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大韓民國의 獨立은 ‘독립운동’과 無關한 유엔의 作品
빈사(瀕死)의 박근혜(朴槿惠) 정부가 11월28일 교육부 전용 웹 사이트에 전자책(e북) 형태로 새로운 ‘국정’ 역사교과서 ‘현장 검토본’을 공개했다. 교육부 전용 웹사이트를 통하여 내달 23일까지 시행되는 ‘현장 검토본’에 대한 ‘수렴’ 과정이 끝나면 이를 통해 내용이 확정되는 새로운 ‘초·중·고등학교 역사 교과서’는 내년인 2017년부터 학교 교육에 적용한다는 것이 교육부의 방침이다. 2015 개정교육과정에 따른 교과서의 전면적 교체는 2018년부터 순차 적용될 방침이나 그 가운데 ‘국정화(國定化)’된 역사교과서의 적용만은 시기를 앞당겨 2017년부터 실시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 같이 마련되는 ‘국정’ 역사교과서가 과연 예정한 시기에 따라 각급 학교의 교실에 등장하게 될 것인지의 여부가 예측하기 어려운 깊은 안개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교육부의 ‘현장 검토본’이 공개되는 순간 ‘국정 역사교과서’ 채택 시비가 바야흐로 ‘최순실 게이트’ 논란을 둘러싸고 박근혜 정권의 퇴출(退出) 위기를 절정(絶頂)으로 몰아가고 있는 헌정사상(憲政史上) 최대의 정치적 파동의 격랑(激浪) 속으로 함몰(陷沒)될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이른바 ‘진보사관(進步史觀)’을 빙자(憑藉)하여 역사교과서의 ‘국정화(國定化)에 반대하는 소위 ‘진보좌파’ 지식인 세력과 이들에 편승한 야당 세력은 때 마침 격화되고 있는 군중 시위를 통하여 박근혜 정권을 침몰시키면서 ‘국정’ 역사 교과서도 아울러 수장(水葬)시키려 기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이번에 교육부가 마련한 새로운 ‘국정 역사교과서’가 이 같은 격랑을 헤쳐내고 각급 학교 교실에 안착(安着)하는 데 성공할 것인가의 여부는 앞으로 있을 “국민의견 수렴”과정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의 정당성을 과연 충분하고 분명하게 국민들에게 주지(周知)시키고 납득시킬 수 있을 것이냐의 여부가 그 관건(關鍵)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한 마디로 줄여서 말한다면, 이번 ‘국정’ 역사교과서 발간 문제를 ‘국정’이냐 아니냐의 차원에서 시비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문제의 핵심을 제대로 짚는 것이 아니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이번의 ‘국정 역사교과서’ 등장의 ‘당위성’이 특히 1998년 이래 10년 동안 ‘친북 좌파’ 정권이 지속되는 과정에서 ‘검정(檢定)’ 방식으로 제작된 대한민국의 ‘역사교과서’들이 역사적 사실을 기술함에 있어서 대한민국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시각으로, 그리고 역설적으로 북한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시각으로 편향적으로 기술함으로써 이를 가지고 배우는 학생들을 이념적으로 오도하는 현상이 빚어진 데서 기인(起因)된 것이라는 사실을 우선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에 따라 ';;그릇된';; 교과서를 ';;올바른';; 교과서로 바로잡아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형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국사학계(國史學界)에 만연된 이념적 좌편향 현상으로 인하여 그 동안의 ‘검정’ 방식으로는 그 같은 시정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에 궁여일책(窮餘一策)으로 “역사교과서의 국정화”라는 일시적 비상대책이 강구된 것이다.
‘국정교과서 반대 세력’들은 이번에 ‘현장 검토본’이 공개되기 이전부터 “이번에 마련되는 교과서가 ‘국정’이기 때문에 여기서 다루어진 역사적 사실들이 획일적(劃一的)으로 기술되었다”는 선동적 주장을 들고 나왔었다. 그러나, 공개된 ‘현장 검토본’의 내용은 이들의 주장이 선동일 뿐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국정’ 반대 세력이 지금 시점에서 해야 할 일은, 흥분을 가라앉히고, '열린 마음'으로 이번에 공개되는 ‘국정’ 교과서의 내용이 과연 ‘획일적’인지 아니면 ‘다양성’을 추구하고 있는 지를 판별할 뿐 아니라, 새 ‘국정’ 교과서와 종전 ‘검정’ 교과서의 양자(兩者) 중 과연 어느 쪽이 '올바른 내용'으로, 그리고 어느 쪽이 '그릇된 내용'으로, 역사적 사실을 기술하고 있는지를 판별하는 기회를 갖는 것이 마땅하다.
