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천하의 애국자요 천하의 교육자요 천하의 시인에서 천하의 친일파로 끌어내려지고 말았다.
오늘 우리 지역 신문의 행패를 보고 분통이 터져 이 글을 쓴다.
헌법전문은 이렇게 시작된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이 구절은 역사와 전통을 숭상하는 이들이 썼을 것이다. 요사이 사람이 쓴다면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빼버리지 싶다. 지금의 젊은 사람들은 역사와 전통, 관례와 전고 같은 것을 귀찮아하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좋아하지도, 가치롭게 받들지도 않을 듯하다. 초·중·고등학교 교가를 바꾸는 작업이 벌어지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교가의 작곡자나 작사자가 친일파라서라는 이유이다. 억울한 친일파도 많고 엉터리 독립투사도 많은 게 사실이다. 그런데도 억울한 친일파에게는 가혹하게 대하고 엉터리 독립투사에게는 묻지마 존경을 바치는 것이 지금의 빗나간 세태이다.
식민지의 아들이면서 어쩌지 못해, 보기에 따라서는 친일적일 것 같기도 한 詩 하나 썼다고 하여 만고의 죄인이 되는 요즘이다. 이런 맥락에서 역사와 전통을 팽개치는 교가 변경이 유행한다. 이렇고 보니 요사이는 어쩐지 모르겠다만, 우리가 학생일 때는 우리 지역의 초·중·고등학교 교가는 99.999% 이은상(李殷相) 씨가 작사한 것이었다. 이런 사실을 그때는 자랑과 긍지로 여겼다. 그 분을 악착스레 존경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학생만 그랬던 것도 아니고 지역민도 거의 다 그랬다. 그 시절에는 이은상 씨가 이 지역 출신 인사 중에서 가장 존경받았던 것이 또한 사실이다. 그러던 어느날 느닷없이 이은상 친일 및 친일파 옹호 행적이 발견되었다는 말이 나왔고 친독재 행적이 있다는 말도 나왔다. 이때를 깃점으로 이은상 씨는 천하의 애국자요 천하의 교육자요 천하의 시인에서 천하의 친일파로 끌어내려지고 말았다.
우리 지역에도 시립도서관이 많다. 우리 동네 도서관(20만 권 소장)에는 없는 책이 옆 동네 도서관에는 있는 경우가 있다. 이때는 신청만 하면 그 도서관에서 우리 동네 도서관에까지 가져다주기도 한다. 이렇게 선한 사람들이 선하게 도서관 일을 맡아 한다. 그러나 우리 지역 전체 도서관에 '이은상 시집' 하나가 없다. 이은상과 관련된 서적이 단 한 권도 없는 것이다. 도서관이 문을 연 지 오래되었으니 원래부터 없기야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은상에 대한 말들이 생겨난 이후, 이은상 관련 서적을 도서관마다 두지 말자는 의논을 하지 않고서야 전체 도서관에 그 책 하나가 없을 수가 없다. 혹 시청에서 불태워버리고 도서목록에서 삭제해 버렸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지역 도서관이 이 지역 출신 시인의 시집 하나 구비하고 있지 않으니 부끄러운 일이다. 다음은 우리 지역에서 발간되는 신문에 실린 기사이다.
《마산의 인물·역사를 다룬 창작연극 ‘도시의 얼굴들’에 출연하게 될 지역 배우 공모가 시작됐다. 창원시(옛 마산)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거점으로 옥기환, 명도석, 김명시 등 많은 독립지사들이 독립운동을 펼친 도시이며, 근현대사에 들어서는 3·15의거, 부마항쟁 등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 일어난 곳이다. 더불어 ‘고향의 봄’ 이원수, ‘꽃’ 김춘수, ‘귀천’ 천상병 등 저명한 문학가들이 문학의 터를 닦은 곳이기도 하다》
신문이 소개한 ‘저명한 문학가’에 이은상 씨는 안 보인다. 이은상 씨를 이 지역 출신 문학가로 쳐주지 않은 것이다. ‘마산의 인물’로도 넣어주지 않았다. 이 지역 신문이 이럴 수가 있나? 시인이든 기자든 글로써 입에 풀칠한다. 같은 처지이면서도 저렇게 박대하니 글을 쓰는 사람 같지 않은 모습이다. 설사 정치인이 그러더라도 문학가는 그래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문학가랄 수도 없고 그런 문학가가 자유로운 영혼을 그릴 수도 없다. 문학은 악인에게서도 선한 마음을 찾아내고 선인에게서도 악마성을 그려내지 않는가? 또한 그것이 문학이지 않은가?
