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 박물관에서 받은 충격!

世界史의 흐름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고 있었다

1.견적필살이 박물관을 찿는 이유 3가지

       

 ▼   견적필살이 박물관을 좋아하는 이유 3가지

     1. 여름엔 엄청 시원해서  피서지로는 딱이다.  쉴 곳도 있고 

     2. 겨울엔  적당히 따땃하다.  ( 따뜻이  아니고  따땃이다.  어감에서 분명한 차이가 있다^^)

     3. 세 번째가 젤 중요한데   바로  시간여행을 할 수 있다는 것.  이건 정말 재밌다.  타임머신이 바로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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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타임머신은 특이하게 사진에서 보는바와 같이  높은 빌딩 타임머신이네^^ 지진에 괜찮을려나   왜 이렇게 타임머쉰을  높게 만들었을까?^*^궁금하죠?   따라와 보시면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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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임머쉰 1층으로 들어가면 안내 표식이 바로 10층 꼭대기로 올라가게 되어 있는데 스카이뷰가 나름 괜찮음.  보통의  타임머쉰은  낮고 넓어서   다니다 보면 다리도 아프고 어디가 어딘지 미아되기 딱 쉽상인데  층별 구분이 쉬워서  길 잃고 헤멜 걱정  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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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층으로 올라가면 바로 옆의 오사카 성을 창문을 통해서 볼 수 있다.  한때는 일본을 벌벌 떨게 한 오사카 성인데 현대식 건물때문에 좀 초라해 보이기도 합니다. ( 뒷 빌딩군은 오사카 비지니스센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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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층으로 올라가면  은은한 조명과 함께 거대석조 조형물이 보이는데 바로 다음의 사진입니다.  순간 타임머쉰의 시공 이동한 듯.  조명빨부터  은은 족족하게 변하면서..... 왠지 뭔가 튀어 나올듯한  『나니와 오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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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오사카 박물관에서의 첫번째 충격

 

▼ 바로 이것때문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것을 보는 순간  뭔가  '띠잉~'하면서 내 뒤통수를 치는  그런 충격이었습니다.    이것이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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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밑에 사진은  세계사 전도에 있는  신라 안압지 사진 입니다.(위에 세계사 전도에 보면 NO. 1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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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버 2 사진 ( 발해 상경의 모습) 아마 일본 나라(奈라)나 발해 상경이나 거의 비슷했을 듯.

나라를 지킬 힘이 없게 되면 찬란한 문화유적도 후세에 전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백제 멸망후 왜는 특히 발해와 밀접한 관계를 맺습니다.  교토 박물관에도 보면  발해식 기와를 볼 수 있었고  특히  도깨비문양의 기와는 똑같다는 것이 이를 반증한다 하겠습니다.(교토 박물관에선 사진을 찍을 수 없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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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로 고대 나니와(難波)오사카 시대의 세계를 지도와 함께 표시하는 세계 전도였습니다.  아니 이게 왜 충격이야?  아무것도 아니네 별걸 가지고 충격이레 !  라고 하실 분 있겠지만 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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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로  역사를 제대로 공부하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世界史속에서, 세계의 흐름속에서 우리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이 제대로 된 역사를 보는 방법이라고 평소  저의 지론이거든요.  포커할때도 남의 패를 잘 봐야 이기죠 그런데 그것을 바로 일본의 오사카 박물관에서 그렇게 하고 있으니 안 놀랄 수 있겠어요?  이것이 왜 중요할까요?  우리를 한번 돌이켜 볼까요? 

 

▼ 임진왜란이 일어난 년도는 1592년이라는 것은 잘 알아도  그 시기에  영국과 프랑스는 어땠는가 하고  물으면 보통은 답이 궁색해 집니다. 또 반대로  콜럼부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할때 우리나라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느냐고 물으면 그 역시 답이 얼른 나오지 않을 겁니다.

 

일본은  얄밉게도 그렇게 하고 있더군요. (한글까지 표기한 센스^^) 세계사는 역시 전쟁사임을 보여주는 안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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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오사카 박물관에서의 두번째 충격 - 백촌강의 혈투

 

 ▼ 결정적으로 내 눈을 의심케 한 것이 바로 다음 사진입니다. 세계전도 한가운데 그것도 첫번째로 표기된 백촌강 전투(663)때문입니다.  우리 국사책에선 그렇게 비중있게 다루지 않는 부분인데 백촌강 전투야말로 동아시아의 역사의 획을 그은 동아시아大戰의 한 분수령이었습니다. 그 전투를 일본에서는 이렇게 크고 중요하게 다루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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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촌강 전투는  고대의 미드웨이 해전

      백촌강 전투의 패배는 왜군  명실상부한 A매치의 첫번째 완전한 패배.

