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북한은 배급제가 거의 허물어졌다. 권력서열 1위 공산당의 서기장에서 권력서열 꼴찌 강제수용소의 정치범에 이르기까지 공산국가의 재화는 오로지 배급제로 공급되므로, 이 배급제가 허물어졌다는 것은 공산체제가 상층부 외에는 와해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게 된 연유는 북한이 말로만 자립경제였지, 실은 소련과 중공에 철저히 종속된 경제였기 때문이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 각각 중국과 러시아가 배급제를 포기하고 시장경제를 도입하면서 더 이상 북한에 원유와 원료와 원자재와 식량을 배급하지 않자, 세습왕의 스위스 비밀금고 외에는 달러가 없었던 북한은 그것들을 중국이나 러시아 또는 외국으로부터 살 수 없었다. 자연히 공장은 멈춰 섰고 농장은 황폐해졌다. 기름이 없었기 때문에 그나마 생산한 것도 운반하기 어려웠다. 중앙의 배급만 바라보고 있던 착한 노동자와 농민은 무더기로 죽어 나갔다. 한 집 건너 한 명이 굶어 죽었다.
 
 이때 자연발생적으로 등장한 시장경제가 장마당이다. 농민은 손바닥 뙈기밭에서 수확하고, 닭장 집에서 가공하고, 노동자는 기업소에서 훔치고, 군인은 군용차량을 빌려 주고, 관료는 국영상점에서 빼돌려 서로 바꿔 먹고 바꿔 썼다. 살아남은 자치고 배급제를 대신한 장마당의 신세를 지지 않은 자가 없었다. 공산주의의 붉은 양심을 지켜 배급제만 쳐다봤다면, 집집마다 한두 명 꼴로 굶어 죽었을 것이다. 90년대 후반에는 한국과 미국이 옛날의 소련과 중공 역할을 대신해 주었다. 공짜로 기름과 쌀과 비료를 원조, 사실상 배급해 준 것이다. 배급제가 상층부에만 작동한 북한에서는 외부의 지원이 상층부에만 분배되었고, 그것은 장마당으로 대거 빼돌려졌다. 덕분에 이악해진 북한주민은 스스로 생산한 것과 훔친 것과 빼돌린 것을 돈을 매개로 장마당에서 교환하여 생존했다. 돈이 권력보다 앞서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공산주의는 재화가 교환되는 시장을 이기심과 탐욕과 불로소득이 판을 치는 악의 수렁으로 본다. 공산 권력이 모든 재화의 분배를 결정하는 배급제야말로 악과 부정부패의 원천인데, 공산주의는 이를 정반대로 본다. 그래서 틈만 나면 시장을, 장마당을 때려 부순다. 그런데 막상 한 세대 두 세대 실험해 보니, 생산에 대한 동기유발이 전혀 없는 배급제로는 결코 이밥에 쇠고깃국을 먹을 수 없음이 자명해졌다. 중공과 소련의 개혁개방이라는 것은 바로 배급제가 불법적이고 음성적이고 보잘것없었던 장마당에 KO패 당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공과 소련은 공산국가의 두 종주국으로서 스스로 배급제 대신 시장을 택할 수 있었지만, 종주국에 뼛속까지 종속된 북한은 막상 독립할 기회가 이르자 정신적 공황 상태에 빠져, 새 중국과 새 러시아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서구 산업화 세력이 몰려올 때 조선이 성리학의 적자(嫡子)를 자처하며 대문을 걸어 잠그고 주자가례와 농업에만 매달렸듯이, 공산주의의 적자를 자처하며 일부 장마당을 마지못해 허용했을 뿐, 공장이든 토지든 국유화의 근간은 그대로 유지한 채 시장경제는 여전히 악의 수렁으로 여기고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다. 가내 수공업과 뙈기밭과 장마당 외에는 민간경제는 일체 허용하지 않았다. 개방을 흉내 낸 금강산과 개성의 관광업과 공단도 어디까지나 노동당 직영이다.
 
 한국과 미국의 무상배급으로 숨을 돌리자, 북한의 당 중앙은 배급제를 되살리고 장마당을 죽이기 위해 여러 번 권력의 칼을 휘둘렀다. 그 절정이 2009년 말의 화폐개혁이다. 미국 돈과 중국 돈 제외하고 북한 돈을 일거에 휴지로 만들었다. 장마당이 하루아침에 박살났다. 공급이 따르지 않자 새 화폐는 두어 달 만에 옛 화폐처럼 되어 버렸다. 물가를 잡는다고 큰소리쳤지만, 두 달 사이에 물가가 수천% 올랐다! 배급제는 여전히 허울뿐이기 때문에 장마당이 서서히 부활되고 있다.
 
 바깥에서 보면 답답하기 그지없다. 공장과 농장 대부분을 주민에게 나눠주고 그들에게 세금을 받는 대신 각자 알아서 살라고 하면, 불과 이삼 년 안에 먹고사는 문제는 절로 해결될 건데, 도무지 국유화라는 절대 권력을 놓지 않는다. 공산권력의 노른자위는 국유화라는 경제권력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그들은 내부의 힘이든 외부의 힘이든 힘에 의하지 않고는 결코 국유화란 신성불가침 대원칙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에도 북한과 유사한 제도가 있다. 그것은 바로 교육제도이다. 북한에서는 눈에 보이는 일체의 재화를 국유화하고 있어서 그게 금방 눈에 띄지만, 한국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교육 서비스를 거의 대부분 국유화하고 있기 때문에 정부는 스스로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정책을 펴고 있는지 모른다. 사립학교도 많지만, 어디까지나 공교육이기 때문에 정부의 공문서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한다. 특히 학생 선발권은 정부의 지침을 충실히 따라야 한다. 단 한 학교도 정해진 틀에서 벗어날 수 없다. 국제중학교니 자율고니 해 놓고는 신입생을 추첨하라면 추첨해야 한다. 수능에서 사회와 과학 중 한 과목씩 더 줄이라면 줄여야 하고 구국의 입학사정관제를 도입하라면 다투어 도입해야 한다.
 
