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남철수, 잊을 수 없는 미국인 알몬드 장군을 위하여
1950년 12월 12-24일까지 약 20일 간은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세가 역전되어 몰리던 유엔군의 흥남철수가 있었던 날이다. 흥남철수, 전쟁을 모르는 세대는 생소한 날이겠지만, 흥남철수는 미국이란 우리에게 어떤 나라인가를 알게 해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라 할 수 있겠다.
나는 미국에 가 본 적도 없는 사람이다. 더구나 몇 마디 더듬거리는 정도, 미국식 영어도 할 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미국을 잊지 못하는 사람이다. 은혜와 원수를 분명하게 가름할 줄 아는, 사리(事理) 분별에 분명한 기준이 있기 때문이다.
일본을 패망시키고, 우리의 주권과 역사를 되찾아준 나라는 분명 미국이다. 소련은 태평양전쟁에서 작은 기회를 얻어서 큰 이익을 남긴 나라일 뿐이다. 모든 정예(精銳)부대가 빠져나간, 허약한 60만 관동군을 상대로 단 일주일을 싸웠을 뿐이다. 그리고 소련은 김성주(김일성)를 내세워 북한에 공산국가를 세웠다.
공산주의, 이미 인류가 포기한 사상. 자유민주와는 이미 승패가 난 사상이다. 다행히 우리 남한은 미국의 자유민주체제가 들어서 오늘날까지 번영을 누리고 있다. 만약 우리도 공산주의 체제였다면 지금 북한처럼 살 것이라는 것은 자명한 일일 것이다.
미국…. 태프트가쓰라 조약으로 일본에 우리 대한제국을 넘긴 나라이면서도, 다시 일본으로부터 빛을 되찾아준 나라. 그리고 6.25 전쟁 시 33,629명의 전사자와 103,284 명의 부상자를 내면서 대한민국을 공산주의로부터 수호해 준 나라. 자유민주와 자본주의 체제를 수립하도록 도와주어 오늘의 번영을 누리게 해준 나라. 애증(愛憎)이 교차되는 이 나라에 대해 우리는 무엇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미국은 1948년 5.10선거에 의해 남한에 단독정부가 세워지자, 신탁통치를 거두고 한반도에서 미련 없이 군대를 철수시키고 떠난다. 북한도 1948년 8.25일 선거를 통해 북조선인민공화국을 세운다. 그러자 소련 역시 군사고문관만 남기고 군대를 철수시켰다.
그러나 소련은 수많은 무기를 북한정권에 주고 남침을 유도한다. 반면 미국은 이승만 정부에 비행기 한 대, 탱크 하나 주지 않았다. 당시 국군은 치안을 목적으로 한 미군 무기의 일부 또는 일본군이 쓰던 무기만 있었을 뿐이다.
남로당 박헌영은 정판사 위조지폐 사건으로 월북하여, 해주에서 강동정치학원을 설립하여 수많은 빨치산을 양성하여 남파시켰다. 대구폭동사건부터 제주 4.3사건에 이어 여순반란사건까지 남한을 동족상잔의 구렁텅이로 몰아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박헌영은 김일성에게 남침을 교사(敎唆)하였다.
6.25가 터지자, 유엔은 북한의 김일성에게 군대 철수를 권했으나, 김일성은 거절하였다. 결국 유엔은 군대 파견을 결정하였다. 이때 거부권을 쥔 소련은 회의에 불참하였다. 드디어 전 세계 16개국이 군대를 파견하였고, 유엔군 사령관으로 맥아더가 선임되었다. 그러므로 6.25는 미군이 온 것이 아니라 유엔군이 온 것이다. 미군은 유엔군의 일원이었을 뿐이다.
그러므로 미군을 한반도로 불러들인 것도, 지금껏 한반도에 남아있는 것도 모두 전쟁을 일으킨 김일성 때문이란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렇게 우리는 6.25 전쟁을 통해서, 미국이란 과연 우리에게 누구인가에 대한 진정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흥남 철수에서 보인 미군의 모습은 진정한 인류애, 그것이었다. 중공군의 개입으로 미제 10군단은 동부전선에서 후퇴를 거듭하고 있었다. 이때 알몬드 중장은 미10군단 철수를 위해 미제7함대를 비롯한 함정을 거느리고 흥남에 대기하고 있었다. 당시 부두에는 수많은 피난민이 몰려있었다. 이때 알몬드 중장은 피난민을 구하기 위해 그 엄청난 무기들을 모두 다 버리고 대신 피난민을 실었다. 그리고 거제도로 데려갔다.
