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 27일부터 사흘간 서해 5도의 어민들은 어선을 대피시키고 발을 동동 굴렸다. 김정일이 해안포를 가동한 것이다. 평균 신장 162cm에 평균 체중 45kg의 인민군 해안부대는 황소 100마리나 강냉이 1만 톤에 해당할 돈을 아낌없이 100여개의 차디찬 물기둥에 쏟아 부었다. 그것은 햇볕 정부 때인 1999년부터 3번이나 구닥다리 군함이 내려왔지만, 평균 신장 173cm에 평균 체중 70kg의 늠름한 국군이 최신식 전자 무기와 ‘차렷’ 교전수칙으로 침착하게 응전하는 바람에 2번은 패전하고, 편파적 심판이 선물한 페널티 킥으로 골을 넣듯이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엄명한 ‘열중쉬어’ 교전수칙 덕분에 여유만만 1번은 승전한 서해에서 일어난 일이다.
 
 오비이락처럼 즉각 스위스의 다보스에서 응답이 날아왔다. 이명박 대통령이 1월 30일 BBC 방송에서 ‘조건 없이 연내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날 수 있다’고 한 것이다. 취임 이후 줄곧 고수하던 ‘비핵개방’의 조건을 떼고 ‘열린 마음’으로 ‘무조건’ 만나겠다고 응답한 것이다. ‘안 만날 이유가 없다’고 편집보도한 청와대 대변인은 사퇴의사를 밝혔다. 여론이 심상치 않자, 청와대 홍보수석이 ‘이벤트성 만남은 없을 것’이라고 진화에 나섰다.
 
 한국도 결국은 독일처럼 입이 아니라 발로 통일될 것이다. 1972년부터 2007년까지 남북은 무수한 공동성명과 공동선언, 합의서와 합의문을 발표했다. 그러나 아직도 편지 한 통, 전화 한 통 자유로이 주고받지 못한다. 일방적으로 1998년 이후 시장환율로 북한 1년 예산의 35배에 해당하는 70억 달러의 햇볕이 선군(先軍)체제에 온기를 불어넣어 북한의 개혁개방을 가로막았을 뿐이다. (헤리티지재단 발표 경제자유지수에서 북한은 16년 연속 꼴찌, 2010년에는 179위로 100점 만점에 달랑 1점을 기록했는데, 그것은 꼴찌 다음인 178위 짐바브웨의 21점보다 무려 20점이 낮다.) 한국은 해방 당시부터 거주이전의 자유가 주어져서 누구나 전국을 마음대로 다닐 수 있다. 해외여행자유화 조치로 90년대 이후에는 돈만 있으면 북한 외에는 어디든 갈 수 있다. 물론 북한 외에는 어떤 곳에서든 이웃 마을 가듯이 한국에 올 수도 있다. 한국은 수백만 외국 근로자에게 꿈의 나라이기도 하다.
 
 대통령이 가든, 관광객이 가든, 기업인이 가든, 노동자가 가든, 정치가가 가든, 범민련이 가든, 철저히 북한 당국이 정해준 동선(動線)만 따른다. 사진도 찍고 싶은 것은 못 찍고 사람도 만나고 싶은 사람을 못 만난다. 한국에선 초등생도 들고 다니는 휴대폰도 가져가지 못한다. 신문도 못 들고 간다. 개성공단에 신문을 들고 가면 한 면 당 1달러, 10달러씩 제 멋대로 벌금을 물린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금강산에 취하여 새벽에 근방의 해변을 오페라의 여주인공이 무대를 가로지르듯이 거닐다가는 정조준한 총에 맞아 즉사한다.
 
 옛 동서독과 현 중국의 양안(兩岸)을 보라. 그들은 절대 요란한 정상회담으로 세상의 이목을 끌지 않는다. 1987년 동독의 서기장 호네커가 국가 정상으로는 최초로 서독을 방문했을 때도 그는 한사코 국빈방문(state visit)이 아니라 실무방문(working visit)라고 주장했다. 서독도 사실상 그렇게 대접했다. 과학, 기술, 환경보호 3건의 협정에 조인했다. 이미 연간 천만 명이 오가는 가운데, 단지 한 사람이 더 와서 실무회담한 후에 고향의 누나를 만났을 따름이었다.
 
