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년 전 5월에 수령님 앞으로 보낸 중앙당 제1호 편지

세 달 만에 온 답신(答信) '당신의 시험자료는 맞지만 그것은(개인농) 정치다. 과학자로서 연구만 하라!' 수령과 관련된 것은 1호가 붙는다. 1호 행사, 1호 제품, 1호 편지 등이 실례다. 북한도 나름대로 신소 체계가 있다. 감히 어렵지만 하늘같은 수령님 앞으로도 편지를 보낼 수 있다. 대부분 생사의 역풍을 맞을 만큼 심각하기에 보통 담으로서는 할 수가 없다. 그만큼 심중에 심중을 기한 중대사적인 문제여야 하고 또 담이 있어야 한다.

나는 사실 담이 커서가 아니라 너무 순진해서 안해의 극구 만류에도 불구하고 보냈다. 전국 대학 학과경연 2등을 했을 만큼의 안해 견해가 옳았음을 훗날 인정했다. 30살 갓 넘은 초짜 연구사인 당신 이전에 다 알고 있는 문제이기에 괜히 가족에까지 불행을 끼칠 행위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혼을 선포할 만큼 반대해도 1호 편지 보내게 된 것은 너무나 뻔한 식량해결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쌀은 공산주의!라는 수령의 교시를 높이 받들어 나는 농업연구의 최대기관, 강냉이연구소 연구원이 되었다. 연구의 핵심은 우수종자 육성이다. 북한 강냉이 종자는 세계적 수준이다. 이것을 2001년 미 농무성 초청 한국대표단 일행으로 방문같을 때 확인하였다. GMO 육종기술 외에는 미국 수준과 차이가 없었다.

종자는 좋은 데 왜 농사가 안 되는가에 대한 고민은 연구소에서부터였다. 정보당(1헥타르) 10톤 나는 종자는 농장 현지에 나가면 3톤 수준으로 떨어졌다.

탐구심이 넘쳐 답답한 나머지 농장 현지에 자원하여 나갔다. 그곳이 김일성의 첫 부인 명칭을 띤 김정숙군(량강도 신파군)이다. 왜 10톤짜리가 3톤으로 떨어지는가고 물으니 농민들은 간단히 답한다. <개인농하면 되디요> 하면서 압록강 넘어를 가리킨다. 우리와 똑같은 기후와 토질의 중국임에도 그 작황을 보라는 것이다.

시험자료로 말하는 것이 과학자이다. 농장에서 정보당 1~1.5톤 겨우 나던 포전을 개인농 대비시험하니 7톤 거뜬히 난다. 10년 이상 피타게 연구해야 2~3% 증수 새 품종 개발하는데 경영방법 하나 바꾸니 500% 증수된다. 종자 연구가 필요없을 만큼 대혁명이다. 아마도 전국에 도입하면 못해도 두 배는 반드시 증산될 것이다. 이 내용을 중앙당 제1호편지에 담은 것이다.

편지를 보내는 것도 힘들지만 보내놓고 기다리는 것이 더 피말렸다. 현명한 안해의 말대로 나는 그렇지만 가족까지 멸족되지 않을가.

편지를 보낸 지 3달 만에 드디어 소식이 왔다. 중앙당의 위임을 받고 과학원 과학지도국장이 내려왔다. 당신의 시험자료는 맞지만 그것은(개인농) 정치다. 과학자로서 연구만 하라! 이에 나는 <정치가 뭡니까. 배부르게 하는 것이 정치가 아닌가요?!>

이해를 도무지 못하는 소리에 기가 막힌지 과학지도국장은 엄하게 속내를 말한다. 당신을 이색분자로 3달동안 샅샅히 조사했다. 다행이도 술, 담배를 금하고 오직 연구밖에 모르는 순수한 경력이 인정되었다. 정치를 모르는 철부지 과학자를 과학자끼리 잘 설득하라고 해서 내려왔다는 것이다.

이 사건을 겪으며 수령에 대한 믿음이 처음으로 흔들렸다. 인민에게 이밥에 고깃국을 먹이는 것이 평생의 소원이라는 수령님이 왜 그럴가?! 탈북할 결심까지는 아니었지만 인민의 어버이라는 수령이 이상해진 것이다.

생사의 탈북할 결심은 가지게 한 것은 남조선 삐라였다. 과학지도 국장이 왔다간 후 이어진 출장 길인 강원도 철원에서 본 것을 통해 수령의 속내를 알게 된 것이다. 삐라를 본 지 3달 만에 탈북하였다.

얼마 안 지나 대량 아사사태가 났다. 개인농 의견을 받아들였다면 대량아사는 없었을 것이다. 수령도 그것을 잘 안다. 백성을 하늘처럼 여긴다면서도, 쌀은 공산주의라고 하면서도, 이밥에 고깃국을 먹이는 것이 평생소원이라는 것 모두 권력유지를 위한 사기 치장인 셈이다. 이를 증명하듯 3년 분 배급할 강냉이 살 돈으로 김일성 무덤을 치장을 한다. 대량아사의 정점에서 <광명성1호> 미사일을 발사, 핵개발에 박차를 가한다.

이른바 기가 꺾이면 망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악령의 기는 지금껏 이어온다. 유엔의 제재와 봉쇄에도 그 기를 꺾지 않을 것이다.

여기 기준으로 북한 생활고를 보면 1970년대에 망했을 것이다. 1977년 나의 일기장 보면 사리원, 평성, 평양 등 모든 상점에 물건이 없었다. 이 가난이 수백만 아사에 이르러도 <사회주의는 과학이다.>, <나에게 변화를 기대하지 말라!> 대놓고 말하는 것이 수령의 기 전통이다. 이런 기를 상대로 공존공영, 삶은 소대가리 소리들으며 비핵화하겠다는 것이 더 기상천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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