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않고 선량한 사람들을 속이는 방법

인용과 외연 확장의 방법을 사용하면, 거짓말을 전혀 않고 사람들을 속일 수 있다.

 

 빤한 거짓말에 속는 사람은 드물다. 어린애나 정신 연령이 아주 낮은 사람이 아니라면, 한국처럼 대중매체가 발달한 나라에서는 이제 시골 사람들도 약장수의 만병통치약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그 정도의 거짓말에는 강한 면역성이 생겼기 때문이다. 요즘은 어린애도 영악하여 초등학교 2학년만 되면, 잘 속지 않을 뿐 아니라 도리어 어린애에 대한 어른의 무지를 역이용하여 눈을 나팔꽃에 맺힌 아침이슬처럼 반짝이며 어른들을 천연덕스럽게 속이기도 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잘 속는다. 자존심 강하고 열정적이고 똑똑한 한국인이 특히 잘 속는다. 금속활자에 버금가는 획기적인 정보전달 수단인 인터넷망이 세계1위, 2위를 다투는 나라 사람들이 왜 그렇게 잘 속을까.

 

 드넓은 초원 위로 무리를 지어 우르르 몰려가다 보면, 어느새 천 길 낭떠러지 앞에 서 있다. 뒤에서는 비단길을 밟는 양 즐거워하면서 낭떠러지 위의 무지개를 바라보며 사람들이 꾸역꾸역 몰려온다. 안 돼! 안 돼! 아무리 외쳐도 그것은 꿈속의 외침이 되어 마냥 입안에서만 맴돌거나 공기도 없고 중력도 없는 우주 공간의 천둥소리가 되어 입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다.

 

 어어, 하는 사이 한국은 이제 스스로 교묘한 참말에 도취되어 있다. 중독되어 있다. 포위되어 있다. 북한 주민은 이미 반세기 전부터 아무도 믿지 않는 조악한 거짓말을 남산과 태백산과 한라산 등 전국의 온갖 높낮은 산의 초강력 전파 탐지기로 원격 수신하자마자, 민족과 민주와 평화 독점 지킴이들이 여기저기 동시다발적으로 약속이나 한 듯이 뼈와 가죽의 북한 주민이 꿈에도 그리는 설탕 대신 비타민과 단백질과 저지방의 참말을 발라 초단파로 변조하여 푸른 하늘로 쏘아 올리면, 전국에서 일제히 무선 안테나로 실시간 수신하여 잡음 하나 없는 스테레오 헤드폰으로 짱짱 듣는다. 헤드폰에 줄을 달아 함께 듣는 이들도 숱하다. 그들은 서로 바라만 보아도 행복한 사이다. 천상의 음악에 환호하는 이들이 여기도 있고 저기도 있고 거기도 있다. 이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면, 의경(義警)의 방패는 종이 방패가 되고 경찰의 방망이는 솜방망이가 되고 군인의 총은 새총이 된다. 푸른 기와집의 주인도 넋을 잃고 옛 추억에 잠겨 석 달 열흘 간 멀거니 바라만 보니, 일반 국민들이야 외롭지 않으려 적극적으로 또는 소극적으로 동조하거나 삿대질 당하지 않으려 벙어리 흉내를 낼 수밖에 없다.

 

 김대중: 나는 평생 거짓말한 적이 없다. (핍박을 받아 어쩔 수 없이 거짓 자백을 했거나 어쩌다 부득이하게)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경우가 있었을 따름이다.

 

 김대중이라면 이름만 들어도 눈물이 나려는 사람들은 이 말에 아무런 모순을 느끼지 못한다. 이제는 김대중 숭배자만이 아니다. 전국 어디나 귀신에 홀리듯 그의 말에 속아 낭떠러지 위의 무지개를 아슬아슬 잡을 위치에 와 있다. 천 길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면 바로 죽는데, 죽으면 영혼이 육체를 떠나 하늘로 훨훨 날아가 무지개를 한 손에 움켜쥔다.

 내가 보기에 김대중은 거짓말한 적이 거의 없다. 그는 거짓말 않고 사람들을 속여서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는 데 도가 튼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들이 한국에는 아주 많다. 조선시대 중반부터 이런 사람들이 대량생산되었다.

 

 

 거짓말 않고 사람들을 속이는 첫 번째 방법은 인용이다. 누군가 한문으로 공자와 맹자와 주자의 거룩한 말씀을 인용하면 조선시대 사람들은 꼼짝 못했다. 거기에 퇴계와 율곡과 우암의 해석을 곁들이면, 하늘이 두 쪽이 나도 임금이 사약을 내려도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며 콧물을 훔치며 충신과 의인과 효자를 우러러 받들었다. 대를 이어 우러러 받들었다. 현대에 와서는 서양의 고전을 인용하면 효과 만점이다. 외기 어려운 서양인의 이름과 이론을 갑돌이 갑순이 부르듯 구구단 외듯 종횡무진 인용하면, 대학 강단에서 내려와 청와대 원탁에 앉는 것은 고추잠자리가 코스모스 위에서 장대 끝으로 살포시 날아가 잠시 앉았다가 구만리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보다 쉽다.

