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이 없는 한나라당에 대한 근본적 대책과 대안을 생각한다.
‘5:3 기적’의 한나라당을
어찌 할 것인가?
- 이제 그들이 하늘도 감동할 만한 自己革新을 하든지, 아니면 우리가
그들에 대한 추억을 지워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
광 야
축하 할 일이다.
<7.28 재보궐> 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체면을 세웠다. 당 지도부는 5:3의 ‘기적’을 만들어 준 국민을 향해 바닥에 엎드려 감사의 큰 절을 올렸다. 그 순간 한나라당은 180석의 넉넉한 거대여당으로 재탄생됐다. 그러나 그들이 ‘감동 먹었을’ 5:3의 기적이 <지방선거> 이후 기고만장했던 민주당에 대한 反撥과 견제의 심리였다는 점을 ‘잘 나갈 때’ 더욱 겸손히 省察할 일이다. ‘작용과 반작용의 원리’는 정치판에서도 언제든 재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선거 결과가 그동안 한나라당에 비수처럼 내리 꽂혔던 국민들의 곱지 않은 시선을 소나기처럼 씻어준 것은 아닐 것이다. 아직도 적지 않은 국민들의 가슴 속에는 우리와는 뭔가 다른 한나라당의 ‘한나라당 스러움’ 에 상처를 받아 온 미움과 싸늘한 분노가 엄연히 자리 잡고 있다. 듣기 싫더라도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
예를 들어 본다.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지난번 한나라당 전당대회장에 가보았다. 10명이 넘는 당 대표 후보들이 던졌던 공통주제는 한나라당의 위기, 친이친박 화해, 정권재창출였다. 그러나 한자리에 8천여 명의 핵심당원들이 운집한 大會場이었지만 가슴을 울리는 어떤 감동도 희열에 북받치는 전율감도 없었다. 무엇 때문에 위기인지에 대한 진실 된 고백도, 어떻게 친이친박을 아우를 것 인가에 대한 묘안도, 왜 정권 재창출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명쾌함도 보이지 않았다.
한마디로 가진 자, 있는 자, 누리는 자들만의 잔치로 보였고, 한 단계 계급상승을 위한 피 튀는 난타전으로 비추어졌다. 이래서야 그들이 진정 낮은 데로 임할 수 있을지 의문이 맴돌았다. 결국, 더 늦기 전에 국민과 유권자들을 한나라당이라는 멍애로부터 해방시켜 그들을구국의 대오로 돌려 세워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무거운 발길을 돌렸었다.
그렇다.
한나라당이 이렇게 된 데에는 ‘自己正體性’을 거부한 탓이 크다. 자기정체성은 자신의 존립기반이자 존재이유인 理念으로부터 나온다. 그런데 한나라당은 자신들의 정체성이라고 믿는 이념적 信念을 지켜내지도, 확대재생산 해 내지도 못했다. 그 준엄한 後果가 外華內貧의 한나라당을 만들어 냈다. 자기반성 없는 ‘5:3 기적’의 기쁨은 어느 순간 막아 낼 수없는 재앙으로 밀려 올 수도 있다.
왜 그런가?
政黨은 이념을 바탕으로 탄생한다. 정치는 신념에 가득 찬 이념론자들이 모여 벌이는 생과 사의 투쟁현장이다. 이처럼 이념은 사회발전의 정신이자 파수꾼이다. 이념을 거부하는 政黨은 정당으로서의 존재이유가 없다. 이것이 없음은 나침반 없는 항해와 같고, 그런 항해에서 개인과 집단과 국가의 가치를 찾는다는 것은 자기기만이고 허위의식에 불과하다.
따라서 정치에서 이념의 포기는 自己正體性의 부정과 그로인한 政黨의 소멸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한나라당은 자신들의 정체성이라고 믿는 이념적 信念을 지켜내지 못했다. 그 결과가 손가락질 받는 오늘의 ‘영혼없는’ 한나라당을 만들어 냈다.
한나라당의 ‘영혼 없음’은 그들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이들에게서 무엇을 기대하는 것은 緣木求魚이다. 무한한 포용력의 거대한 보수의 바다에서 그들은 스스로 항해할 용기를 갖지도 못한다. ‘거친 풍랑이 바이킹을 만들었다’는 歷史의 진실도 외면한다. 싸울 意志도 용기도, 전투성도 없어 거친 풍랑의 항해가 두려운 웰빙귀족들이기 때문이다.
