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화폐개혁은 전쟁준비

전시체제의 주적인 시장경제를 짓밟고 김정일은 2012년 군사대국 건설에 매진할 것이다.

 

 2009년 11월 30일에 북한은 화폐개혁을 선언하고 약 1주일 동안 100대 1 비율로 구권을 주로 2002년에 인쇄한 신권으로 교환해 주었다. 2002년 7월 1일 경제개선조치 때 준비했던 일을 이제 단행한 셈이다.

 

 화폐만 안 바꿨지 실은 2002년에 화폐를 개혁했었다. 미국 달러 대비 공식환율을 2대 1에서 150대 1로 바꾸면서 가격을 대폭 현실화했다. 노동자 봉급은 한 달 100원에서 3000원으로 올리고 쌀 1kg은 국영상점 가격 8전(0.08원)에서 45원으로 올렸다. 그러나 불과 7년 사이에 시중 환율은 3000대 1로 올라갔고, 쌀 1kg의 시장 가격은 2000원으로 올라갔다. 한 푼도 오르지 않은 봉급으로는 쌀 1.5kg밖에 못 산다. 그걸로는 덩치가 생쥐처럼 작아지지 않는 한, 인간은 속절없이 굶어 죽는다. 평균 신장이 한국인보다 10cm 이상 작아지고 북한주민의 대다수가 한국 여성 잡지의 뼈 모델보다 말라비틀어진 걸로는 어림도 없다. 북한 주민의 절반이 만성 영실(영양실조)동무다. 월급으로 구매할 수 없는 식량과 옷 등 생활필수품은 장마당 거래와 나라살림 거들내기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 통계를 제대로 못 내서 그렇지, 북한의 부패지수는 압도적인 세계 1위다. 도둑 아닌 사람 없고 깡패 아닌 사람 없고 거지 아닌 사람 없다.

 

 개성공단의 노동자도 다를 바 없어서 그들도 임금은 똑같이 받는다. 한국 기업은 달러로 제공하지만, 북한 노동자는 북한 돈으로 받기 때문에 나머지 돈은 고스란히 김정일의 금고로 들어간다. 그래도 그들이 일반 노동자보다는 훨씬 나은 것이 쌀 1.5kg에 해당하는 돈이지만 꼬박꼬박 받고, 초코파이 간식과 점심 도시락용 국을 공짜로 받는다. 그것은 매달 15달러 정도에 해당하는 보너스로 월급의 15배에 해당한다!

 

 2002년의 가격 현실화는 큰 문제가 없었다. 가파른 물가상승에도 불구하고 장마당이 활성화되어 민간 차원의 생산이 급격히 늘어났다. 1958년 농업 공업 상업 전 분야에 걸친 협동조합화 완성 이후 최대의 민간 생산 증가였다. 한편 김정일의 핵 놀음 대성공으로 과거의 큰 집 소련에서 들어오던 구호품 못지않게 한국과 미국과 일본에서 전리품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것은 북한 유일의 자유인인 김정일의 손을 거쳐 핵심계층에게 하사되고 다시 대거 시장으로 비싼 값에 팔렸다. 그것도 일종의 공급이었지만, 수요가 월등했다. 그 결과 물가는 겁나게 올랐다. 제일 크게 재미 본 자는 김정일이고 그 다음은 핵심계층이다. 밑천 한 푼 안 들이고 거대한 부를 쌓았기 때문이다. 핵도 개발했고 미사일도 양산했다. 한국에 거대한 팬클럽과 입 안의 혀들을 부지기수로 확보하기도 했다.

