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몰래 가보고 알게 된 허구(虛構)들

1986-1990년, 중국 산간벽지 마을이 평양보다 더 잘살았다 월경했다 걸리면 반역자로 처벌, 정치성 없는 월경이라도 최소한 3년 징역이다. 그럼에도 진리를 알고 싶어 모든 위험 무릅쓰고 야밤을 틈타 넘어가 보았다(1986년 2월).

중국을 가보는 순간 나의 첫 느낌은 웬 놈의 애국심은 높아서인지 <우리는 큰일 났구나!?>였다. 훗날 김포공항에 들어설 때는 <한쪽 땅만이라도 다행>으로 바뀌였지만.

내가 가본 곳은 중국의 산간오지 길림성 장백현 14도구, 그럼에도 평양보다 더 잘 사는 것이 엄연히 보이는 현실이었다.

수정주의 중국은 몇 사람 외에 대부분 더 못 살아졌다는 공화국의 선전과는 꼭 반대였다.
전에 비해 모두 향상되었기 때문이다. 문화대혁명시 중국 농민의 점심식사 때 압록강을 헤엄쳐 가 본 마을주민(북한)의 말에 의하면 콩깍지를 가루내어 섞은 밥 같지 않은 밥이 창피하여 감출 정도로 빈곤하였다고 한다. 그러던 그들이 흰쌀밥을 마음대로 먹고 있었다. 14도구에서 못사는 집 즉 강냉이 밥 먹는 집은 세 집이고 대부분은 흰쌀밥을 먹는 다고 한다. 그 다음해 가보니 강냉이밥 먹은 세 집도 흰쌀밥을 먹고 있었다.

사람먹을 곡식이 넘치니 자연히 가축을 기르게되어 육류 문제가 해결되어 간다. 공산시절 부자의 기준이었던 텔레비전, 자전거, 심지어 오토바이, 자동차, 트랙터를 갗춘 가정이 급격히 늘어나고 흙벽 초가집들이 기와를 씌운 벽돌집으로 변화되어 갔다.

부익부 빈익빈으로 인한 자본주의 멸망론을 주창한 공산철학이 허구임을 현실로 느낄수 있었다. 물론 빈부격차는 높아져 가기도 하였지만 신기한 발견은 아무리 빈자라고 해도 공산시절보다는 훨씬 잘 살아졌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 멸망론의 근간인 가난한 자는 무한정 가난해져 공산주의로 돌아가야 할 만큼 파국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중국 처녀들이 왜 그렇게 아름답고 쭉 빠졌는지?! 보름달처럼 훤하고 둥실둥실, 큼직큼직 한 것이 남자로서 그렇게 탐스러워 보였음을 어쩔 수 없었다. 여기 사람들은 뛰룩뛰룩 암퇘지들 같다고 하겠지만 작고 빼빼 마른 여자만 보다가 보니 호감 높은 맏며느리감들로 보인 것이다.

배불러서 평화스러운 그들은 조선 사람이 몰래 와 있어도 신고하지 않아 다행이었다(1986-1990년 경험한 봐). 그냥 웃으며 지나치거나 말 걸기도 하는 그들의 착한 심성은 삭막하고 투쟁적인 우리 쪽 사람들과는 사뭇 달랐다.

또 다른 신기한 것을 보았다. 산골이지만 농민문화궁에서 남녀가 손잡고 멜로디에 맞추어 춤을 추는 것이다. 연애장면 하나 없는 문화대혁명의 중국 영화만 북한에서 보아왔던 나는 놀라고 신기해하며- 이게 사람 사는 맛인가부다 하며 다리 아프도록 창 밖에 서 보았다. 중국인들은 조선 사람이 보는데 자랑이나하듯 더 신나하는 것 같다.

중국의 물질, 문화적 모습은 내 눈에 천지개벽같이 보였다. 김정일 역시 상해시를 보고 그랬다고 하는데 그럴 만도 하다. 나와 다른 것은 권력유지를 위해 변하지 않는 것뿐이다.

조선보다 훨씬 낙후하던 중국이 등소평 정책 하나에 이렇게 되었다는 것을 직접 확인하면서 차후 김 부자 앞으로 보냈던 나의 개인농 편지 제안의 밑거름이 되기도 하였다.

개혁개방을 받아들이지 않는 김 부자가 미워져 갔다. 중국 사람들도 김 부자를 누구나 욕했다. 자기들만 뚱뚱하고 백성은 굶긴다는 것이다.

나의 중국비밀방문에서 가장 놀란 것은 따로 있다. 남조선이 중국보다 훨씬 잘 산다고 이구동성 말하는 것이었다. 중국보다 30년 앞섰다며 돈 벌러 가거나 시집가지 못해 안달하였다. 이런 사실을 믿지 못해하는 북조선 사람들이 답답하다 못해 불쌍하다고 하였다. 그래서인지 나도 탈북할 결심까지는 가지지 못하였다.

결정적인 탈북 의지는 남조선 삐라를 보고서이다(1990년 8월). 6.25 전범자가 김일성이라는 것을 깨닫게 한 것이다. 민족 최대비극인 6.25 전범자는 미국과 그 괴뢰 남조선이라고 세뇌되어 왔다. 그런데 김일성이라는데 기가 막히다 못해 나도 모르게 육두문자가 튀어나올 정도로 극에서 극으로 가버린 것이다. 희대의 독재자 히틀러도 이런 거짓말은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평양에 나폴레옹 개선문보다 더 크게 세운 개선문이 있다. 김일성이 항일투쟁으로 나라를 해방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제를 패망시킨 은인은 미국이라는 사실, 또 6.25 전범자도 아니라는 사실을 북한동포에게 알려야겠다는 사명감도 생겨났다. 이른바 대북전단의 원조가 된 동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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