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순위를 모르는 지도자

한 나라의 운명은 지도자가 우선순위를 제대로 제시하고 국민이 자발적으로 동참하는 데 달려 있다.

   

 한반도는 허리에 자연의 비단 띠를 두르고 있다. 푸르다, 빛난다. 부드럽다, 아름답다. 푸름은 남쪽으로 죽 이어진다. 부끄러운 속살을 드러낸 산은 이제 어디에도 없다. 산이란 산은 온통 민둥산뿐이었던 걸 기억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드물다. 불혹(不惑)의 나이에 접어들지 않은 사람들은 다들 저절로 그렇게 된 줄 안다. 생색내는 사람도 없고 고마워하는 사람도 없다. 따뜻한 남쪽 땅은 들도 푸르고 강도 푸르다. 들에는 트랙터를 몰고 가고 이웃 동네엔 자가용을 타고 가는 농부는 해마다 흉년이 아니라 풍년이 걱정이다. 비가 오든 안 오든, 바람이 불든 안 불든, 해마다 풍년이 들어 쌀이 남아돈다. 풍년이 들어 쌀값이 떨어질까 그것이 걱정이다.

 

 산간벽지와 작은 섬까지 포장된 도로는 흙먼지 하나 안 날린다. 장대비가 쏟아져도 길에 물웅덩이가 생기지 않아 장화 장사가 다 망했다. 밤이면 사람 사는 데는 도시건, 농촌이건, 어촌이건 밤하늘의 별보다 아름답게 전깃불이 반짝인다. 도시의 큰 거리는 대낮처럼 밝아 플래시나 석유등 없이도 마음껏 돌아다닐 수 있다. 한밤중에 취객이 비틀거려도 행패를 부리지 않는 한, 경찰은 못 본 척한다. 통행금지가 없어, 밤손님만이 아니라 시민도 밤길이 자유롭다. 지상낙원이 따로 없다.

 

 양쪽 가장자리에 인공 가시가 촘촘한 비단 띠 너머 북녘으로 눈길을 돌리면, 지옥이 따로 없다. 산도 벌겋고 들도 벌겋고 사람들의 눈도 벌겋다. 나무는 모조리 희귀식물이다. 여름에 기껏 산에는 잡초, 들에는 비실비실 곡식이 누르므레 초록빛을 띠지만, 바람 한 번 불고 비 한 번 쏟아지면, 그냥 쓰러지고 우르르 쓸려간다. 남녘의 골목길처럼 좁은 차도에 어쩌다 자동차가 지나가면 흙먼지가 하늘 가득 날린다. 개울이나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는 60년, 70년 전 조선총독부가 만든 게 제일 튼튼하고 웅장하다. 유지관리가 엉망인 단선 철로도 일제시대보다 못하다. 서너 시간 연착에는 아무도 불평하지 않는다. 기차는 붉게 녹슬었고 유리 창문이 다 깨져 그리로 짐과 아이와 날랜 어른이 드나든다.

 

 밤이면 암흑천지로 변한다. 밤하늘에 별만 총총하다. 땅 위엔 오직 군데군데 옛 소련군 대위의 거대한 동상만 휘황찬란하다. 남녘에는 가장 가난한 집에도 24시간 공급되는 전기가 북녘에는 은덕촌이나 창광거리 등의 최고위급 가족들에게만 공급된다. 남녘에는 달동네에도 하루 24시간 공급되는 수돗물도 북녘에선 핵심계층만 사는 평양에서조차 하루 4시간만 콸콸 쏟아져도 소원이 없다. 9평 아파트에도 24시간 내내 온수가 공급되는 남녘에 비해 북녘에는 외국인 관광객이 이용하는 호텔도 그런 데가 없다. 소출의 90%를 빼앗기는 협동농장은 해마다 대흉작이다. 전체 농지에서 100분의 1도 안 되는 소토지에서 나오는 농산물이 협동농장 전체의 그것과 맞먹는다. 뒤룩뒤룩 곰 세 마리만 살이 쪄 있다.

