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농장에서 접한 광주 518 무장시위

탈북 10년 뒤에 북한군 특수군인 <광수>로 지목되기도. 광주 518 당시 북한에 있던 나는 무엇을 하고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나. 1980년 518 당시 남포농대 연구소 연구원으로서 현지 시험포였던 온천군 3.3농장에 있었다. 김일성 별장인 온천에서 멀지 않으며 김일성이 교시한 날을 명칭으로 한 농장이었다.

간척지를 개간한 농장으로서 구성원 대부분이 무리배치된 제대군인이었다. 이들을 위해 2층짜리 농가를 일률적으로 지어져 있다. 여기서는 간척지라고 하고 북한에서는 간석지라고 한다. 우리들의 연구과제는 소금기를 극복하기 위한 것이었다. 간석지 농사에서 물이 관건이다. 소금기로 해(害)가 심하면 몇번이고 모내기를 다시 해야 한다. 물 부족으로 제대군인 출신 농민들이 삽날을 들고 다투기도 하였다. 3.3농장에서 저 멀리 온천비행장이 보이고 또 유명한 신덕샘물이 나는 산이 보인다.

한창 피곤한 농번기 때 광주518 무장시위 소식을 접했다. 우리도 저렇게 할 수 있을가 자문하며 남녘동포의 투쟁이 대단해보였다. 그 정신을 받들어 차가운 시험포에서 밤을 새우다가 늑막염으로 입원까지 하였다. 5월27일 열흘 만에 유혈진압되었다니 몹시 아쉬웠다.

항간에는 광주시민들이 요청하면 명분이 생겨 인민군이 지원할 수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런데 왜 광주시민들이 요청하지 않았는지 답답하기도 하였다. 후에는 인민군특수군이 작전했다는 소문도 쫙 돌았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개입했다고 발표된 것은 없었다.

518 꼭 10년 후 탈북했다. 중국, 러시아를 거쳐 남한에 와서 10년이 지나자 내가 518 때 북한군 특수군인 <광수>로 지목되었다. 황장엽, 김덕홍, 유명 탈북인 대부분이 <광수>로 지목되었다. 버선목이라고 당장 벗어보일 수 없다고 하나 나의 경우는 보일 수 있었다. 탈북 10년 후 지인들을 통해 일기장과 조직생활 수첩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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