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이 처음으로 대화의 물꼬를 튼 해는 1972년이다. 김대중이 김정일에게 북한의 3년치 예산에 해당하는 5억 달러를 바쳤던 2000년이 아니라, 이후락이 청산가리를 가슴에 품고 자유의 다리를 건넜던 1972년이다. 당시 김성주(김일성)의 동생 김영주는 북한에서 서열 2위로서 이후락을 쥐락펴락하면서 7.4공동성명을 끌어냈다. 거기 담긴 통일 3대원칙은 귀에도 걸 수 있고 코에도 걸 수 있었다. 북한은 자주를 주한미군 철수로, 평화를 한국의 보안법 폐지로, 민족대단결을 반공 세력을 배제한 ‘김일성 민족끼리’로 해석하고 주장하다가, 마침내 2000년 6월 15일에 김대중으로부터 이를 승인받았다. 그것이 바로 6.15공동선언이다. 친북좌파가 6.15공동선언을 대한민국의 헌법 위에 두는 심보가 바로 여기에 있다.
 
 막상 이후락의 방북에 대한 답례로 청와대를 방문한 자는 제2부수상 박성철이었다. 박성철은 부들부들 떨면서 윗주머니에서 잘 접힌 종이 한 장을 꺼내더니, 초등학생처럼 박정희 선생님 앞에서 또박또박 읽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자의 입은 앵무새 입이었다.
 
 남북공동성명에는 이후락과 김영주가 서명했지만, 김영주는 이미 조카 김정일에게 밀려나고 있었다. (한국과 중국에선 같은 항렬에서만 한 글자나 한자漢字의 한 획을 공유한다. 이름으로 보면, 김정일은 김일성의 동생이고, 김정은은 김정일의 동생이다. 패륜도 이런 패륜이 있을 수 없다. 이건 일본식이다. 김씨조선은 왕권이 미약했던 문치文治의 이씨조선도 아니고 명치유신 이후의 군국주의 일본 천황제를 사모하는 골수 친일분자의 DNA를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974년 김정일은 ‘당 중앙’으로 언론에 공식 등장한다. 이 해에 김일성은 공개적으로 김영주를 비난한다. 건강도 좋지 못하고 일에 성의가 없다고, 영주 형 성주가 영주를 당 전원회의에서 비난했던 것이다. 1967년 갑산파 숙청으로 정적을 완전히 제거하고 1969년 유일지도체제를 확립한 김일성으로선 김영주를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았던 것이다. 오히려 동생으로 인해 권력누수 현상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한 다리가 천 리라, 아들이 더욱 어여뻐 보였을 것이다. 동생과는 나이 차이가 열 살이지만 아들과는 서른 살이라, 죽을 때까지 권력누수 현상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했을 것이다. 스스로 악마를 키웠던 것이다. 1985년에 이미 김정일이 김일성을 비단옷 입은 허수아비로 만들었던 것이다.
 
 2010년 김정일은 왼팔을 건들건들하면서 자신과 마흔 살 차이나는 뚱보 김정은을 자신의 오른쪽에서 두 번째 자리에 앉혔다. 김일성이 왕년에 2인자 김영주를 비난하던 것처럼 김정일은 2인자 장성택을 공개 비난하지는 못했다. 장성택은 이제 제거할 수도 없을뿐더러, 그를 제거하면 자신과 김정은의 자리마저 위태로워진다는 것을 김정일은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김정일은 안전장치를 마련했다. 여동생 김경희를 김정은과 마찬가지로 대장으로 삼았다. 국방위원회의 부위원장에는 2009년에 장성택을 부위원장으로 발탁했는데, 이번에는 당 중앙군사위에 부위원장 자리를 신설하여 김정은을 앉혔다. 정치국에는 장성택을 상무위원이 아니라 후보위원으로 올렸다. 1974년 김일성이 김정일에게 넘겨 주던 식으로 김정일은 누구에게도 이번에 반(半) 절대권력을 넘겨 주지 않았다. 줄 수도 없었다. 특각에서 무절제한 생활을 한 천벌로 김정일 자신이 더 이상 ‘밤의 결재’를 할 수 없기 때문에 만기친람(萬機親覽)은 더 이상 욕심 부릴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우선 자신의 권력부터 보호하고 2세의 권력기반을 최대한 빠른 시기에 구축해야 한다.
 
 김정일의 눈에 인간은 동생 김경희와 아들 김정은 또는 김정철밖에 없다. 큰아들 김정남은 1971년생으로 김정일과 나이차가 29살밖에 안 되어 자신의 경험으로 미루어 후계자 수업을 시키기에는 위협적이어서 일치감치 이복동생 김평일처럼 곁가지로 분류하여 해외로 쫓아냈다. 김정일 자신은 신이다. 위에서 언급한 두세 명의 인간 외에 나머지는 모두 부하요, 신하요, 노비요, 버러지요, 부품이요, 쓰레기요, 적이다. 장성택도 예외가 아니다. 1978년 김경희가 “오빠, 장 서방 손 좀 봐줘!”하자 김일성과 상의하여 바로 시골로 내쫓아 1년 6개월 동안 제철소의 뜨거운 용광로 앞에서 눈물과 땀으로 범벅된 강냉이밥을 먹게 한 적이 있다. 2004년에는 건방지다며, 기어오른다며, 장성택과 그를 따르던 무리를 어떤 결혼식에 참여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모조리 숙청해 버렸다. 절대권력에 한 치의 균열도 허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당시에 장성택의 큰형 평양수비대장 차수(대장 위, 원수 아래) 장성우는 건들지 못했다. 장성택의 둘째 형 중장 장성길도 건들지 못했다. 그들의 군대 내 위상이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섣불리 건드렸다가는 제2의 인조반정을 일으킬 수도 있었다.
 
