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킨지(McKinsey) 부설 연구소에 따르면, 한국의 총부채비율(Total Debt to GDP)은 340%로 세계 4위다. IMF 기준으로 총부채비율 1위에서 10위는 모두 선진국인데, 민망스럽게도 한국의 1인당 GDP는 바로 위의 9위 스페인에도 한참 떨어진다. 빚더미 공동 4위인 스페인과 한국은 2009년 일인당 GNI가 각각 3만1870달러와 1만9830달러이다(세계은행). 스페인의 바로 위인 이태리도 3만5080달러나 된다.
국내총생산 대비 총부채비율 순위
1위 영국 470%
2위 일본 460%
3위 미국 375%
4위 스페인 340%
한국 340%
6위 스위스 315%
7위 프랑스 300%
이태리 300%
9위 독일 275%
10위 캐나다 245%
외환위기 이후 들어선 세 정부는 하나같이 국가부채의 가파른 증가(1999년에서 2009년 사이 323.6%로 OECD 회원국 중 노르웨이 278.7%를 2위로 제치고 1위의 가시면류관을 씀)에 대해 여기저기서 걱정하면, OECD 평균 국가부채비율 70%에 비해 2009년에 이르러서야 겨우 35.6%라며 하늘이 무너질까 걱정하는 어리석은 백성들을 어여삐 내려다보며 껄껄 웃었다. 그게 마치 자기들 덕분인 양 으스댔다. 그들은 국가부채를 늘리는 국가사업은 절대 중남미형 선심 정책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옛날에는 길바닥에 드러누우며 반대해 놓고는 새 정부가 추진하는 일은 모조리 제2의 경부고속도로와 제2의 포항제철을 건설하는 미래 수종(樹種) 사업이요, 소외 계층을 위한 사회안전망 구축 사업이라고 주장했다. 자세한 것은 청와대 홈페이지에 들어와 제대로 배우고 이해한 다음, 국가부채 팍팍 늘리는 일에 적극 참여하거나 그것이 싫으면 제발 반대를 위한 반대를 외치지 말고 가만히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라고 핀잔을 주면서 대장의 칼을 뽑아 들었다.
“돌격 앞으로!”
김/노/이 세 정부는 크게 두 가지 점에서 국민도 속이고 스스로도 속였다.
첫째는 부채의 의미다. 국가부채에서 공기업의 부채를 쏙 뺀다. 한국은 공기업의 비중(GDP의 11%)이 30대 대기업 비중(GDP의 16% *GDP는 매출이 아님)과 거의 비슷한 반(半)사회주의 국가다. 대기업과는 달리 공기업은 내수용 독점 기업이어서 가만히 앉아 눈만 끔벅이면 장사가 된다. 설령 적자를 보더라도 절대 안 망한다! 세금으로 메우면 되니까! 또한 공기업은 정권교체의 잿밥이요 노른자위다. 어제는 파랑, 내일은 노랑, 알록달록 어깨띠 하나만 두르고 대통령 후보 주위에서 어슬렁거리던 자도 새 정부가 들어서면 신의 직장 공기업의 이사나 고문이 될 수 있다. 민영화된 은행이나 기업도 대통령은 나설 것도 없고 청와대 비서관이 전화 한 통 넣으면(증거가 남는 서류는 사용하지 않고), 복수 추천이라는 요식 행위를 거쳐 대기업의 행성(行星)이 조금도 부럽지 않은 공기업의 항성(恒星)이 될 수 있다.
대기업의 별은 실적이 없으면 바로 직업형 등산객으로 추락하지만, 공기업의 별은 멋진 외제 만년필 하나 들고 사인만 멋있게 하면 된다. 내용을 볼 것도 없다. 봐도 아무 것도 모르니까! 아는 척 간섭하면 더 엉망이 되니까! 심심하거나 회사에 큰 문제가 생기면 실세들에게 이리저리 안부 전화와 청탁 전화만 넣으면 된다. 5년은 그냥 보장되는데, 좀 더 나은 자리가 있으면 실세들끼리 드나드는 회전문을 한 바퀴 돌면 된다.
지방 공기업은 제외하더라도 중앙정부가 좌지우지하는 일반 공기업의 부채가 2005년 98조 원에서 2009년 212조 원으로 늘었다. 공기업의 부채가 국가부채가 아니라면 옛 공산권이나 현 북한은 국가부채가 하나도 없다. 공산국가의 몰락은 사실상 국가부도다. 국가부채가 통계로 측정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나서 소리도 없이 피시식 파산한 것이다.
공기업 부채만이 아니다. 통화안정증권 127조 원도 외국 기준으로는 모두 국가 부채다. 따라서 2009년 기준으로 국가부채는 정부가 주장하는 것처럼 371조 원이 아니라 710조 원이다. 2009년의 명목 GDP가 1063조 원이니까, 이미 국가부채비율이 OECD 평균인 70%를 돌파했다. 게다가 부채비율이 OECD에서 가장 빨리 늘어난다. 이대로 가면, 제2의 그리스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둘째, 총부채비율(Total Debt to GDP)이다. 한 나라의 총부채는 국가부채와 기업부채와 가계부채를 다 합한 것이다. 실은 이게 총부채의 일부인 국가부채보다 중요하다. 국가부채가 높더라도 기업부채와 가계부채가 낮다면, 그 나라는 크게 걱정할 것 없다. 1997년 외환위기를 맞아,
“기아는 국민기업, 노조는 노동자와 국민의 수호천사!”하며,
정부 못지않게 외환위기에 혁혁한 공을 세운 자들이 정권을 잡았다는 이유만으로 IMF를 끌어들여 그 권위에 기대어 선무당 경제정책을 남발했다. 부채에 한해 말하면, 그들은 대기업을 위시한 민간기업의 부채에 모든 잘못을 덮어씌우고 무턱대고 평균 400%의 부채비율을 1년 안에 200% 이하로 줄이라고 윽박질렀다. 그러자 기업들은 한꺼번에 시장에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팔 것을 내놓았다. 가격이 곤두박질쳤고 외국기업이 천사의 미소를 지으며 배짱을 튕기며 사들였다가 한두 해 만에 제값 받고 팔아치우고 대개 세금을 거의 안 내고 바다를 건너갔다. 그렇게 해도 부채비율이 좀처럼 낮아지지 않자, 기업들이 조용히 귀띔해 주었다.
