在美교포의 편지/지금은 고개 숙여 징비(懲毖=지난 잘못을 거울삼아 뒤에 닥칠 고난에 대비하는 것)할 때
좌절하지 맙시다. 절망하지 맙시다. 절망은 파멸입니다. 좌절하면 희망뿐 아니라 미래마저 잃게 됩니다. 희망을 잃으면 꿈도 잃습니다. 꿈을 잃지 않는 한 우리는 노천명이‘별을 쳐다보며(詩)’에서 읊은 것처럼, 머리를 들고 별을 쳐다보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분명 내일은 내일을 위한 새로운 태양이 떠오릅니다.
신념을 가집시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반드시 온다>는‘믿음’말입니다. 그러면 오늘의 시련은 오히려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지혜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겪는 이 시련에는 분명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어떤 거룩한 뜻이 있을 것입니다. 그 뜻이 무엇인가를 꿰뚫어 보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킨 뒤 곧바로 가나안땅으로 보내지 않고 광야에서 40년을 훈련시킨 하늘의 뜻이 무엇인가를 헤아리면 거기서 용기와 결단과 결기, 그리고 겸손과 꺾일 줄 모르는 의지(意志)로 가득 찬 희망의 메시지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광야는 시련과 시험과 미래를 위한 훈련의 장(場)이라고 했습니다. 거기서 하늘을 두려워하고 사람(국민)을 두려워하는 법을 배우고, 겸손을 배우고, 진정성의 의미를 배우고, 세상을 바르게 사는 법(정직)을 베우고, 역사의 무서움을 배우고, 바른 정치란 무엇인가를 배우고, 더 나아가 나라를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면 지금 한시적(?)으로 겪는 사련은 오히려 2년 후(대선)를 대비하는 축복의 (場)이 되지 않겠습니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좌절과 절망이 아니라 ‘자기성찰(自己省察)’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과연 이렇게 自由를 만끽하며 살 자격이 있는가를 고민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돼지 목에 진주목거리’란 말이 있습니다. 혹 우리를 두고 하는 말은 아닌지 깊이 고민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과유불급(過猶不及-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이라 했습니다.
기성세대도 그렇지만, 특히 젊은 세대가 깨우쳐야 할 것은, 자기들에게 주어진 특권은, 自由를 공짜물건 취급하며 아무렇게나 마구 낭비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유를 사랑하고 아끼는 데 있다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선배세대들은 국민소득 60불 70불 시대를 살면서도 자유에 대한 고마움을 알았고 아끼고 사랑했습니다. 그들은 주어진 현실을 묵묵히 받아들이고 미래를 위해 젊음을 바쳤습니다. 60불, 70불 시대를 사는 그들에게 왜 불평불만이 없었겠습니까? 하지만 그들에게는 여러분에게 없는 눈높이에서 세상을 보는 지혜가 있었습니다. 그 지혜가 바로 오늘의 영광을 가져온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지금 국민소득 3만 불 시대를 살며 방종에 가까우리만큼 자유를 만끽하면서도 불만에 가득차 ‘헬 조선’을 말합니다. 만약 선배세대들이 여러분과 같은 패배의식과 돈 몇 푼에 영혼을 파는 거지근성(노예근성)에 젖어 ‘헬 조선’의 사고(思考)에 빠져있었다면 결코 오늘의 위대한 대한민국은 불가능했습니다.
이번 4.15총선에서 자유우파세력의 완패(完敗)는 현실(사실)입니다. 대한민국 건국 후, 처음 겪어보는 참극입니다. 지금은 고개 숙여 징비(懲毖=지난 잘못을 거울삼아 뒤에 닥칠 고난에 대비하는 것)하며 받아들여야 할 때입니다.
함석헌 선생은 1958년‘사상계(思想界)’ 8월호에‘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는 기고문에서 6.25라는 엄청난 민족의 시련을 겪어도 그 시련의 뜻을 깨닫지 못한다고 힐책하며“역사적 사건이 깨달음으로 되는 순간 그것은 지혜가 되고 힘이 된다”고 했습니다. 값비싼 교훈으로 삼아야 합니다.
왜 국민으로부터 외면당했는지를 깊이 뉘우쳐야 합니다. 자유우파의 광장에는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비전, (현실을 바로 보며 장기적인 전망을 가지고 현재와 미래와의 사이에 다리를 놓는) 그런 비전(vision)이 없었습니다.