그 마지막 날이 바로 1950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그것은 비참한 전쟁의 비국을 위로해준 알몬드 중장이 우리 민족에게 준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무기보다는 인간의 생명을 선택한 알몬드 중장. 오늘날 우리는 이러한 알몬드 중장의 은혜를 잊어서는 안 된다.
전쟁의 고통과 함께 이어 닥친, 전쟁이 가져온 비참한 생활을 잊을 수 없다. 아이는 부모를 잃고, 부모는 자식을 잃고 형제를 잃고 쓰러져 갔다. 좌파들은 6.25를 통일전쟁이라고 부르나, 이건 통일이 아니라 학살(虐殺)이었다. 공산주의 세상을 만들기 위한 학살.
그 결과, 이들은 국군이 수복한 후 모두 처형을 당했다. 그런데 그 가족들이 살아남아, 김대중 노무현 정권 때, 모두 명예가 회복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통일일꾼으로 행세하고 있다. 제주도 4.3폭동과 여순반란을 일으킨 14연대 후예들이 대표적인 예이다.
우리가 미국을 잊지 못하는 것은 미국이야말로 우리의 굶주림에서 도움의 손길을 편 세계 여러 나라들 중의 하나라는 점이었다. 그리고 미국은 우리에게 가장 많은 원조를 해준 나라이기도 하였다.
작고하신 박경리 선생께선 그의 소설 ‘토지’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설네 설네, 하여도 배고픈 설움 같을라고.”
배고픔이 가장 큰 서러움이란 것이었다. 맞는 말이다.
얼마나 배고팠던가. 그리고 얼마나 서러웠던 세월인지 모른다. 그 고통스런 시절에 미국은 우리에게 옥수수며 밀가루 우유 등, 수많은 먹거리와 입을거리를 보내주었다.
김일성이 저지르고 만들어낸 수많은 슬픔과 이별과 학살의 공포에서, 그리고 배고픔에서 우리를 도와준 나라가 미국이었다. 김일성은 우리에게 고통을 안겨주었지, 미국처럼 맛있는 노란 옥수수죽을 준 적이 없다.
나와 우리 친구들은 학교에서 나눠주는 그 죽을 타먹으며, 혹은 옥수수빵을 먹으면서 국민학교를 졸업하였다. 가루분유를 먹고 설사를 하던 그 시절, 미국은 북의 남침을 지켜주었고 우리를 배고픔에서 구해 주었다. 그리고 수많은 전쟁고아들을 데려다가 길러주었다. 미국의 막대한 경제 원조는 오늘날 우리 대한민국 반영의 초석이 되었다.
북한의 김정일과 남한 내 좌파들이 미국을 증오하는 이유가 바로 남한적화의 최대 걸림돌이 미군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오늘날 좌파들의 준동(蠢動)도 이유를 남한적화에서 찾아야 한다. 미군이 있으면 모든 것은 수포로 돌아간다는 위기감이 오늘날 남한 좌익들의 거친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적화통일의 첫 순서가 바로 미군을 한반도에서 몰아내는 것이다. 미군이 물러가야 적화의 기회가 온다는 것은, 남한과의 전쟁에 승산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한 내 좌파들을 동원해서 미군 철수에 혈안이 돼 있는 것이다.
그래서 북한은 6.25 이후부터 끊임없이, 쉬임없이 남한에 좌익 이념과 반체제 세력을 심어 왔다. 그 끈질기고 치밀한 노력의 결과로 남한 땅에 좌파 민족주의를 양성시켰고, 민주화를 가장한 획일적 평등주의, 순수한 애국심으로 착색한 반체제주의를 만연시켰다.
그 결과가 오늘의 현상이다. 특히 전교조 교사들이 망쳐놓은 어린 학생들. 인성(人性)도 도덕도 적화통일을 위해 저버린 패륜적 좌파들. 적화 그 후의 일을 상상하지도 못한 바보들. 적화가 된다면 우린 죽어서 이 땅을 떠나겠지만, 좌파는 남아서, 김정일의 노예가 되어 만세 부르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이제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일부 국민들은 북한이 그 긴 세월 공들인 결실을 허망하게 포기할 것이라고 믿는다. 웃기지도 않는 일이다.
미국산 소고기 광우병 사기극 폭동 이후에도 좌파들은 이명박 정권에 대한 반정부 투쟁과 반미운동에 올인하고 있다. 전교조는 교단에서 철없는 학생들에게까지 적화전선에 나갈 것을 종용하고 있는 지금.
일몬드 중장과 노란 옥수수죽…. 이 시절에 다시 한번 생각나는 미국의 얼굴이다.
후퇴하면서도 한국인을 구출한 美軍
- 정재학(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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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12-15, 10: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