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윤정희

구경꾼의 가슴은 더욱 찢어지고 제 정신인 사람만 서러워진다. 윤정희는 나의 베아트리체였다. 얼굴에 솜털이 나기 시작하고 무언가 세상 일에 짜증을 낼 나이쯤, 단테의 말을 빌리자면, “그때부터 사랑이 내 영혼을 압도”했던 것이다. 윤정희에게 물어볼 말도 많았다. “하루에 몇 시간을 자며 영화 말고 실제로는 어떻게 생활합니까?” “다른 사람들처럼 밥도 먹고 또 화장실에도 갑니까?” 이런 것들이었는데 그 대답을 스스로 만들어 내기도 했다. 조금 더 나이가 들자, 그와 함께 이 세상에 살고 있음에, 이 세상을 보랏빛 베일을 통해서만 보게 되었다. 이 세상이 피안(彼岸)으로 보였고, 도화원(桃花源) 같았고 무하유(無何有) 같았다.

이윽고 내 자식이 저 때의 나보다 나이가 많아졌지만 그래도 내 마음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이태 전, 신문을 통해 윤정희가 치매를 앓고 있음을 알았다. “오늘 촬영은 몇시냐?”고 묻는다는 보도에는 가슴이 먹먹했다. 그리고 신문에는 내 가슴에 간직된 22살의 윤정희가 아닌 쭈그렁이 할머니가 있었다. 긴 한숨을 지으며 그 신문을 찢어 버렸다.

윤정희는 여전히 우리나라 국적자이며 항상 돌아와서 살고 싶어했다고 한다. 그가 독한 치매를 앓는 채, 남의 나라 프랑스 한구석에 방치돼 있단다. 돌 보는 이 없이, 남편과 딸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의혹이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올라왔는데 윤정희를 구해달라는 내용이었다 한다. 저 청원인 앞에서 너무나 부끄럽다. 그녀를 베아트리체로 삼았던 사실만으로도 나서서 도와야 할 텐데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에 나 자신이 미워지고 증오스럽다. 이때만은 내가 권력자가 아님에 분하고 억울하고 통분하다.

우리는 그날 밤, 윤정희가 기자의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손으로 막던 사진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프랑스에서 활동하던 어떤 피아니스트와 윤정희가 연애를 했고 피아니스트의 집안에서 윤정희와의 결혼을 반대한다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졌다, 집안에서 반대하자 그 남자도 결혼할 생각이 없다는 소문도 돌았다. 그러자 윤정희가 그 남자를 만나 따지는 날 밤의 광경이었다. 마침내 아름답게 결혼했다. 그때 우리는 “천하의 윤정희가 무책임해 보이는 사람에게 매달릴 게 무어람” 생각했다 (이상은 그 당시에 보도되었던 내용임.)

윤정희는 원하는 사람과 결혼하는 소원을 이루었다. 딸도 낳았고 한평생 다복하게 살았다. 무슨 여한이 있으랴. 하물며 세상을 잊는 병을 얻었으니 무슨 사부하한(死復何恨)이 또 있으랴. 그래서 구경꾼의 가슴은 더욱 찢어지고 제 정신인 사람만 서러워진다. 윤정희가 버림받았다는(?) 소식에 제행무상. 제법무아. 허무적멸. 유위전변. 일체유위 같은 씩씩하지 못한 낱말들이 도리어 우리를 위로한다.

윤정희와 우리는 동시대 사람들이다. 같은 하늘 아래서 같은 공기를 마셔온 사람들인 것이다. 이 세대가 간첩도 받는 그 흔한 문화훈장 하나를 윤정희에게는 주지 않았다. 우리가 얼음장처럼 차갑게 살아온 것이 아닐까? 프랑스도 문화훈장을 수여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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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유의메아리 2021-02-10 오전 10:56

    같은시대를 살아온 한 촌노로써 당시를 한번 되새겨본다 당시 초인기 연기자로서 한국의 영화계를 충미하든 윤정희씨 백모씨와 결혼하는것이 왠지 좀 어색해보얐다 뭐엔가 쫏기듯이 결혼하는듯 보였다 이제 인생의 황혼기를 맞이하는 이지음의 그녀의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에 넋이나가고 어리둥절해진다 청와대 계시판에 SOS를 보낸 모양인데 이 국민배우의 말년을 우리국민들 모두가 따뜻하게 모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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