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이, 김정일을 同族이라고 감싼다면 우익파소 집단이다.
민주당의 3대惡(필독)
정치는 상식을 토대로 해야 한다. 어떤 창의적 발상도 시대가 그 생각을 지지해주지 않는다면 獨善(독선)으로 흐르기 때문에 정치는 다른 일반적 분야와 구별되는 점이 있다. 최근 민주당은 상식을 잊은 것으로 보인다. 현재 민주당은 상식을 잊고 다음 3가지 惡을 비호하고 있다.
우선, 천안함 사태와 관련하여 민주당이 보인 태도는 매우 실망스럽다. 정치는 협력을 기본으로 한다. 어떤 정치적 논의도 타협을 전제로 할 때 가능한 것이다. 자신의 생각만을 타방에 강요하려 해서는 무제한의 갈등과 대립만이 있을 뿐 정치는 없다. 국가의 체제와 헌법질서의 수호는 현대헌법국가의 상식적 명제다. 이것에 대해 협력하지 못한다면 다른 모든 문제에 협력한들 의미가 없다.
천안함 사태는 분명한 안보위기고 우리 헌법질서와 국가체제에 대한 위협이다. 민주당이 천안함에 관한 民官합동조사결과를 신뢰한다면 당연히 그에 따른 초당적 대응을 제기해야만 한다. 만약 조사결과에 의문이 있다면 그에 따른 과학적 근거를 일목요연하게 제시해서 반박을 해야지 이번 민주당에서 보인 것과 같은 의심을 위한 의심, 반대를 위한 반대는 있을 수 없다.
만약 한반도의 정세혼란을 우려하기 때문이라면 스스로 정치에 뛰어든 것부터 반성해야 한다. 자기 스스로는 독재정권에 항거하여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무덤의 평화보다는 정의로운 聖戰(성전)을 하겠다고 각오했다면서 북한의 김씨왕조라는 巨惡(거악)에 대해서 침묵하는 까닭이 무엇인가? 우리정부는 온화한데 북한정부는 무서우니까 피하고 보는 소시민적 행태인가? 조선조의 西人이 청나라를 치겠다고 북벌론을 주장한 것은 용렬하지만 용맹하기라도 하다. 北人들이 떠오르는 샛별인 청을 지지하고, 명에 시큰둥했던 것은 약소국이 때문이라 자존심 상하지만 국제정세를 현실적으로 판독한지라 박수라도 쳐주고 싶다. 순수하게 反美운동을 벌이며 강대국에 저항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위이지만 미국이 잘못된 점에 단호히 반대하는 것은 용맹한 행위라 좋게 볼 수도 있다. 그러나 反美운동을 벌이며 正義를 외치면서 한편으로 북한에 대해 꼬랑지를 마는 것은 무엇인지.
혹시 미국은 체면이 있으니까 침략하지 않을 것 같은데, 북한은 그런 것이 없으니 바로 포화를 날릴 것 같아 그런 것이라면 영락 없는 겁쟁이의 용맹일 것이다. 미국은 인종이 다른데, 북한은 동포라서 감싸는 것이라면 공정함을 잃고 종족주의에 빠진 우익파쇼일 뿐이다. 더욱이 북한인민과 김씨도당을 동일시하는 것은 이해가 불가능한 처사다. 종합하자면 그와 같은 행위는 광증환자의 발광에 불과하다.
다음으로, 정당가입공무원징계문제에 대한 대응이다. 헌법에 의하여 공무원은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한다. 이는 공무원으로 하여금 정치적인 중립에 벗어나는 행위를 하도록 권력이 강제하는 것을 금지할 뿐 아니라 공무원 스스로 중립에 벗어나는 행위를 하는 것을 막는 원칙이다. 다른 국가, 예를 들어 미국과 같은 나라는 소위 엽관주의라 하여 공무원이 정치성을 띠는 것을 우리나라에 비하여 폭넓게 인정하는 바다. 심지어 대통령이 나서서 특정정당의 선거유세를 지원하는 일도 용납된다. 그러나 미국과 우리는 사정이 다르다. 우리 憲政 60여년 동안 권부의 권세에 의하여 관료조직이 선거에 개입하고 그에 의하여 투표결과가 왜곡된 경험을 우리 대한국민은 모두 공유하고 있다.
이 때문에 우리는 다른 어떤 나라보다 관료조직의 중립성을 중시하고 있으며, 다른 나라에서는 일상적으로 치부할 일도 크게 문제삼고 있다. 이는 국민이 독재시대를 거치며 政界와 官界에 대하여 신뢰를 잃은 결과다. 政界와 관료는 모두 그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왜 안 믿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은 공공업무를 수행하는 이들이 보일 수 없는 태도다. 신뢰를 회복하는 것도 혹은 상실하는 것도 1차적 책임은 공공업무를 수행하는 자에게 있다는 점을 확고히 해야 한다.
