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그라이몬드(John Grimond) 이코노미스트紙(지) 前 해외담당 편집장은 그가 19세 때에 6개월간 중학교 교사로 있었던 잠비아를 40년 후에 다시 찾아보고 아래와 같은 訪問記(방문기)를 남겼다:
 
〈…나는 잠비아의 론대지라는 곳에서 목격할 것에 대비해서 事前(사전)에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었다: 半세기 전에 잠비아와 한국은 1인당 소득이 비슷하였지만 지금은 한국의 소득은 잠비아의 32배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다. 그래서 나는 잠비아에 가면(잠비아 사람들이 겪은) 40년간의 불필요한 가난과 失政(실정)과 좌절된 희망을 보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나도 그런 절망의 많은 부분을 그들과 공유하게 되었다. 그러나 나의 주된 悔恨(회한)은 1965년 그 때에 佛語(불어)와 物理(물리) 대신에 비록 한국에 대한 책이 전혀 없었다하더라도 한국에 대해서 가르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아마도 지금도 누군가가 한국을 가르치기에는 너무 늦지는 않을 것이다. 《이코노미스트紙, 2005년 12월24일》〉
 
〈…I had been prepared for most of what I found in Lundazi, Zambia: I knew that half a century ago Zambia and South Korea had had roughly the same income per person, and now Korea's was 32 times greater. So I was expecting the accumulated evidence of 40 years‘ needless poverty, misgovernment and dashed hopes. Many of those dashed hopes I shared. But my main regret was that, back in 1965, I had not been able, instead of French and physics, to teach Korean studies, even if I had no books. Perhaps it is not too late for someone else. 《The Economist, December 24 2005》〉
 
박근혜 후보는 새누리당(舊 한나라당 포함)을 두 번이나 지켜냈다. 2004년과 2012년의 總選(총선)때이다. 朴 후보가 없었더면 左派들은 2004년 총선에서 ‘차떼기당’ 한나라당을 완전히 潰滅(궤멸)시키고 改憲 沮止線(개헌 저지선)을 훨씬 넘는 議席(의석)을 확보하는데 성공했을 것이다. 그리고 지난 4ㆍ11총선 때에는 100석도 건지지 못할 것이라는 ‘웰빙당’ 새누리당을 승리로 이끌면서 左派들의 野慾(야욕)을 두 번이나 좌절시켰다. 다가오는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朴 후보는 세 번째로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의 命運(명운)이 걸린 乾坤一擲(건곤일척)의 싸움을 하게 될 것이다.
反朴右派의 등장으로 위기에 빠진 박근혜
현재 박근혜 후보는 四面楚歌(사면초가)상태에 있다. 상대는 문재인軍ㆍ안철수軍으로 兩分(양분)되어 그를 挾攻(협공)하고 있다. 또 그 주변에 몰려있는 일부 正常輩(정상배) 참모들의 부정부패로 民心(민심)마저 등 돌리고 있어 그야말로 風前燈火(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해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소위 反朴右派(반박우파, 박근혜를 반대하는 右派세력)들은 ‘홧김에 서방질하는 여자’처럼 민주당과 유사한 정체성을 가진 안철수를 지지하는 등 분열 양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이는 朴 후보 주변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그간 그가 보여준 불분명한 보수우파적 노선이 못마땅하다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을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崩壞(붕괴) 직전에 와 있다. 네 명의 대통령-左派 宿主(숙주) 김영삼 대통령, 김정일을 “識見(식견) 있는 인물”로 치켜세운 김대중 대통령, 대한민국을 노골적으로 조롱하고 모택동을 존경한다고 公言(공언)한 노무현 대통령, 좌파들의 狂亂(광란)을 방치, 결과적으로 左派 득세를 방조한 이명박 대통령-의 20년 통치기간 동안 덩치는 세계 10大 강국으로 커졌지만, 머리는 惡魔(악마)의 논리인 ‘공산주의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腦死(뇌사)상태에 빠져 버렸다.
야당이 던진 프레임 덫에 걸린 박근혜
상황이 이러한데 朴 후보는 左派세력 척결과 관련한 이슈는 꺼내보지도 못한 채 야당이 던진 ‘과거史 프레임’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급기야 先親(선친)인 박정희 대통령의 過(과)를 넘어 功(공)까지 부정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처해 버리고 말았다. 朴 후보는 大選을 불과 3개월도 채 안 남긴 시점에서 치명상을 입은 셈이다.
12월 大選(대선)은 분명 善과 惡의 대결이자 惡魔(악마)와 天使(천사)의 대결이다. 대한민국을 증오하고 簒奪(찬탈)하려는 세력과 대한민국을 지키려는 세력간의 싸움이라는 것이다. 朴 후보가 이 싸움에서 승리하려면 먼저 反朴右派들이 왜 자신에게 등을 돌리고 있는 지를 통렬한 심정으로 반성해야 할 것이다. [정치공학적 勢不利(세불리)에 따라 이리저리 옮겨다니는 反朴右派들의 행태도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무엇보다도 朴 대통령이 이뤄놓은 기적적인 업적을 사실에 입각해 논리적으로 설명만 했어도 이 지경에 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평소 朴 대통령을 존경해온 기존의 보수우파가 그에게 등을 돌리려는 것도 이런 당당하지 못한 처신 때문일 것이다. 朴 후보는 무엇이 두려워 이렇게 수세적으로 대응하는가?
선친의 업적을 홍보해도 박근혜에겐 害가 되지 않는다
반면, 야당이 내놓은 ‘반값등록금’, ‘전세 대책’ 등 복지 관련 부분에서는 전에 볼 수 없는 기민한 대응력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적극성을 先親의 업적을 알리고 左派세력의 本色을 드러내는데 반 만이라도 사용했어야 했다. 朴 대통령의 산업화는 최소한의 희생으로 이뤄진 세계사에서 그 유래를 찾아 보기 힘든 업적이다. 이것은 드러내 놓고 홍보를 해도 나쁠 것이 전혀없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朴 후보는 이것을 외면했다. 야당의 정치공세와 이슈에 끌려다니는 모습은 집권여당 대통령 후보의 위상과 걸맞지 않을 정도로 초라해 보인다.
朴 후보가 先親처럼 自由민주주의 市場(시장)경제 노선을 수호하는 진정한 一流국가의 건설을 꿈꾸도 있다면, 이제라도 저들의 공격에 달라진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이 난국을 헤쳐나갈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