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통일을 결사반대한 김영삼과 김대중

김영삼과 김대중은 자유통일을 가로막은 최대의 걸림돌이었다.  

 베를린 장벽이 역사의 유물로 변한 지 20년이다. 그 1년 전인 1988년, 세계의 젊은이들이 대한민국의 서울에서 손에 손잡고 인류평화를 노래했다. 1988년 여름까지만 해도 대한민국은 정치 독재와 경제 식민과 폭력 시위로 공산권만 아니라 자유진영에서도 악명을 떨쳤지만, 막상 그 해 가을에 김포공항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세계의 젊은이들은, 특히 공산권의 젊은이들은 언론보도라는 것이 언론자유를 만끽하는 나라에서도 자체검열로 얼마나 왜곡될 수 있는지 직접 보고 들음으로써 절로 깨우쳤다. 한국의 자유는 푸른 하늘처럼 투명했고, 서울의 풍요는 황금 들판처럼 탐스러웠다. 한국의 산은 열대의 정글처럼 푸르렀고, 서울의 올림픽 선수촌은 공산권의 별 다섯 개 호텔보다 빛났다.


 1989년 11월 9일 베를린에 환희의 송가가 울려 퍼지자, 한국에서는 대다수 국민의 박수갈채와는 정반대로 민주와 통일을 제멋대로 독점하던 무리로부터 고통의 비가(悲歌)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동구(東歐)를 이상향으로 알았던 민중민주파(PD)는 연옥에서 허우적거리며 회개의 비명을 내질렀다. 그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북한을 지상낙원으로 믿었던 주체사상파(NL)는 스틱스(Styx) 강 앞에서 지옥의 단말마를 내질렀다. 그러나 위기는 기회였다. 주사파는 죽지 않았다. 회개도 않았다. 민중파가 뿔뿔이 흩어지는 틈을 타서 무혁혁명을 일으켜 한국의 재야 세계를 평정했다. 이어 대한민국 전체에서 [말]의 세계를 장악했다. 그들이 기를 쓰고 퍼뜨려 이내 권력의 정상까지 세뇌시킨 말이 바로 ‘흡수통일 결사반대’이다. 


 서울큰잔치의 초대자 노태우의 북방정책은 가공(可恐)했다. 1980년 모스크바, 1984년 로스앤젤레스에서 반 토막 대회로 전락했던 오륜대회가 1988년 서울에서 손에 손잡고 빙글빙글 평화의 원무(圓舞)를 췄다. 스스로 토굴 속에 갇힌 북한과 쿠바만 빼고 중국과 소련을 비롯하여 모든 공산권이 한껏 부푼 마음으로 서울행 비행기를 탔던 것이다. 노태우는 한국의 자유와 풍요에 얼이 빠진 중국과 소련과 동구로 007가방에 달러를 가득 담아 직접 들고 가서 부드럽게 손을 내밀었다. 동구에 이어 소련, 소련에 이어 중국마저 한국의 시장경제를 흠모하여 노태우의 손을 기꺼이 맞잡았다. 베트남 처녀도 아오자이를 다소곳이 입고 다정한 미소를 보냈다.


 하늘도 놀라고 땅도 놀랄 일은 베를린에서 일어났다. 소련만이 아니라 서독의 우방인 프랑스와 영국도 노골적으로 반대한 독일 통일이 서독의 만년 외무장관 겐셔가 미리 써 둔 시나리오에 따라 노아의 홍수처럼 다가왔다. 누구도 막을 수 없었다. 영국의 MI5도, 미국의 CIA도, 소련의 KGB도 멀거니 TV를 바라볼 따름이었다. 게르만은 천재일우의 기회를 단번에 낚아챘다. 동독인은 서독인을 얼싸안고 볼을 부비며 “우리는 한 민족(Wir sind ein

Volk)!"을 외치는 것만으로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서독 헌법의 보호를 받게 이르렀다. 1990년 10월 3일 한국의 4323번째 개천절에 일어난 인류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민족 재결합이었다. 


