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출소 골방에 갇혀 암기(暗記)…"원 투는 피해도 쓰리 포는 못 피한다"

정말 고마운 사람들(2) 남성동 파출소 앞에는 갔지만 막상 못 들어가고 쭈뼛쭈뼛하고 있었다. 마침 외출하고 돌아오던 소장이 나를 보더니 인상이 싹 달라졌다. 복싱하는 형님들이나 권투방 출신 선배들이 매일같이 자기 관할에서 주먹질을 하는 바람에 그들을 뒷문으로 빼돌려주는데 진저리가 난 사람이니까 山이 싸움 끝에 온 것임을 직감으로 알아챈 것이다.

소장에게 저간의 일을 사실대로 말하고 우리 선생님을 좀 말려주십사 했다. 소장이 노발대발하더니 파출소 직원에게 “이 새끼 잡아넣어라”고 했다. 순경이 “니. 이리 온나” 하면서 2층의 어느 방에 밀어넣고 밖에서 문을 철커덕 잠그고 갔다. 아주 좁은 방이었고 창문도 없었다. 좁은 데서 벽만 보고 있으려니 갑갑증이 차고 올라왔다. 그것만으로도 죽겠는데 갑자기 큰 사이렌 소리가 터졌다. 그 소음에 귀를 막고 뒹굴었고 고통도 그런 고통이 없었다. 오포(午砲)였다. 오포는 이전에 정오를 알리는 사이렌이다. 남성동파출소에서 그걸 불었는데 신마산·구마산·북마산 마산 전역에 정오임을 알렸던 것이다. 마산 끝에까지 들리는 사이렌 소리를 진원지 바로 아랫방에서 들었으니 고막이 상하지 않은 것만 해도 福이었다.

고픈 배를 안고, 혼자 오도카니 앉았다가, 누웠다가, 서서 걷다가,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도 알 길 없었다. 이윽고 이러다가는 안 되겠다 싶어 권투방에서 형님들끼리 하던 말을 듣고 못 들은 척하며 적어 놓았던 쪽지를 꺼내서 외우기 시작했다.

“어퍼컷은 가능한한 쓰지 마라. 스트레이트의 밥이다.”
“아마에서는 쓸 일도 없다. 어퍼컷을 쓸 때쯤이면 이미 레프리가 상대에게 머리를 숙이지 말라고 코숀(caution)을 준다.”
“가장 센 펀치는 카운터 펀치다. 상대가 들어오는 것을 순간으로 포착해서 쓰라.”
“원투에 그치지 말라. 쓰리, 포까지 쓰라. 원투는 피해도 쓰리 포는 못 피한다. 최소한 쓰리까지는 나가야 한다.”
“계속적으로 공격하지 말라. 치고 빠지고 다시 공격하라.”
“항상 먼저 쳐라.”
“상대와 나의 가장 가까운 거리는 직선이다. 팔을 움찔하지 말고 뻗어.”
“자기가 다운이 되고 있다 싶으면 재빨리 상대선수를 붙잡고 내 체중을 그에게 옮겨라.”
“복싱은 상대를 붙잡는 게 기술이다. 그러나 자꾸 하면 아마는 워닝(warning)을 당한다.”
“물러서면서도 반드시 주먹을 내며 물러서라.”

이때 밖에서 문을 열었다. 그 순경 아저씨가 짜장면을 갖고 왔던 것이다.

“아나, 저녁 무라.”
“아저씨. 내 언제 내보내줄끼미꺼?”
“나중에 통금 사이렌 소리 한 번 더 듣고 또 내일 새벽 통금 해제 사이렌까지 듣고 나야 어떻게 할지 결정한다.”
사이렌 소리가 호랑이보다 무서운데 두 번을 더 들으라니 낙담하여 짜장면도 먹지 않고 있는데 순경 아저씨가 “야야. 니 손에 든 게 뭐꼬?” 했다.
“아무것도 아입미더.”

그러자 보자면서 뺏듯이 빼앗아 문을 잠그고 가버렸다. 파출소장이 그 쪽지를 읽고서는 도장 선생님에게 엎어질 듯이 달려갔다.

“야네기(우리 선생님의 일본식 성함) 이것 좀 봐라. 어린 놈이 이렇게 적어가지고 다니면서 외우고 있다.”
“머꼬. 보자… 허. 예린 새끼가…. 됐다 인자. 내한테 보내라.”