 호네커의 출현은 가슴 벅찰 일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분노를 터뜨릴 일도 아니었다. 그것은 40년 세월의 분단이 우리에게 어떤 흔적을 남겨 놓았는지를 고스란히 드러내 보여 준 행사였다. (프랑크푸르터 노이에 프레세지(紙) 1987/9/12 )
 
 그보다 6년 전 1981년 서독의 수상 슈미트가 국가 정상으로는 최초로 동독으로 가서 동독의 서기장 호네커를 만났을 때도 긴장된 분위기이긴 했지만 요란을 떨지 않았다.
 
 동서독의 게르만족이나 양안의 중화족이나 가장 주안점을 두는 것은 노벨상위원들도 깜빡 속을 거창한 정치적 쇼가 아니라 어린이도 하품할 정도로 쩨쩨한 인적 경제적 교류였다. 무엇보다 편지와 전화를 주고받고 친인척과 관광객이 감시 안 받고 오가는 것이 중요했다. 그 다음으로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유리한 약탈 또는 조공이 아니라 서로가 이익이 되는 무역과 투자가 중요했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동독은 동독대로 중국은 중국대로 나름대로 자신감이 있었고 현실적 이익을 명분적 이념보다 우선했기 때문이다. 동독도 중공도 자신감이 없고 경제보다 정치를 우선할 때는 해방 후 지금까지 남북한이 그러하듯이 일방적으로 망명하고 귀순하는 것밖에 없었다.
 
 베를린 장벽을 넘다가 총살당하던 사람들처럼 탈북자야말로 정보가 극도로 통제되고 거주이전의 자유가 없는 사회에서도 옳고 그름을 스스로 판단하여 입이나 손이 아닌 발로 통일에 대한 투표를 미리 한 사람들이다. 그게 민심이다. 천심이다. 주범 북한과 종범 중국이 그렇게 탄압해도, 한국이 울며 겨자 먹기로 받아들여도 한국에 들어온 탈북자가 이미 2만 명에 이른다. 이들에게 북한에 대해 묻는 것이 백낙청이나 이영희나 이용훈이나 이재오나 현인택이나 한겨레 논설위원이나 MBC PD나 민주당이나 민노당에게 천만 번 묻는 것보다 낫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전이나 후나 한 번도 탈북자를 만나는 것을 못 보았다. 욕쟁이 할머니의 눈물을 닦아 주는 것은 보았으나 그보다 수십 배 불쌍한 탈북자들의 눈물을 닦아 주는 것은 못 보았다. 보수우익으로 표를 얻고는 중도실용을 내세우더니, 대영백과사전에도 못다 실을 만큼 어마어마하게 북한의 매체로부터 마구잡이로 욕설과 악담과 저주를 듣고는 ‘열린 마음’으로 이제 본격적으로 김대중과 노무현의 길을 가려고 한다.
 
 김정일은 자신이 희대의 독재자임을 누구보다 본인이 잘 안다. 그래서 목숨이 아까워 자신의 동선을 초극비사항으로 숨기고 북한주민에게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기본권인 거주이전의 자유도 외부세계의 정보 유입도 일체 허용할 수가 없다. 그것을 허용하는 순간 2천만이 한 달 안에 두 발로 아니, 기어서라도 자유대한으로 몽땅 넘어갈 것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남북관계 개선에 조금이라도 기여할 마음이 있으면, 먼저 탈북자를 만나야 한다. 그러면 해답은 절로 나온다. 거짓 약속이 전략전술인 김정일과 공동선언을 하나 더 내놓으면 그만큼 북한주민 2천만의 고통은 더 길어지고 깊어진다. 엄청 쩨쩨하게 보이겠지만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편지라도 마음대로 넘나들 수 있게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자유평화통일의 첫 단추를 꿰는 위업이다. (2010. 2.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