그렇다면 공무원이 전공노 따위의 노동조합과 민노당과 같은 정당에 가입하고 조합비와 黨費를 내는 일은 국민의 입장에서 신뢰를 상실케 하는 배신행위다. 이것을 옆에서 지원하는 태도는 대표야당의 행태로서 매우 실망스럽다. 현재 여당이 한나라당이라 하더라도 민주국가에서 야당도 여당이 될 수 있는 이상 관료조직을 정치색으로 물들이려는 행동은 공산주의나 우익파쇼의 전체주의 국가에서나 보이는 작태다.
과거 왕조시대에는 정계와 官界를 구분하지 않고 관료가 정치를 행했다. 이것을 三權분립이라는 명제에 의해 입법, 행정, 사법의 3개 헌법기관으로 분리하여 상호견제와 균형을 추구하는 것은 인류의 역사적 경험의 산물이다. 이 경계를 정당가입으로 허무는 것은 헌법을 종이법으로 전락시키는 헌법파괴행위다. 흔히 공무원을 영혼이 없다고 비야냥거리는 경우가 있는데, 내가 생각하기에 공무원은 영혼이 없어야 한다. 공무원은 소신을 가져서는 안된다. 다만, 그들이 가진 경험과 지식과 정보를 집권한 정치가들이 꿈꾸는 이상국가를 창조하는 데 바쳐야 할 의무가 있을 뿐이다. 공무원이 게으르다고 비판받아야 할 지점은 꿈을 꾸지 않는 데 있지 않고, 정치가들이 필요로 하는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지 못하는 곳에 있다.
공무원의 전공노와 민노당 가입의 문제를 보다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분석해 본다. 공무원의 전공노 가입과 관련하여 西歐의 나라들은 공무원의 노조가입을 폭넓게 허용하는 것으로 안다.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의문점이 있다. 먼저 이념적으로 마르크스, 레닌이 사회계급을 노동자 농민 대중과 자본가로 분리하고 혁명을 주장한 것은 생산수단을 後者가 지배하는 상황에서 실질적으로 산업에 종사하는 계급은 前者임에도 後者에 前者가 신분적으로 종속되는 것을 경계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르크스가 유물론에 입각해서 주장했던 것처럼 생산양식의 하부구조가 상부구조를 규정하고 규정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상부구조에 의해 하부구조가 왜곡되는 경제이념적 잘못 때문만은 아니다. 인본주의적 관점에서도 다수의 대중이 소수의 지배계급 엘리트에 의해 신분적으로 종속되어 지배되고 착취당하는 것은 분명한 도덕적 잘못이다. 그런데 공무원에 대해 살펴보자.
공무원을 고용하는 것은 분명히 국가기관이고 민주주의국가에서 국가기관의 주인은 국민이다. 공무원이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하고 생산수단인 국가기관을 소유한 국민에 의해 지배당하는 것은 공무원이 소위 公僕인 이상 당연한 것이다. 만약 공무원이 생산수단인 국가기관을 스스로를 조직화하여 국민의 손에서 탈취하려고 한다면 이는 공무원의 반역행위다.
사회주의국가들의 말로를 보자. 사회주의국가에서는 왕족과 귀족으로부터 생산수단을 빼앗아 노동자, 농민의 인민에게 되돌려 준다는 명목으로 혁명을 벌인다. 그리하여 혁명에 성공하고 난 후에는 공산당이라고 불리우는 혁명공신의 패당을 정점으로 하는 세력을 조직한다. 그 후 공산당 일당독재를 벌이며 공산당은 노동자와 농민을 대변하는 기구인 것처럼 여론을 호도한다. 끝으로 국가기관을 혁명에 기여한 공산당 간부와 그들의 총애를 얻은 소수 엘리트들이 독점하면서 그들이 혁명의 수혜자라고 강조하는 노동자 농민을 배제하고 착취하며 그들의 고혈을 짜내서 일군 富를 차지하고 환락에 젖는다.