파출소에 돌아온 소장이 이렇게 말했다.
“한 번만 더 남을 때리거나 싸움질하면 나는 니를 다시는 안 볼끼라. 너거 선생님도 그렇게 벼르고 있더라. 가서 용서를 구해라.”
그날 이후 지금 이 나이까지 링 밖에서는 남과 주먹다짐은커녕 멱살잡이 한 번 안 해 봤다.

복싱人의 영원한 숙제는 스트레이트가 세냐? 훅이 세냐?이다 그걸 갖고 다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런데 이론과 과학. 다수의 선수가 스트레이트가 세다고 판정을 내린 지 이미 오래다. 겨우 그린보이(Green boy)인 주제에 노력은 찾지 않고 센 것을 찾았으니 그 정도의 징벌에 그친 것은 다행이요 인덕(人德)이다.

복싱은 위대한 운동인가 하면 몹쓸 운동이기도 하다. 선손질(先)을 해야만 하는 싸움이라서다. 그리고 복싱을 배우기 전에 싸움꽤나 하고 돌아다닌 자는 복싱을 익히고부터는 거의 절대로 주먹질 안 한다. 반면에 싸움이라곤 안 해 본 아이가 배우면 열에 여덟. 아홉은 어깨로 나서게 된다. 그리고 그 고비가 1년이다. 거기를 기점으로 싸움에 맛을 들인 자는 어깨로 나가고, 다만 복싱이란 운동에만 심취한 아이는 선수생활을 하게 된다. 山이 선배를 때렸던 것이 그 시기였다. 그랬으니 선생님이 꾸며서라도 더 성을 내었을 것이다.

<다음 회(回)에서는 파출소장이 또 한 명의 애를 데려오는데 그가 山의 복싱 인생 라이벌이 된다. 가난해서 초등학교만 마치고, 어느 동사무소 급사로 일하고 있는 아이였다. 파출소장이 나에게 했던 것처럼 중학교에 보내주겠다는 말로써 데려왔다. 중·고등학교는 물론 대학까지 졸업시켜 주었을 뿐만 아니라 미스 경남 출신 아내까지 얻어 주었다. 우리를 공부시켜 준 것과 남과 싸우지 않을 교육을 베푼 것은 선행이다. 이를 선행이 아니라 할 수 없다면 그를 산 부처요 성자(聖子)가 아니라 할 수 없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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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역을 살래? 내 말을 들을래?”

정말 고마운 사람들 (1)1년 동안 권투를 가르쳐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선생님은 물론 형님들도 주먹 쥐는 법마저 가르쳐 주지 않았다.

무학산(회원)

山이 스스로 한 약속대로, 우리가 자라고 살면서 은혜를 입은 사람들에 대한 글을 써 올리겠습니다 읽기에 귀찮으시더라도 너그러이 봐 주십시오.

山은 얼추 40년 전에 경상남도 아마튜어복싱연맹 전무이사를 했다. 그때 책을 쓰기로 작정하고 미리 그 제목도 정해 놓았었다. '경상남도 아마튜어 복싱사(史)'였다.

부산이 경상남도에서 떨어져 나가자 일대 혼란이 왔다. 특히 체육계가 심했다. 허허벌판에서 바늘찾기 식으로 너무나 막막했다. 1년에 수천만 원이 드는 경기 비용을 누가 대주며 선수는 어떻게 뽑고 관리하나? 그러나 시대는 때맞추어 영웅을 낳는 법이다.

마산의 한 시내는 오동동. 창동. 남성동이다. 남성동 파출소에서 순경으로 1년 근무하면 달셋방에서 전세방으로 이사한다는 시절이었는데 그 파출소장이 황무지나 다름없는 경남 복싱을 꾸려 나가고 있었다. 남성동 고급 술집과 식당에서 무전취식하고 잡혀 오는 사람이 매일 같이 넘쳐났다. 이 이가 그런 사람들 중에서 어리고, 눈매가 있어 보이는 아이를 유심히 보고 있다가 이렇게 말한다.

“야 이 새끼야. 니 몇 살이고?”
“열 살입니더.”
“그래. 그럼 징역을 살래? 내 말을 들을래?”

당연히 말을 들겠다고 대답한다. 대답이 끝나자마자 파출소장이 바로 원 펀치 먹여버린다. 맞고도 금방 일어서는 놈. 성을 내며 달려드는 놈들을 데리고 권투방에 간다. 그것이 山이 새 세상을 만나는 출발점이었다.

권투회관 입관 절차를 마치고 그가 우리를 데리고 가서 짜장면을 사 주었다. 허겁지겁 먹는데 그이가 또 말한다.

