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아들’의 실제 주인공은 주일학교 반사(班師)

짧게 살다 간 한 성자(聖者)가 어린 소년의 마음에 자신의 삶과 신(神) 그리고 문학을 담아주었다. 월요일 오후 한 시의 투명한 햇빛이 이천 국도변의 야산 자락에 내려쬐고 있었다. 나는 인스턴트 커피 한 상자를 들고 느린 걸음으로 부악문원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원로 소설가 이문열씨가 살면서 제자도 키우고 집필도 하는 집이다. 이문열씨가 숙소 문을 열고 반갑게 나를 맞이했다. 그와 함께 숙소 위쪽에 있는 집필실 쪽으로 가기 위해 잔디밭 경사에 놓인 몇 개의 돌계단을 올라갈 때였다.

“엊그제 이 계단을 내려오다가 발을 겹질렸어요.”

그가 말했다. 나도 계단 마지막에 발을 헛디뎌 나가떨어진 적이 있다. 내남없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몸들이 예전과 달리 둔해졌다.

그의 집필실 탁자에 앉았다. 벽에 가득 꽂힌 오래된 책에서 오래된 쿰쿰한 종이 냄새가 번져 나오고 있다. 이문열씨가 옆에 있는 싱크대로 가서 차를 끓이는 동안 그의 서가를 둘러본다. 내가 어려서 보던 오래된 한국문학전집이 있고 전후 미국과 일본의 문학전집도 꽂혀있다. 기독교 대사전도 서가의 아래쪽 한 칸에 열병식을 하듯 늘어서 있다.

내가 삼십대 공직생활을 할 무렵 상관은 이문열씨가 쓴 ‘사람의 아들’이라는 작품을 칭찬하면서 작가는 천재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여러 부하들에게 그 작품을 읽어보라고 권했다. 나는 그 책을 한 줄 한 줄 메모해 가면서 꼼꼼하게 읽었다. 그렇게 하면서 기독교의 정경뿐 아니라 외경에 있는 많은 지식을 섭취했었다. 영화로 만든 것을 보기도 했다.

소설가 이문열과 차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강연도 인터뷰도 아니기 때문에 자유롭게 어떤 소재나 인물이든 넘나들 수 있는 우리들의 대화다. 여러 번 만나 봤지만 그는 소탈하고 담백한 성격이었다. 그 정도 유명해졌으면 적당히 자신을 꾸미고 가릴 수도 있는데 투명한 시냇물처럼 속을 그대로 드러낸다. 어린애 같이 담백한 그런 게 대가들의 특징 같았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내가 불쑥 물었다.

“믿음이 깊으세요?”
“그렇지는 않아요”
그가 대답했다.

“그러면 어떻게 그렇게 깊은 ‘사람의 아들’을 쓰게 됐어요? 그 주인공은 완전히 예수에 미친 사람이던데.”

“내 소설에 나오는 사람은 실존 인물이에요. 시골에서 살 때 어머니가 교회 권사였고 어렸던 내가 교회 어린이반에서 주일학교에 다녔죠. 그런데 여름 방학철이면 주일학교에서 나 같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청년 선생님이 있었죠. 아마 지금으로 치면 신학대학생이 방학 때쯤 내려와서 봉사를 한 것 같아요. 그때는 주일학교 선생을 ‘반사(班師)’라고 불렀는데 그 반사 선생님이 예수도 가르쳤지만 매번 볼 때마다 옛날 얘기를 우리 수준에 맞춰 해줬는데 그게 얼마나 재미있는지 넋을 빼고 들었죠. 거의 백 개쯤 들었는데 나중에 보니까 그게 전부 세계적인 고전문학에 나와 있는 것들이에요. 제가 예수보다도 문학에 빠진 것은 그 젊은 반사 선생님의 옛날 얘기가 동기가 됐던 것 같아요.”

“그러면 소설 ‘사람의 아들’ 속의 주인공은 그 반사 선생님을 형상화한 건가요?”
“그런 거죠. 그 반사 선생님은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시골 마을에 가서 천막을 치고 복음을 전했다고 그래요. 그렇게 삼사 년쯤 하면 신자들이 생기고 교회를 짓게 되는데 그쯤 되면 그 선생님은 그곳을 다른 사람에게 인계하고 다른 오지의 마을로 가서 다시 천막을 치고 말씀을 전했어요. 그러다가 그곳에 부흥하면 다시 다른 곳으로 떠나고 마지막에는 나환자촌에 들어가 예수를 전하다가 일찍 저 세상으로 떠난 분이죠. 그 분을 모델로 쓴 소설이 ‘사람의 아들’이죠. 성자(聖者)였어요.”

그 말을 들으면서 이해할 수 없는 신비가 존재하는 세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세상에 드러나지 않게 짧게 살다 간 한 성자가 어린 소년의 마음에 자신의 삶과 신(神) 그리고 문학을 담아주었다. 그리고 그 소년이 자라나 대 문호가 되어 성자의 삶을 문학으로 만들었다. 단 한 명의 어린아이에 대한 전도가 그가 죽은 후 무수한 열매를 맺은 것이다. 교회에 신도가 작다고 실망하는 많은 목사들을 봤다. 텅빈 신도석을 보면서 목사직이 소명이 아닌 것 같다고 회의하는 성직자들도 보았다. 하나님의 섭리는 그게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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