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잡은 여인들 '역사속의 여인천하(女人天下)'

추미애의 노발대발이 문재인 정권에는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까 궁금하다. 시국(時局)이 어지러우면 나타나는 현상 중의 하나로 권력에 오염된 여인들의 탐욕과 날뜀이 있다. 그 탐욕(貪慾)과 날뜀은 후일 '여인천하(女人天下)'란 이름으로 역사에 남는다. 한 가정의 몰락은 물론, 한 사회와 왕조(王朝)의 멸망까지로도 이어진다. 그 사례를 중국과 우리나라에서 살펴보자.

중국에선 당(唐)나리의 측천무후(則天武后)와 청(淸)나라의 서태후(西太后)가 유명하다. 측천무후는 중국에서 유일하게 여성으로 황제가 된 인물이다. 당나라 고종황제의 황후로 병약한 고종을 뒷전에 앉혀놓고 고종이 죽을 때까지 29년 동안 실제로 국사(國事)를 좌지우지했다. 그녀는 또 황태자들을 연이어 폐위(廢位)시키며 사실상 실권을 장악하기도 했다. 끝내는 서기 690년 국호를 '주(周)'로 바꾸고 15년 동안이나 나라를 다스리기도 했다.

서태후는 함풍제의 후궁(後宮)으로 섭정(攝政)을 통해 권세를 누렸고 제2차 아편전쟁과 무술정변 등 기울어가는 청나라를 더욱 어렵게 만든 여인이다. 고려 제31대 공민왕의 왕후인 원나라 위왕의 딸 '보탑실리'는 공민왕을 정신적 갈등과 사랑병으로 몰락하게 만든 여인이다. 공민왕은 그녀가 죽은 뒤부터 상심하여 정사(政事)를 돌보지 않고 친히 왕비의 진영(眞影)을 그려 벽에 걸어놓고 왕비의 죽음을 애도하며 몸부림쳤다. 한편 불사(佛事)를 일으켜 혼제(魂祭)를 지내고 화려한 영전(靈殿)을 짓기도 했다. 슬픈 역사와 힘없는 나라의 설움속에서 한 여인을 지극히 사모하다 못해 공민왕은 죽음에 이르렀고 고려는 기울어지는 경국(傾國)의 길로 접어들었다.

조선왕조에서도 수많은 여인들이 왕이 된 남편과 아들의 그늘에서 섭정 등으로 권력을 휘두르며 세상을 난장판으로 만든 사례가 허다하다. 특히 제26대왕 고종의 민비(閔妃)는 고종 즉위 이후 명성황후(明成皇后)로 칭해졌다. 그녀는 19세기 말 국내외적으로 혼란한 시대상황에서 고종을 제치고 정치와 외교적 영역을 확대했으나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망국의 왕비가 되고 말았다. 일본 자객(刺客)들에 의해 시해(弑害)당하는 불운을 맞았다.

자유당의 몰락을 불러온 3·15 부정선거는 이승만 대통령의 러닝메이트였던 이기붕(李起鵬) 후보를 부통령에 당선시키고자 자행했다가 자유당의 몰락이란 참화를 불러 왔다. 이기붕의 막후에 그의 부인 박마리아가 있었다. 이승만 후보는 강력한 경쟁자였던 민주당의 조병옥(趙炳玉) 후보가 선거운동 도중 미국 육군병원에서 별세했기 때문에 무리하게 선거를 부정으로 몰고 갈 이유가 없었다. 오로지 민주당의 장면(張勉) 부통령 후보를 낙선시키고 이기붕을 부통령으로 당선시키고자 무리하게 부정선거를 획책한 것이 자유당 정권의 몰락을 가져오게 한 것이다. 이기붕과 박마리아 등 일가족은 장남 이강석군이 피스톨로 극단적 선택을 함으로써 비극적인 막이 내려졌다.

비록 앞에 열거한 여인들과 같은 급수의 반열에 오르지는 못하지만 '여인천하'는 지금 대한민국에서도 전개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추미애 법무부장관이 장본인(張本人)이다. 추미애는 장관이 된 뒤 '검찰개혁이 역사적 사명'이라고 천명했다. 추미애의 칼날은 구정권의 적폐(積弊)청산에 앞장섰던 윤석열 검찰총장과, 살아있는 권력도 척결 대상으로 삼는 검사들을 향했고 그들을 하방(下放)시켰다. 검찰총장에게 여러 차례 수사지휘권을 박탈하는 강권을 행사하기도 했다. 검사들뿐만이 아니고 국정감사장에서 국회의원들에게 대들며 날카로운 이빨과 독설을 보이기도 했다. 국회의원들을 마치 아랫사람 다루듯 하며 히스테리를 보이며 '소설'과 '장편소설'을 쓰기도 했다.

추미애는 검찰총장뿐만이 아니라 평검사들과도 '커밍아웃' 전투를 벌이고도 있다. 추미애 장관의 검찰에 대한 관리감독권 행사가 정도를 넘었고 검찰개혁은 실패했다고 검사들은 지적했다. 검찰개혁은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평검사들의 지적과 비판에 대해 추미애는 "커밍아웃이 검찰개혁의 정답"이라며 SNS 전선에서 수백 명의 검사들과 결투를 벌이고 있다. 여론은 추미애가 평검사들과 다투는 것은 장관답지 않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비록 왕후나 여황제급은 못되지만 장관급 추미애가 역사에 어떤 여인으로 평가되고 기록될지 궁금해 하는 국민들이 너무도 많다. 나뭇잎 하나 떨어지는 것을 보고 가을이 왔음을 안다고 노래한 옛시인의 말대로 추미애의 노발대발이 문재인 정권에는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까 궁금하다. 선현(先賢)들이 이르기를 "집안이 어려우면 어진 아내가 생각나고(家貧卽思良妻) 나라가 어려우면 현명한 신하가 생각난다(國難卽思賢臣)"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추미애는 현명한 장관이 될까? 아니면 말썽꾸러기 장관이 될까? 후세의 사가(史家)들이 제대로 기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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