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딸이 한일여실고에 좀 다니게 해 주십시오”

정말 고마운 사람들(4) '피스톤 야네기'와 남성동 파출소장의 이야기가 이 이야기의 대종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같은 이야기를 자꾸 하면 화자도 청자도 지루하다. 그래서 이번 회에는 다른 이야기를 좀 하겠습니다. 이해해 주십시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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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합섬이 경영하는 한일여자실업고등학교는 한일합섬과 나란히 있다. 이 학교 교문 앞은 한 시내와 마찬가지로 번잡하다. 교문 옆에는 큰 빗돌이 세워져 있는데 이런 글귀가 음각돼 있다. “눈물 섞인 밥을 먹어 보지 않은 자. 이 교문을 들어설 수 없다.”

어느날 박정희 각하가 한일합섬을 방문했다. 공장을 둘러보다가 근무 중인 여공과 이야기를 나눈 끝에 묻는다.

“자네는 하고 싶은 일이 있는가?”
“각하. 교복 한번 입어보는 것이 소원입니다.”

그 말을 듣고 각하는 잠시 천정을 쳐다보며 말이 없었다 눈물을 감추고자 천정을 봤을지도 모른다. 그로부터 한일여자실업고등학교가 태어났다. 각하가 북돋우고 김중원 회장이 각오하여 여공들의 교복 입는 소원이 이루어진 것이다. 각하도 가시고, 김중원 회장도 가고, 한일합섬도 사라졌지만, 한일여자실업고등학교는 날로 푸르러 지금의 교명은 한일여자고등학교이다.

남성동 파출소장이 이끄는 대로 山이 권투방에 간 날 이후, 수많은 낮과 밤이 지나고 그 세월 속에 山도 성인이 되었다, 여러 선배들이 파출소장이 하던 경남 복싱연맹 일을 이어받아 했고 또 자연히 山의 순서가 되어 山이 하게 되었다.

전국체육대회에 참가할 경남 대표 선수를 3개월간 합숙훈련을 시키고 있었다. 그 기간 동안 밥을 대놓고 먹는 식당에 어느날 한번은 山도 코치들과 선수 무리와 함께 점심을 먹으러 갔다. 그 식당에서 종업원으로 일하는 한 아주머니가 山에게 이런 말을 했다.

“전무님. 저와 저 딸의 소원을 좀 들어주십시오.”

이게 무슨 소리냐 싶어서 “허, 참” 하고 있는데 그가 “전무님. 전무님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고, 복싱연맹과 한일합섬이 관계된다는 것을 압니다. 우리 딸이 한일합섬에 다니는데 한일여실고에 좀 다니게 해 주십시오”라 했다. 그때까지 山은 한일합섬 직원으로서, 희망만 하면 모두 한일여실고는 그냥 다니는 줄로 알았다. 그래서 山이 객기에 차서 대답했다. “그깐 일이 무슨…공부하겠다는 것이 장하지. 그런 것은 들어드려야죠” 했다.

그 당시 한일합섬이 향토기업이라 하여 한일합섬 김중원 회장이 우리 연맹 회장이었고 연맹에 年 5천만의 돈을 주고 있었다 그리고 한일합섬 총무과장이 연락병처럼 회사와 연맹을 오가곤 했다. 물론 山이 한일합섬에 들어가는 경우도 많았다. 어느날 간 김에 총무과장에게 물었다.

“한일여실고를 보내고 하는 것은 누가 하요?”
그가 대답했다.
”내가 하요. 와요?“

山이 “잘됐네. 아무개를 학교 좀 보내주소” 했다. 그가 한참 동안 아무 말이 없더니 “이보소 전무요. 내가 그 일로 너무 시달리오. 이것 보소. 학교에 다니려 희망한 명단이오,” 하며 대학 노트 한 권을 던지다시피 내 앞에 내밀었다. 그리고 각처에서 온 그런 부탁을 받은 메모장도 보여 주었다. 알고보니 우선 학교에 다닐 만한 부서에서 근무해야 하는 것이 선결 조건이었다. 그게 안 맞으면 이리저리 부서를 옮겨야 하고 그런 능력과 빽이 없으면 꿈도 못 꾸어야 할 것이 한일여실고 다니기였다.

그 사실을 듣고 山이 알던 것과는 너무 다른 데에 놀란 나머지, 스프링처럼 의자에서 일어났고 비명처럼 “그렇소?”를 되풀이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딸의 소원을 못 들어주면 그 엄마에게 객기부린 내 얼굴은 무엇이 되며, 그 모녀의 열패감은 그들에게 어떤 상처를 낼지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런 심장과는 달리, 맞아서 단련된 머리는 자동으로 회전하고 있었다. “그 수를 쓸 수밖에 없다”고.

총무과장에게 눈알을 부라리며 아래위를 훑었다. 그리고 “내가 그 모녀에게 학교가게 해 준다고 약속했소. 나는 오도꼬로 사는 놈이요, 과장 말고 누가 나를 돕겠소” 하며 그의 책상에 구둣발을 척 올려놓고 의자를 뒤로 제쳤다. 과장이 어처구니가 없었는지 아니면 놀랐는지 한참 쏘아 보더니 말했다. “보소. 전무요. 전무도 이런 사람이었오? 안 그런 줄 알았는데….” 했다. 이 말을 듣고 속으로 “됐구나” 생각했다. 만약 그가 자기의 구둣발로 내 구둣발을 걷어찼으면 일은 어그려졌을 것이다. 그래서 일어서면서 쐐기를 박았다. “나는 믿고 가요.”

그는 대꾸도 하지 않았다. 질세라, 山은 그의 수하인 한일합섬 경비대장의 경례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러니 세상이 권투쟁이를 깡패로 보는구나.”

그로부터 한 20일쯤 뒤에 교복을 입은 소녀와 그 어머니가 연맹 사무실에 인사차 다녀갔다. 그 모녀의 기쁨 뒤에는 기회를 뺏긴 다른 소녀가 없지 않았을 것이다. 어느 것이 인정이고 어느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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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aidn 2021-06-26 오후 4:17

    ㅎㅎ ㅎ
    '山' 군의 객기도 ...

  • 김일중 2021-06-26 오전 11:10

    이런 글이 좋은 글 아닌가요? 좋은 글이에요. 참 좋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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