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正論] 납북자 문제로 본 신임 日총리의 二面性

김정일 정권에 대해 의연한 자세 관철해야
간 나오토(菅直人)총리는 최근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 문제에 대해 “국가가 책임을 지고 모든 납치 피해자의 조속한 귀국을 위해 전력을 다하겠다”면서 소신을 표명했다. 그러나 간(菅)총리의 과거 북한에 대한 처신과 관련해 두 가지 상반된 평가를 할 수 밖에 없는 사례가 떠오른다. 필자는 이 문제를 먼저 짚고, 다시금 신(新)정권의 대북자세를 묻고 싶다.
 
납치 문제의 터부(taboo)화에 영향

우선, 국회의 대표질의에도 있었지만 간(菅) 총리는 1989년 납치실행범의 석방을 요구하는 탄원서에 서명했다. 같은 해 7월14일 노태우 당시 한국 대통령에게 제출된 탄원서는 납치 실행범 신광수(辛光洙)를 포함한 29명에 대해 “일본에서의 합법적 생활, 교우(交友) 간에 오고간 언행 등을 이유로 죄를 추궁하고 있다”면서 이들에 대한 무죄를 주장했다.

당시 탄원서에 서명했던 국회의원으로는 무라야마 도이미치(村山富市) 전 총리、도이 타카코(土井たか子) 전 중원의장(衆院議長)을 포함 133명이었다.

오사카의 중국음식점 요리사였던 하라 타다아키(原敕晁)씨의 경우 1980년 미야자키현(宮崎縣) 아오시마(青島) 해안에서 신광수를 포함한 북한공작원들에 의해 납북됐다. 신광수는 이후 일본 여권을 취득했고, 1985년 한국에 입국해 체포됐다. 1988년 3월 참의원예산심의위원회에서 고(故) 카지야마 세이로쿠(梶山静六) 국가공안위원장이 하라(原)씨를 포함한 8명의 납치자 문제를 상정해 ‘북한에 의한 납치 의혹이 충분히 농후하다’는 역사적 답변을 했다.

간(菅)총리는 자신이 서명에 동참했던 것에 대해, 리스트(list)를 확인하지 않고 부주의했다면서 사죄하고 있다. 당시 일본에서는 납치 문제를 둘러싼 터부(taboo)가 존재했다. 카지야마 세이로쿠(梶山静六) 국가공안위원장의 발언을 아사히(朝日), 요미우리(読売), 마이니치(毎日), NHK를 비롯한 주요 매체들이 일체 보도하지 않았다.

탄원서 제출 다음해인 1990년 김일성과 회담을 했던 가네마루 신(金丸信) 자민당 전 부총재도 납치 문제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日민주당 공작 강화에 나선 北정권

필자는 91년 ‘제군’(諸君)지(誌)에 납치 문제와 관련한 논문을 썼지만 정계-언론계에서 무시됐다. 한편, 공안관계자들로부터는 ‘신변의 위험은 없는가’라는 얘기를 들었다. 당시의 분위기를 이해해야겠지만 강조하고 싶은 것은, 국회의원의 ‘부주의함’을 이용하는 세력이 지금도 열심히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에 있어 신광수는 시한폭탄과 같은 존재였다. 하라(原)씨 뿐만 아니라 지무라 야스시(地村保志)・후키에(富貴恵)와 요코타 메구미(横田めぐみ)의 납치 실행범, 소가 히토미(曾我 ひとみ)의 교육계(教育係)였기 때문이다. 신광수는 하라(原)씨의 납치에 대해서는 자백했지만, 지무라(地村) 부부와 요코다(横田)씨, 소가(曾我)씨에 대해서는 자백하지 않고 무기징역으로 한국 형무소에 수감됐다. 북한은 어떻게 해서든지 신광수의 신병을 확보하고 싶었다.

이를 위한 북한의 공작 중 하나가 일본 국회의원의 서명(署名)을 모으는 것이었다. 북한은 이후에도 집요하게 이와 같은 노력을 계속해, 2006년 6월 김대중-김정일 회담(남북정상회담)에서 신광수를 포함한 모든 북한 스파이들의 송환을 요구했다.

필자는 가족회(家族会, 북한에 의한 납치피해자 가족연락회)의 요코타 메구미 씨의 양친(両親)과 함께 한국 대사관에 가서 납치 실행범을 북한이 아닌 일본에 보낼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외상은 이 문제와 관련해 전혀 움직이지 않았고, 같은 해 9월 신광수는 북한에 송환되어 영웅 칭호를 얻었다. 지무라(地村)부부와 요코타(横田)씨, 소가(曾我)씨 납치에 대해 비밀을 지켜낸 것이 높게 평가된 것이다.

일본 정부와 간(菅)총리를 포함한 국회의원들이 은폐 공작에 응하지 않고 자국국민을 지키려 했다면, 북한의 납치 행위에 관한 결정적 증언을 1980-90년대에 얻었을 것이다.

현재의 김정일 정권은 지난해 7월 이후 조총련에 대해 “일본 민주당 정권에 대한 정치공작을 강화해 납치문제를 보류시킨 채, 대북 제재 해제와 국교정상화의 분위기를 조성하라”는 지령을 내렸다. 간(菅)총리는 납치문제대책본부장에 취임한 현 시점에서 과거 북한의 대일공작에서 놓쳐버린 ‘부주의함’에서 벗어나 맹성(猛省)해 주었으면 한다.
 
북한의 일당독재(一黨獨裁) 반대 발언은 높이 평가

그러나 간(菅)총리를 다시금 보게 된 언동도 있다. 그는 2003년 10월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으로부터 ‘우리들의 최고수뇌부(김정일 총서기)를 모독했다’고 비난당한 적이 있다. 당시 민주당 대표였던 간(菅)총리가 오사카 가두연설에서 “이라크의 후세인이나 스탈린 동상이 쓰러진 역사 속에 언젠가는 북한의 저 큰 동상도 쓰러지는 날이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가능하다면 북한 민중 스스로의 손으로 해주었으면 싶다”고 말했던 것에 따른 반응이었다.

이는 일당독재를 반대하는 사회민주주의자로서 사회당을 탈당했던 에다 시부로(江田三郎) 진영에 합류, 정치가가 된 간(菅)총리의 사상적 원점(原点)을 나타내는 발언일 것이다. 이 원점(原点)을 잊지 말고 김정일 정권에 대해 의연한 자세를 관철해 주었으면 한다.

간(菅)총리는 취임 3일째인 지난 10일, 천인(千人)데모대 대표로서 총리 관저(官邸)를 방문한 이즈카 시게오(飯塚繁雄) 납치피해자가족회 대표들과의 면담에서, “한국의 초계함 침몰의 원인이 북한에 의한 것임이 밝혀졌다. 이 문제를 한국과 연계해 납치문제와 더불어 해결해 나갈 것이다. 금후 북한에 대한 압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대북제재 조치를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간(菅)총리가 납치를 이유로 명시했던 대북(對北)제재강화-송금 및 도항(渡航)의 전명정지에 결단을 내릴 것인지에 주목하고 싶다.

원제: 東京基督教大学教授・西岡力 拉致対応にみる菅首相の二面性
출처: 日산케이신문 인터넷 홈페이지 2010년 6월18일자 정론(正論)
필자: 니시오카 츠토무(西岡力) 동경기독교대학(東京基督敎大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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