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는 거짓말하지 않는다(서평)

(L'economie ne ment pas, 레코노미 느 망 빠) 저자: 기 소르망 번역: 조정훈 외 397페이지, 13000원, 문학세계사, 2008

 

경제 이론도 유행을 탄다. 크게 나누면 민간시장경제와 국가계획경제의 두 교각 사이의 출렁 다리 위를 오간다. 2차대전 이후 냉전 시대에 이 둘은 첨예하게 대립하다가 소련과 동구의 붕괴로 ‘보이지 않는 손’ 민간시장경제 체제의 자본주의가 ‘보이는 손’ 국가계획경제 체제의 공산주의에 KO승을 거둔다. 큰 줄기는 이렇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완전한 시장경제도 없고 완전한 계획경제도 없다.

 

1945년 시점에서 가장 부유했던 미국과 가장 가난했던 한국의 예를 들더라도 그렇다. 미국은 1930년대 대공황을 겪으면서 시장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했다. 케인즈의 이론에 따라 정부가 수요를 창출하기 위해 적극 개입하고 금융과 기업 특히 금융에 각종 규제를 남발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별의별 간섭을 다했다. 한국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된 경제개발5개년 계획은 원래 골수 공산주의자 스탈린이 시작한 것이다. 모택동의 중공도, 김일성의 북한도, 네루의 인도도 국가 주도로 경제개발계획을 추진했다. 그러나 위에 든 네 나라 중 한국만이 성공했다.

 

유럽은 어떨까. 유럽은 미국 이상으로 정부가 비대해졌다. 대기업은 국영화가 대세였고, 노동조합은 치외법권 지대였다. 사회보장제도는 요람에서 무덤까지 이어졌다. 그런데도 서구는 패전국 서독을 포함하여 나날이 부유해졌고, 소련과 동구와 중공은 나날이 가난해졌다. 이유는 어디 있었을까.

 

공산주의는 아예 개인소유를 인정하지 않았다. 근로의욕을 원천적으로 꺾어 버렸다. 반면에 서구나 미국이나 북구나 한국은 정부의 보이는 손이 결코 작지 않았지만, 개인의 소유는 법적으로 철저하게 보장되었다. 법률에 의하지 않고는 범죄조직의 재산도 국가가 빼앗지 못했다. 이처럼 자유진영에서 사유 재산은 선이었지만, 공산진영에서는 악이었다. 여기서 성패가 결정되었다.

 

기 소르망(Guy Sorman)은 『경제는 거짓말하지 않는다』에서 세계은행의 자료를 인용하여 국가자본은 법치제도가 57%, 교육이 36%, 천연자원이 1~3%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법치제도를 살펴보면, 100점 만점에서 스위스는 99.5, 미국은 91.8, OECD는 평균 90인 반면에 아프리카는 평균 28.0밖에 안 된다고 한다.

 

세계은행의 사이트에 들어가서 실제로 확인해 보니, 대략적으로는 맞았다. (나는 그가 어떤 자료를 인용했는지 정확히 모른다.) 거기엔 2.5가 최고로 나와 있고, 마이너스 2.5가 최저로 나와 있다. 이것을 다시 100점 만점 기준으로 환산했더니(2006년 현재), 스위스가 89.2, 미국이 81.4, 일본이 78.0, 독일이 85.4, 노르웨이가 90.4, 덴마크가 90.6, 영국이 84.6이다. 선진국은 대체로 75점이 넘는다. 한국은 64.4이고 북한은 24.4이다. 아시아에선 싱가포르가 가장 높은 86.4이고 그 다음으로는 홍콩이 일본보다 높은 79.0이다. 대만은 65.4이다. 중국은 아직 42.0밖에 안 되고, 인도는 53.4이다. (국가 전체로는 중국이 인도보다 부유하지만 소득분배는 인도가 훨씬 잘 되어 있음.) 러시아는 31.8, 나이지리아는 24.6이다. 참고로 한국은 10년간 제자리걸음이다. 이른바 민주화는 무늬뿐이다. 한국의 강점은 법치보다 와글와글 말들이 많지만 교육에 있는 듯하다. 그 결과 법치지수가 낮음에도 인구 3천만 이상의 국가에서 1인당 GDP가 세계 9위를 유지하는 것 같다. 하여간 경제측면에서는 IMF 분류대로 한국은 이미 선진국이다.

 

기 소르망은 좀 더 구체적으로 OECD의 1인당 평균 국가자본 44만 달러를 세 항목으로 나눈다. 자연자본은 1만 달러, 실물자본은 7만 달러인 반면에 눈에 보이지 않는 자본(invisible capital)은 35.4만 달러라고 한다. 이 마지막 항목에서 법치와 교육이 압도적 비중을 차지한다.

 

기 소르망은 프랑스에서 우파를 대표하는 세계적 석학이다. 좌파가 주류를 이루는 프랑스 지식인 사회에서 그는 특이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이 책에서 왜 어떤 나라가 잘 살고 어떤 나라가 못 사는지에 대해 동서고금을 오가며 묻고 답한다. 이론에만 치우치지 않고 세계를 두루 돌아다니며 유명 무명의 경제학자를 만나 인터뷰하고 정치인과도 인터뷰한다.

