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의 봄'이 우리 곁에 와 있다

이제 우리는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목숨이 죽어가야 정신을 차릴 것인가. '평양의 봄'을 싣고 풍선(삐라)아 날아라

<예언의 나팔이여! 오 바람이여,
겨울이 오면, 봄이 어찌 멀었으리오?>

'쉘리'의 '서풍의 노래', 이 마지막 구절을 이렇게 바꾸어 불러보면 어떨까? 우리의 시대상황에 맞추어서 말이다.

<자유의 나팔이여! 오 바람이여,
사랑의 풍선(삐라)이 날면,
평양의 봄이 어찌 멀었으리오?>

그렇다. '평양의 봄'은 지금 가까운 곳에 와 있다. 겨울이 막바지에 왔는데 봄이 어찌 멀다고 하겠는가. 봄바람이여, 좀더 세차게! 하늘의 평화가 그 곳에 내리도록! 자유의 여신이 그 곳에 임하도록!

지금 왜 사랑과 희망의 풍선(삐라)을 북으로 보내야 하나? 이유는 간단하다. 거기엔 김정일에게 보내는 '저승사자'라는 정의(正義)가 내리는 단죄의 큰 뜻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고, 북한형제들에게는 대한민국 국민의 진실을 담은 사랑과 희망과 꿈의 메시지가 실려 있기 때문이다.

지금 어버이 수령과 위대한 장군님 이름 아래, 노예처럼 살며 굶어 죽고 맞아 죽는 북한 형제들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며,또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늦었지만 지금이 바로 인류양심에 따라 북한 해방운동에 나서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사실 우리는, 민족적 양심의 가책과 부끄러움을 가지고, 형제애(兄弟愛)란 어떤 것이고 사람의 도리란 과연 무엇인가를 깊이 뉘우치며, 북쪽 하늘에 용서를 구하는 자세를 가질 때, 그나마도 '민족'을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위선으로 덧칠한 민족의 가면을 이제는 벗어 버리라는 말이다.

1990년대에 300만이 넘는 북한 형제가 굶어 죽고 맞아 죽어 갈 때, 5000만 대한민국 국민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저들에게 무슨 죄가 있어 저렇게 짐승처럼 살다가 참혹하게 죽어야 하는가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려 본 적이 있는가? 매일같이 왜 죽어야 하는지도 모른 채, 정치범 수용소에서 짐승처럼 죽어 나가는 저 불상한 형제들의 소식을 들으며 분노를 터트려 본 적이 있는가? 민족적 양심에 비추어 볼 때, 차라리 '민족'이란 개념이 아예 송두리째 없어졌으면, 하는 생각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김정일 하나를 위해 2000만 형제의 목숨을 담보로 쌓아 놓은 저 '저주의 벽', 인도주의와 민족끼리를 앞세운 엄청난 퍼주기로도 뚫지 못한 저 죽음의 문, 예수의 이름까지 팔아가며 쏟아 부은 신앙의 손길도 저주의 벽 앞에서는 별 힘이 되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거기엔 진정한 사랑과 희망이 없었고 진실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모두가 인간적 야심과 위선과 오만이 가져 온 우리 민족만의 슬픈 이야기라는 생각을 하면 하늘을 쳐다볼 수가 없다.

이것은 인간에게 진 죄라기보다는 하늘에 진 죄라고 생각한다. 하늘에 진 죄는 빌 곳이 없다고 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진리를 찾다가 진리를 만나고, 진리를 살다가 진리가 되는 것이 진실한 기독교적 신앙'이라는 김흥호 교수의 말처럼, 순수한 민족적 양심과 진리를 기독교적 신앙으로 삼아 북한주민의 참 사랑의 도우미가 된다면, 뚫지 못할 벽이 어디 있고 열리지 않는 문이 어디 있겠는가.

진정한 형제애와 참 신앙을 실은 사랑과 희망과 자유의 봄바람이 북쪽 하늘을 가를 때, 누가 감히 이 바람을 막을 수 있겠는가. 진리가 거짓을 이기고 빛이 어둠을 뚫는 것, 이것이 하늘의 법칙 아닌가.

그런데, 다행이도 우리에겐 이미 저주의 벽을 뚫고 북녘 하늘에 봄바람을 불어 줄 희망의 길이 열려있다는 사실은 정말 축복 중의 축복이다. 다시 말해, 저쪽 형제들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고, 삶의 희망과 탈출할 용기와 자유의 꿈을 심어 줄 '대북(對北)풍선'이 우리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하나님은 절대로 대한민국을 버리지 않는다'는 김동길 박사의 말씀이 떠오른다.