 

 북한에서 새로운 계급 돈주(자본가)가 생겨났다. 크든 작든 이들은 권력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수만 달러 이상에 해당하는 돈을 가진 돈주는 핵심계층(이들은 달러와 위안화를 대거 확보)이지만 피라미 돈주는 동요계층과 적대계층에서도 만만찮게 생겨났다. 이번에 결정타를 맞은 사람들은 바로 이 작은 돈주들이다. 달러로 환산해서 100달러(구권으로 30만 원, 노동자 10년 월급) 이상 소유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한 세대당 10만 원만 신권으로 교환해 주고 나머지는 은행에 강제기부하거나 김일성의 초상화를 소각하거나 화장실에서 사용해야 한다. 예전의 화폐개혁에서도 은행에 들어간 돈은 인출할 수 없었다. 말단 당원도 대거 끼인 돈주의 민심이 들끓자, 교환 한도를 1인당 5만 원을 더하여 4인 가족 기준 30만 원까지 늘렸다. 월급은 종전대로 3000원을 준다고 했다가 400원으로 낮췄다. 킬로그램 당 공식 가격 45원에서 이미 80원으로 오른 쌀을 5kg 살 수 있는 돈이다.

 

 북한에서 화폐개혁은 늘 북한 판 중산층을 알거지로 만들고 김씨 왕가의 내탕고(內帑庫)를 늘리는 작전이었다. 정치만이 아니라 경제도 김씨 왕가가 완벽히 통제하는 작업이었다. 배급 체제의 강화였다. 전시(戰時)체제의 강화였다. 전시에는 민주 국가도 모든 산업을 군수 산업 중심으로 개편하여 시장경제를 최대한 줄인다. 북한에서는 소련군 꺼삐딴(대위)이 일제 말의 군국주의와 스탈린의 전체주의를 이씨조선의 봉건주의에 덮어씌운 이래, 줄곧 전시체제를 유지해 왔다. 그것이 느슨해질 때마다 피의 숙청과 시장경제 말살로 군사독재(선군정치)의 고삐를 바싹 잡아 당겼다. 그것이 60년 세습권력을 유지한 핵심비결이다. 북한주민이 한 달에 달걀 몇 개만 먹어도 배가 아픈 게 김일성과 김정일이다. 모름지기 2천만 김일성 민족은 ‘언 감자를 씹으며 미 제국주의를 몰아내고 기아와 압제에 시달리는 남조선을 해방시킴’을 가장 큰 목표로 삼아야 한다.

 

 김정일은 2012년을 통일원년으로 삼으려고 한다. 한국의 열렬 팬클럽 덕분에 꿈에도 소원인 미군 철수 내지 미군 무력화가 김일성 100돌에 기정사실이 되었다. 북한 인민군의 10년 장기복무에 맞서 스스로 무장해제하여 국군은 2년 단기복무를 1.5년 초단기 복무로 바꾸기도 했다. 미사일 몇 방이면 끝이다. 천만 뜻밖에도 가장 큰 걸림돌이 한국과 미국이 아니라 북한에서 생겼다. 첫째는 김정일의 건강, 둘째는 북한의 돈주! 인간의 지혜로는 헤아릴 수 없는 하나님의 원대한 뜻에 의해서 김정일은 건강을 그런 대로 되찾아 2012년의 해는 충분히 맞이할 수 있게 된 모양이다. 북한의 장성택과 중국의 호금도가 신경 쓰이지만, 김정일이 술담배와 여자만 멀리하면 국내 세력은 능히 제어할 수 있다. 무섭게 떠오른 돈주는 아니다. 그들은 전쟁도 전시체제도 극도로 싫어한다. 북한의 극비 사항을 돈만 되면 남쪽으로 얼마든지 빼돌릴 수도 있고, 돈으로 군인의 머리에서 선군사상을 아지랑이처럼 흐릿하게 만들 수도 있다. 이들을 일망타진하는 게 바로 화폐개혁이다. 그들이 가장 사랑하는 돈을 강탈하는 것이다.

