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권력이 무너지면 혼란과 더불어 권력투쟁이 치열해진다. 혼란의 정도는 내부적으로는 절대권력의 제도화 정도와 외부적으로는 군사적 경제적 압력의 세기에 달려 있다. 1994년 김일성 태양신이 죽었을 때, 소련과 동구의 붕괴와 독일통일의 예에 미루어 북한은 붕괴되고 한국에 흡수통일될 걸로 많은 사람들이 예측했다. 결과적으로 틀렸다.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에 소련과 동구는 공산 절대권력의 누적된 피로화 현상으로 시스템이 거의 붕괴되어 있었다. 노동자가 선전선동과는 판이하게 국가의 주인이 아니라 공산당의 노예라는 것이 폴란드의 자유노조 운동으로 입증되었다. 노동자들이 단체 교섭권과 단체 행동권을 공산국가에서 처음으로 행사했던 것이다. 이전 같았으면 소련의 붉은 군대가 탱크로 짓밟았겠지만, 이미 붉은 군대의 탱크는 아프가니스탄의 수렁에 빠져 10여 년간 허우적거리다가 붉게 녹이 슬어 있었다. 소련은 사실상 시스템의 붕괴로 제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든 종이호랑이로 전락했다. 이 점에서 공산국가 중에서 가장 가난하던 중국은 달랐다. 절대권력 모택동 사후에 약간의 혼란을 거쳐 중국에서는 공산당의 일당독재 체제가 완벽하게 재구축되었다. 게다가 중국 공산당은 개혁개방으로 인구 10억이 넘는 국가의 최대 고민인 민생고를 해결하여 150년 이래 가장 크게 민심을 얻어서 1989년 대규모 민주화 시위를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탱크로 진압했지만 정치적으로 별 문제가 없었다. 중국 공산당의 제도화는 더욱 공고해졌다.
 
 북한은 외부에서 보는 바와는 달리 내부적으로 절대권력이 제도화되어 있었다. 김정일이 이미 1985년부터 김일성과 공동통치하다가 1992년에는 김일성도 의전(儀典) 국가원수로 밀어내고 군대와 당과 말과 글을 완벽히 장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그가 권력은 장악했으나 권위는 없었다는 점이다. 설상가상으로 러시아와 중공의 무상원조 거부로, 경화(硬貨 hard currency) 요구로 경제가 일시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러시아는 당시 미국의 속국 정도로 여겼던 한국에도 손을 벌릴 정도로 제 앞가림도 못하는 상황이어서 북한에 아무 역할을 못했다. 도리어 6.25 사변 남침 비밀문서를 갖다 바치며 한국에 추파를 던졌다. 북한은 당시에 한국을 비롯하여 서방세계와는 완벽히 단절되어 손 벌릴 데는 중국밖에 없었다. 그러나 돈 맛을 안 왕 서방은 냉정했다. 북한의 상황을 완벽히 파악하고 있었지만, 중국은 300만이 굶어 죽는 것을 무심하게 지켜보기만 했다. 모택동 시절 그보다 열 배인 3000만이 굶어 죽는 걸 목격한 바 있는 중국에겐 제 나라 국민도 아닌 외국인이 300만 굶어 죽는 것은 쥐떼가 굶어 죽는 것과 같아서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못 느꼈을 것이다.
 
  제일 안달이 난 나라는 한국이었다. 반공 자유통일주의자가 뿔뿔이 흩어져 상상으로 김칫국을 마시고 있는 사이에, 어제의 통일지상주의자들이 하루아침에 맹렬극렬 분단고착주의자로 돌변했다. 그들은 ‘알 수 없음’을 내세워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 목불인견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었다. 오로지 ‘친지김동(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이 권력에 이어 권위도 훔쳐(3년상으로 성공) 절대권력으로 올라서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지켜내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다. 이때 그들이 혈안이 되어 퍼뜨린 말이 ‘흡수통일 절대반대!’이다. 헌법에 명시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통일 곧 자유통일을 정면으로 거부한 것이다.
 
 그들은 인류 역사상 가장 아름다웠던 독일의 통일을 들먹이며 스텔스 전투기 값 분단 비용에 비하면 스피아민트 껌 값에 지나지 않는 통일비용을 들먹이며, 결사적으로 여론을 조작해 나갔다. 배부른 우파가 홀랑홀랑 넘어갔다. 남의 머리를 빌릴 정도의 머리도 없는 김영삼이 제일 먼저 홀랑 넘어갔다. 스스로 반공주의자라고 단언하면서 사방을 에워싼 용공주의자의 ‘민주, 평화, 민족’이란 최면에 걸려, 김영삼은 대통령의 권력과 권위로 천재일우의 기회를 발끈하며 문전박대해서 거제도 고향 앞바다에, 원균이 적선은 한 척도 깨뜨리지 못하고 하루 저녁에 이순신의 세계제일 수군을 도망 간 12척만 빼고 전멸시킨 그 바다에 처박았다. 5천년 역사의 죄인이 되었다.
 
