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추기경의 인간적 고뇌를 이해하면서…

여전히 그분에 대해서 또 풀지 못한 복잡한 느낌이 스멀대는 건 솔직히 부인하기 힘들다. 나이가 들어서일까?
아이들을 짝지워주는 일을
마무리하면서 드는 생각일까?
앞일을 생각하기보다는
나를 돌아보면서 과거를 반추하고
그 사람의 지나온 흔적과
그의 가족관계 등에 관심이 간다.
일반인보다는 특히 유명인들.
이름으로 남은 자든
이름으로 알려진 유명인들 말이다.

정진석 추기경이 돌아가셨다.
많이 편찮으시단 얘기는 들었었다.
내가 천주교인이기도 하고
그분이 이사장으로 계시던 곳에서
근무하는 동안 쓰라린 경험도 했고.
그 이후에도 이런저런 인연이 있어
개인적으로는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이 뒤섞이지만,
교인으로서 그분의 명복을 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아침,
여전히 그분에 대해서 또 풀지 못한
복잡한 느낌이 스멀대는 건
솔직히 부인하기 힘들다.

오늘 아침엔 더 솔직해지고 싶다.
정 추기경의 할아버지는 우리나라
초기 공산당, 조선공산당원이었다.
그래서 일본경찰에 체포,
감옥생활을 하기도 했다.

정 추기경의 아버지는 해방 후
월북했다. 납북이 아니라 월북.
물론 연좌제는 없다.
6·25 전쟁이 나자
서울공대생이던 정 추기경은
신학생을 거쳐 신부가 되었고
그의 뛰어난 머리와 성실성은
신부, 성직자라기보다
학자로서의 면모를 돋보이게 했다.
수십 권의 책을 썼고
라틴어와 이태리어에도 능통했다.
영어는 물론이고.

90 평생 그가 겪었을 인간적 고뇌는
아무리 내가 이해한다 한들,
그 고뇌의 깊이를 어찌
필부들이 헤아릴 수 있겠는가?
그의 명복과 영원한 안식을 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아침, 내 마음은 참 무겁다.
납덩이가 꽉 들어찬 것처럼.
우리 가톨릭이,
특히 가톨릭 신부 수녀들이
좌경화되고, 친북 성향까지 보이며
많은 신자들을 쉬게 만든 그 배경은
과연 어디에 있을까,
그 원인이 뭘까, 하는 점 때문이다.

가난한 자,
과부, 고아를 돌보고,
가장 작고 미천한 자에게 행함이
곧 나에게 하는 것이라며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했거늘
어찌하여 신부들의 정의구현은
그렇게 이상한 정의관에 물들어
이렇게 나라를 뒤흔들어 왔는지...
이 아침,
정진석 추기경의 타계 소식에
내 마음이 참으로 무겁다.
그가 정의구현사제단은 아니었어도
그 사제단 또한 그 아래 있었으니…

그래도 나는 여전히 성호를 긋는다.
주여,
저는 죄인입니다,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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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aidn 2021-04-28 오후 10:14

    정 진석 신부님의 할아버지 아버지가
    빨갱이라 ... ...
    정의구현사제단이 말카 빨갱이 인것처럼 .

  • 해철 2021-04-28 오전 10:26

    동감합니다. 가톨릭의 지도자, 주교들, 이 시대에 등불이 되지 못하고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것이 안타깝습니다. 오로지 굴종의 자세로, 하라면 하라는대로 제 목소리
    하나 내는 용기가 안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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