로써 해결될 성질의 문제이다. 지역주의(地域主義) 문제는 행정구역 재편 내지 개편으로 치유될 수 있다고 보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것은 단순한 대증요법(對症療法)에 불과하지 결코 원인요법(原因療法)이 될 수는 없는 일이다.




결국 인식에 있어서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일이 가장 중요하고 두 번째로 특혜를 누리는 지역(공업화로 인한 소득 증대와 도시화로 인한 편익시설의 완비 등등)과 누리지 못하는 지역과의 편차를 어떻게 극복하는가, 하는 것이 지역주의를 극복하는 근본이지 정치적 뻥 튀김이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행정구역이란 보는 각도에 따라서 의미가 달라지지만, 첫째로 <행정수요>와, 그 수요를 충족할 수 있는 <행정서비스> 문제이다. 행정구역 끼리 통합을 하는 것이 <규모의 경제>와 <효율성>을 가져오기보다 오히려 행정수요를 더 높임으로써 지방재정을 턱 없이 높이는 결과를 빚어 해당 주민들에게 불편을 가져다주는 주는 경우가 더 많다고 볼 수 있다. 재정자립도(財政自立度)가 이루어지지 않는 나라에서 꿈같은 얘기로 들린다. 편의주의적인 정치적 발상으로 인해, 잘못 하면, 이 나라를 뒤죽박죽 만들 위험성이 없지 않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다섯째로 지적하고 싶은 것은 내정자가 <세종 시>(행정복합도시)에 대해서는 “원안을 변경하는 것은 어려우나 다소 수정을 보아 추진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라고 표현한 대목이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원안을 <대폭적으로 수정>함으로써 이 나라의 관료들이 서울과 세종시 양 도시를 왔다 갔다 하면서 길거리에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는 블랙홀이 없도록 해야 하는 것이 百年大計를 위하여 긴요할 뿐만 아니라, 지역주의를 타파하는 첫길이라고 할 것이다.




원안대로 시행한다면, 그것이 바로 지역주의의 우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듣자 하니 충청도 靑陽 출신의 이 해찬이 노 무현 대선 후보를 따라 대선 유세를 할 당시 “충청도 표를 끌어 모으려면, 충청도에 수도이전을 선거공약으로 내세우면 좋을 것이라”는 아이디어를 내놓자 노 무현 후보는 즉각 “그것 참 좋은 아이디어다!!”라고 무릎을 치면서 대선공약으로 채택했다는 것이 아닌가?




여섯째는 <4대강 정비>에 대한 정 내정자의 발언도 적절하다고 본다. 4대강은 말이 강이지 실상은 시궁창과 별로 다름이 없다. 국가적 사업으로 누가 해도 어차피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이자 국민의 식수로서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일이다. 국민의 식수와 건강, 그리고 친환경적인 정서를 위해서라도 깨끗하게 가꾸고 다듬어야 할 우리의 山下가 아닌가?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여기에 소요되는 재원을 별도로 마련해야지 국가재정의 여기저기에서 편법적으로 충당해 오는 일은 삼가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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