비겁한 知性, 기회주의적 人間들이 모여 자신들만의 잔치를 벌여 온 참담한 그 역사적 空間이 지금의 한나라당이다. 그들에게는 祖國도, 표를 몰아 준 黨員도, 國民도 별반 안중에 없다. 그들에게는 대중추수주의와 보신주의에 의탁한 자기출세와 영달만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국민들의 눈에 그들은 단지 화려한 이방인이다.
그래서 묻는다.
그들에게 安保는 국가를 위한 안보 보다 자기 자신과 가족을 위한 안보는 아니었는지? 기득권으로 똘똘 뭉치면서 ‘갖고, 누리며, 즐기는’ 상류계층의 상징은 아니었는지? 엘리티즘에 찌들어 일류대학, 판·검사, 장·차관 출신이 아니면 같이 놀아주지도, 끼워주지도 않았는지? 公薦을 주는 사람이나 공천을 받아가는 사람이 사회생물학적으로 種과 類가 같은 사람은 아니었는지? 이 모든 것들이 한나라당 태생의 비밀이자 정치적 限界는 아니었는지 통렬한 심정으로 묻고 싶은 것이다.
이런 한나라당의 政黨文化에서 조국, 국민, 서민, 빈곤, 가난, 경제, 안보, 도덕적 품성, 북한동포, 애국을 어떻게 이야기 할 수 있겠는가? 이런 그들이 곧 닥쳐 올 한반도 격동의 순간을 잘 헤쳐 나갈 수 있겠는가? 이런 그들에게서 歷史발전의 진보를 향한 보수개혁의 우렁찬 행진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이런 그들이 좌파10년, MB 3년 동안 거대한 보수의 늪에서 허우적거릴 수밖에 없었던 보수층의 상실감과 분노를 달래 줄 수 있단 말인가?
천만의 말씀이다.
政權은 민심의 바다 위에 뜬 배다. 배는 정권이 민심을 얻을 때 비로소 뜨고 民心을 잃을 때 좌초된다. 당초 그들은 이념의 價値를 지킬 의사도, 다듬어 낼 의지도, 능력도 없는 불임정치 遺産의 상속자들이었다. 그들은 꼭 해야 할 일들을 하지 않았고, 하지 말았어야 할 일들을 골라 했다. 자신들과 같이 가면 희망찬 미래로 갈 것 이라는 믿음도 주지 못했다. 국민을 감동시키지도, 그들을 열광의 隊列로 초대하지도 못했다.
일단, 자기를 뽑아 준 선거가 끝나면 그들은 국민과 유권자 위에 군림하는 새로운 정복자가 되고 말았다. 그들은 권력의 기득권을 손안에 거머쥔 특권지배계급이라는‘거대한 착각’으로 정치를 겁탈했다. 한나라당에서 정치는 두 번 죽었다. 이제 그들이 하늘도 감동할 만한 自己革新을 하든지, 아니면 우리가 한나라당에 대한 추억을 지우든지 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한나라당의 보수독과점 신화는 끝났다.
保守를 팔아 자신을 돌보고자 했던 한나라類의 정치세력이 정의와 진실을 계속 외면한다면, 우리 모두 理性에 빛나는 날카롭고 차가운 비판의 무대에 서지 않을 수 없다. 한나라당이 개과천선할 것이라는 신기루와 같은 믿음을 철회할 준비가 늘 되어있는 것이 보수의 참 價値에 목말라하는 民草다.
하물며 변할 수없는 原罪를 안고 있는데 政權을 재창출한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이제 政權은 무수히 바뀌어도 政治는 변하지 않는다는‘한국정치변형주의’를 끝내자. 한나라類와 같은 정치권의 壽命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대한민국의 生存을 위한 면역력과 국가경쟁력은 떨어진다. 한나라당과 정치권이 우리에게 보여 준 역설적 교훈이 아니었던가?
넉넉하고 여유 있을 때 後事를 도모하라.
바람이 불 때 연을 날려라. 그들이 변화의 모습을 보이지 않을 때 우리에게는 용기 있는‘버림의 美學’이 필요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한나라당은 물론, 정치권에 의한‘國民멸시’의 行進은 멈추어지지 않을 것이다. 역사의 길가에는 멈출 때 멈추지 못한 帝國의 폐허와 지도자들의 시체가 가득하다. 국가, 민족, 문화의 소멸은 어김없이 그다음 순으로 이어졌다. 이것이 歷史다. ‘5:3의 기적’에 만족하고 있을 한나라당, 이들을 어찌할 것인가?
바람이 불 때 연을 날려라!
- 광야(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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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07-31, 11: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