이번에 교육부가 마련한 ‘국정 역사교과서’ 내용에 관하여 ‘국정 반대 세력’들이, 이미 예상했던 것이기는 했지만, 특히 대한민국의 ‘건국절(建國節)’ 문제를 가장 앞세워 거론하면서 비난하고 나서고 있다. ‘국정 반대 세력’을 대변하는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는 “지난 10여년간 뉴라이트가 줄기차게 주장해 온 ‘1948년이 대한민국 원년(元年)’이라는 이른바 ‘건국절’ 주장을 반영하고 있다”는 누가 보아도 억지임이 분명한 주장을 앞세워 문제의 ‘국정 역사교과서’의 내용을 비판한고 있다. 문제의 <네트워크>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건국절 사관은 항일독립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격하하고 친일파를 건국공로자로 역사 세탁”하는 한편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로, 5.16 군사쿠데타를 ‘근대화 혁명’으로, 박정희의 ‘경제발전과 산업화의 아버지’로 미화하는 ‘역사 쿠데타’”라고 입에 거품을 물고 나서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의 주장이야 말로 <네트워크>가 대변하는 ‘국정 역사교과서 반대세력’의 주장이 얼마나 역사적 진실과 사실에 반하는 날조와 왜곡인가를 웅변해 준다. 이준식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은 28일 ‘현장 검토본’ 공개에 즈음하여 발표한 ‘對국민 담화’를 통하여 이번의 역사교과서는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분명하게 했을 뿐 친일행위를 미화할 의도가 전혀 없었다”고 단언했다. 특히 ‘국정 역사교과서 반대 세력’들이 이번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위한 ‘편찬기준’에서 교육부가 “1948년8월15일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 아니라 ‘대한민국 수립’의 날”로 기술한 것을 들어 “뉴라이트의 ‘건국절’ 주장을 반영한 것”이라고 비난한 데 대해 교육부는 종전의 교과서들이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북한의 (국가) 수립”으로 편향 기술했던 부분을 바로잡은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이번에 공개된 ‘검토본’에 의하면 새로이 마련된 각급 학교 역사교과서에는 ‘건국절’에 관한 명시적 언급이 전혀 없다. 또한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로, 5.16 군사쿠데타를 ‘근대화 혁명’으로, 박정희의 ‘경제발전과 산업화의 아버지’로 미화하는 표현도 등장하지 않는다.
사실은, 우리는 ‘건국절’ 문제에 관한 ‘국정 역사교과서 반대 세력’의 주장이야 말로 역사의 왜곡과 날조에 바탕을 둔 터무니없는 억지 주장이라는 사실을 먼저 인식할 필요가 있다. 먼저 중요하게 인식해야 할 역사적 사실은 1919년4월3일 상해에서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1948년8월15일 서울에서 수립된 ‘대한민국’과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는 별개의 실체라는 것이다. 1948년 ‘대한민국’의 수립이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뿌리로 하여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1910년 조선이 일본에 의하여 강제 합병된 뒤 국내외에서 끊임없는 항일 독립투쟁이 전개되어 온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그 대표적인 사건으로 1919년의 3.1 독립만세운동과 1919년4월23일 상해에서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과 만주에서 홍범도(洪範圖)의 봉오동 전투(1920)과 김좌진(金佐鎭)의 청산리 전투(1920)가 있었고 국내외에서는 강우규(姜宇奎·서울·일본 총독 薺藤實 저격 시도·1919)·이봉창(李奉昌·東京·일본 천황 마차 폭탄 투척·1932)·윤봉길(尹奉吉·上海·일본 天章節 기념식장 폭파·1932) 등의 의거와 미국에서의 이승만(李承晩)의 ‘구미위원부(歐美委員部)’ 활동이 있었으며 만주에서는 김일성(金日成) 등 중국 공산당에 편승한 항일(抗日) 빨찌산 활동 등이 잇달았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들의 활동은 보두가 세력이 미미하여 한반도의 ‘해방’ 및 ‘독립’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것이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다. ‘자력(自力)’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1945년8월15일에 이루어진 한반도의 ‘해방’은 한민족의 ‘독립운동’과는 상관없이 일본제국을 패망시킨 제2차 세계대전 전승국(戰勝國)들의 ‘전후처리’ 방안의 일환으로 이루어졌다. 제2차 세계대전 전승국들이 전후처리의 차원에서 최초로 한반도 문제를 논의한 것은 1943년11월 이집트 수도 카이로에서 열린 미·영·중 3국의 정상회담에서였다. 이 회담에 참석한 프랑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과 윈스턴 처칠 영국 수상 및 쟝제스(蔣介石) 중국 총통은 쟝 총통의 제안을 받아들여 “한국민들의 노예상태를 고려하여 전쟁이 종결되면 적당한 시기(in due course of time)에 그들을 독립시키기로 한다”고 합의한 것이다.
