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등자들이 주도하면 엉망진창이 된다.
좌파의 평등과 右派의 平等
左翼 또는 左派의 至上명제 중 하나가 바로 平等임은 周知의 事實이요 史實이다.
이러한 평등의 指向點에서 좌파들의 모든 思想的 政策이 緣由된다.
弱者에 대한 배려도 또한 마찬가지이다. 좌파들의 '약자에 대한 배려' 觀點 자체가 비난 받을 일은 아니다.
그러나 左派들의 관점에서는 '약자에 대한 배려'가 바로 '弱者가 주인이 되는 세상', '民衆이 주인되는 세상'이 궁극적 목표이기 때문에 그러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거쳐야 될 과정 중의 하나가 바로 가진 자에 대한 富의 강제적 奪取 및 再分配가 필수적이고 歷史의 파괴가 필연적으로 수반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비난받는 것이다.
즉, 평등이라는 이념 자체가 비난 받을 대상이 아니라 左派들이 指向하는 평등이 필연적으로 가진 자에 대한 무조건적인 저주 및 비난과 强制的 탈취를 거쳐 재분배 해야만 이룰 수 있는 평등이기에 비난 받아야 마땅한 것이고 罪惡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左派들의 평등은 남의 것을 빼앗아 나눠 가지는 破壞的 平等이고 富者들의 것에 대한 탈취 및 재분배를 이용한 '약자에 대한 배려'이기 때문에 惡行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빼앗아 나누는 것이므로 필연적으로 下向平準化로 結果한다.
이것을 左翼들은 숨긴다. 이것을 좌파들은 善行이라고 선동하고 평범한 小市民들은 그것이 善이라고 착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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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반해 右派들의 기본이념은 自由이고 여기에서 派生되고 緣由되는 平等은 施惠的 平等이다.이것은 보다 많이 가진 자가 보다 적게 가진 자에게 自發的으로 베풀어야 하지 강제로 탈취하거나 강요해서 될 일이 아니다.
요즘의 드라마 '名家'를 보면 그 施惠的 관점에서의 분배 및 평등의 眞價가 보인다.
인정해야 한다. 나보다 더 많이 노력해서 나보다 더 많이 가진 자들은 그럴 충분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좌파들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저주하고 비난하려고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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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左派들의 평등을 經濟的 관점에서 본 것이지만 같은 맥락에서 좌파들의 평등을 言語文化的 관점, 敎育的 관점에서 본다 하더라도 그 根本은 같다.
그들의 평등은 破壞的 평등이므로 언어문화적, 교육적으로도 모두 같이 비슷한 知的 수준, 교육수준을 지향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他人의 高수준의 지식습득과 교육기회를 奪取하는 결과가 안 나올 수 없다. 결과적으로 한글전용 語文政策, 교육정책도 이러한 관점에서 知的 수준의 평등을 지향하는 것이고 평준화 같은 교육정책도 같다.
그러므로 左派들은 漢字混用론뿐만 아니라 성적 및 학교 서열화를 위한 모의고사, 고교등급제, 평준화폐지 등 지극히 당연한 자유주의적 교육제도의 復活을 필사적으로 反對하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그들의 평등은 下向平準化를 결과하며 그 平等은 破壞的 平等이다.
과연 그러한 평등이 歷史를 進步하게 할지는 의문이다.
이러한 極端的인 한글전용론자들과 左翼들의 공통점과 같은 근본적 시사점을 무시한 채 좌파들과 같은 주장을 되뇌이는 한심하고 멍청한 右派들이 과연 역사를 주도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歷史는 優性因子를 가진 자들이 주도하는 역사가 발전하는 것이지 劣性因子를 가진 자들이 주도하게 되면 退行과 破壞의 歷史가 되는 것이다.
歷史는 識者계층, 有産계층이 支配階層으로 主導해 나가는 것이 順理이고 그럴 경우 平和와 歷史의 진보적 發展이 이어졌으며 간혹 지배계층의 腐敗 등으로 피지배층이 지배층을 제압하고 역사를 잠시 주도할 수는 있으나 그들도 잠시 후에는 識者계층, 有産계층으로 化하는 것이므로, 歷史的으로 피지배층인 民衆이 歷史의 주체가 된 그 잠시의 경우는 叛亂의 역사, 暴壓의 역사, 殺戮의 역사, 사멸되어가는 共産主義의 역사 이외에는 없으리라. 그러한 退行이 지속되면 그 民族은 歷史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역사는 우수한 사람들이 주도해야 발전
- 無我境(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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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02-22, 14: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