 한국의 주사파는 공황상태에 빠졌다. 동구권은 그렇다 치고 하늘같이 믿었던 중국과 소련마저 돈 몇 달러에 노태우의 손을 덥석 잡자, 그들은 이제 한국에 의한 자유통일은 시간문제로 보았다. 길어야 5년, 빠르면 3년으로 보았다. 대를 이어 진리로 가르쳤던 것이 말짱 거짓으로 판명될 날이 코앞에 다가오자, 그들은 젖 먹던 힘까지 다 끌어올려 흡수통일 반대를 외쳤다. 자유통일이라는 말은 입 밖에도 안 내고 독일 통일의 문제점을 침소봉대했다. 한편 그들은 끄떡도 않은 북한은 다르다며, ‘우리 식(주체)’을 소리 높여 외쳤다. 노태우마저 주춤주춤 밀려났다. 한반도 비핵화를 내세워 주사파들이 평화를 내세우며 그렇게도 오매불망하던 대로 한국에 배치된 전략 핵무기는 철수하게 만들고, 핵무기의 원료로 쓰이는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있는 핵폐기물 재처리를 절대 않겠다고 선언함으로써, 통일전선전략에 따라 필요하면 언제든지 거짓 약속을 태연히 내뱉는 공산당에게 핵 날개를 달아 주었다. 김씨공산왕조에게 핵을 개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제공한 것이다. 또한 한국은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해도 그에 대항하여 스스로 개발할 수도 없고 이미 빼낸 핵무기는 [말]을 빼앗긴 상황에서 다시는 배치할 수도 없는 자승자박의 길을 활짝 열었던 것이다.  


 그들에게 최대의 걸림돌은 김영삼이었다. 김대중에게 김영삼이 승리했을 때, 그들은 꽤 서운했다. 그러나 기우였음이 금방 드러났다. 그는 기본적으로 대한민국의 역사를 친일과 독재의 그것으로 보는 데서 주사파와 정확히 일치했다. 그 다음으로 그는 말로는 반공주의자였지만, 민주란 말만 내세우면 남파간첩도 동지로 의심치 않음을 그들은 알았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김영삼은 그 뜻을 알지도 못하면서 흡수통일 결사반대를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외쳤다. 그는 통일부장관이 일러 준 대로 이념보다 민족이 앞선다고 취임사에서 당당히 밝혔다. 연옥을 체험한 민중파는 김영삼에게로 대거 민주의 탈을 쓰고 몰려 갔고, 지옥의 문턱까지 다녀온 주사파는 김대중에게로 대거 몰려 갔다. 김영삼 시대에 주사파는 이른 밤에 보리밭 밟아 주는 정도로 탄압 아닌 탄압을 받으면서 [말]의 세계를 거의 완벽히 장악했다. 정치권력도 김영삼 시대에 이미 서서히 그들 손으로 넘어갔다. 김대중 시대와 노무현 시대가 열리는 것은 필연이었다. [말]의 세계만이 아니라 [생각]의 세계마저 그들에게 넘어갔던 것이다. [마음]이 고개를 외로 꼬면서 제2의 김영삼 시대가 열렸다. 그러나 여전히 [말]과 [생각]은 저들의 손에 들어가 있다. 옳고 그름을 판단할 능력을 잃은 [마음]은 오락가락하고 있고. 더구나 김영삼은 원래부터 흡수통일 결사반대다. 김대중과 노무현 시대는 입만이 아니라 발로도 흡수통일 결사반대의 길을 걸었기 때문에 김정일은 기사회생했을 뿐만 아니라, 반공의 얼이 빠져 소총 한 방에도 벌벌 떠는 대한민국을 마음대로 위협하게 이르렀다. 한미연합사가 해체되는 2012년이면, 김정일은 김씨조선에 의한 흡수통일(적화통일)을 택일하는 일만 남을 것이다.  


 김영삼과 김대중은 자유통일을 가로막은 최대의 걸림돌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말]과 [생각]의 세계에서 민주의 화신이고 민족의 수호신이다. 이것이 한국의 최대 비극이다.

  (2009. 11. 11.)    



  • 트위터
  • 페이스북
  • ↑위로
Copyright ⓒ 조갑제닷컴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달기 댓글쓰기 주의사항

댓글달기는 로그인후 사용하실 수 있으며, 내용은 100자 이내로 적어주십시오. 광고, 욕설, 비속어, 인신공격과 해당 글과 관련 없는 글은 사전통보없이 삭제됩니다.

PC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