 

 외눈박이 공산주의자들이 다 그렇듯이 김정일은 시장을 두려워하고 미워할 뿐 시장을 달래고 사랑할 줄 모른다. 천재적 지도자가 아니라 어리바리 시장이야말로 생산의 엔진이라는 것을 모른다. 시장이 요구하는 대로 따라가면 생산이 늘어나게 마련인데, 시장의 수요와 동떨어져서 천재적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핵무기를 위시한 대량살상무기와 총알이니 개머리판이니 쇠몽둥이이니 하는 적이든 동무든 사람 죽이고 괴롭힐 것만 생산한다. 2천만 전사(戰士)는 그저 하루 한두 끼 밥과 여름 겨울에 각각 입을 옷 한 벌씩이면 된다. 나머지는 모조리 육체를 좀먹는 사치요, 정신을 갉아먹는 세균이다. 따라서 외눈박이 공산주의자들은 무기 생산 외에는 생산을 극도로 억제한다. 당연히 공산체제에서는 핵심 계층에게 돌아가는 배급에 근거한 공식 가격과 노예 계층이 스스로 형성하는 시장 가격이 천양지차다. 잠재적 인플레이션 압박이 엄청나다. 연간 100%는 아무 것도 아니다.

 

 시장의 수요에 맞춰서 김정일이 생산을 늘린 것은 거의 전무하다. 안으로는 그저 염소 키워라, 물고기 키워라, 소금 늘려라, 알곡 생산 늘려라, 명령만 내리 먹였고, 밖으로는 핵무기로 위협하고 영실동무를 선보여 뜯어내고 동냥했을 따름이다. 생산은 손바닥 개인 텃밭과 협동농장의 논두렁과 밭두렁(이건 개인에게 허용), 두부나 옷이나 신발 등을 만드는 가내 기업소에서 놀랄 정도로 늘어났을 따름이다. 그런데 그것이 드디어 전시체제를 위협하게 이르렀다. 이에 전격적으로 돈주의 재산 강탈에 나선 것이다. 스탈린이 레닌의 신경제계획(NEP)을 짓밟은 것이나 모택동이 유소기와 등소평 등 주자파(走資派)의 경제개혁 새싹을 짓이긴 것이나 같은 맥락이다.

 

 예전과는 달리 북한의 화폐개혁이 일사불란하지 못하다. 하루 이틀 만에 교환 한도를 10만 원에서 30만 원으로 늘리고, 얼떨결에 신권 3000원을 봉급으로 준다고 했다가 한 주일도 안 되어 400원으로 낮추는 것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만큼 이번 조치는 이미 배급체제가 무너진 북한에서 엄청난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반증이다. 핵심계층마저 이제 돈맛의 짜릿함과 무일푼의 쓰라림을 잘 안다는 반증이다. 60년 전시체제에 대한 거부 세력이 광범위하게 커졌다는 반증이다.

 

 김정일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것인가? 그럴 것이다. 피라미 돈주 세력과 바다 노동자농민 사이에 싸움을 붙이는 한편, 달러와 위안을 확보한 고래 돈주에게 더 큰 기회를 주고 두둑해진 내탕고로 국가보위부와 인민보안성과 노동당 고급 간부와 군인의 충성심을 확보하여 2012년 군사대국 건설에 성공할 것이다. 3년 내지 5년 정도의 긴장을 유지하는 데는 성공할 것이다.

 

 북한의 장마당은 박살날 것인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돈은 빼앗겼지만 개인 텃밭과 논두렁밭두렁과 가정 기업소 곧 생산시설은 그대로 남아 있다. 머잖아 이들로부터 생산이 더 늘어날 것이다. 단 이번에는 한 동안 물물 교환이 활발해지고 달러와 위안이 아무리 단속해도 고래나 상어급 돈주로부터 흘러나와 공공연히 유통되면서 북한의 새 화폐는 3년 안에 가치가 100배 정도 폭락할 것이다. 그 때쯤이면 구매력이 떨어진 노동자농민의 불만이 한층 커지고 장마당은 발 디딜 틈이 없어질 것이다.

 

 김정일이 노리는 때가 바로 그때가 될 것이다. 안보의 둑이 쩍쩍 갈라진 한국은 깨진 유리창 뒤에서 손짓하고, 북한주민은 장마당에서 돈 벌기에 혈안이 될 때에, 화폐개혁은 아무 것도 아닌 충격적인 일을 벌일 것이다. 일거에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할 것이다.

 (2009. 1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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