이것은 지금까지 한 민족으로써 진 마음의 빚을 갚고, 사람으로서의 도리를 다하라는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해 감사할 뿐이다. 이제 다시 여기서 머뭇거린다면, 우리는 양심을 배신한 역사의 죄인이 되고, 북한 형제들에게는 희망이 없다. 하늘이 준 기회다, 두 번은 오지 않는다. 지금도 굶어 죽고 맞아 죽는 북한 동포들에게 직접 도움이 되고 대한민국 소식을 전하고 자유세계의 평화와 행복은 물론, 김정일의 惡의 정체를 바로 알릴 수 있는 수단은 오직 '대북 풍선'뿐이라는 사실을 온 국민이 깨닫는다면, 북한 해방의 길은 벌써 반은 열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대한민국 5000만 국민의 마음을 담은 '사랑과 희망과 자유의 풍선'이 북녘 하늘을 뒤덮는 장관을 상상해 보자. 저 생지옥에서 벗어나는 형제들의 환한 얼굴이 떠오르지 않는가. 그리고 베를린 장벽처럼 무너지는 저 저주의 벽과 함께 떠나는 초라한 김정일의 저승길이 환히 보이지 않는가.

이제 우리는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목숨이 죽어가야 정신을 차릴 것인가. 갑자기 주어진 분에 넘치는 자유와 풍요에 썩어가는 국민정신, 여기에 제 분수를 모르고 높이만 튀려는 정치인들, 그리고 이기심의 극치를 달리는 국민정서의 흐름이 나라를 뒤덮고 있는 한, 우리 모두에게는 희망이 없다. 지금이야말로 내가 서있는 곳이 어딘가를 국민적 양심으로 되짚어 볼 때가 아닌가.

언젠가 '평양의 봄'이 북한 형제들을 자유케 했을 때 우리를 향해, “형제들이여, 우리가 그처럼 굶어 죽고 맞아 죽으며 짐승처럼 살아갈 때, 당신들은 어디 있었는가?”라고 분노를 터트린다면, 우리는 과연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한 번쯤 생각해 볼 문제가 아닐까.

거듭 강조하지만, '사랑과 희망 풍선'은 분명히 김정일에게는 '저승사자'”다. 그래서 '대북풍선'에 대해 그처럼 광적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만일, 5000만 국민의 10분의 1인 500만 개의 풍선이 평양 주석궁을 비롯해 북한 하늘을 뒤덮는다면 분명히 김정일은 미칠 것이고 북쪽 하늘 전체는 환하게 열릴 것이다. 이것이 2010년의 민족 제일의 목표가 되길 하늘에 빈다.

'사랑의 풍선'이 폐쇄된 사회에 구멍을 뚫으면, 홍수처럼 밀려드는 자유의 바람은 분명 탈북 10만 시대의 문을 열 것이고, 절망은 희망으로, 미움은 사랑으로, 분노는 화해로 바뀌는 기적을 가져올 것이다 .그러면 '평양의 봄'은 우리 모두의 봄이 되어 새 역사의 길에 훈훈한 축복의 바람을 불어 줄 것이다.

그리고 흑인 신학자 '지임스 콘'이 말하는 그리스도의 활동, 다시 말해 “그리스도의 활동은 본질적으로 해방을 위한 활동이다. 그 활동은 피압박자를 향한 것이고, 또 피압박자에 의해 추진된다.”는 그 '그리스도의 활동'과 대한민국 5000만 국민의 '사랑과 희망 풍선 운동'의 진실이 하나가 될 때, 김정일의 악의 세력은 반드시 무너지고 남한의 추종세력도 어둠 속으로 사라지게 될 것이다.

북한 2000만 형제가 사는 길은 그 길 뿐이다. 이제 '사랑의 풍선'을 날리자. '자유의 풍선'을 날리자. 그리고 '희망의 풍선'을 날리자. 평양의 주석궁까지. 우리 모두 북한해방을 위해 풍선(삐라)을 날리자.

'평양의 봄'이 우리 곁에 와 있다.


  • 트위터
  • 페이스북
  • ↑위로
Copyright ⓒ 조갑제닷컴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달기 댓글쓰기 주의사항

댓글달기는 로그인후 사용하실 수 있으며, 내용은 100자 이내로 적어주십시오. 광고, 욕설, 비속어, 인신공격과 해당 글과 관련 없는 글은 사전통보없이 삭제됩니다.

PC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