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철, 특히 대선의 경우 적극 지지하는 후보가 있다는 게 이처럼 부러워 본 일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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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란 어차피 최선이 아니면 차선 또 차선마저 없다면 차악이라도 선택해야 하는 게 최악을 피하는 유일한 수단 이라면 당연히 누군가를 지지해서 투표에 임하는 게 집단생활자의 일원 으로서의道理 일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道理를 지키기 위해서 양심에 反하는 투표를 결심 한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양심이 개인적인 문제이고 道理는 집단생활자가 마땅히 지켜야 할 도덕적인 의무라고 한다면 개인의 양심쯤은 일단 접어두고 대세에 순응하는 게 옳겠지만 그게 그렇게 뜻대로 되지 않는 게 또한 나약한 인간의 본능인지도 모르겠다.
이번 대선을 앞두고 참으로 많은 번민을 했다.
1960년의 3.15 부정선거에서 부터 수많은 대선에 참여해 왔지만 이번 대선 때처럼 내가 지지하는 확고한 보수성향의 후보가 없었던 때는 없었다. 2007년 대선에서도 내가 지지했던 한나라당이 선출한 후보가 중도주의자라는 이유 때문에 그를 지지하지 못하고 당선 가능성도 희박했던 확고한 보수 정객인 무소속의 李 某후보를 지지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1945년 초등학생 시절의 해방정국에서부터 6.25를 겪으면서 체질화된 反共 또는 보수 성향이 체질화된 까닭에서 이었는지 확고한 반공 또는 보수성향의 후보가 아니라면 일단 나의 사전에는 내가 지지하는 후보로 점지 할 수가 없었다.
자유대한민국의 국가원수가 되려는 자라면 당연히 확고한 보수우익 성향의 인물이어야만 된다는 고정관념이 나로 하여금 자승자박의 울타리에 갇히게 되었던 것 같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사치스런 선택을 고집해야 할 때가 아님이 현실로 다가왔다.
차선이 없다면 차악이라도 선택해야 할 절박한 상황이다.
제대로 된 右는 못되지만 좌/우가 초박빙의 대결 상황 하에 놓여 있다면 이것은 분명히 위기상황이다. 최악의 상황은 피해야 된다는 나름대로의 판단이 절실해졌다.
마음에는 내키지 않으나 일단 발등에 떨어질 불길은 피해야 훗날을 도모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사랑을 따르자니 스승이 울고, 스승을 따르자니 사랑이 운다' 라는 얘기가 있다.
사랑을 양심의 문제로 본다면 스승은 道理의 문제로 볼 수 있다.
또 양심이 개인의 문제라면 道理는 집단생활자가 지켜야 할 도덕적 가치다.
개인의 양심쯤 잠시 접고 道理를 따른다고 해서 양심을 버리는 게 아니라면 당당히 道理를 따르자. 그리고 후일을 도모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