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마산파출소가 불타 전소됐을 땐 어김없이 정권이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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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에서 나서 이 나이까지 마산에서 살고 있다. 군대 3년을 제외하곤 다른 지역에서 살아본 적이 없다. 그러니 마산 사람을 나만큼 아는 사람도 몇 되지 않는다. 간혹 자기가 마산 토박이라고 우기는 사람이 있는데 그럴 땐 우리가 이렇게 질문해 보고 토박이인지 아닌지 알아낸다. “월남 다리는 어디에 있나?” “봉순이는 어디에 살았나?” “해안도로가 옛날엔 무엇이었나?” 해안도로는 지금 마산에서 가장 넓은 도로인데 6.25 때 美 공군부대 활주로였다. 이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마산 사람은 내가 봐도 갑갑한 인생들이다. 좀체 성을 내지 않고 남과는 싸우려 들지도 않는다. 달리 말하자면 주면 먹고 안 주면 안 먹고, 나가라 하면 나가고 오라 하면 오는 질박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싸웠다 하면 예사로 칼을 뽑아 든다. 성을 내면 반드시 끝장을 보고야 마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 갑갑한 인생들이다.
마산이 분개. 일어섰을 때 반드시 정권이 쓰러졌었다. 이승만 정권도, 박정희 정권도, 전두환 때도 그랬다. 그 소용돌이의 한 가운데에 북마산파출소가 있었다. 이 파출소가 불타 전소됐을 땐 어김없이 정권이 무너졌다. 그리고 그 화염이 신호탄이 되어 전국으로 번져 나갔다. 그 파출소는 3·15 때 불타 전소됐고, 부마사태 때도 그랬으며 신군부 때는 반만 탔다. 그래서 전두환이 제 발로 6·29선언을 했을지 모른다.
민주화의 상징 같았던 이 파출소를 아이러니칼하게도 민주화운동을 했다는 김대중이가 없애 버렸다. 그 파출소 바로 곁에 3·15가 막 끝난 시점에 한 개인이 빗돌 하나를 2층으로 세웠다. 거기에 손수 3·15 정신을 긴 문장으로 새긴 글이 있었다. 몇십 년을 그 자리에 서 있던 빗돌을 파출소를 없애면서 한쪽 구석에 처박아 버려 길 가는 사람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른다. 마산의 기백과 혼을 뽑아 버리는 과정이었던 것이다.
마산의 정신을, 3·15의 정신을, 민주화의 정신을 민주주의를 입에 달고 사는 위정자들이 말아 먹으려 애를 써 왔다 이제 마산이 또 다른 도전에 직면했다. 언필칭 민주화했다는 것들이 도전하고 있다. 마산을 성나게 하지 말라. 끝날을 맞는다.
마산(馬山)을 성나게 하지 말라
- 무학산(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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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2-29, 22:41












馬山 - 3.15 의거의 도화선이 되었던 김주열의 고향, 내 고향 남쪽 바다/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꿈엔들 잊으리요/그 잔잔한 고향 바다…마산을 고향으로 둔 사람이 아닐지라도 눈물 짓게하는 名歌曲 ‘가고파’의 시인 鷺山 李殷相 선생의 고향 - 역사 깊은 合浦, 馬山을 없애고 昌原으로 편입시킨 歷史의 無知함이 놀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