이 합의는 그 뒤에 있었던 ‘테헤란’ 회담(1943년11월), ‘얄타’ 회담(1945년2월) 및 ‘포츠담’ 회담(1945년7∼8월) 등 미·영·소 3국 간의 일련의 정상회담에서 거듭 재확인되었지만 한반도의 ‘독립’을 어떻게 이룩할 것이냐는 데 관해서는 아무런 구체적 합의가 없는 상태에서 1945년8월15일 일본제국의 무조건 항복을 맞이했으며 미·소 양국 간의 합의에 따라 일본으로부터 ‘해방’된 한반도는 ‘해방’과 동시에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하여 진주한 미·소 양국군에 의하여 남북으로 ‘분단’되었다.
한반도 문제에 대한 전승국들의 최종적 합의는 1945년12월 모스크바에서 열린 미•영•소 3개국 외상회담의 몫이 된 끝에 “한국인들의 준비 부족”을 이유로 “즉각 독립”이 아닌 “5개년 신탁통치”와 함께 신탁통치 기간 중 “자치 능력 함양”을 전담할 “과도정부 구성”을 ‘미•소공동위원회’에 위임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그러나, 1946년과 1947년에 열린 ‘미•소공동위원회’가 문제의 ‘과도정부’ 구성에 실패한 채로 결렬되자 미국은 “한국의 독립 문제”(Problem of Independence of Korea)를 1947년 가을 유엔총회 의제로 상정함으로써 한국 독립 문제는 제2차 세계대전 전후처리의 차원을 떠나 유엔의 결정 사항으로 변질되었다.
유엔은 1947년11월14일 채택한 총회결의 112-II호를 통해 한반도에 “유엔 감시 하에 실시되는 인구비례에 입각한 자유 총선거를 통하여 한반도에 독립국가를 건설”하기로 하고 선거 감시와 관리를 위하여 ‘유엔한국임시위원단’(UNTCOK)을 한반도에 파견했다. 그러나, 유엔총회결의 112-II호의 수용을 거부한 소련측의 불허로 UNTCOK이 북한 지역 진입에 실패하자 유엔은 1948년1월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된 임시총회에서 “우선 유엔 감시가 가능한 지역에서 선거를 실시”하기로 결정하였으며 이에 따라 1948년5월10일 38선 이남의 지역에서 총선거가 실시되고 그 결과 같은 해 8월15일 서울에서 “대한민국의 수립”이 선포되었다. 이렇게 되자 북한에서는 같은 해 9월9일 평양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이름으로 대한민국과는 별개의 ‘국가’ 수립을 선포하는 맞불을 놓았다.
이렇게 되니까 한반도에는 2개의 ‘국가’가 출현하게 되었다. 당연히 어느 쪽이 정통성을 구비했고 어느 쪽이 정통성을 결여했는지를 판별하는 문제가 제기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를 판별하는 역할은 당연히 한국 독립의 산파역(産婆役)을 맡았던 유엔의 몫이 될 수밖에 없었다. 유엔은 1948년12월12일자로 채택한 이 역시 “한국의 독립”(Problem of Independence of Korea)라는 제목의 총회결의 195-III호를 통하여 이 역할을 수행했다. 대한민국이 “한반도 상에 존재하는 유일한 합법국가”라고 판정한 것이다.
유엔총회 결의 195-III호는 1항에서 “전체 한반도의 대다수 인구가 거주하고 유엔임시한국위원단의 감시와 자문이 가능했던 지역에 대해 효과적인 통제력과 관할권을 행사하는 합법정부(‘대한민국’)가 수립되었다”면서 이 ‘정부’는 “유엔임시한국위원단의 감시 아래 표출된 그 지역 유권자들의 자유의사에 입각한 정부이기 때문에 한반도에 존재하는 유일한 그러한 (합법적인) 정부”라고 선언함으로써 ‘대한민국’에게 “한반도 상의 유일한 합법국가”로서의 법적 지위를 부여했다.
