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년 전 국회에 지역구 조정위원으로 추천되어 간 적이 있었다. 단순한 방청객이나 공무원 답변팀으로 갈 때와는 잠시지만 대접이 다른 것 같았다. 입구에 직원이 나와 안내를 하고 상임위원회가 열리는 넓은 방의 국회의원들이 앉는 좌석에 앉아서 회의에 참가했다. 바로 옆에 그 후 서울대학교 총장이 된 분이 앉아 있었고 이름과 얼굴이 알려진 각 분야의 사회 명사들이 있었다. 순간 마음이 우쭐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인구가 줄어든 지역은 지역구도 국회의원도 줄어들어야 했다. 그런 곳의 국회의원들이 허리를 굽히고 굽실거리는 모습이었다. 왜 사람들이 국회의원이 되려는지를 알 것 같았다.

사람 손에 칼이나 몽둥이만 쥐어져도 태도가 달라진다고 한다. 사람에게 권력의 황금관을 씌워주면 걸음걸이부터 시작해서 인간 자체가 달라진다고 했다. 그래서 예전부터 불에 모여드는 나방떼같이 선거철이 되면 사람들이 정치판으로 몰려드는 것 같다.

종로구 국회의원을 했던 한 고교 선배는 “당선이 되면 왕 대접을 받는데 왜 그걸 안 해? 대통령 꿈을 꿀 수도 있고 말이야”라고 했다. 예전에 내가 우연히 만났던 장관이나 민정수석출신 거물급 의원들은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국회의원을 해보니까 이것만큼 좋은 직업이 없어요. 아무것도 책임질 일이 없고 큰 소리만 치면 되는 거에요. 이만큼 편하고 좋은 일이 어디 있나?”

내가 본 껍데기의 일면이었다. 정말 헌신적으로 일하는 의원들도 봤다. 화장실법 하나를 만든 국회의원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깨끗한 화장실을 가진 나라가 됐다. 자전거법 하나를 만든 의원 덕으로 전국의 강가에 자전거 도로가 만들어지고 사람들이 아름다운 여행을 할 수 있게 됐다. 국가와 민족이라는 거창한 명분보다는 작은 법률 하나라도 실제로 만드는 게 중요했다. 유대인에게 모세의 율법은 그들을 그들답게 하는 하나님의 최고의 선물이었다. 권리만을 만끽하려는 사람들 때문에 국회에서 살아있는 법의 생산이 잘 되지 않는 것 같다. 우연히 거의 이십 년 전에 있었던 가수 나훈아의 인터뷰 기사를 읽었다. 월간조선에 실렸던 글이었다. 정치권에서 인기가수인 그를 영입하려던 것 같았다. 그가 이렇게 말했다.

“여당의 당직자인 분이 저보고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정치를 하라고 했어요. 그래서 제가 국가와 민족을 위한다면 노래를 불러야 한다고 했죠. 그러면서 그분께 제가 되물었어요. 내 노래 ‘울긴 왜 울어’를 세상에서 누가 제일 잘 부른다고 생각하시느냐구요. 마이클 잭슨이 저보다 그 노래를 더 잘 부를 것 같으냐고 물었죠. 그랬더니 ‘그 노래야 나훈아 선생이 최고로 잘 부르죠’라고 말씀하시더라구요. 그래서 내가 ‘그러면 내가 뭘해야 합니까? 정치를 해야 합니까 노래를 해야 합니까? 라고 했었죠.”

그 속에 깊은 진리가 담긴 말이었다. 나훈아가 이렇게 덧붙였다.

“저를 끌어들이려는 여당 중진은 ‘저놈이 인기 있으니 당선되겠다 그러면 우리 당이 한 석 더 차지한다’ 이런 생각만 하고 왔을 게 아닙니까? 정치를 한다는 사람들 참 미워요.”

그는 그렇게 정치권의 유혹을 뿌리친 것 같다. 그의 한 마디에서 많은 걸 느꼈다. 소설가 이문열씨는 당에서 공천을 주겠다는 말에 화를 냈다고 전해 들었다. 전두환 정권의 일등공신이던 이학봉씨가 살아있을 때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새로 민정당을 만드는데 새로운 인재가 필요했어요. 그래서 하루는 경성방직의 사장을 하던 김용완씨를 보자고 해서 국회의원이 되시라고 했죠. 그랬더니 그 분이 하는 말씀이 자신은 회사에 들어가 경영인으로 시작했으니까 경영인으로 끝내게 해달라는 거에요. 참 욕심 없는 올곧은 분이라고 속으로 생각했죠.”

성경 속의 다윗왕에게는 많은 용사들이 있었다. 왕이 그들에게 지시한 직책에 따라 장군도 있었고 문지기가 된 자도 있었다. 하나님이 각자 그 능력과 쓸모에 따라 자리매김을 했다고 믿는다. 뒷골목의 개인 변호사로 출발한 나는 그 직업이 나의 분깃이라고 생각한다. 각자 천직에 충실하면서 더 이상 다른 것을 추구하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과 비교할 필요가 없어지지 않을까. 그럴 때 번뇌가 있을 수 없다. 그리고 푹 쉬게 된다. 그것이 무위의 마음이고 자신의 중심에 이른 마음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