 

그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만이 아니라 멀리 르네상스 시대의 이태리 제노아인과 아랍문화권의 유대교도 마그레브인도 비교한다. 제노아인은 새 시대에 적응하여 크게 성공했지만, 모로코와 알제리 등 서북아프리카의 마그레브인은 실패했다. 그 원인을 소르망은 개인주의와 공동체주의에서 찾는다. 도덕적 입장에서 보면 개인주의보다 공동체주의가 낫다. 그러나 그것은 발전을 가로막는다. 결국은 사회나 국가 전체가 정체되어 빈곤과 압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개인도 죽고 공동체도 망한다. 이런 현상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봉건시대의 아시아와 근대화 이후의 아시아(일본과 아시아의 4룡)에도 적용된다. 나아가 모택동의 중국과 등소평의 중국, 1990년대 이전의 인도와 그 이후의 인도에도 적용된다. 사회주의 성향이 강한 서구와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미국에도 적용된다.

 

미국과 서구를 한 예로 들면, 창업비용이 미국은 166달러, 불란서는 3693달러, 이태리는 5012달러, 그리스는 10218달러이다. 시장경제를 신뢰하는 미국이 서구보다 부유하다. 유럽은 농업보조금이 농업소득의 77%나 차지한다. 농업의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재미있는 것은 농업보조금을 제일 많이 타 먹는 경제 단위는 다국적기업 네슬레로 연간 1130만 유로를 받는다. 필립 모리스도 150만 유로를 타 가고 영국 여왕도 60만 유로를 챙긴다.

 

마침내 이 책에서는 개인과 자유와 시장과 법치를 중시하는 사회일수록 그만큼 더 부유해진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수렴이론(발전할수록 빈곤이 줄어든다는 주장)이 확산이론(발전할수록 빈곤이 늘어난다는 주장)에 판정승을 거둔다. 마지막 부분에서 기 소르망은 멘큐의 10대 원칙과 비슷한 10대 경제원칙을 제시한다.

1)시장경제 2)성장 3)좋은 제도 4) 자유 교역 5)통화 안정 6)창조적 파괴 7)경쟁 8)저실업 9) (사회 안전망으로서의) 복지 국가 10) 금융시장(의 발달과 자율성)

 

경제가 침체되면 대체로 마르크스의 변형인 존 M. 케인즈의 ‘보이는 손’ 이론이 득세하고, 경제가 활황을 이루면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 이론이 우세한 편이다. 미국도 1970년대까지는 케인즈가 주류였다가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와 인플레이션이 동시에 찾아오는 현상)이라는 복병을 만나, 레이거노믹스가 등장한다. 영국에서는 때맞춰 노동조합에 과감히 맞선 대처가 나와서 사회보장 대신 시장경제가 본격적으로 도입된다. 미국과 영국의 진정한 시장경제는 1980년대 이후에 찾아온 셈이다. 미국은 그 후 호황을 누리다가 1990년대 공산권의 몰락으로 유일 초강대국으로 올라선다. 그러나 2008년 금융위기로 시장경제의 결함이 집중적으로 성토된다. 특히 미국의 월가와 영국의 시티(런던)의 부도덕성이 전 세계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정부의 도덕적 정치적 개입이 노골화된다.

 

이 책은 그 이전에 쓴 것이다. 따라서 얼핏 보면 기 소르망이 틀린 듯하다. 그러나 시장경제의 입장에서 보면 미국의 금융권을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것은 마녀사냥에 가깝다. 왜냐하면 정부가 앞장서서 서브프라임 모기지(잠재적 신용불량자에게 주택담보 대출을 제공하는 것)를 전 국민의 중산화라는 거창한 희망에 부풀어 정부가 보증해 줌으로써 금융권에 도덕적 해이를 제공하여 금융권이 안심하고 개인에게 마구 빌려 주었기 때문이다. 결국 미국 정부는 개인이 빚을 갚지 못하여 금융권이 파산하자 원래 보증했던 대로 약 1조 달러를 투입하여 대부분의 금융업을 살려 주었다. 단지 주인이 정부나 다른 주주로 바뀌었을 따름이다.

 

유럽은 특히 프랑스는 대통령 사르코지가 앞장서서 금융위기 이후 미국을 조롱했다. 그러나 불과 2년 후 이제는 유로화가 아예 시장에서 퇴출될 위기에 몰렸다. 정부의 보이는 손이 인심 좋게 퍼 주고 기업을 옥죄다가 국가부채가 감당할 수 없게 늘어나서 그리스를 비롯하여 여러 나라가 국가부도 위기에 몰렸다. 경기를 활성화한다며 80년대 후반부터 정부지출을 대대적으로 늘린 일본도 비슷한 위기에 몰렸다.

 

한국도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국가부채가 56조 원에서 2009년 366조 원으로 늘어나 스스로 위기를 불러들이고 있다. 한국의 국가부채는 아직 GDP의 40%를 넘지 않아 단기적으로 보면 걱정할 게 없다. 그러나 국가부채 증가율은 국가부채 평균 70%의 OECD 어느 국가보다도 높다. 일본의 국가부채가 1980년대 GDP 대비 약 30%에서 2009년 220%로 세계 최고를 기록한 것을 생각해 보자. 장기적으로(길어야 10년) 한국은 매우 위험하다. 반(反)기업정서와 전투적 노조의 무(無)노동 유(有)임금 신판 귀족독재주의는 성장의 동력을 갉아 먹고 법치를 위협하고 교육을 희화(戱畵)한다. 경제는 거짓말하지 않는다. 뿌린 대로 거둔다.

  (2010. 4.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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