유엔총회 결의 195-III호 제1항의 영어 원문: Declares that there has been established a lawful government ( the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Korea) having effective control and jurisdiction over that part of Korea where the Temporary Commission was able to observe and consult and in which the great majority of the people of all Korea reside that this Government is based on elevations which were a called expression of the free will of the electorate of that part of Korea and which were observed by the Temporary Commission and that this is the only such Government in Korea |
이 같은 역사의 흐름은 1948년8월15일자 대한민국의 ‘독립’이 한국인 독립 선열(先烈)들에 의하여 산만하게 전개된 독립운동은 물론 1919년4월23일 상해에서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와는 무관한 것임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정치학 이론에 의거한 국가 성립의 기본 요소들인 ① 국토와 ② 국민 및 ③ 주권과 ④ 국제적 인정을 구비하지 못한 ‘운동체’에 불과했다. 결국, 1948년8월15일자 ‘독립’을 통하여 비로소 ‘대한민국’은 ① 국토와 ② 국민 및 ③ 주권과 ④ 국제적 인정을 구비한 ‘독립국가’가 된 것이었다. 유엔총회 결의 195-III호가 ‘대한민국 정부’라는 호칭을 사용했지만 여기서의 ‘정부’는 ‘국가’와 동의어(同義語)였음에 의문의 여지가 없었다. ‘대한민국’의 ‘독립’이 ‘국가’로서의 ‘독립’을 의미하는 것이지 ‘정부’로서의 ‘독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에 이론의 여지가 없다. 결국, 1948년8월15일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독립기념일’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식민통치를 감내해야 했던 한국인의 정서(情緖)에는 이에 대한 죄책감(罪責感) 때문에 독립 선열들의 ‘독립운동’과 대한민국의 ‘독립’ 사이에 무언가 연계(連繫)를 설정하는 것을 거부하기 어려운 심리(心理)가 뿌리내리는 특이한 상황이 조성되었다. 이 같은 심리상태가 1948년 헌법제정 과정에서 당시의 건국 주역들로 하여금 신생 독립국의 국호로 ‘대한민국’을 선택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었다. 이로써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대한민국’ 사이에는 명칭 상으로 연계가 성립되는 토대가 마련되었다. 그러나, 1948년 헌법제정에 참가했던 건국 주역들은 이 양자 사이의 관계에 관하여 놀라울 정도의 냉정을 유지했음을 최초 헌법의 전문(前文)이 보여주고 있다. 1948년7월17일자로 공포된 최초 헌법은 전문에서 ‘상해 임시정부’를 직접 언급함이 없이 “기미(己未)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한다”고 기술하는 데 그쳤다. ‘계승’의 대상을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으로 특정하고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한다”는 표현을 사용하여 대한민국이 “새로이 건설되는 국가”임을 분명하게 한 것이다.
그러나, 건국 이후 70년의 세월이 경과하는 동안 대한민국을 할퀴고 지나간 수많은 정치파동의 격랑들은 대한민국 독립의 성격에 관한 헌법 전문의 표현에도 그 상흔(傷痕)을 남겨 놓았다. 대한민국이 그 동안 아홉 차례에 걸쳐 헌법에 손질을 하는 동안 1980년10월의 제8차 개헌 때까지 전문에 기술된 ‘계승’의 대상은 일관되게 “3.1운동의 위대한 독립정신”이었다. 그러나, 이 표현이 1987년12월의 제9차 개헌 때 이른바 ‘진보 좌파’ 세력의 요구가 수용되어 크게 손질되었다.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한다”로 바뀐 것이다. 그 이후 이 나라의 ‘진보 좌파’ 세력은 헌법 전문의 이 표현을 대한민국의 1948년 독립론을 부정하고 1919년 독립론을 옹호하는 이론적 근거로 적극 활용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말하여, 앞에서 상세히 살펴 본 것처럼, 이들의 이 같은 주장은 허구이다. 대한민국의 ‘독립’은, 독립운동 선열들에게는 송구한 일이지만, 이들의 독립운동과는 상관없이 1948년 유엔을 산모(産母)로 하여 새로이 이루어진 것임에 이론의 여지가 없다. 