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의 그 많던 민주투사들은 어디로?

제2의 6·25가 터지고 적화통일되면 한국의 민주투사들은 살아서든 죽어서든 영원히 침묵할 것이다.

 

 1975년 4월 발가숭이 소녀가 질주하는 큰 길 너머로 매캐한 포연에 휩싸여 월남의 그 많던 민주투사들은 영원히 사라졌다. 1986년 12월 베트남이 시장경제를 일부 받아들이면서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고 개인에게도 제법 자유가 허용되었지만, 여전히 정치는 공산당 일당 독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자유민주를 외치며 여차하면 말 그대로 스스로의 몸을 불사르던 사람들이 왜 34년이 지나도록 촛불 하나 켜들지 못할까. 국회에서 공중 부양을 못할까. 이유는 두 가지 중 어느 하나일 것이다.

 

 첫째, 언필칭 월남의 민주투사들은 애초부터 자유민주에 관심이 없었고 그것이 뭔지도 몰랐다. 그들의 민주는 인민민주 곧 공산주의였다. 민주는 그들의 위장막이었을 뿐 공산화가 그들의 목표였다. 적화통일로써 그들의 일생일대 목표는 달성되었으므로 그걸로 울먹울먹 만족했거나 아니면, 생쥐처럼 눈을 빛내며 새 세상에서 한 자리 차지하는 것을 새 목표로 세웠을 것이다.

 

 둘째, 일부 순진하게 자유민주를 원했던 자들은 일망타진되어 영원한 침묵을 강요받았을 것이다. 복수의 정당에서 나온 후보자를 두고 자유롭게 선거한다는 것은 공산 국가에서는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꿈도 못 꾼다. 시위는 최소한의 정치적 자유가 있을 때나 가능한 일이다. 격렬한 시위로 여론을 조성하는 것은 일당 독재의 국가에선 처녀가 혼자서 몰래 문틈으로 무지개를 바라보다가 부르르 떨면서 애를 배는 것처럼 애시당초 불가능하다. 최근에 13억 인구의 중국에서 한 청년이 정당을 조직했다는 이유만으로 공개처형 당했다. 한 명이 심심하면 정당을 새로 만들 수 있었던 한국은 중국인에겐 꿈의 나라다. 해방 후 300여개의 정당이 난립했던 한국은 조만식 처형 후 지금까지 한 개의 정당만 존재하는 북한 괴뢰정권과 애초부터 별세계였던 것이다.

 

 1989년 북경의 천안문 광장에서 대학생들은 자유민주를 요구했다. 맨주먹의 시위자 머리 위로 탱크가 지나가면서 드르륵 갈겨 버리자, 두 번 다시 중국인은 자유민주를 입 밖에 못 꺼낸다. 20년이 지나 겨우 한 청년이 1인 정당을 만들자 바로 파리 잡듯이 잡아 죽여 버렸다. 이에 대해 13억 그 누구도 항의하지 못했다. 아니, 70억이 침묵했다. 자유민주의 나라 한국에서 이른바 군부독재 시절에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 나라가 발칵 뒤집어졌을 것이고, 미국과 일본을 비롯한 선진국들이 치를 떨며 주한 미군을 철수한다, 경제봉쇄한다, 대사를 소환한다, 야단났을 것이다. 그러나 공산국가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아무리 극악한 일이언정 한밤중에 길을 건너다 차에 치여 죽어 너덜너덜해진 고양이의 시체를 보듯 덤덤하다. 수백만이 말 그대로 맞아 죽어도 수백만의 쥐떼가 낭떠러지에서 떨어져 죽은 것을 보듯이 아무 감정 없이 바라본다. 그게 이른바 선진국의 거룩한 인류애다. 극구, 증거가 없다며 당당히 부인하기도 한다. 그러면 양심적인 지식인으로, 불세출의 천재로, 20세기의 현자로 추앙받는다, 킬링필드를 부인한 촘스키처럼.