 

 거짓말 않고 사람들을 속이는 두 번째 방법은 외연(外延) 넓히기다. 집합 A와 집합 B가 있다고 하자. 이 두 집합은 가까이 있지만 공유하는 부분 즉 진부분집합이 전혀 없다. 실은 서로 정반대이다. 그러나 이 둘을 포괄하는 집합 C가 있다. 집합 B를 뜻하면서 집합 A를 말하는 것처럼 하는 방법이 바로 집합 C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면 집합 A를 당연시하는 사람들은 그가 집합 B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집합 C로써 집합 A를 말하고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렇게 그는 소수인 집합 B의 무리는 물론이고 다수인 집합 A의 무리도 서서히 끌어들인다.

 

 민주가 대표적인 예이다. 민주에는 자유민주와 인민민주 곧 공산주의가 있다. 모택동이 신민주주의를 제창한 이래 제3세계의 사람들은 물론이고 제1세계의 사람들도 환호했다. 그들에게 예수 잡으러 가던 바울의 눈을 멀게 한 다메섹의 한 줄기 빛을 선사한 것이다. 1980년대부터 한국의 대학가와 예술계에서 민주는 더 이상 자유민주가 아니었다. 그것은 인민민주였고 주체사상이었다. 일부 스스로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외친 자들도 있었지만, 그것은 탄압을 자초함으로써 순교자가 되어 무리의 유대를 더욱 단단히 하고 국민 전체에게 서서히 내성을 길러주고 언젠가 과거사보상위로 독재자의 조작으로 몰고 가기 위한 예비단계였다. 그들은 언제나 민주를 외쳤기 때문에 선량한 사람들은 당연히 그들을 자유민주의 신봉자로 믿었고 의인으로 우러러 받들며 용감하게 참여하는 못하는 데서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조용히 표로써 밀어 주었다. 이거야말로 비밀보통선거가 보장된 자유대한에서는 가장 큰 도움이다.

 

 민족도 마찬가지다. 민족은 한국의 국민만이 아니라 재일동포도(조총련도) 재미동포도(친북재미동포도) 재중동포도(김정일 끄나풀도) 포함되고 북한의 공산당도 포함된다. 민족을 말하면, 한국인은 누구나 가슴이 뜨거워진다. 일제 35년이 절로 떠오르기 때문이다. 누군가 국민 대신 민족을 입에 담으면, 한국인만 아니라 북한주민도 중국의 조선족도 포함하므로 그의 가슴은 고구려의 옛 땅처럼 넓어 보인다. 전쟁 없이 민족끼리 오순도순 모여 사는 것을 목표로 하는 원대한 이상의 후광이 엿보인다. 휴전선이 지워진 한반도기를 흔들며 열광한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민족이 실은 거의 김일성 부자와 그들을 신처럼 받드는 자들만을 염두에 둘 때도, 선량한 사람들은 막연히 북한주민과 독립운동하던 만주의 조선족을 생각하고 낭떠러지 위에 걸린 무지개를 바라보며 홀린 듯 나아가게 된다.

 

 빈대와 벼룩과 이와 구더기의 세계 최빈국이자 주먹과 빽과 야바위와 악다구니의 세계 최고 난장판 국가를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자 인구 3천만 이상의 국가에서 역시 세계 10위권의 자유민주 국가로 끌어올린 근대화 위인들은 배은망극하게 일언지하 친일파와 독재자로 폄하하여 민족의 범위에서 철저히 제외한다. 자유민주가 아니라 인민민주를 위해 헌신한 자들이 민주를 제멋대로 독점한다. 그들은 거짓말을 않기 위해서 선량한 사람을 속이기 위해서 자유민주란 말은 거의 쓰지 않는다. 그냥 민주요, 무조건 민주주의다. 한국의 근대화 세력은, 자유민주와 시장경제 세력은 김일성과 김정일만이 아니라 한국의 친북좌파에게도 부모를 죽인 원수 못지않은 원수다. 그들은 민족의 신성한 피를 입가에 묻히며 독사의 눈을 치켜뜨고 근대화 세력의 무덤에 침을 뱉고 그 무덤을 헤쳐 관을 쪼개고 뼈를 갈아 마신다.

 

 모순의 극치로, 그들은 공산독재자에겐 민족의 범위를 한껏 넓혀서 동족상잔의 내란을 일으켜 피를 나눈 민족 수백만을 생죽음의 음침한 골짜기로 몰아넣고, 단지 소련 대위 김일성 어록에 어긋났다는 말반동의 죄목으로 선하디 선한 같은 민족을 체포하여 그들로 정원 20만 명의 강제수용소를 70%나 채우는 천인공노할 짓을 반세기 이상 자행하고, 독재권력을 굳건히 하기 위해 수백만 명을 의도적으로 굶겨 죽인 자들에겐 화해의 달러를 바리바리 갖다 바치고 아가페적 사랑을 하늘만큼 땅만큼 퍼붓는다. 반면에 볼 수 없다는 참말 핑계로 2천만 북한주민의 생지옥 인권에 대해서는 무관심의 침묵과 적반하장의 항의로 일관한다.

 

 거짓말에 속는 사람보다 이처럼 행동과 정반대인 참말에 속는 자가 더 어리석다. 추상적인 아름다운 참말에는 한국의 지식인처럼 스스로 똑똑하다고 자부하는 자들일수록 잘 속는다.

     (2010. 7.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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