우리는 독립운동 선열들에 대한 송구스러움 때문에 그들의 ‘독립운동 정신’을 ‘계승’하는 것이지 하나의 ‘독립운동 단체’에 불과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국가’로 의제(擬制)하여 이를 대한민국이 계승해야 한다는 주장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의 억지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교육부가 추진한 ‘국정 역사교과서’의 편찬지침은 대한민국의 “독립”이나 “건국”이라는 직접적 표현을 삼가고 대한민국의 “수립”이라는 신중한 표현을 사용하여 ‘진보 좌파’ 중심의 ‘국정 교과서’ 반대 세력을 무마시켜 보겠다는 고육지계(苦肉之計)를 채택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엄격하게 말한다면, 이번에 사용한 ‘대한민국 수립’ 표현에 관하여 “‘대한민국 정부 수립’ 기술과 ‘북한 (국가) 수립’이라는 기존 ‘검정’ 교과서 표현의 편파성을 시정했다”는 교육부의 구차한 해명은 앞에서 설명된 것처럼 이 나라 독립의 산파역이었던 유엔에 의하여 대한민국이 “한반도의 유일 합법국가”로 공인된 반면 북한은 “불법 국가”로 낙인찍혔다는 역사적 사실에 비추어 볼 때 법적 면책(免責)의 대상이 될 수 없을 정도의 중대한 망발(妄發)이라는 점이 간과될 수 없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현실이다. 오늘날 파경(破鏡) 지경의 살얼음판 정국을 고려한다면 부족한 대로 교육부가 만들어낸 불충분한 내용이지만 이번의 ‘국정 역사교과서’를 잘 지켜내서 향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 계승”이라는 비현실적인 헌법 전문의 표현을 포함하여 이번에 발간되는 ‘국정’ 교과서의 미흡한 부분을 보다 철저하게 보완하는 디딤돌로 삼을 것을 다짐하면서 자칫하면 여기서 주저앉을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교육부 당국의 용기를 북돋아 주는데 힘써야 할 때라고 생각된다.












이동복 선생님,좋은 글 감사합니다.
그러나,제가 보기에 교육부는 이미 국정 역사교과서를 2017년도에 전면 시행한다는
국민과의 약속을 포기한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2014년도에 교학사의 한국사 파동 때 전국 2,352개 고등학교 중 교학사
한국사를 선택한 학교가 全無(2014년:1개교,2015년:0)했던 경험을 알고 있는
교육부가 결과가 빤히 보이는 국정 역사교과서와 검인정교과서 중에서 각 학교가
선택하도록 하는 下策을 검토한다는 것은 국정을 사실상 포기 한다는 것으로 밖에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여론 때문에 그런다는 것도 핑계로 의심 됩니다.
당초 국정을 결정할 때 반대 시위가 격렬했고,국정 교과서를 다 만들었을 때 여론이
좋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만든 것도 아니잖습니까?
교육부 홈페이지에서 ‘올바른 역사교과서’에 대한 의견 수렴을 받는 것도 결과가
뻔합니다.그들은 악다구니 치며 달려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래전부터 역사학계의 좌파 對 우파 인적 구성이 9:1이라는 것은 다 알려진 사실
입니다.국정화 결정 당시 새누리당 대표도 직접 언급한 바 있었습니다.
혹시 교육부 역사업무에 종사하는 공무원의 구성비까지 그렇다 보니 국정농단
여론에 스스로 올라타 이런 下策을 내 놓은 건 아닌지 별 의구심이 다 듭니다.
무엇이 두려워 올바른 것을 올바르게 집행 못하는지 “이게 나라냐?”는 말은
촛불집회 때 쓰는게 아니라 이런 때 써야 하는 말입니다.
올바른 역사는 촛불집회 보다 백배는 더 소중한 가치이기 때문입니다.
진실을 제대로 알려야합니다....이글이 널리 알려졌으면 합니다...
한반도에 살았던, 살고 있는 사람들은 '신'을 좋아 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무슨 일이든 '신이 들려야' '신이 난다' 한반도에 최초로 국가를 건설한 사람은 '단군'이다. 국가 이름은 '단군조선'이다. 한반도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것이 사실이냐, 아니냐라고 따지면 '신들린 것처럼' 악을 쓸 것이다. 한반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대한민국의 수립과정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무엇이 사실이든 관계가 없다. '신'이 나지 않는 딱딱한 진실, 역사는 별로 관심이 없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시위도 '신들린 굿판'이다. 조금 지나 '신'이 빠져 나가면 제정신들이 들 것이다. 시위자들에게 '신'이 그대로 있으면 한반도는 다시 악당의 지배를 받고 '신'이 빠져 나갈 때까지 노예생활을 할 것이다. 일제 시대에 한반도에 살고 있던 사람들이나 지금 북쪽에 있는 사람들 처럼.
참 대단한 식견이십니다.
이런 분들이 만수무강하여
통일조국역사에도 이바지 하길 기원합니다.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애국자 이동복 선생 고맙습니다.
史實과 論理로 빈틈없는 愛國實踐에 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