지금 공무원들이 벌이는 행위는 이와 같은 과정과 구별되는가. 나는 알 수 없다. 서구가 공무원의 노조가입을 인정하는 이유 또한 알 수 없다. 다음으로, 전공노를 변호하기 위하여 공무원의 권익과 복지를 위하여 노동조합이 필요하다는 관점에서 검토해 본다. 이 견해는 일리가 있다. 확실히 앞에서 보았듯이 공무원이 국민의 종복이라 하여 무제한으로 지배당해야 한다고 한다면 공무원인 각 개인의 복리를 침해할 수 있다. 이는 공무원 역시 하나의 존엄한 인간인 이상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다. 이 점에서 서구사회는 공무원의 노조가입을 허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런 주장을 공무원들이 주장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조합이 스스로의 권익과 복지를 보장받기 위한 한도에서 활용될 뿐 정치적 중립성을 상실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를 먼저 확보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 정당들의 도움의 손길을 단호히 뿌리쳐야 하고, 특정한 정치세력과 연합하여 의사를 관철하는 행위를 거부해야 한다. 조직은 上下관계에 따라 이루어지는 이상 아무래도 일반 조직원과 간부급과는 조직내에서의 발언권이 상이할 수밖에 없다. 현재 전공노라는 불법단체는 자꾸 야당세력과 연계하여 그들의 입지를 확보하려고 하는데 설사 그것이 편한 길이라 하더라도 국민의 신뢰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있을 수 없다.
만약 전공노가 특정 정치세력의 도움으로 존재를 승인받는다고 하자. 전공노 간부들은 도움을 준 정치세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가? 인생사 살아보면 자기에게 도움을 준 세력을 단호히 끊어낼 수 없는 법이다. 심지어는 절대권력의 상징인 王조차 功臣세력에 둘러싸여 스스로의 신망을 잃는 법인데 하물며 대등한 입장에서 연계하여 일을 성사시킨 전공노와 정치단체가 마주잡은 두 손을 놓을 수가 있나? 불가능하다. 전공노는 앞으로 그 특정 정치단체의 손을 들어주면서 기생하여 살 수밖에 없는 관료조직내 分局이 될 것이다. 스스로의 권익을 물론 추구할 것이다. 아마 처음에는 권익보장요구운동을 이용해서 정치세력의 입장을 강변할 것이고, 그 다음은 아무 이유 없이 정치투쟁을 강행할 것이다. 한동안 그러다가 최근 여러 기업의 노조들이 보이는 모습처럼 대체 왜 스스로가 정치운동에 이용되어야 하는지에 회의를 느끼고 기력을 잃은 채 존재만을 유지하게 되리라.
마지막으로, 지방선거의 선거결과를 이용해서 중앙정부를 위협하는 행위다. 이것은 사실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한나라당도 과거 10년간 地自體들을 지배하면서 같은 행태를 보였다. 그러나 민주당은 양상이 조금 다른 것 같다. 한나라당은 國策사업을 방해하지는 않았는데, 민주당은 그것을 방해할 조짐이다. 민주당은 地自體를 과거 대학교 학생회장단쯤으로 인식하는 것으로 보인다. 학생회장단의 특성은 스스로를 弱者를 대표하는 투쟁조직의 영수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특징이다. 내부문제와 內治에는 관심이 없고, 외부적 분란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다. 이는 학생 스스로가 젊기 때문에 책임감이 적고, 스스로 책임을 부담하지 않더라도 학교의 행정당국과 교수진들이 내치를 도맡으므로 걱정할 것이 적기 때문이다.
만약 학교가 잘못된다면 그것은 학교의 행정당국과 교수진의 책임이며, 학생운동이 성공한다면 온전히 학생 특히, 학생회간부의 공이다. 이런 상황에서 학생운동에 열심히 나서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공명심을 활활 불태워 스스로를 산화할 때까지 이들은 행동에 나선다. 이들의 또다른 특징은 절반이 약간 넘는 지지율로 당선되었음에도 마치 모든 유권자들이 스스로를 지지하는 것으로 착각한다는 점이다. 통치자의 고독 속에서 시달리기 보다는 착각 속의 환상 속에서 탐닌하는 것이 편하다. 학생회는 합리적인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정도로 확신에 차 있으며, 그 확신에 위배되는 모든 세력을 적으로 규정하고 전쟁에 나선다. 성공하면 관군이고, 실패하면 敵軍이라는 그야말로 몰지각한 환상 속에서 행동하다가 실패해서 탄압 당하면 오히려 가만히 있는데 건드렸다면서 증오심을 키운다. 또 성공하면 모든 것이 제 공인양 거들먹댄다. 지금 地自體를 장악한 민주당은 이런 모습에서 크게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다.
위와 같은 3大惡 속에서 민주당은 스스로의 格을 크게 떨어뜨리고 있으며 舊惡에서 벗어나기는커녕 新惡을 만들어내며 스스로를 타락시키고 있다.
오만해진 민주당의 3대 新惡
- 자립(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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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06-09, 11:3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