 장성택을 살려 준 것은 중국이었다. 2006년 3월 18일부터 장성택은 30여 명의 경제시찰단을 이끌고 중국의 산업도시를 두루 구경했다. 전후 사정으로 미루어 중국의 요청에 의해서일 것이다. 그리고 그 해 말에 장성택은 수도건설부 제1부부장으로, 2007년 초에 사법 및 검찰, 인민보안성, 국가안전보위부를 관장하는 노동당 행정부장으로 승진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장성택의 두 형이 2006년과 2009년에 죽었다. 장성택은 유사시 힘쓸 두 팔을 잃어버렸다. 김정일로서는 중국이 밀어 주지만, 인간 김경희가 부하 장성택을 어느 정도 견제해 줄 것이고, 군 인맥은 장성택의 두 형이 죽음으로써 사실상 끊긴 것이라 그를 국방위원회의 부위원장으로 앉혀도 생색은 내고 실속은 없어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권력은 물을 가두는 댐과 같다. 물이 많을수록 댐은 커지는데, 홍수 시에는 아무리 거대한 댐도 방류하지 않으면 터질 수 있다. 댐이 오래되면 오래될수록 아무리 보수공사를 하더라도 겉으론 멀쩡해도 어딘가에 균열이 생긴다. 가장 약한 곳을 물은 기가 막히게 알아낸다. 이것은 댐 위에서는 절대 발견되지 않는다. 김정일은 댐을 높이 쌓기만 했지, 넘치는 물을 방류한 적이 거의 없다. 계속 댐의 높이를 올리기만 했다. 뇌졸중으로 뒤늦게 아뿔싸, 아무리 그물 조직을 가동하더라도 도저히 권력의 댐을 혼자 힘으로는 유지하고 관리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김정일은 이십대 후반의 아들에게 댐 관리권 일부를 서둘러 넘겨주고 있다.
 
 이미 약한 곳이 어딘지 북한에선 곳곳에서 귀신같이 알아채고 그 곳을 집중적으로 공격한 지 오래일 것이다. 44년 만에 당 대표자회를 열어 김정일이 3대세습의 집안잔치를 벌였지만, 권력의 댐에 동시다발적으로 생기는 균열은 누구도 막을 수 없을 것이고 그 균열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이다. 2006년부터 장성택은 중국의 막강 지원을 업고 김정일이 이따금 헛소리를 하고 일일이 결재를 하지 못하는 것을 틈타 거대한 인맥을 구축했을 것이다. 두 형이 없더라도 그의 군부 인맥은 만만찮을 것이다. 김정은이 옛날 김정일이 하던 것처럼 관문에 버티고 서서 김정일에게 올라가는 모든 서류를 살펴본다고 하지만, 애송이가 뭐가 뭔지 알 리 없다. 장성택에게 자문을 구하지 않을 수 없다. 술주정뱅이 대장 고모에게 물어봐야 아무 것도 얻지 못할 것이다. 김정일이 막강 보좌진을 붙여 주었지만, 그들 중에 마음으로부터 충성을 보일 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권력에 복종시키는 방법은 크게 나누면 두 가지다. 하나는 힘으로 생명을 위협하여 따르지 않을 수 없게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스스로 마음으로 감복하여 따르게 만드는 것이다. 절대권력자가 생명을 언제든지 앗을 수 있는 권력을 쥔 상태에서는 아무리 재물과 명예로 달랜다고 해도 사람들은 절대 심복하지 않는다. 마음속 깊숙이 적개심을 숨겨 둔다. 김정일은 인간을 인간으로 보지 않기 때문에 심복이라는 개념 자체를 모르고 믿지도 않는다. 따라서 북한에는 단 한 명도 김정일에게 심복(心腹)하지 않는다. 겉으론 두려워하고 속으론 증오할 따름이다. 기회만 되면 북한 사람들은 누구든지 김정일을 제2의 차우세스코로 만들려고 한다. 기회만 되면 김일성의 동상을 제2의 레닌 동상으로 만들려고 한다.
 
 현재 겉보기와는 달리 김정일과 김정은이 아니라 김정일과 장성택이 북한을 공동통치하고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은 김정일의 이름으로 행해지지만, 의도는 장성택의 것이 만만치 않게 들어 있을 것이다. 두 번의 숙청을 통해 장성택은 자신의 뜻이 드러나지 않게 하는 위장술이 고도로 발달했을 것이다. 김경희도 남편의 속은 절대 읽지 못할 것이다. 귀신 김정일이 어느 정도는 이를 눈치 채고 나름대로 김정은에게 권력의 댐 관리권을 넘겨주려고 이중삼중의 안전장치를 마련했다. 김정일의 건강이 더 악화되어 판단력이 흐릿해지면, 김정은 주변에는 허수아비만 남을 것이다.
 