 

 남북한 앞에 세계의 모든 경제이론과 정치이론이 고개를 숙인다. 고개를 떨어뜨리고 힐끗힐끗 눈치를 살핀다. 기존 이론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불과 65년 전만 해도 똑같은 상황이었는데, 아니, 일제의 집중적인 공업화로 출발선에선 북녘이 남녘보다 한 세대 정도 앞섰는데, 지금은 지옥과 천국으로 나눠졌다.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이건 공산당 일당 독재 체제를 유지하면서도 개혁개방으로 중국이나 베트남처럼 의식주 문제는 어렵지 않게 해결하는 나라도 있고 자본주의를 도입하더라도 아프리카와 중남미와 아시아의 수많은 나라들이 여전히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걸로 보아, 설명이 안 된다.

 

 문화와 역사, 이건 남북한이 60년 전만 해도 똑같았으니, 더욱 설명이 안 된다.

 천연자연과 산업화 단계, 이건 북한이 해방 전 지하자원 90%, 공업 시설과 발전 시설 90%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났으니, 마찬가지로 설명이 안 된다.

 외부의 지원과 내부의 인적 자원, 이건 OECD에 따르면 1960년 이래 3조 달러가 개도국에 흘러들어갔지만 거의 나아진 게 없거나 오히려 많은 국가가 후퇴했고 북한이 80년대까진 소련과 중국으로부터 90년대 이후에는 한국과 미국과 일본과 중국으로부터 한국이 예전에 미국과 일본으로부터 받은 것 이상으로 무상원조를 받았다는 점에서 또한 북한도 한국 이상으로 교육에 투자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여전히 설명이 안 된다.

 

 니콜라스 에버스타트(Nicholas Everstadt)는 국가 발전의 원동력을 통치구조(governance)에서 찾는다. 국민의 사생활을 일일이 간섭하는 전체주의도 안 되고, 국가 권력이 국민에게 거의 영향을 못 미칠 정도로 무질서와 혼란이 거듭되는 무정부 상태도 안 된다. 독재와 부정부패가 있더라도 감내할 만하다면, 그 불완전한 체제가 나름대로 사유재산을 보호하여 국민이 경제활동의 성과를 대부분 차지할 수 있으면 느리지만 경제는 발전한다고 본다.

 

 나는 좀 간단하게 지도자가 국가의 우선순위(priority)를 알고 그것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느냐에 달렸다고 본다. 지도자는 먼저 우선순위를 정확하고 명확하게 알아야 하고, 다음으로 그것을 실천해야 한다. 알긴 알더라도 국민의 힘을 한데 모아 실천하지 못하면 아무 소용없다. 국민의 힘을 모으되, 자발적인 동참을 유도하지 못하면 그것도 소용없다.

 

 김일성은 우선순위를 군사에 두었다. 스탈린과 모택동이 못된 짓을 시키는 대로였고, 못된 본을 보여 주는 대로였다. 열등감과 권력욕에 사로잡힌 소련군 대위에게 군사와 거의 나란한 우선순위는 정치였다. 무자비한 정적 제거였다. 경제는 언제나 뒷전이었다. 군사력으로 절대권력을 구축하고 군사력으로 한국을 적화통일하는 것이 김일성의 최우선 순위였다. 그것은 소련과 중국이란 두 외세를 빌어 일으킨 6.25동란으로 300만을 죽음으로 몰아넣고도 변함이 없었다. 김일성이 죽은 후에 경제우선으로 돌아선 소련과 중국이 지원을 딱 끊자 300만이 굶어 죽었지만, 북한의 군사우위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김정일은 노골적으로 군사독재 곧 선군(先軍)사상의 붉은 깃발을 흔들어 군사우위 정책을 한층 강화했다.

 

 한국은 독립투사 출신 대통령부터 6.25 동란으로 당대 최고이자 최강의 애국 집단으로 거듭 난 국군의 사단장 출신 두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최우선 순위는 경제였다. 국민을 부유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군사는 한미동맹으로 절반은 미국에 맡기고 총력을 바쳐 경제에, 민생에 매진했다. 수출이 늘고 국민의 일인당 GNP가 늘어나는 것이 국가 지도자의 가장 큰 낙이었다. 사회주의자나 공산주의자가 주장하는 것과는 정반대로 한국은 분배를 소홀히 한 적도 없었다. 새로운 지배층이 모든 것을 독점한 공산국가보다는 백 배 나았다.

