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은 ‘意味’ 없는 ‘소리’가 아니랍니다

‘이금희’라는 한글로 어떻게 ‘이금희’라고 “이름 지은 이의 염원”을 알 수 있을까? ‘이금희’라는 이름은 본래 漢字로 지었기 때문에 漢字로 적어야 그 “이름 지은 이의 염원”을 알 수 있는 것이다.
放送人 이금희 씨가 쓴 좋은 글을 읽었다. 요즘 사람을 숫자로 부르는 일이 많은데 잘못이라는 주장이다. 그러고 보니 그런 일이 많다. 矯導所, 學校, 銀行, 病院, 劇場, 食堂, 그리고 저 記事에서 지적하듯이 요즘은 라디오 放送에서도 사람을 番號로 표현하더군요.




그에 대해 이금희 씨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숫자가 아니다. 고유한 삶의 이력과 독자적인 정신세계를 이룬 구체적인 개인이다. 결코 숫자로 호출될 수 없는. ……우리에게는 이름이 있다. 거기에는 그렇게 자라기를 바라는, 이름 지은 이의 염원이 담겨있다. 그런 이름을 두고 숫자로 부르고 번호로 취급해버리는 것은, 조금 과장하자면, 우리 스스로 인간임을 포기하는 것은 아닐까.>




맞다. 나도 그 말에 十分 同意한다. 하지만 이금희 씨에게 反問하고 싶은 게 있다.




“그런 당신은 과연 사람 이름을 正確히 불러주고 있는가요? 내가 듣기엔 당신 發音도 만만치 않던데요. 長短音을 잘 區別하지 못하여 엉터리 發音하는 것도 사람을 番號로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잘못된 일이랍니다.”




나는 韓國語 發音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해 왔다. 2004년부터 다음에서 “金昌辰의 放送言語 바로잡기”라는 카페까지 運營하고 있다. 그러면서 放送인들 發音을 듣고 評價를 해보기도 했다. 그런데 이금희 씨 발음은 放送人으로서 水準 未達이다. 長短音을 잘 구별하지 못하는 非標準發音이 많다. 그렇다면 이금희 씨 또한 放送人으로서 남에게 罪짓고 있기는 마찬가지인 것이다. 물론 '한글專用'으로 된 글로 漢字語 固有名詞를 읽을 때는 누구나 정확한 발음을 할 수 없다. 나 자신도 다른 낱말들은 모르지만 漢字語 固有名詞를 한글로 적어놓으면 무슨 수로 정확한 발음을 할 재간이 없다. 무조건 틀리게 되어 있다. 하지만 이금희 씨는 固有名詞가 아닌 다른 낱말들도 절못 發音하는 게 흔하다.




물론 이금희 씨만 그런 엉터리 發音을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 放送人의 3분의 2는 非標準發音을 기본으로 하는 사람들로서 放送人 資格이 없는 사람들이다. 당장 放送을 그만 두어야 할 사람들이다. 나머지 3분의 1도 겨우겨우 들어줄 만한 정도인데, 내가 正確히 標準發音하는 放送人이라고 남에게 推薦할 만한 사람은 그저 손가락에 꼽을 정도이다. 그 정도로 오늘날 韓國語 標準發音하는 放送人은 稀貴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며칠 전, 韓國放送 에프엠 제1방송에서 오후 다섯 씨부터 放送하는 “國樂時間”에 얼마 전 돌아가신 元老 音樂 硏究家이신 李惠求 선생 特輯 放送을 再放送으로 한 시간 하는 걸 들었다. 거기에서 生前에 李惠求 선생과 인터뷰한 내용을 틀어주었는데, 나는 感動했다. 李惠求 선생의 發音이야말로 完璧한 標準 韓國語 發音이었다. 참으로 아름다운 韓國語 發音이었다. 放送을 듣다가 그 까닭을 알게 됐다. 李惠求 선생이 日帝强占期인 1934년부터 京城放送局에서 아나운서로 수십 년간 일하셨다고 한다. 물론 서울 토박이 출신이셨다. 그러니 그분의 發音이야말로 내가 그동안 들었던 韓國人 중 最高의 韓國語 標準發音이었다. 아, 예전에는 그런 模範的이고 아름다운 標準 韓國語를 구사하던 아나운서들이 계셨다. 그러나 지금은 찾기 어렵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오늘날 아나운서들의 發音도 형편없이 되어버린 原因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한글專用'도 重要한 原因 중 하나다. 우선 예전에는 國漢字混用을 했으므로 正確한 發音이 가능했다. 그런데 오늘날은 '한글專用'을 한다. 문제는 그 '한글'을 長短音을 區別하지 않고 적게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 이 ‘엉터리 한글’을 읽으면 ‘엉터리 韓國語 發音'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니 아나운서 수준이 일반인 수준과 비슷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大韓民國 政府가 法으로 이런 ‘엉터리 한글’로만 글을 적으라고 국민에게 强要하고 있으니 참으로 기가 막힌 일이다. 이 나라 政府가 너무도 無識하기 때문에 '한글專用'을 强要하는 것이다. '漢字'는커녕 ‘한글’이라도 제대로 안다면 이런 無知蒙昧한 일을 도저히 大韓民國 政府가 할 수가 없는 것이다. ‘한글’이라도 제대로 안다면 도저히 ‘한글專用’이 옳다는 말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한글’도 제대로 모르는 無識꾼들이기 때문에 ‘한글專用’이 옳다는 미친 소리들을 해대고 있는 것이다.