시청에서 큰 돈을 들여 '노산문학관'을 지어놓고는 수년째 철창을 하여 잠가놓았다. 결국 '마산문학관'으로 개명하여 열었다. '가고파 시비'에 일부 극렬 반일파가 똥물을 끼얹는 바람에 시비를 치워버렸다. 그래서 ‘똥물 애국’이란 비웃음을 샀다. 노비산 아래에 있으면서 결코 마르지 않는 샘. 이은상이 오며가며 떠먹고, 밥 지어 먹던 '은상이샘'은 메워 버렸다.
이런 분위기라서 우리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노비산이라는 산 이름을 바꿀까 겁이 나서이다. 이은상의 호는 잘 알려진 대로 '노산(蘆山)'이다 노산은 노비산이라는 산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이은상은 이 산기슭에서 성장했다. 날마다 산에 올라가서 놀았다고 한다. 지금은 온통 아파트와 주택이 들어섰고 앞바다도 보이지 않지만 그때는 언덕보다는 높고 산이랄 수는 없는 자그마한 동산이었다. 그 먼당에 오르면 가고파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고 손에 잡힐 듯 가깝다. 이 산마루에 앉아 놀며 한국의 명작 '가고파'의 영감을 얻었을 것이다.
노산문학관을 지우고, 가고파 시비를 지우고, 은상이 샘을 지우고, 지역 출신 인사 명단에서 지우고, 문학가 명단에서 지우고, 도서목록에서 지우고, 시민 축제 이름에서 '가고파'를 지웠다. 남은 것은 오로지 노비산이란 산 이름이다. ‘노산“이 연상된다는 핑계로 산 이름도 딴 걸로 하지 싶다. 이러다가 우리에게 무엇 하나 남아나리. 그러면서도 입으로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다'다. 우리는 친일파가 될지라도 유구한 역사와 전통은 지키고 싶다. 반일파는 반일에 열심이면서 유구한 역사와 전통은 지워 버린다. 우리가 대체로 3절까지만 아는 '가고파' 전체를 올려 본다.
내 고향 남쪽 바다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
꿈엔들 잊으리오 그 잔잔한 고향 바다
지금도 그 물새들 날으리 가고파라 가고파.
어릴 제 같이 놀던 그 동무들 그리워라.
어디 간들 잊으리오 그 뛰놀던 고향 동무
오늘은 다 무얼 하는고 보고파라 보고파.
그 물새 그 동무들 고향에 다 있는데
나는 왜 어이타가 떠나 살게 되었는고
온갖 것 다 뿌리치고 돌아갈까 돌아가.
가서 한데 얼려 옛날같이 살고지고
내마음 색동옷 입혀 웃고 웃고 지내고저
그 날 그 눈물 없던 때를 찾아가자 찾아가.
물 나면 모래판에서 가재 거이랑 달음질하고
물 들면 뱃장에 누워 별 헤다 잠들었지
세상 일 모르던 날이 그리워라 그리워.
여기 물어 보고 저기 가 알아 보나
내 몫엔 즐거움은 아무데도 없는 것을
두고 온 내 보금자리에 가 안기자 가 안겨.
처자들 어미 되고 동자들 아비 된 사이
인생의 가는 길이 나뉘어 이렇구나
잃어진 내 기쁨의 길이 아까와라 아까와.
일하여 시름 없고 단잠들어 죄 없는 몸이
그 바다 물소리를 밤낮에 듣는구나
벗들아 너희는 복된 자다 부러워라 부러워.
옛 동무 노젖는 배에 얻어 올라 치를 잡고
한바다 물을 따라 나명들명 살까이나
맛잡고 그물 던지며 노래하자 노래해
거기 아침은 오고 거기 석양은 져도
찬 얼음 센 바람은 들지 못하는 그 나라로
돌아가 알몸으로 살꺼니아 깨끗이도 깨끗이.
이은상(李殷相) 시집이 없는 馬山의 도서관
- 무학산(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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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1-29, 23:00












못할 말 이다만,
人倫破壞 빨갱이들에
三代餘殃이 있을진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