 

 몸과 무의식(unconsciousness)은 자유민주와 시장경제를 공기와 물처럼 당연시하면서 정작 의식(consciousness)은 공산당 일당 독재를 앙망하며 진보와 평등과 민주를 내세워 부귀영화를 누리는 위선자가 선진국 또는 그에 근접하는 나라에서는 거대한 무리를 이루고 있다. 공산당 고위 간부가 되지 않는 한, 그들은 막상 공산 국가에 가서는 천금을 주어도 못 산다. 아들딸을 이런 나라에는 절대 유학 보내지 않는 걸 보면 그들도 백치는 아닌 듯하다.

 

 이승만과 박정희에 대해서는 최상급의 욕설로 하나에서 열까지 독재라고 매도하는 자들이 정작 그보다 천 배 아니 천만 배 극악한 김일성과 김정일에 대해서는 침묵과 아첨과 비굴로 일관한다. 그런 자들이 언젠가부터 반공과 북한인권을 조롱하며 한국에서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들의 붉은 양심에, 시퍼렇게 살아 있는 김정일의 핵무기는 민족의 자산이고, 죽은 박정희의 저준위 핵폐기물은 민족의 재앙이다. 막상 죽은 박정희의 원자로가 없으면 하루도 못 산다. 전깃불에서 휴대폰, 가전제품, 면도기, 고데기에 이르기까지 생활필수품이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한국형 원자로가 없으면 최소한 절반 이상이 무용지물이다.

 

 김일성이 사악한 두 외세를 끌어들여 일으킨 침략으로 3백만을 죽인 것은 미완의 통일전쟁이지만, 이승만이 김일성의 침략으로 다시 들어온 미군에게 작전권을 넘겨 풍전등화의 조국을 구하고 60년 평화를 지킨 것은 사대주의의 극치요 민족의 수치요 분단의 궁극인(窮極因)이다. 박정희가 선거를 꼬박꼬박 치러 야당 국회의원이 항상 절반 가량 당선되도록 자유를 준 것은 군사독재요, 사사건건 억지를 부리고 반찬 투정이나 일삼는 두 명의 위선자 집에 울타리를 높게 쌓은 것은 인권유린이지만, 김정일이 이웃 동네도 못 다니게 하고 100% 찬성 흑백투표하고 만인에 대한 만인의 감시로 2천만을 노비로 삼고 20만을 강제수용소에 가둬 개돼지 취급하는 것은 장군님의 주체적 선군정치요, 미제국주의자의 경제봉쇄에 따른 가열찬 자구책이다. 인구의 절반이 영양실조인 북한 주민이나 목숨을 9개 버리고 1개를 건져 찾아온 탈북자에게는 단돈 1원도 직접 주지 않으면서, 동서고금 일등 독재자 김정일에게 바치는 것은 아무리 많이 바쳐도 부족하다. 1달러가 5억 달러로 밝혀져도 100억 달러가 핵무기와 미사일로 돌아와도,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도리어 당사자를 살아서는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받들고 죽어서는 국장으로 예우한다.

 

 아마 소원대로 2012년 연합사가 해체되고 미군이 서류로만 존재하게 되어, 7일 전쟁에 이어 남북이 적화통일되면, 한국의 그 많은 기세등등 민주투사들은 어디로 갈까. 그 날 일제히 ‘장군님 만세!’하며 정체를 드러낼까. 아니면, ‘완전 속았다!’며 촛불을 들고 광화문이 미어지도록 시위를 벌일까. 과연 그런 날이 오면, 글쎄, 촛불을 한 개라도 밝힐 수 있을까. 사람마다 여러 단체에 가입하여 겉보기에는 전체 인구보다 많아 보이던 월남의 민주투사들이 34년이 지나도록 모기 소리만한 소리도 못 내는 걸로 미루어 보아, 만약 제2의 6·25가 터지고 적화통일되면 그들은 살아서든 죽어서든 영원히 침묵할 것이다.

   (2009. 1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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