이금희 씨는 “우리에게는 이름이 있다. 거기에는 그렇게 자라기를 바라는, 이름 지은 이의 염원이 담겨있다”고 말한다. 옳은 말이다. 그런데 “이름 지은 이의 염원”은 漢字語 이름의 ‘發音’에만 담겨 있을까? 당연히 ‘意味’에도 담겨 있을 것이다. 오히려 이름 지을 때 ‘소리’보다는 ‘意味’에 重點을 두고 짓는 경우가 더 많지 않는가?



그런데 왜 오늘날 韓國人들은 漢字語 이름을 ‘한글’로 적는가? ‘이금희’라는 한글로 어떻게 ‘이금희’라고 “이름 지은 이의 염원”을 알 수 있을까? ‘이금희’라는 이름은 본래 漢字로 지었기 때문에 漢字로 적어야 그 “이름 지은 이의 염원”을 알 수 있는 것이다. 漢字語 이름을 한글로 적으면 ‘意味’와 ‘發音’ 중 한쪽만 드러나는 것이다. 게다가 앞서도 말했지만 現行 ‘한글’이 그 ‘發音’마저도 正確히 적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漢字語 이름을 한글로 적으면 그 “이름 지은 이의 염원”을 거의 알 수 없게 된다. 즉 사람을 숫자로 부르는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곧 漢字語 이름을 ‘한글’로 적는 것은 그 “이름 지은 이의 염원”을 알 수 없게 하는 점에서는 '숫자 표기’나 거의 비슷한 수준인 것이다.




漢字語 이름은 漢字로 적었을 때에야 비로소 ‘正確한 發音’을 알 수 있다. 또한 “이름 지은 이의 염원”이 어떤 ‘意味’를 담고 있는지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금희 씨처럼 저런 기특한 생각을 하고 있다면, 마땅히 漢字語 이름은 漢字로 적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왜 저런 글을 쓰는 이금희 씨 本人은 저 記事에 한글로 자기 이름이 적혀 있는 것일까? 자못 궁금하다.




그 理由는 두 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다. 하나는 이금희 씨가 숫자만 벗어나면 된다는 낮은 수준의 認識에 머물러서, 자신이 한글로 이름을 적었을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이금희 씨는 漢字로 적었는데, 한글專用하는 신문인 ‘경향신문’이 한글로 바꿔 적어버렸다고 볼 수도 있다.



사실 나같은 경우는 後者에 속한다, 나는 新聞에 投稿할 때 반드시 이름과 본문을 國漢字混用하는데, 모든 新聞社들이 제멋대로 한글로 다 바꿔버리는 것이다. 事前에 아무 相議도 없이 말이다. 정말로 低質스러운 우리나라 新聞들이다. 無識하니까 그런 짓을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新聞들이 ‘漢字’는커녕 ‘한글’이라도 제대로 아는 水準이 된다면 도저히 그런 無識한 짓거리를 할 수 없는 것이다.




아무튼 이금희 씨가 “이름에는 이름 지은 이의 염원이 담겨있다. 그 이름을 잘못 부르는 것은 우리 스스로 인간임을 포기하는 것”이라는 認識에 이른 것은 잘한 일이다. 다만 放送人으로서 그 자신이 그 認識을 잘 實踐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안타깝다.




이렇게 말과 글, 양쪽에서 韓國人이 자기 이름도 제대로 못 말하고 못 적고 있는 모든 일이 ‘한글專用’에 原因이 있다. ‘한글’이라도 제대로 안다면 ‘한글專用’이 옳다는 소리를 도저히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오늘날 大韓民國 政府부터가 ‘漢字’는커녕 ‘한글’도 제대로 모르는 水準이기 때문에 ‘한글專用’을 國家施策으로 밀어붙이는 無識한 짓을 恣行하고 있는 것이다. 이 ‘한글專用’을 없애지 않는 한 韓國人은 “우리 스스로 人間임을 포기하는” 水準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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