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애의 차분한 저음(低音)이 훌륭한 詩와 만나다

김장실의 노래 이야기(16)옛 시인의 노래(이경미 작사, 이현섭 작곡, 한경애 노래, 1980년)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는 만추(晩秋)의 계절입니다. 이렇게 가을이 깊어지면 지나간 과거의 여러 일들이 많이 생각이 납니다. 생각의 편린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때로는 기쁨과 안도를 느끼다가도 또 다시 아쉬움과 회한이 가슴 속을 엄습합니다.

한편으로는 이런 사색의 과정에서 우리들은 세월의 풍화 속에서 한없이 무디어졌을 것이라고 여겼던 감성이 살아 있음을 실감합니다. 아! 늦가을에서 초겨울로 넘어가는 이 시절에는 그리운 누군가가 나에게 했던 말들이 아름다운 시(詩)처럼 착색되어 나에게 다가옵니다. 그 때 그런 멋진 그러나 가슴 속을 파고드는 말을 한 그는 분명히 시인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추억 속의 나도 세상을 관망하는 또 다른 시인이 됩니다.

특히 이 가을에 생각나는 <옛 시인의 노래>는 한국 포크음악의 대표적인 노래입니다. 1970년 중반에는 대마초 파동으로 그 당시 인기를 얻었던 포크계열의 주요 가수들이 구속되어 활동을 할 수 없는 지경이었으며, 포크 리듬도 인기 하향세를 그리고 있었습니다. 또한 1980년 초에는 세계적으로 디스코 열풍이 불고 있었습니다. 아울러 전자음악이 개발되어 실제로 음반작업에 도입되던 시점이었습니다. 이렇게 음악적 대변화가 일어나는 시점에 포크 계열의 이 노래가 나와 크게 인기를 얻었다는 것이 상당히 이례적이도 합니다.

이 노래가 이렇게 대중의 사랑을 받은 데에는 우리 대중가요에서 보기 드물 정도로 아름다운 가사 때문입니다. 이 노래의 가사가 어디에 내어놓아도 뒤지지 않는 한 편의 훌륭한 시입니다. 그래서 이 노래의 가사는 순수시와 대중가요 사이에 하나의 탁월한 접점을 찾아낸 역작으로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아울러 이 아름다운 시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작곡가의 탁월한 솜씨가 가세되어 언제 들어도 명작입니다.

이런 시적인 노랫말과 곡조에 한경애의 차분한 저음(低音)이 매력적으로 융합되어 히트했다고 봅니다. 가수 한경애의 대표곡인 이 노래로 그녀는 1981년 MBC 10대 가수상 여자 신인가수상 후보에 올랐습니다. 같은 해 MBC 라디오 창사 25주년 전국 애창가요 조사에서 3위를 차지했습니다. 특히, 20대와 30대의 젊은층이 매우 좋아하는 노래입니다. 1982년에는 가수 한경애가 이 노래로 제 1회 카톨릭 가요대상을 받았습니다. 그 이후 많은 가수들이 이 노래를 리메이크했습니다.

1954년생인 가수 한경애는 홍대 미대 응용미술과를 졸업하고, 동대학 산업미술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하였습니다. 대학 다닐 때부터 노래를 잘한다고 소문이 난 한경애는 1977년 KBS TV 교양프로그램 ‘새 노래 고운 노래’의 진행을 맡았고, 이후에는 MBC 라디오 ‘한경애의 영화음악’, KBS 사회교육방송 ‘보고 싶은 얼굴 그리운 목소리’를 진행하였습니다. 이렇게 방송국 MC를 하면서 그녀는 CF성우, 화가, 뮤지컬 주인공을 맡는 등 여러 영역에서 활발하게 활동을 했습니다.

그녀는 1978년 1월 이주원의 창작곡 <사랑 이야기>가 담긴 <고운 노래 모음>을 지구레코드에서 발매하면서 가요계에 정식으로 입문했습니다. 1979년에는 서라벌레코드에서 외국 곡을 번안한 <새 노래 모음>이라는 음반도 발매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음반들은 그렇게 인기를 끌지 못했는데, 1980년에 지구레코드에서 발매한 <옛 시인의 노래>는 엄청난 히트를 했습니다. 그녀는 이 노래 말고도 <타인의 계절>, <사랑의 계절은 가고>, <파도였나요>, <잊어야 하는 이름은> 등 여러 노래를 불렀습니다.

이 노래를 만든 작사가 이경미와 작곡가 이현섭은 양인자와 김희갑, 정은미와 남국인과 함께 한국 대중가요계를 주름잡는 부부 예술인입니다. 1954년 충남 공주 출신인 이경미는 <말 좀 해봐요>, <넌 아직 모를 거야>, <남은 이야기>를 작사하였습니다. 1947년 서울 출신인 이현섭은 1981년 KBS 가요대상 작곡상을 받았던 역량 있는 작곡가입니다. 이 두 사람은 1976년 작사가와 작곡가로 만나 1977년에 결혼했습니다. 그들의 결혼 기념곡으로 만든 노래가 바로 <옛 시인의 노래>입니다.
----------------------------------------------------------------------------
<옛 시인의 노래>

마른 나무 가지에서 떨어지는 작은 잎새 하나
그대가 나무라 해도
내가 내가 잎새라 해도

우리들의 사이엔 아무것도 남은 게 없어요
그대가 나무라 해도
내가 내가 잎새라 해도

좋은 날엔 시인의 눈빛 되어
시인의 가슴이 되어
아름다운 사연들을 태우고 또 태우고 태웠었네 음~ ~~

두루루루
귓전에 맴도는 낮은 휘파람소리
시인은 시인은 노래 부른다
그 옛날의 사랑 얘기를 *


  • 트위터
  • 페이스북
  • ↑위로
Copyright ⓒ 조갑제닷컴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달기 댓글쓰기 주의사항

댓글달기는 로그인후 사용하실 수 있으며, 내용은 100자 이내로 적어주십시오. 광고, 욕설, 비속어, 인신공격과 해당 글과 관련 없는 글은 사전통보없이 삭제됩니다.

PC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