아무런 감동도, 매력도 없었습니다. 침묵하는 다수도 없었고, 중도우파도 없었습니다. 이승만 광장과 대한문 앞에 태극기와 성조기 바람은 거세게 불었지만, 열매는 없었습니다. 무엇이 잘못 됐는지 징비해야 합니다.
덧붙여 말하자면 ‘국익(國益)을 위한 싸움’을 했느냐, ‘사익(私益)을 위한 싸움’을 했느냐를 양심 걸고 반성해야 합니다. 금배지에 집착하면 노예(파멸)가 되고, 놓으면 자유(생명))가 된다는 단순한 진리를 저버린 업보(業報)라는 사실(현실)을 정직하게 받아들일 때, 하늘도 도움의 손길을 뻗힐 것입니다.
‘불의(不義)에 항거하는 음성은 결국 하늘에 가 닿는다’고 했습니다. 진정어린 ‘자기반성’이 있을 때, 그 정성 역시 하늘에 가 닿을 것이고, 새로운 태양은 기적처럼 떠오를 것입니다.
잘 알려진 이야기지만, 여러분의 새로운 국가관, 역사관, 정체성 확립에 도움이 될 것 같아 개혁과 진보를 외치며 국민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었던 케네디 대통령의 취임연설 한 토막을 소개합니다.
“---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조국이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묻지 말고, 여러분이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자문해 봅시다. 세계의 시민 여러분, 미국이 여러분에게 무엇을 할 것인가를 묻지 말고, 우리가 함께 인간의 자유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자문해 봅시다.
(And so, my fellow Americans: ask not what your country can do for you-ask what you can do for your country. My fellow citizens of the world: ask not what America will do for you, but what together we can do for the freedom of man.)
이미 역사가 된 케네디 대통령의 연설은 우리에게 귀중한 메시지(교훈)를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국가에 대한 사랑’입니다. 오래 전에 도스트엡스키도 같은 말로 러시아사람들의 정신을 깨우친 일이 있습니다.
결코 좌절하지 맙시다. 떨치고 일어나야 합니다. 소금 3%가 바닷물을 썩지 않게 하듯이, 살아있는 자유우파 41%는 반드시 죽어가는 대한민국(사회주의, 공산주의 세상이 되는)을 살려낼 것입니다.
양동안 교수는 1988년 ‘현대공론(現代公論)’ 8월호에 <이 땅의 우익(右翼)은 죽었는가>라는 글을 발표해, 자유우파뿐 아니라 종북좌파들 사회까지 발칵 뒤집어 놓은 일이 있습니다.
글 내용은 이렇습니다. 날이 갈수록 확대되는 좌익세력과 날로 거세지는 좌익들의 도전에 제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하는 우익세력을 향해 “이런 상황이 계속될 경우 처음에는 좌익세력과 제휴한 세력의 정권이 들어서고, 그 다음 단계에는 좌익세력이 주도하는 연합세력의 정권이 들어서고, 궁극적으로는 완전한 좌익세력의 정권이 들어설 것”이라는 경고의 글이었습니다.
결국 양동안 교수의 경고가 우리의 현실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새로운 출발은 ‘정치란 조국에 대한 사랑’이라고 일러준 도스토앱스키의 가르침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정치는 인격을 갖춘 자에게만 허용되어야 한다’는 유교의 기본정신이 우리의 시대정신이 돼야 합니다.
그뿐 아니라 ‘정치꾼’과 ‘정치가(人)’을 가려내는 작업도 철저하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번 패배 원인 중 가장 큰 원인은 정치꾼들의 사익(私益)을 위한 정치와 통합당의 ‘이념 비빔밥’에 있다는 것이 정답입니다.
그리고 또 중요한 일은 저들의 기세에 주눅 들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로마인 이야기’로 잘 알려진 시오노 나나미는 “혼란은 패배한 뒤에만 오는 것이 아니라, 승리한 뒤에도 찾아오는 것이 혼란이다”며 “승리한 뒤에 오는 혼란이 더 위험하다”고 했습니다. 벌써 저들은 혼란에 빠져 자중지란(自中之亂)을 겪고 있습니다. 저들의 오만 역시 극에 달해 있습니다. 겸손이 바래면 오만이 되고, 오만이 성하면 파멸을 가져오는 법입니다.