 

 한국은 비약적으로 창출된 부를 어떤 나라보다 공평하게 나눠 가졌다. 전국의 토지를 모든 농가에게 똑같이 껌 값으로 나눠 준 것부터가 전 세계적으로 획기적인 분배정책이었다. 공산 국가는 나눠 주는 척하고 처음에는 30%, 후에는 90% 농민으로부터 약탈한 것을 비교해 보면, 한국은 처음부터 지상낙원을 지향하고 소련군 대위의 북한은 처음부터 지옥을 지향했다. 한국은 또한 연공서열(年功序列)을 도입하여 젊을 때는 일은 열심히 하더라도 월급을 적게 받고 늙으면 일은 덜 하더라도 월급을 많이 받게 하여 ‘능력껏 일하고 필요한 만큼 가져가는’ 마르크스의 이상을 현실화한 기적의 나라다. 승진에서는 차이가 날지라도 입사 동기는 월급이 첫 월급봉투에서 마지막 월급봉투까지 두께가 똑같았다. 사회보장제도를 실시하더라도 이보다 더 평등하게 분배할 수는 없다. 지니계수가 서유럽과 비슷했던 것은 그런 제도 때문이었다. 외환위기 이전에는 좀 능력이 떨어지고 게을러도 일단 취직하면 웬만하면 쫓겨나지도 않고 먹고사는 문제가 거의 해결되었다. 본격적인 시장경제는 오히려 외환위기 이후에 도입되었다.

 

 박정희는 안보도 결코 소홀히 하지 않았다. 경제를 우선하고 안보의 절반을 미국에 맡기되, 경제력이 커지는 만큼 자주국방의 길로, 결정적인 순간에 자유통일을 이룰 수 있는 자주국방의 길로 차근차근 나아갔다. 국방과학연구소(ADD)를 설립하여 소총에서 시작하여 미사일에 이르기까지 경제에 이어 군사에서도 초고속으로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여 한국인의 체형과 한국의 지형에 맞는 현대무기를 속속 개발했다. 70년대말이면 압도적인 경제력과 가공할 과학기술에 힘입어 한국의 군사력은 일대일로 붙어도 북한에 조금도 밀리지 않는 군사력을 구축했다. 원자탄도 거의 완성 단계에 이르렀다.

 

 한국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6공화국에 접어들면서 우선순위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최우선 순위는 정치(권력투쟁)였다. 두 번째 우선순위도 정치였다. 세 번째 우선순위도 정치였다. 경제는 네 번째 정도로 밀려났다. 경제에도 정치논리가 판을 쳤다. 정치집단으로 돌변한 귀족노조가 대기업과 공기업에서 사자의 몫(the lion's share)을 뚝 떼어 갔다. 노조 지도자는 정치판에도 속속 진입했다.

 

 안보는 열 번째 정도로 밀려났다. 동족으로부터 처절하게 침략당한 적이 있는 분단국가에서, 집단 건망증에 걸려 한미동맹에 흠을 내는 것이 최고의 애국으로 방송과 신문과 인터넷에 떠올랐다. 대통령이란 작자가 적에게 옆구리를 대 주는 교전수칙을 만들어 유유히 쳐들어온 주적에게 24명 중 6명이 전사하고 18명이 부상당하고 고속정이 침몰했건만, 그것은 토막뉴스로 슬쩍 지나가고 교통사고로 사망한 두 여중생은 두 달 석 달 인터넷과 방송에서 톱뉴스로 특집뉴스로 도배뉴스로 집요하게 띄워 국민을 격분시켰다.

 