“자산 재평가하면 부채비율이 낮아집니다.”
자산재평가의 대상은 대개 부동산인데, 이걸 짧으면 10년, 보통 20년 내지 30년 만에 재평가하면 자산이 갑자기 두세 배로 뛴다. 분모가 많아지면 분자는 그대로 있더라도 전체 값은 작아진다! 이건 분수를 배우는 초등학교 3학년이면 안다. 기적적으로 1, 2년 만에 기업의 부채비율이 절반으로 뚝 떨어진 것은 실상 이렇게 서류상의 수치 바꿈(넓은 의미의 분식회계)에 가장 큰 덕을 보았다. 나머지 부채 줄이기는 공적자금(국가부채) 168조 원으로 메웠다. 아마 깨끗한 정부를 자랑했으므로 소개비는 한 푼도 안 받았으리라! 눈치 챘겠지만, 전체적으로 부채가 줄어든 것은 거의 없었다. 아니, 국가부채를 중심으로 총부채는 겁나게 늘어났다.
기업이 갚기만 하고 새로 돈을 꾸지 않자, 돈놀이로 먹고 사는 금융권에 빨간 불이 켜졌다. 소비가 늘어나야 GDP가 늘어난다, 은행의 문턱을 서민의 운동화 굽만큼 낮춘다, 하여 정부는 신용카드를 마구 발행하도록 부추겼다. 김대중 정부는 또한 부동산규제를 확 풀어 서민들에게도 내 집 마련 대출을 인심 좋게 팍팍 해 주었다. 가계부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실지로 국민들에게는 국가부채는 강 건너 불이지만 가계부채는 발등의 불이다. 신용을 잃으면, 곧 부채를 갚지 못하면, 바로 길거리로 나앉아야 하기 때문이다.
국가 총부채는 국가부채와 기업부채와 가계부채로 구성된다. 기업부채는 상거래 포함 2010년 3월 현재 1782조 원이고, 가계부채는 922조 원이다(한국은행). 여기에 국가부채 710조 원을 더하면, 국가 총부채는 3414조 원이다. 이를 2009년 명목 GDP로 나누어 100을 곱하면, 340%가 나온다. 맥킨지의 정확한 통계에 놀랄 따름이다.
정부가 수요를 창출하고 일자리를 마련한다며 국가부채 증가율을 OECD 1위로 끌어올리면서 벌인 사업은 부동산개발 외에는 거의 없다. 그건 김/노/이 세 정부 똑같다. 그러나 그 중에 성공한 것은 하나도 없다. 지역 갈등이나 조장하고 흉물만 만들고 미래 산업에 투자할 돈의 길을 가로막았다. 지금도 ‘돌격 앞으로!’는 계속된다.
한강의 기적은 무엇보다 높은 투자의 나무에 달린 열매다. 단기적으로는 과잉투자라는 말을 들었지만, 장기적으로는 그것이 모두 대한민국을 먹여 살린 살림밑천임이 입증되었다. 1990년만 해도 14.9%에 달하던 기업의 설비 투자율이 2005년부터 10% 아래로 떨어져서 게걸음을 계속하고 있다. 반면에 10대 기업의 유보율은 2009년 3/4분기 기준 평균 1014%로 높아졌다. 투자에 가장 앞장서야 할 선도기업들이 은행에서 돈을 빌려 투자하기는커녕 현금을 만석꾼의 쌀가마니처럼 쌓아놓고 있다는 말이다. 김대중과 노무현에 따르면, 순(純)부채가 없는 초우량기업! 반(反)기업정서는 투자와 반비례 관계에 있고 유보율과 정비례 관계에 있다. 거기다가 부동자금이 800조 원이나 된다. 지금은 노무현 정부의 징벌적 보복적 부동산 관련법에 의해 이 돈이 거의 묶여 있다. 돈이 없는 게 아니라 갈 길을 못 찾고 있다.
정부가 할 일은 ▲규제를 풀고 기업가 정신을 드높이고 법치를 확립하여 예측 가능성을 높여서 기업이 사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고(투자 유도), ▲부자가 기분 좋게 돈을 쓰게 만들어 주어야 하고(소비 유도), ▲가난한 사람이 개미같이 일하고 벌같이 모으게 해야 한다(저축 유도). 서 푼짜리 마르크스 도덕으로 대기업에게 윽박지르고 한 주먹거리 포퓰리즘 권력으로 뒤로 정치자금 뜯어가는 데 있지 않다. 혈세 왕창 걷어 여기저기 뿌리는 데 있지 않다.
(2010. 7. 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