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 수첩 무죄 판결과 로버트 박, 그리고 이용훈 대법원장의 사명

반드시 '우리법연구회'가 해체되어야 한다 PD수첩 무죄판결 소식을 듣고 의아하고 놀랐다. 앞선 판결과 사과문 등으로 PD수첩의 유죄를 자명하게 보고 있었던 차였다. 그러나 좀 더 들여다 보니 PD수첩에 관한 명예훼손 형사소송에서 무죄 판결을 내린 것이 법리적으로 꼭 무리가 아닐 수가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도덕적으로 PD수첩이 '무죄'인가"라고 하면 사정이 달라지겠지만 '명예훼손법'의 관점에서만 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공인(public figure)에 대한 명예훼손은 미국법에서도 매우 인색한 것이 사실이다. 피고측의 악의적 허위사실 적시에 대해 검사측에서 효과적으로 규명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앞으로 고등법원 대법원에서 판결이 뒤집힐 가능성이 있지만 어떤 결과에 대해서도 크게 놀라지 않을 것 같다.

문제는 연관 사건(촛불시위)이고 역시 '명예훼손'에 관한 민형사 사건인 김성욱 기자 사건에 대해 법원이 지나치게 불공정했던 것을 보면, 작금의 재판부는 아무리 도망치려고 해도 PD수첩 및 촛불시위 관련 사건에 대해 탈정치적, 순수 법리적 판결을 하고, 또 그렇게 하는 것이 사법부 독립이라고 항변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라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고 본다. 신영철 박시환 대법관 차원에서 일어난 내홍(內訌)이 이미 이러한 점을 시사하고 있다.

요컨대, PD수첩 판결의 정치적 성격이 사법부에 엄청난 부담을 주고 있고, 어떤 판결이라도 배후에 복잡하게 얽혀 있는 정치적 이념적 실타래를 한꺼번에 풀어낼 수는 없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어떤 의미에서 PD수첩 광우병 방송 자체가 공직자에 대한 명예훼손이며 업무방해인가에 관한 형사재판에서 법리적으로 무죄인가 아닌가는 이미 중요성을 조금 잃었다고 본다. 중요한 것은 총체적으로 현재의 사법부가 향후 정치적 이념적 속박에서 풀려나고, 법관 한 사람 한 사람을 독립적 재판의 주체로 바로 세워낼 수 있을 것인가에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우리법연구회'가 해체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 분들이 친교를 위해 한 달에 한 번씩 만나 식사만 나눠도 법조 윤리상 허용될까 말까 한데, 아예 조직적 형태로 법원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법연구회 소속 판사가 아니라고 해도 그 존재감은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 우리법연구회가 정치적 성격을 띠고 있지 않은 조직이라고는 연구회 소속 판사조차 주장하기 어려울 것으로 생각된다.

또하나 지적할 것은 사법부가 '독립적'이라는 것이 사법부는 이른바 법리(legal mind)에만 충실하면 된다는 뜻은 아니라고 본다. 역시 미국의 예를 들자면 미국의 '독립적 사법부'는 행정부와의 지난한 싸움을 통해 이루어진 소산이었다.

'위대한 입법가'(greatest law giver)의 한 사람으로 추앙받는 존 마샬 (John Marshall: 1755~1835)대법원장이 판사임에도 입법가의 지위를 획득한 것도 결국 그의 '정치적' 탁월성에서 기인한다고 본다. 말하자면, 대법원의 위헌법률심사권을 확립하여 미국 헌정사상 기념비적인 판결로 알려져 있는 Marbury v. Madison(1803)의 경우는 행정부와의 예민한 정치적 갈등을 피해 가면서도 대법원의 권위를 살려낸 존 마샬 대법원장의 탁월한 정치적 능력의 소산이었던 것이다.

이용훈 대법원장이 말한 대한민국의 독립적 사법부 역시 공짜로는 이루어질 것 같지 않다. 앞으로도 끊이지 않을 수많은 이념적 정치적 공방이 펼쳐질 때, 과연 사법부가 좁은 의미의 '법리'에만 숨어들어서 '독립성'을 얻어낼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가능한 일이 아니다. 이번 PD수첩 1심 형사단독 판사로서 문성관 판사가 할 수 있는 역할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었다고 보여진다. 문제는 최종 심급(last instance)에서의 판단이 무엇인가에 있다고 본다. 따라서 이용훈 대법원장의 역할은 문판사의 역할보다 비교할 수 없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데 PD수첩 사건이 배후에 거느리고 있는 역사적이고 이념적인, 현실정치적인 복잡한 문맥들 때문이다.

높은 수준의 법치 실현이 요구되는 지금, 한국 사법부는 '견제와 균형'이라는 관점에서 바야흐로 '창설'의 시기에 있다고 보여진다. 이용훈 대법원장은 과연 1800년대 미국의 건국 초기에 존 마샬 대법원장이 탁월한 정치적 경륜으로서 미국 사법부에 그야말로 '창설적' 역할을 했던 것과 같이 작금의 한국 사법부에 요구되는 시대적 '역할'을 수행하고, 또 성공해 낼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시대의 험난한 파도를 감당하는 데 역부족인 까닭으로 인하여 실패자로서 자리에서 내려올 것인가 기로에 있다.

작년 성탄절 로버트 박 선교사 입북 사건은, 이제 한국 사회가 저차원의 좌우 대결을 끝내고 북한을 해방시킬 것에 대한 피묻은 절규를 보여주고 있다. 한국 사회가 이토록 비루한 좌우대결에 묶여 있는 이상 북한사람들의 고통은 끝나지 않을 것이며, 대한민국은 북한을 맡을 수도, 한반도의 미래를 책임질 수도 없을 것이다.

사법부가 대한민국의 건국과 국가적 권위를 원천적으로 부정하거나 회의하는 세력에게 휘둘리도록 맡겨두는 것은 대한민국에서 사법부 자체를 빼앗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낳게 될 것이다. 존 마샬 대법원장의 감각으로 미국이 건국의 진통을 이겨내고, 공화파와 연방파가 양 날개를 달고 향진할 수 있게 된 것처럼, 대한민국이 낡은 좌우대결을 극복하고, 한 단계 높은 차원의 보수와 진보의 양날개로 통일을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훌륭한 사법부를 창설하는데 이용훈 대법원장이 능력을 발휘하기 바란다.

현재 민주당과 공화당이 치열하게 공방하는 미국에서도 '건국과 헌법'에 대해서만은 어느 쪽도 경건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은 주지하는 바와 같다.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연설에서 건국의 아버지들에게 먼저 감사를 올리고, 링컨 대통령의 1860년대 성경을 꺼내어 손얹고 서약한 것처럼, 이제 한국에서도 대한민국 건국과 헌법은 가치의 기본이 되어야 한다고 믿고 사법부가 이 가치를 지키는 수호자로서의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고 본다.

거듭 말하건대 이용훈 대법원장 시대에 구시대적 좌우대결이 끝나고 국가적 근본가치에 기반한 훌륭한 법원이 새롭게 '창설'되기를 기원한다.



플로리다에서 김미영(前 한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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