 군사작전 중 일어난 교통사고로 미국은 대통령까지 무릎을 꿇게 만들었지만, 5억 달러를 상납 받은 적장은 호탕하게 웃으며 유유히 한국의 재래식 무기를 일거에 무용지물로 만드는 핵무기와 중장거리 미사일을 개발했다. 그것은 정치깡패가 국가 지도자의 비호 하에 백주에 정적을 폭행하고도 무죄방면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민주의 이름으로 법을 유린하는 대중민주주의의 굿판을 벌이고, 민주의 이름으로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발전을 수치와 불행의 대상으로 전락시켰다. 민주의 이름으로 악랄하게 언론을 탄압하고, 민주의 이름으로 간첩 대신 정적의 전화를 도청하고, 민주의 이름으로 깽판을 조장하고 불법폭력 시위자를 표창했다. 민주의 이름으로 천문학적인 돈을 빼돌려 소통령의 계좌에 입금했다. 민주의 이름으로 그들은 이번에는 거제도 사람이 다음번에는 하의도 사람이 윙크를 주고받으며 서로서로 사면 받았다. 자주의 이름으로 미국을 미워하고 자주의 이름으로 북한을 사모했다. 벼랑 끝에 선 김정일에게 레드 카펫을 깔아 주고, 쌀과 비료와 달러를 무시로 보냄으로써 3천 궁녀가 야들야들 버들허리를 흔드는 아방궁만 20개도 넘는 세계 최고 부자의 해외계좌는 철통같이 보호해 주고 더 불려 주고, 사면초가에 갇힌 선군사상에 날개를 달아 주었다.

 

 이승만과 박정희는 정치도 소홀히 한 적이 없었다. 순위로는 경제와 안보에 이어 3순위였지만, 국민의 90%가 문맹인 신생 독립국에게는 너무도 과분한 자유민주를 처음부터 도입하여 사하라 사막 이남 수준의 정치를 일본에 이어 아시아 2위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비슷한 경제 발전 단계의 대만이나 싱가포르나 홍콩보다 한국의 정치는 항상 몇 걸음 앞섰다. 야당이 이름뿐이었던 싱가포르나 대만과 달리, 한국은 유신 체제에서도 야당이 여당과 거의 대등했다. 언론 자유도 결코 선전선동이 판을 친 김대중이나 노무현 때보다 못하지 않았다.

 

 국민을 위하여 경제는 1순위, 국가를 위하여 안보는 2순위, 권력에 눈이 먼 정치꾼이 아니라 국민 개개인을 위하여 정치는 3순위, 이것은 지금도 변함없는 국가의 우선순위다. 그러나 지금도 김/노 정부 시절과 달라진 게 없다. 무늬만 우익 정부다. 언제나 정치가 최우선이다. 대통령에 대한 인기투표 결과가 최대 관심사다. 겉으로는 경제를 내세우지만, 경제는 정치의 시녀에 지나지 않는다. 온갖 기기묘묘 선심 정책으로 국가 부채가 김/노 정부 때보다 더 가파르게 늘어난다. 안보는 아직도 10순위쯤 된다. 안보의 전선에서 넝쿨째 굴러온 정보 복덩어리인 2만 탈북자를 대통령은 절대 가까이하지 않는다. 중국은 4백 년 5백 년 전에 떠난 화교가 인도네시아에서 몇 명 돌팔매질을 당해도 국가 지도자가 직접 나서서 엄중 경고하지만, 바로 지금 대한민국의 헌법상 똑같은 국민인 탈북자 수십만이 20여 년간 중국에서 개돼지 취급을 받아도 단 한 마디 중국이나 북한을 향해 정색하지 못한다. 호금도가 오십 보라면, 이명박은 백 보다.

 

 김정일이 대노하는 대북방송과 풍선삐라는 국민을 속이기 위하여 잠시 운을 떼고는 싹 뭉개 버린다. 안보의 전문가인 합참의장과 국방장관으로 촌각을 다투어 가야 할 군사정보를 중간에서 가로챈 ‘VIP 메모’ 측근은 어떤 질책도 받지 않고 도리어 영전했다. 국내적으로 보면, 안보의 중추신경인 명령 체계를 허문 것이 가장 큰 죄인데도 오히려 왕따 당한 합참의장과 국방장관을 꾸짖고 일선 장병에게 패잔병처럼 아니, 떼거지처럼 환자복을 입혀 대한민국 해군을 세계의 웃음거리로 만들었다. 천안함 폭침으로 김정일과 김정은이 얻은 최대의 성과는 바로 대한민국 군대의 명령 체계가 엉망이란 걸 실전을 통해 확인한 것이다. 때가 무르익어 전격 남침을 감행하면, 국군은 합참의장과 국방장관으로부터 명령을 받지 못하고 90%가 군 면제자로 채워진 청와대의 지하벙커만 쳐다보고 우왕좌왕하다가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을 게 뻔하다.

       (2010. 1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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