<대구시민은 독립해서 일본으로 가라>. 자유우파 세력이 대구에서 거둔 승리에 대한 불만을 이런 식으로 표출한 친노(親盧) 그룹의 한 여인은 그래도 시인(詩人)이라는 명함을 가진 지성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정신에 쓰레기가 꽉 차있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좌파에 물들면 이렇게 저질인간이 된다는 것을 실증(實證)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 하겠습니다.
‘생각하는 데 있어서 사악함(思無邪)이 없는 것이 詩’라고 했습니다(孔子).그런데 김정란은 사악함의 극치입니다. 이런 것이 쌓여서 저들의 파멸은 분명히 상상 밖으로 앞당겨질 것입니다. 시오노 나나미가 말하는 승리 뒤에 오는 혼란이 더 위험한 이유입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자신을 위한 정치가 아니라 자신의 아들, 딸들의 미래를 위한 정치를 해야 합니다. 그것이 진보고, 개혁이고, 변화이고, 자유우파의 가치입니다.
이제는 변해야 합니다. 변화가 절실한 시대입니다. 변화는 과거의 실수로부터 교훈을 얻을 때, 가능한 것입니다. 스펜서 존슨은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과거에 치즈를 찾는 데에 성공적이었다고 해서 현재에도 같은 지도(地圖)를 사용하고 있다면 미래에는 새 치즈를 찾지 못할 수도 있다.” 그렇습니다. 새 치즈를 찾기 위해서는 새 지도가 필요합니다. 그것이 바로 변화입니다.
이처럼 힘든 역경을 겪을 때는 변화를 희망해야 합니다. 오늘의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는 지혜도 변화에서만 얻을 수 있습니다. 생각을 바꾸는 것도 다른 형태의 변화입니다. 생각을 바꾸면 세상이 바뀝니다. 생각을 바꾸면 행동이 바뀝니다. 행동이 바뀌면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이 다 바뀝니다.
자유우파(보수)가 사는 길, 바로 변화 속에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성찰 속에 있습니다. 통합당을 비롯해 자유우파에게는 보수의 기본 가치인 헌신과 자기희생 정신이 없습니다. 이것을 솔직히 인정해야 합니다. 그 바탕 위에서 모든 패러다임을 새로 짜야 합니다.
이상화 시인은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며 비관적 울분을 토했지만, 생각의 전환과 함께 과거의 틀에서 벗어나 모든 패러다임을 새로 짜나간다면, <빼앗긴 들에도 봄은 반드시 옵니다>. 좌절하지 맙시다. 절망하지 맙시다. 희망을 가집시다. 승리는 역경을 이겨내는 자의 몫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조갑제 선생의 ‘미래한국당’을 위한 ‘미래설계도’를 적극 환영합니다. 지금의 ‘미래통합당’은 이미 새 치즈를 찾는 데는 오히려 해(害)가 되는 낡은 지도입니다. 우리에게는 새 시대를 위한 새 지도가 필요합니다.
새 지도와 함께 반드시 새롭게 태어나야 할 것은 ‘정치꾼(politician)’이 정치가(statesmen)로 탈바꿈 하는 것입니다. 제임스 프리먼 클라크의 이론을 빌릴 필요 없이 ‘정치꾼은 자신을 위한 정치를 하고, 정치가는 국가를 위한 정치를 한다’고 구분하는 것이 우리에게는 보다 현실적인 것 같습니다.
정치꾼이 정치가로 변신할 때, 촛불혁명 정권으로부터 앞당겨 봄을 찾아올 수 있습니다. 그 ‘봄’을 위해 하나가 돼야 합니다. 이승만의 귀국 제1성,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의미가 이처럼 무겁게 들릴 때는 없었습니다. 빼앗긴 들에 봄을 가져오기 위해 하나가 돼야 합니다.
소금 3%가 바닷물을 썩지 않게 하듯이 자유우파 41%가 반드시 미친 운전자에게서 핸들을 빼앗아버릴 거라는 ‘믿음’을 잃지 맙시다. 모두가 사는 길, 여기에 있습니다.
2020. 4. 24.
새 시대를 위한 새 지도(地圖)가 필요합니다
- 최응표(뉴욕에서)
-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2020-04-26, 00:15












최응표 애국자
수고 하십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