 이번에 임명되거나 승진한 6명의 별 네 개는 김정일이 그냥 형식이 아니라 그들에게 충성을 맹세한 군부 세력을 붙여 주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은밀한 세력이 장성택이 허튼 짓을 한다는 판단이 서면 감쪽같이 그를 해치우려 할 것이다. 김정일은 권력의 속성을 누구보다 잘 아는 자이기 때문에 이렇게 이중삼중의 안전장치를 한다. ‘그래 봤자’다. 후계자 수업을 거의 시키지 않았기 때문에 김정일이 아무리 김정은에게 왕창 권력을 넘겨주고 죽으라면 즉시 진짜 콱 죽는 버러지 종들에게 대가리를 쥐어박으며 충성을 맹세시키고 직접 조직을 챙기고 돈을 뿌리더라도, 애송이는 권력의 댐 어디에 균열이 생겼고 한번 방향을 정하면 하늘도 막을 수 없는 거대한 민심의 물이 어디로 쏠리는지 모를 것이다.
 
 장성택을 살리는 것은 중국에게 달렸고 김정은을 살리는 것은 한국에 달렸다. 한겨레는 김정일이 한국과 세계의 예상을 뒤엎고 16년간이나 건재한 것을 가리키며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고 확신한다. 3대세습을 욕하는 척하면서 벌써 김정은에게 충성의 맹세를 간접적으로 표한다. 김대중식 유화정책을 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바로 이것이다. 김정일이 살아남고 16년간 북한주민에게 죽음 또는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안겨 주게 한 것은 김정일의 능력이 아니라 다름 아닌 대한민국의 김대중, 노무현, 김영삼 일파와 중국의 강택민, 호금도 일파의 도움이다. 중국이 방패막이 노릇하지 않고 한국이 쌀과 돈을 보내지 않았으면, 북한은, 정확히 말하면, 북한의 정권은 늦어도 2000년경에 무너졌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중국이 돕지 않고 한국이 돕지 않으면, 북한은 소련과 동구가 무너지듯이 거짓말같이 무너진다.
 
 이미 한국은 김정은 살려 주기에 나섰다. 무엇이 그리 이쁜지 3대세습을 자행한 김정일에게 꼬박꼬박 국방위원장이라는 직함을 붙여 준다. 한겨레와 KBS만이 아니다. 청와대와 조선동아도 예외가 아니다. 민노당과 민주당만이 아니라 한나라당도 이미 김정은 살리기에 나섰다. 이명박은 수해를 빌미로 쌀을 보내고 화해를 빌미로 가족상봉쇼를 덜컥 받아들였다. 천안함에 대해 사과하는 게 아니라 일본이 일제시대에 대해 수사법을 구사하듯이 북한이 지나가는 말로 막연히 유감이라고 표현하면, 연간 40만 50만 톤의 군량미와 노동당 구호식량이 서해 가득 올라갈 것이다. 호금도는 중국식 개혁개방이란 말로 경제는 자본주의, 정치는 공산주의라는 식으로 김정일 사후의 북한을 관리하고 북한 붕괴를 막겠다고 이미 대내외에 천명했다. UN이 천안함 폭침의 주범으로 북한을 적시하지 못하도록 기를 쓰고 가로막았다.
 
 김일성이 사망한 1994년과는 달리 지금은 북한의 권력이 한 곳에 모여 있지 않다. 김정일과 김정은과 장성택이 3분하고 있다. 김정일이 죽는다면 김정은과 장성택 두 명이 남는데, 김정은은 한국이, 장성택은 중국이 각각 지지한다. 그 둘 중 누가 살아남을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중국의 힘이 더 세니까 결국 중국의 뜻대로 될 것이다. 중국이 미는 자가 꼭 장성택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하여튼 북한 정권은 건재할 것이다.
 
 변수는 하나 더 있다. 김정일은 장성택도 모르는 비밀의 칼을 숨겨 두었을 가능성이 있다. 어느 날 장성택이 중국을 등에 업고 회심의 미소를 머금는 순간, 그는 이 파천황의 마교 칼을 꺼내들 것이다. 나는 그 칼이 전면적인 남침이라고 본다. 최후의 뒤집기를 좋아하는 김정일은 이 한 수로 한국의 쓸모 있는 바보들로부터 은밀한 지원을 받아 일주일 안에 적화통일을 달성할 수 있다고 확신할 것이다. 천안함 폭침으로 이를 다시금 확신했을 것이다. 실패하더라도 자기는 어차피 곧 죽을 운명이니까, 살아서 비참한 꼴은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왕 죽을 바에야 수백만을 죽이고 죽는 것을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할 것이다. 철저한 이기주의자인 김정일은 죽음을 맞이해서는 장성택이든 김정은이든 전혀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2010. 10. 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