“너. 내 말만 잘 들으면 중학교도 보내준다.”
“정말입니꺼?”
“그라모. 너는 낼부터 권투방 선생님에게 어쨌든지 잘 보여야 한다.”
“예 그런 거는 자신 있습니더.”

그 이튿날 첫새벽부터 권투방 앞길과 권투방 링을 쓸고 닦기를 하루도 빠짐없이 계속했다. 일과를 마친 밤에도 그렇게 했다. 형님들의 잔심부름은 도맡아놓고 한 것은 물론이다. 얼마 후 선생님과 파출소장이 하는 이야기를 귓등으로 들었다

“저런 아는 첨 본다. 오데서 저런 물건을 데꼬 왔노.”
“잘 키와봐라. 괜찮을 끼다. 저 놈이 내 주먹을 미스시켰다(피했다).”

그러나 권투를 가르쳐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선생님은 물론이고 형님들도 주먹 쥐는 법마저 가르쳐 주지 않았다. 1년 동안 그랬다. 그러나 바로 그것이 가르침이었다. 스스로 보고 깨닫고 연구하는 것을 침묵으로 가르쳤던 것이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선생님이 “저 애에게 절대 무엇이든지 가르치지 말라.”고 엄명을 내려놓았던 것이다. 1년 동안 형님들이 섀도 복싱(shadow boxing)하는 것. 샌드백 치는 것. 스파링하는 것. 맞고 다운되었다가 일어서는 법. 반칙하는 법(라이옹). 치고 빠지는 법(쑥빡). 권투는 원투로 시작해서 원투로 끝난다는 말. 공격하러 들어갈 때와 빠져나올 때가 가장 위험하다는 말까지 공책에 적어놓고 그림으로 그려놓기도 했다.

1년 하고도 한참 지난 어느 날, 선생님이 형님에게 “저 애와 저 애를 스파링 붙여봐라.” 했다 그 말을 듣고 너무 기분이 좋았다. 형님들이 스파링할 때 글러브를 끼워주고 풀어주는 것만 1년을 했는데 내가 그 글러브를 끼게 되었다는 것이 너무 감격적이었던 것이다. 그러는데 한 형님이 “선생님 안 됩니다 중학교 3학년과 초등학교 3학년을 어떻게….” 하자 선생님이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라. 붙이라.” 하였다.

그렇게 처음 시작한 스파링에서 중학생을 KO시켜 버렸다. 그때부터 형님들이 고난도의 스텝 밟는 법. 샌드백 스텝 밟는 법. 주먹 피하는 법. 더킹과 위빙. 스트레이트의 장점. 훅의 장점 등을 본격적으로 가르쳐 주었다.

그러다가 한번은 한참 나이가 많은 선배와 언쟁을 했다 그 선배가 하는 말이 “스트레이트가 쎄다.” 그러나 나는 “아입니더 훅이 쎕니더” 옥신각신하다가 선배가 “스트레이트가 세다 이 새끼야.” 하며 라이트 스트레이트를 던졌다. 맞고 비틀거리다가 “훅이 셉니더” 하며 레프트 훅을 슬쩍 걸었는데 그가 KO돼 버렸다. 그때 처음으로 선생님에게 맞았다. 그리고 “너. 다시는 도장에 오지 마라.”는 청천벽력과 같은 말을 들었다. 그래서 파출소장을 찾아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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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맑은마음1 2021-06-20 오후 10:18

    원 투는 피해도 쓰리 포는 못 피한다!
    무척 인상적이고 강렬하여 마음에 절로 새겨지네요.

    저는 법적 사회적 싸움에 관심이 많아 병서 등도 살펴보는데
    제일 좋아하는 인물이 강태공(육도삼략) 장량 제갈량
    정도전 이에야스 등입니다. 당연히 이승만 박정희도..
    아무튼 싸움에 관한 것에는 일단 눈길이 끌리네요. 감사합니다

  • 맑은마음1 2021-06-20 오후 10:05

    무학산님 쓰신 글들 잘보고 있습니다.
    지나온 삶 돌아보며 쓰신 글들 보며 배울 점도 많고
    가슴 뭉클한 것도 많아 좋은것 같습니다.
    조갑제닷컴에 연배 높으신 분들이 좋은 글들 많이 올리시는데
    금쪽같은 경험과 교훈도 많기에 자주 눈여겨 봅니다.
    아무쪼록 무학산님 건강하시고 행복한 여생되시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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