 서독의 18년(1974~1992) 외상 디트리히 겐셔가 소련 군대의 철수 비용을 대어 주고 통일 독일을 노골적으로 반대한 프랑스와 영국을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의 논리로 구워삶았듯이, 김영삼이 친북좌파 한완상 대신 한국의 겐셔를 외무부 장관으로 발탁하여 당시만 해도 수출이 한국과 비슷하던 중국을 달래고 겐셔가 자존심 다 내던지고 핵무기를 서독에 배치시키면서까지 미국에 매달렸듯이 미국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졌으면, 자유통일은 1990년대 초에 달성되었을지 모른다. 당시는 김정일이 식량도 석유도 없어서 전쟁을 일으킬 능력이 없었다. 해외망명을 보장해 줬으면, 김정일은 순순히 중국으로 밀항했을지도 모른다. 김정일이 완전히 살아난 것은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다. 그때부터는 도리어 김정일이 남북관계에서 주도권을 쥐었다. 깡패가 부자에게 맡겨놓은 돈 받아 가듯이 큰 소리 치면서 뜯어가는 식이었다.
 
 다시 자유통일의 기회가 왔다. 절대권력 김정일이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어서 절륜한 정력을 과시하고 똥배 건강을 자신하며 미처 후계자를 키우지 않은 상태에서 절대권력의 제도화가 급격히 흐트러지고 있고, 개성공단 외에는 북한에 들어가는 돈 줄기가 거의 말랐다. 절대권력의 몽둥이를 휘두름에는 안성맞춤이지만 식량자급의 이팝을 줌에는 쥐약인 협동농장 체제 때문에 식량이 태부족한데, 외부 지원이 거의 끊기고, 시장을 단칼에 길들이려던 불학무식 화폐개혁의 실패로 시장의 무자비한 보복을 받아 민심이 흉흉해지고 핵심계층의 충성심조차 확보하기 힘들어지자, 김정일은 궁여지책으로 군량미도 일부 푼다. 그러자 군인이 마적 떼로 변하고 있다. 아무리 2백만 대군이 핵무기를 비롯하여 대량살상무기로 중무장하였으되, 현지조달하면 된다고 아무리 제2의 박헌영이 대한민국의 자명고를 찢어도, 우선 당장 군량미와 석유가 없으면 전면적인 남침을 감행할 수가 없다.
 
 김정일은 시위대의 화염병이든 김정일의 대포든 폭력에는 공포에 질려 벌벌 떠는 한국을 단단히 길들이려고 먼저 천안함을 격침시키고 한 번은 의기양양하게 또 한 번은 다급하게 100일 사이에 두 번이나 호금도에게 달려갔지만, 비단 장수 왕 서방은 냉혹하다. 외상 장부를 내밀며 현금을 요구하고 중국의 천지개벽을 보여 주며 개혁개방을 강요한다. 확정할 수 없다고만 할 뿐 북한의 짓이 아니라는 말은 않음으로써 북한의 천안함 폭침을 간접적으로 인정하고 입안이 바싹바싹 타도록 연명 차원의 식량과 석유만 보낸다. 매년 10억 달러 정도에 이르는 북한의 대중 무역적자를 보전해 주던 한국이 두 번의 연평도해전과, 핵실험과 장거리미사일 발사와 김대중의 5억 달러 상납과 우파 뺨치는 좌파의 부정부패에 충격을 받고 50대 0으로 햇볕정책을 반대하는 바람에 이재오와 김성환과 장수만과 황석영이 아무리 보채도 이명박은 싫든 좋든 개성공단 외로는 북한에 퍼 줄 수가 없었다.
 
 군사와 과학기술이 아직 미국에 족탈불급(足脫不及)인 중국으로서는 2조 4천억 달러의 외환보유고가 가장 큰 무기인데, 그걸로는 약은 올릴 수 있되 세계패권을 두고 미국과 일본과 인도를 상대로 한판 붙을 수는 없다. 적게 잡아도 30년은 더 기다려야 한다. 따라서 현재 중국이 바라는 것은 현상유지(status quo)다. 한국이 다시 퍼주고 그 돈을 김정일이 무역결제용으로 갖다 바치면 못 이기는 척하고 북한에 계속 그만큼의 물자를 보내주는 것, 그것이 중국이 가장 바라는 바이다. 이를 재빨리 눈치 챈 한국의 친북좌파는 이명박 정부를 거세게 압박한다. 한반도기와 적십자기를 양손으로 흔들며 식량과 비료를 보내고 금강산과 개성의 39호실 돈줄을 다시 열고 백두산 관광객도 모집하고 제2의 개성공단도 세우라고 압박한다. 사회간접시설의 미비로 해마다 겪을 수밖에 없는 북한의 자연재해는 여야불문 한국이 천안함의 악몽을 슬그머니 묻어버릴 절호의 기회로 다가왔다.
 
 이명박은 제2의 김영삼 역할을 자임한다. ‘역적패당’에 대한 답례로 ‘위원장, 위원장님’ 하면서 그는 러시아까지 날아가서, 미국의 경제제재를 비웃고 한국의 자유통일 헌법 조항을 조롱하고 김정일 감독 김대중 주연의 6.15선언에 왼눈을 찡긋하며 제2의 개성공단을 띄우고 북한붕괴를 바라지 않는다고 공언한다. 북한.중국.러시아가 맞잡은 손에 국민의 동의도 없이 평화와 민족의 이름으로 슬그머니 손을 얹겠다는 신호다. 이래서는 자유통일이 싹도 못 틔우고 말라 버린다.
  (2010. 9. 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