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5년 월남파병으로 한국인의 본격적인 해외진출이 시작되었고, 소위 운수업과 건설업 등 여러 분야에서 많은 돈을 버는 월남특수(特需)가 이어졌다. 또한 서독에 광부와 간호사가 파견되어 해외에서 귀중한 외화를 송금하여 경제개발의 종자돈으로 활용하였다. 이처럼 국내외에서 경제개발의 성과들이 확인되기 시작하였다.
더구나 이 시기에는 민족상잔의 6·25 전쟁의 상처가 어느 정도 극복되면서 사회가 서서히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이에 따라 이제는 성실하게 일하면 잘살 수 있다는 소박한 믿음과 희망이 보통사람들 사이에 생겨났다. 그렇게 왕성하게 꿈틀거리는 대중의 희망과 욕망이 총집합되는 대표적인 곳이 바로 서울이다.
이처럼 서민들의 희망이 곳곳에 넘쳐나면서 우리 대중가요들은 이 시기의 서울을 아주 활기차고 아름다운 곳으로 묘사하였다. 즉, 그 당시 히트한 <노란 샤쓰의 사나이>(한명숙 노래, 1961년), <서울의 아가씨>(이시스터즈 노래, 1962년), <빨간 구두 아가씨>(남일해 노래, 1964년), <대머리 총각>(김상희 노래, 1966년), <꽃집아가씨>(봉봉사중창단 노래, 1968년) 등을 보면 매력적인 사람들이 모여 사는 정겹고 아름다운 도시가 바로 서울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이와 함께 당시 박정희 정부는 사회의 건전한 기풍을 진작하기 위해 소위 건전가요들을 널리 보급하려하였고, 민간 레코드 업자들도 국민에 대한 정부의 이런 ‘희망 부추기기’ 작업에 동참하였다. 아울러 정부 스스로가 자신들의 업적을 선전하기 위해 홍보성 노래들을 만들어 적극 보급하였다. 한명숙의 <우리 마을>, 봉봉사중창단의 <육군 김일병>, 패티김의 <서울의 찬가>, 최희준의 <팔도강산> 등이 이런 과정에서 나온 노래들이다.
제 14대 김현옥 서울시장은 1966년 어느 날 작곡가 길옥윤에게 “서울시에서 전폭 후원하겠으니 희망의 메시지를 담은 노래를 만들어 달라”고 직접 부탁하여 서울시 홍보 노래의 하나로 <서울의 찬가>가 만들어졌다. 일본에서 돌아온 길옥윤과 미국에서 온 패티김이 결혼한 초에 나온 이 노래는 당시 사회 분위기와 어울리는 희망의 감흥을 담은 가사를 행진곡풍의 멜로디에 실었다. 특히, 기량이 절정에 이른 패티김의 시원한 가창(歌唱)이 가슴을 탁 트이게 하는 느낌을 준다.
소위 ‘한강의 기적’으로 평가를 받는 한국의 급속한 경제발전이 지닌 활기찬 감성 에너지를 힘차게 전달하는 이 노래는 1966년 동아방송에서 발표되고, 1969년 음반으로 발매되었다. 1995년에는 세종문화회관 옆 세종로 공원에 <서울의 찬가> 노래비가 세워졌다.
이 노래를 만들어달라고 길옥윤에게 부탁한 김현옥 서울시장은 1926년 경남 진주 출신으로 1962년 준장으로 예편한 이후 부산시장, 서울시장, 내무부 장관을 역임하였다.
한편 이 노래를 부른 패티김은 1940년 서울 출신으로 본명은 김혜자이다. 어려서부터 노래에 소질이 있었던 그녀는 미 8군쇼에 출연하다 1961년 도일(渡日) 후 미국으로 가서 그곳에서 활동하였다. 그녀는 NBC Tonight Show에 출연하여 맘마(이태리어), 서머타임(영어)을 불러 박수갈채를 받는 등 인기를 얻었다고 한다. 1962년 2월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귀국하여 뮤지컬 <살짜기 옵서예>에 주연으로 활약하는 한편 라디오와 TV 출연과 레코딩 작업에 참여하면서 박춘석이 작곡한 영화 주제가 <초우>를 불러 히트시켰다. 이처럼 인기가 급상승하자 1966년 TBC(동양방송)에 <패티김쇼>가 만들어지면서, 이에 고정 출연할 때 색소폰을 연주하는 길옥윤을 만나 사랑하면서 1966년 12월에 결혼하였다. 그녀는 길옥윤이 작곡한 <사랑하는 마리아>, <9월의 노래>, <서울의 찬가>, <이별>, <여인의 길>, <그대 없이는 못살아>, <하와이 연정> 등 수많은 히트 곡을 불렀다.
1927년 평북 영변에서 태어난 길옥윤은 서울대 치대를 졸업하고 음악인의 길에 들어섰다. 일찍 일본으로 간 그는 일본인 오자와 히데오의 권유로 테너색소폰을 배우며 악단에서 반주하다, 1952년 ‘요시야 준과 더 크루캐츠악단’을 조직하여 댄스홀에 출연하였다. 1966년 1월에 귀국한 그는 <패티김쇼>에 출연하면서 그녀와 사귀다 <4월이 가면>이라는 곡을 주면서 더욱 가까이 되어 결혼하였으나 1970년 초에 이혼하였다. 패티김과 헤어진 후 가수 혜은이를 발굴하여 <당신은 모르실거야>, <제3 한강교>, <당신만을 사랑해> 등을 히트시켰다. 1988년 88 서울올림픽 개·폐회식 음악총감독을 맡기도 한 그는 1995년 사망하였다.












서울의 찬가. 참 좋은 노래다 서울을 넘어 대한민국 찬가로 느껴진다
그러나 더러운 놈이 있었다
시의적절한 노래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