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이 실종된 개각

국무위원은 국무총리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 (헌법 제87조 1항)

 

 1987년 여야 합의로 헌법이 개정된 이래, 헌법이 보장하는 국무총리의 국무위원 제청권을 행사하려는 시도가 딱 한 번 있었다. 이회창이 그 주인공이었다. 감지덕지 왕의 남자로 머물러야 할 자의 배은망덕에 김영삼 왕은 대노했고 대쪽 영의정은 바로 쫓겨났다. 민심은 변덕스러워 그 사건을 계기로 대쪽 국무총리가 도리어 차기 대통령으로 급부상했다. 그를 띄웠던 민심의 변덕이 결정적 순간에 헹가래치던 손을 두 번이나 놓아 버렸고, 그는 한 번은 허리가 부러지고 또 한 번은 머리가 깨졌다. 이제 존재감이 거의 사라졌지만, 그는 뇌 손상으로 판단력이 극도로 흐려져 아직도 지푸라기 향수에 젖어 있다.

 

 이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대한민국의 제9차 개정 헌법은 대통령의 권한을 제한하고 견제하기 위해 국무총리의 권한을 대폭 강화했지만, 역대 어느 정권도 이를 거들떠보지 않는다. 언론도 야당도 아무런 이의를 달지 않는다. 개각 때마다 그저 출세한 사람에 대한 띄우기나 깎아내리기가 있을 따름이다.

 

 자연히 국무총리는 잠시 민심을 헷갈리게 하는 으뜸 얼굴마담에 지나지 않고, 국무위원은 왕의 남자 내지 작은 얼굴마담에 지나지 않는다. 작은 얼굴마담들은 대통령 비서관이나 실세 차관이 재가한 서류에 장식용 도장이나 열심히 찍는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유난히 얼굴마담 총리와 장관이 많다. 이주호, 장수만, 신재민이 실세 차관으로서 대통령의 뜻을 충실히 받들어 영광은 가로채고 굴욕은 장관에게 떠넘기는 걸로 악명을 떨쳤다. 3차 개각에서 이들 중 이주호와 신재민은 장관으로 올라섰다. 어디에 있든 5년간 사실상의 국무총리인 특임장관 이재오와 함께 이들은 대통령의 뜻을 널리 실어 펼 것이다. 중도실용, 소통과 화합, 친서민, 친환경 등의 깃발은 더욱 힘차게 나부낄 것이다. 휘날리는 깃발 아래에선 정통우파 김칫국 먹이기와 친북좌파 떡 주기가 노골적으로 이뤄질 것이지만, 정통우파의 소외감과 나라 걱정은 점점 더 커지고 친북좌파의 ‘아웃(Out)!’ 또는 ‘다운(Down)!' 소리는 더욱 커질 것이다. 결국 어느 쪽의 마음도 얻지 못하고 이명박 정부는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뒤뚱 오리 신세가 될 것이다.

 

 왕의 남자 중 한 명을 경상우도 관찰사로 밀기 위해 나름대로 명망 있던 전임 관찰사를 주저앉혔지만, 결과는 엉뚱하게 나타났다. 전임 관찰사가 없는 무주공산(無主空山)에서 왕의 남자를 여반장으로 물리치고 선왕(先王)의 남자가 어부지리를 취했던 것이다. 그때 주저앉혔던 김태호가 48세의 나이로 으뜸 얼굴마담으로 발탁되었다. 국회의원 공천에서 탈락시킨 밉상을 나중에 국회의 으뜸 얼굴마담으로 발탁한 것과 흡사하다. 이름은 높았지만 국회에 뿌리가 없는 그에게 아무도 곁을 내주지 않았고, 박희태판 유머는 절로 썰렁해졌다. 후에 그가 재보선에 당선되었을 때 얼마나 기뻐했던가.

 

 5분의 1의 지분도 안 됐지만, 김대중은 김종필을 국무총리로 임명하면서 그에게 국무위원 2분의 1의 지분을 주었다. 결국은 물 먹였지만, 최소한 전반기에는 김대중이 정치를 권모술수에 앞세웠다. 이명박이 애초에 당내 지분이 2분의 1이었던 박근혜에게 배려한 것은 2분의 O 지분이었고 헛소문 미끼였다. 2기 개각에서 겨우 한 자리 주는가 했더니, 한창 G20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강속구와 변화구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던 선발 투수에게서 느닷없이 공을 빼앗고 그보다 훨씬 비중이 낮은 외야수에 유정복을 앉혔다. 그에겐 공이 잘 가지도 않겠지만, 한 번만 공을 놓치면 대량실점으로 이어져 바로 교체될 운명이다.

 

 대한민국의 시스템이 엉망이다. 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도 없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선거 제왕들이 망가뜨렸다. 시스템은 누구 눈에도 훤히 드러난 피라미드 구조도 있고 평행 구조도 있어서 전체가 유기적으로 돌아가는 제도다. 시스템이 망가지면, 보일 듯 말 듯 비선(秘線)이 거미줄처럼 왕에게 집중되어 화합은 깨지고 소통은 막힌다. 중도는 기회주의로 변질되고 실용은 이기주의로 전락한다. 부자는 돈주머니를 닫고 서민은 공짜에 눈독을 들인다. 관급공사는 친환경이고 민간경제는 환경파괴로 선전된다.

 

 이명박 정부의 제3기 개각은 청와대의 철학과 정책과 속셈이 가장 잘 드러난 개각인 듯하다. 솔직함은 인정된다. 곧 다가올 8.15 대사면은 제3기 개각의 연장선이 될 것이다. 대대적인 친북좌파 끌어안기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정의의 사필귀정 승리’를 외칠 뿐, 막상 쭉 내민 왕의 옥수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뿌리칠 것이다. 정통우파는 그 때도 또 다른 시스템 망가뜨리기에, 법치(法治) 물 먹이기에 크게 실망할 것이다.

    (2010. 8.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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