 대통령이나 대통령 실세의 한 마디면 끝이다. 이유불문 무조건, 교육 배급제에 목을 맨 천만 명이 이전의 줄에서 해산하여 부리나케 새 줄을 찾아 허리를 최대한 낮추고(복종의 뜻과 가속도의 속셈이라는 이중 의미의 자세) 모태범이나 이상화보다 빨리 선착순으로 달려가야 한다. 세상 바뀐 줄 모르고 우왕좌왕하는 양떼들에게 선착순의 지름길을 콕 집어주는 특급 코치가 바로 사교육 시장의 구루들이다. 입시제도가 바뀌고 복잡해질수록 사교육 시장이 역설적으로 더욱 번창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그들이야말로 정부 시책에 가장 충실하여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인다. 당연히 그들에게 큰 보답이 있다. 모 학원 서울대 333명 합격, 작년보다 33% 증가. (모 학교 서울대 3명 합격! 개교 이래 최대 경사!!)
 
 정부는 북한의 배급제에 해당하는 공교육은 선이고 북한의 장마당에 해당하는 사교육은 악이라는 대원칙을 막무가내로 수십 년간 교육자와 교육 소비자에게 강요했다. 정부의 과도한 규제로 날로 교육 서비스가 부실해지자, 1차 산업이나 2차 산업과 마찬가지로 3차 산업인 교육에서도 시장원리가 작용하여 자연발생적으로 등장하여 번창한 것이 사교육 시장이다. 정부의 교육 배급제와는 달리 사교육 시장에서는 일체 강제가 없다. 사교육 시장이 정부의 배급제 교육보다 나은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면 교육 소비자가 주머니를 열지만 그렇지 않으면 한 푼도 안 쓴다. 그래서 사교육 시장에서는 대박과 쪽박이 종이 한 장 차이다. 반면에 졸업장을 독점한 정부의 배급제 교육은 강제 세금과 강제 등록금으로 잘해도 그만 못해도 그만 항상 흑자다. 불패 사업이다. 대마불사다. 사교육보다 대체로 싸긴 싸다. 그러나 싼 게 비지떡이다. 아니, 비지떡치고는 터무니없이 비싸다. 그 돈이 너무너무 아깝지만 안 낼 수가 없다. 사교육 시장도 졸업장을 줄 수 있다면, 아마 공교육은 대부분 문을 닫아야 할 것이다. 거룩하게 공교육 운운하지만, 그것은 학력과 전혀 무관하게 발급되는 졸업장 100% 독점 사업에 지나지 않는다.
 
 정부는 원인과 결과를 거꾸로 알고 있다. 정부의 규제와 일률적 교육 배급이 다양한 사교육을 부추기는데, 사교육의 독버섯 때문에 공교육이 황폐화하는 줄 안다. 그래서 사교육에 대해 전쟁을 선포하고 지난 수십 년간 공교육에 대해 정부는 규제를 날로 강화했다. 나아가 사교육에 대한 규제도 날로 강화했다. 사교육의 가격과 영업시간까지 제한하고, 사교육 시장도 정부의 손아귀에 넣기 위해 일개 관제 사교육 기관인 교육방송의 교재를 국정 교과서보다 우대했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오로지 사교육을 박멸한다는 일념으로 입시제도를 뜯어 고쳤다. 그러나 웬걸! 백전백패였다. 왜? 정부의 규제가 더욱 강화되었기 때문에 공교육이 더욱 부실하여 사교육의 여지가 더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도 마찬가지다. 학력고사, 수능, 수시, 논술, 내신, 표준점수, 등급제 등의 도입과 문제 쉽게 내기, 입시 과목 줄이기에 이어 이명박 정부는 입학사정관제를 도입하여 이제 사교육 시장은 끝난다고 확신한다. 대통령이 직접 챙긴단다. 그것이 새로운 사교육의 블루 오션임을 대통령과 정부만 모른다.
 
 북한의 전면적인 국유화와 권력서열에 따른 배급제로 죽어나는 것은 아무 죄 없이 그저 먹고 살기에 급급한 2천만 주민이듯이, 한국의 무지막지한 교육 규제와 정부 주도의 일방적 입시제도로 죽어나는 것은 아무 죄 없이 그저 열심히 배우고 열심히 가르치려는 학생과 학부모다. 제일 신바람난 사람은 대통령 이하 정부의 교육 권력자다. 교육 권력자는 항상 천사이고 일선 교사와 교육 소비자와 사교육 약장수는 만년 개혁 대상 곧 악마라고 방송과 신문이 널리 홍보해 주므로, 정권이 바뀔 때마다 신바람이 나서 권한은 무한하나 책임은 전무(全無)한 새 교육 영웅들은 5년 대계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사교육에 대해 전면전의 뿔 나팔을 불고 쇠 채찍을 공중 높이 휘두르며 비루먹은 로시난테의 아랫배를 힘차게 걷어찬다.
“악마여, 냉큼 목을 길게 내밀고 정의의 칼을 받아라!”
    (2010. 2. 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