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TN에 짓밟힌 어느 在日동포 사업가의 분노

“한국에서의 언론(YTN)은 황야의 무법자 보다 더 무섭다” 사업가 홍성곤(洪性坤)은 재일동포2세다. 그는 1964년 10월 한국인 최초로 남극해(南極海)에 대한 자원조사와 과학조사에 참여한 해양수산학도다. 동경수대 재학시에는 일본내 한국계 수산 학도들의 친목단체인 한수회(韓水會)를 결성, 회장을 맡아 조국애를 고양시키는데 힘썼다. 1964년 6월 한일국교가 정상화되기전 한수회는 부산수산대학생 5명을 일본에 초청, 한•일 대학생간에 친선의 가교를 놓은 바도 있다. 동경수산대학 어업학과를 졸업한 뒤 한•일 양국의 우호증진과 수산•해양분양의 가교 역할도 열심히 하고 있다. 한때는 고려원양의 동경사무소장으로 재직하면서 일본의 선진 수산기술을 한국에 접목시켜 한국의 원양어업 발전에도 기여한바 있다. 국가관이 투철한 애국청년이었다. 그도 이제 70대의 노인이 되었다.

홍성곤은 최근 “한•일, 나의 2개의 조국”이라는 자전적 일대기를 발간, 일본에서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다. 재일동포 2세가 일본땅에 태어나 살아오면서 겪은 서럽고도 한(恨)맺힌 한 인간의 성장사(成長史)이다. 읽어보니 파란만장한 수난(受難)의 연속이었다. 그래도 용케 참고 견디며 살아온 그의 인내와 도전은 감명 그것이었다. 홍사장은 10여 년 전 서울에서 사업에 손을 댔다. 해저 수천m에서 퍼올려 탈염정수(捝塩淨水)한 해양심층수 판매사업이었다. 그런대로 사업도 확장되고 소비자들의 반응도 좋아 재미를 보고 있었다. 그러나 돌연 2004년 어느날 YTN은 홍사장이 판매하고 있던 해양심층수 “마린파워”가 가짜라고 크게 보도했다. 보도가 나가자 소비자들의 항의가 빗발쳤고 매출액도 1/3로 뚝 떨어지고 말았다.

YTN이 보도한 배경을 홍사장은 잘 알고 있었다. 아버지의 나라에서 재일동포2세가 겪은 충격은 너무도 컸다. 홍사장은 YTN을 상대로 허위사실보도에 대한 정정보도(正訂報道)를 언론중재위원회에 청구했다. 언론중재위원회는 홍사장의 손을 들어줬다. 홍사장이 판매한 해양심층수는 가짜가 아니라고 판단, YTN에 정정보도를 명했다. YTN도 언론중재위원회의 결정을 수용, “마린파워, 적법한 혼합음료 주장”이라고 정정보도를 했다. 이때 홍사장은 그래도 한국에 정의는 살아있음을 느꼈다고 했다. 그러나 엎질러진 물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었다. 홍사장이 그로부터 6년동안 해양심층수 “마린파워(Marin Power)”는 가짜가 아니라고 아무리 홍보를 해도 YTN 보도를 보고 떠나간 고객은 돌아오지 않았다. 6년 동안 재기를 위해 몸부림쳤으나 사업은 기울기 시작, 끝내 최근 서울에서의 사업을 문닫고 말았다.

홍사장은 조국에서 YTN으로부터 짓밟힌 그 한(恨)을 주체하지 못한채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부인은 남편의 사업을 망하게 한 서울에는 가지 않겠다고 한다.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홍사장은 말했다. “한국에서의 언론(YTN)은 황야의 무법자 보다 더 무섭다”고 했다. 그는 또 한국에서의 사업은 먼저 언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했다. 재일동포2세의 가슴에다 못질을 해댄 YTN은 홍사장의 아픔에 대해 그 무엇으로 보상해줄 수 있는가? 조국을 찾아온 해외동포에게 무법자의 총보다도 더 무서운 허위 보도의 대포를 쏘아댄 YTN은 지금 얼마나 바른 언론의 길을 가고 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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