 

▼ 660년 백제 사비성이 함락되자  왜는 3년간을 준비하여 663년 백제 부흥군을 돕기 위해서 당시 왜의 전 국력을 동원한 3~4만의 병력을 파병하였습니다.  그러나 백촌강(금강하구)에서 나당연합군에게  완전초토화되는 궤멸을 당하고 만 것이었습니다.  이 전투 이후 왜가 겪은 패배는 미드웨이해전에서의  패배라고 할 정도의 패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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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촌강에서의 패배는  일본의 정치판도도 완전히 바꾸었습니다. 상식적으로도 전쟁에서 지면 정권이 바뀌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요. 그 후 고구려가 멸망하고  신라가 한반도에서의 패자로 등극할 줄은 왜는 꿈에도 몰랐던  것이죠. 그만큼 왜도 충격이 컷습니다. 

 

왜는  패전으로 말미암아  정치적 혼란끝에  임신의 난(672)을 거치면서  친백제계가 몰락하고 친신라계의 지원을  받은 <천무천황>의 시대로 접어 들게 되고 정치적으로 일단락을 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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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후 부터  왜(일본)는 물론이고  동아시아는  평화의 시대로 접어들게 되었습니다.  천무시대부터 왜는 당에 사신을 파견하고 신라에 대한 적대적 관계보다는 선린우호의 관계를 선호하게 됩니다. 우리 역사에서   "통일신라시대"로 표시되는 그 시대는 동아시아의 평화의 시대엿습니다.  그 핵심은 한반도의 안정적 번영에   있다는 것입니다.  

 

왜가 신라에 복수를 하고 싶어도 신라가 그만큼 군사적으로 준비가 되어 있는 상태라서 결국 그 후 왜는 신라에  대한 적대적 관계를 접게 됩니다.  그만큼 한 국가의 군사력은 평화를 지키기 위한 가장 확실한 보험임을   역사를 통해서 재차 알 수 있는 사항입니다. 8~9세기의 동아시아의 평화 핵심은 한반도의 안정에 기인하였고 그 기반은 바로 신라의 군사적 굳건함에 그 기초가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그만큼 한반도의 안정이 예나 지금이나 동아시아 평화의 열쇠라는 사실입니다. 

 

 

4.오사카 타임머쉰의 색다른  기획

 

후기 나니와노미야(難波宮)의 대극전(다이고쿠덴(大極殿) : 이때까지만 해도 별의미 없었던 안내판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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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간 어두컴컴한 조명속에 당시 조정대신의 실물크기 모형이 좌우로 배치되어 있는 평범한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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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녀의 모습 : 어디서 많이 본듯한 모양새죠?  이게 다  당나라풍이라는 겁니다.  DSC_0718.jpg

 

▼ 통일신라시대 한반도의 안정이 동아시아의 안정을 가져왔죠.그 때(8세기) 들어와서는 신라뿐만 아니라  발해, 왜 모두 왕궁의 복식이 당나라 의복을  채택하는 공통된 사항이었다는  것이죠.  마치 지금 우리나  일본이나  유럽이나 모두  양복 입고 있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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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자기  창문이 밝아지면서  커텐이 위로 올라가면서  환한 풍경이 펼처집니다. 놀랐죠. 이것이 오사카 타임머쉰의 색다른 기획입니다.   유적지 인근에 높다랗게 타임머쉰을 만든 이유를 이때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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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로 커텐이 걷혀지자  지금까지 봤던  유적지의 터를 볼 수 있게 끔 한 것입니다.  저곳이 바로 유적지 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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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터에 올라 있었을  궁전 모형사진 (이렇게 보면 복원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생각도 듭니다.) 저 터만 남아 있는 모습 자체가 바로  역사의 현장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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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사진속에서  고대 오사카 궁전터의 모습을 가늠해 볼수 있게 한 전시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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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궁전터 모형 : 중국 장안성을 그대로 모방한 것임을 바로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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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건  궁전 지붕끝에 장식물인 치미.  이 크기로 건물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다고 합니다.  위 궁전모형 사진에서 이 치미를 한번 찿아 보시죠. 어디에 붙어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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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견적필살이 찿은  오사카와 고대 한반도에 대한 유추

 

이부분이 이번에 저가 찿은 오사카와  고대 한반도, 특히 지금의 부산과의 연계성입니다. 철저히 저의 주관적 판단임을 먼저 밝히고  고대 한반도(부산)와 오사카에 대해서 말해 보려고 합니다.  오사카의 지형은 삼각주의 델타지형으로서  부산과 그 형식이 똑같다.  충적평야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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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타고 갔을 것으로 추정하는 선박 출토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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